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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는 클레이 코트에서 라파엘 나달에게 5전 전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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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양말이 붉은색 흙가루로 뒤범벅이 됐다. 평소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았던 로저 페더러(26,스위스)의 냉철한 얼굴이 묘하게 겹친다. 페더러의 양말이 더러워진 이유는 열심히 뛰어다닌 것 말고는 없다. 그러나 페더러는 4월 23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모나코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시리즈 단식 결승전에서 어느 순간 마지막 게임으로 몰린 자신을 발견했다.
페더러는 문득 대회를 앞둔 4월 12일 자신이 뱉은 말을 떠올렸다. “올해는 클레이 코트에서 좋은 플레이를 선보일 것이다. 빨리 싸우고 싶다. 클레이 코트 그랜드슬램인 프랑스 오픈이 첫 번째 목표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온 3분 뒤 페더러는 땅에 입을 맞추며 감사기도를 하고 감격해 하는 라파엘 나달(21,스페인)의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봐야만 했다.
적합성의 문제페더러는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에 앞서 갑자기 깨끗한 새 양말로 갈아신었다. 논두렁에 푹 담갔다가 나온 듯한 나달의 황토색 양말과는 극명하게 대조됐다. 클레이 코트 패배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을까.
그러나 양말은 숨겨도 기록은 남는다. 이날 패배로 페더러는 나달과의 상대 전적이 3승7패가 됐다. 7패 가운데 5패는 클레이 코트에서의 전패다. 페더러는 4월까지 166주 연속 세계랭킹 1위(7,290점)를 지키고 있으며 2위 나달(4,875점)과는 랭킹 포인트가 2,400점 이상 차이가 난다. 페더러가 현재 세계최고의 테니스 선수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만 만나면 약해지는 페더러에게 랭킹 1,2위의 이상한 구조는 ‘테니스 황제’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페더러가 클레이 코트에서 약한 첫 번째 이유는 적합성에 있다. 페더러는 클레이 코트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페더러는 어렸을 때부터 하드 코트가 아닌 클레이 코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페더러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클레이 코트는 오래전부터 나에게 친숙하다. 다만 하드 코트가 내 플레이 스타일에 더 맞는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 페더러의 스타일을 정형화하기는 어렵다. 그는 베이스라이너이기도 하지만 서브 앤 발리도 능한 다기능 만능형에 가깝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스피드를 중요하게 여기는 공격 지향적인 선수라는 점이다. 페더러는 포인트 하나를 따기 위해 3,4구 앞을 미리 내다보는 치밀한 전략으로 상대를 몰아붙인다. 빠른 판단과 뛰어난 두뇌플레이가 바탕이다. 시나리오대로 끌려온 상대에게 페더러는 빠르고 강한 포핸드 스트로크로 결정타를 날려 경기의 흐름을 틀어쥔다.
그러나 클레이 코트에서는 다르다. 많은 마찰을 받은 테니스 공은 스피드가 떨어지고 바운드가 커진다. 스피드가 떨어지면 공에 반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져 그만큼 랠리가 오래가며 높은 바운드는 스트로크 타점과 라켓의 스윙폭에 영향을 미친다. 짧고 빠르게 끊어 치는 페더러로서는 완전히 다른 경기 운영을 생각해야 한다.
미끄러운 클레이 표면으로 공을 때릴 때 발의 중심이 완벽하게 고정되지 않는다는 점도 페더러에게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경기시간이 늘어나 강인한 체력까지 요구된다. 따라서 공격보다는 수비 위주의 선수들이 클레이 코트에서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인다.
