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빌라왕’ 사건을 비롯해 전세사기 피해가 잇따르자 정부가 예방책과 피해 구제책 등 특단의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조만간 전세사기 관련 추가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그간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관련 업계의 요구가 컸던 ‘임대인 변경 시 임차인에 고지 의무화’가 정부 대책에 포함될지 주목된다.
26일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국토부는 법무부를 비롯한 관계기관과 임대인이 변경됐을 때 이를 임차인에게 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놓고 논의 중이다.
이는 임대인이 소유권 변경 사실을 임차인에게 고지할 의무가 없다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해 전세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이에게 집을 팔고 잠적하는 등의 사례가 늘어나자 피해 예방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인 변경 미고지로 인한) 문제는 인지를 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규율하는 게 맞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관련 규정을 고칠지, 아니면 임대인과 임차인 간 계약을 할 때 계약서에 (고지를 의무화하는) 특약을 반영하는 게 맞을지 등 관리 방안이 여러가지이기 때문에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미 국회에서는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논의는 더딘 상황이다.
작년 11월 임대인 변경 시 임차인에게 통지 의무를 부여한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지만 같은 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회 관계자는 “작년 11월 발의된 이후 논의 진전이 전혀 없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지난달 중순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법률지원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국토부와 법무부는 국회에 발의되어 있는 법안도 검토 중이다.
다만 임대인 변경 시 임차인에게 고지를 의무화하는 등의 규제 소관부처인 법무부는 고지 의무화로 인한 부작용 등을 우려해 이를 정부 대책으로 내놓는 데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임대인 변경을 임차인에게 고지했을 때 임차인이 임대인의 매매계약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주장하거나, 나가겠다고 통보해 부동산 시장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그런 우려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임대인이 변경됐을 때 법적으로만 보면 전세 계약 해지 요건이 발생되는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현재 주택시장의 상황을 봤을 때 선량한 다수의 세입자들의 재산권을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고지 의무화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적 반감이 일부 있을 수 있으나 좋은 취지의 대책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임대인, 임차인들이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정부 대책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관측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임대인 변경 시 임차인 고지 의무화 방안의 전세사기 피해 예방 효과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법은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현재의 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변해야 한다”며 “임차인이 새로운 임대인의 재산상황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기본적 골격을 만들어 놔야 한다.
임대인이 매매계약 시 먼저 등기 이전에 임차인에게 알려 퇴거 선택권을 줘야하고, 임차인이 계약을 존속한다면 임대인 변경에 대한 고지가 의무화되어 있을 때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이 확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임대인 변경 또는 사망으로 인한 전세사기) 유형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임대인 변경 고지 의무화는 전세사기 대책과는 관련이 부족하다”며 “고지를 하더라도 상속인이 없을 경우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임대인 변경 고지 의무화 여부를 비롯해 추가 대책 관련 논의를 거쳐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김효정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지난 10일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설명회에서 “(전세사기를) 예방하는 과정부터 단속, 처벌까지 추가적 방안을 마련해 이달 중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 논의와 별개로 공인중개사협회는 이미 지난 11일 전세사기 방지를 위해 협회 자체적으로 ▷임대인의 국세·지방세 체납 사실이 없음을 고지 ▷임대인이 주택 매매계약 체결 시 사전에 임차인에 고지 ▷임대인이 확정일자 다음날까지 담보권 설정 불가 등의 특약을 추가한 새 임대차계약서를 도입하기로 결의했다.
협회 관계자는 “전세사기 사전예방책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에 먼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지 국토부와 협회가 계속해서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