김성배 전 KBS 테니스 해설위원은 클레이 코트에서의 플레이를 패턴의 차이로 설명했다. “한마디로 페더러는 공격, 나달은 수비가 강한 선수다. 나달은 어려서부터 공을 길게 넘기는 훈련을 주로 하면서 클레이 코트에 유리한 조건들을 익혔다. 습관적인 문제도 있다. 일반적으로 수비형 선수들은 체력이 좋고 끈질기다. 그러나 공격형 선수들은 성미가 급해 범실이 잦아지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페더러와 나달은 세계 1,2위의 선수다. 실력 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경기장 여건은 승패에 직결될 수 있다. 김위원은 “자기감정을 철저히 통제하고 세계최고의 실력을 가진 페더러이기에 그나마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과 그 정도 싸울 수 있다. 둘의 승부는 결과만으로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황제 프로그램 오류 그렇다면 ‘클레이 바이러스’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황제 프로그램’을 망가뜨리나.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실책이다. 페더러는 몬테카를로 마스터스 시리즈에서 세트별로 각각 자신의 서비스 게임을 한 게임씩 내줘 0-2(4-6, 4-6)로 졌다.
공통점은 두 차례 브레이크 포인트 게임이 모두 페더러 자신의 범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페더러는 1세트 9번째 게임에서 4개의 스트로크가 전부 벗어났고 2세트 3번째 게임에서는 어이없는 더블 폴트와 백핸드 미스샷을 저지르며 게임을 놓쳤다. 이날 페더러는 무려 38개의 범실을 기록했지만 나달은 절반 수준인 19개였다.
이유가 있었다. 타점이 잔디에서 치던 것보다 높다 보니 페더러의 낮고 날카로운 스트로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미끄러지는 발은 안정적인 샷을 방해했다. 제대로 타격이 안된 공은 네트에 자주 걸리고 넘어가더라도 나달에게 반격을 허용했다.
그렇다고 서브에서도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었다. 잔디와 달리 흙에서의 서브 바운드는 속도가 떨어졌으며 결국 서브 에이스도 3개에 그쳤다. 첫 번째 서브를 놓치기라도 하면 두 번째 서브는 에이스는커녕 기나긴 랠리로 이어졌다. 이날 페더러의 두 번째 서브 때 포인트 확률이 나달(57%)에 훨씬 못 미치는 43%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페더러가 얼마나 자기 스타일을 잃은 채 경기에 끌려갔는지를 설명해 준다.
머리가 좋은 페더러가 경기 도중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페더러는 경기의 돌파구를 열기 위해 때때로 네트를 점령했으나 발리의 바운드 속도 역시 클레이 코트는 잔디와는 달랐다. 지칠 줄 모르는 나달은 스피드가 떨어진 공을 줄기차게 받아넘겼고 강력한 왼손 손목을 써 미끄러지면서도 힘 있는 패싱샷을 여러 차례 성공했다.
워낙 길고 높이 튀어 오르며 되돌아오는 나달의 스트로크 때문에 페더러로서는 네트 앞으로 나갈 기회 자체가 봉쇄됐다고 하는 게 보다 더 정확하다. 페더러가 특별한 대안 없이 클레이 코트에서 나달을 만날 때마다 똑같은 전술을 들고 나오자 그의 코치 토니 로체가 경기가 끝난 뒤 페더러 팬들에게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페더러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나달의 왼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위원은 “페더러와 나달의 경기는 결국 누가 먼저 상대의 백핸드로 공을 강하게 보내느냐의 싸움”이라고 정의했다. 김위원에 따르면 백핸드의 경로는 10-7 정도로 포핸드보다 적다. 그래서 파워와 코스가 백핸드의 우열을 가른다.
왼손잡이 나달의 크로스 포핸드는 오른손잡이 페더러에게는 매번 백핸드다. 각도 또한 커서 공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잔디 코트라면 몇 번의 리턴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지만 잦은 랠리의 클레이 코트에서는 좀처럼 수세를 벗어나기 힘들다. 코트 중앙을 떠나 좌우로 자주 뛰어다녀 체력 소모가 심하다.
거기에 코트 깊숙한 곳에 톱스핀이 강하게 걸린 공에 이어 네트 앞에 살짝 떨어지는 드롭샷이라도 나오면 좌우에 상하 이동까지 더해진다.
2세트 9번째 게임 15-15에서 나온 12차례의 랠리가 단적인 예다. 두 선수는 이 게임에서 집요할 정도로 백핸드를 주고받았고 라인을 벗어날 정도의 멀고 긴 스트로크 싸움을 펼쳤다.
그러나 나달의 백핸드가 더 강했다. 10구를 맞아 나달은 양손 백핸드로 페더러의 무릎쪽을 공략했고 리턴이 짧자 12구를 드롭샷으로 응수했다. 결국 페더러는 13구 리턴을 포기했고 나달은 왼손주먹을 불끈 쥐었다. 페더러는 경기가 끝난 뒤 “클레이 코트는 나달의 코트다. 오늘 패배가 프랑스오픈에 좋은 정보를 줬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나달은 5월 3일 스페인 팔마데마요르카에서 벌어진 페더러와의 이색 코트 대결에서도 2-1(7-5, 4-6, 7-6)로 이겼다. 이번 이벤트는 코트를 반으로 갈라 서로에게 강한 잔디와 클레이 코트를 오가며 경기를 치러 팬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같은 동등한 조건이 이뤄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강점이 있다. 상어가 땅으로 올라와 맹수와 겨룬다면 사자나 호랑이를 만나기도 전에 하이에나의 밥이 될 수 있다. 나달과 페더러 대결의 승패는 결국 ‘강점의 적합성’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
*클레이 코트란
클레이 코트를 그저 흙으로 만든 테니스 경기장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토양의 종류가 다양하듯 클레이 코트도 여러 가지가 있다. 테니스 코트 설계를 하고 있는 정민철 대한테니스협회 공인검정위원은 “한국은 황토와 마사토가 섞인 클레이 코트가 많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는 인공토인 앙투카(En-tous-cas)코트가 많다.
1930년대 프랑스에서 처음 개발한 앙투카는 벽돌가루를 미세하게 갈아 흙과 배합해 만든다. 프랑스오픈이 열리는 롤랑가로와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 등에 깔려 있다. 코트 색상을 붉게 한 것은 시각적 효과를 위해서다. 앙투카 코트는 자재값 때문에 일반적인 클레이 코트보다 시공비가 1.5배 정도 더 든다.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조개껍데기를 빻아 흙과 섞어 클레이 코트를 만들기도 한다.
정위원은 “클레이 코트는 1m 정도를 땅을 판 뒤 맨 밑에 큰 돌을 놓고 기초를 다진다. 그 위에 작은 자갈과 모래를 차례대로 깔고 마지막에 흙으로 얇게 표면 처리를 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어인 ‘앙투카’의 뜻은 ‘어떠한 때라도’이지만 어떠한 때라도 관리에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코트가 클레이 코트다. 클레이 코트의 단점은 먼지가 많이 나 스프링클러로 물을 자주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가 오면 롤링으로 코트 손상을 막아야 하며 경기 중에도 석회가루로 라인을 정비해야 한다. 그래서 페인트만 칠하면 되는 하드 코트와 달리 클레이 코트에는 2,3명의 관리인 늘 붙어 있어 인건비 등 관리비용도 많이 든다. 그러나 공사비는 하드 코트가 한 면에 7~8천만 원이지만 클레이 코트는 3천만 원선이다. 세계적인 추세는 유럽을 제외하고 하드 코트가 70%, 클레이 코트를 포함한 여러 종류의 코트가 30%를 점유한다.
클레이 코트는 선수들의 무릎과 허리에 몰리는 충격을 흡수하는 장점이 있다. 클레이 코트에서 선수들은 공을 따라가면서 칠 때 발이 미끄러진다. 그래서 부상 위험도 하드 코트에 비해 적다. 서울 양재테니스클럽의 한 관계자는 “나이 드신 분들은 무릎 등에 무리가 올 수 있기 때문에 클레이 코트에서 테니스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또 클레이 코트에서는 낮게 깔리는 공의 스피드가 떨어져 하드 코트에서의 3,4번의 랠리가 7,8번의 랠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SPORTS2.0 제 50호(발행일 05월 07일) 기사
첫댓글 쿠쿠 이런 글은 서울 지부 소모임 들어가셧어 남기세요 ^^* 요긴 정모 신청란
이전대회에서 이겼던데.. 프랑스오픈에서 기대할만하겠습니다,
나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