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소서계전(後素書契展)을 열며-
연묵회는 경북대상주캠퍼스에 서예를 통한 정신수양, 학생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 서예 발전, 학교 위상 고취를 목적으로 1976년도에 창립하여, 1977년 10월 26일 소산 김기탁(素山 金基卓) 선생님의 지도하에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배출한 회원이 500여명을 배출했다. 특히 봄가을로 학생들과 고적지(古蹟地)를 찾아 비석을 씻어내고 종이를 대고 탁본 솔로 두드려서 물기가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술 한잔 기우리 다가 탁본 방망이로 먹을 묻혀 탁본하던 생각이 난다. 일찍이 추사선생이 밝혀낸 <북한산순수비>처럼, 금석학의 정신을 학생들에게 심어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졸업 이후 서울에서는 1987년 12월 연묵회 동문회가 결성되면서, 제1대 구자헌[1기], 제2대 이진국[2기] 제3대 양규철[3기], 제4대 이규환[5기], 제5대 박문기[6기], 제6대 이탁형[6기], 제7대 김영배[7기], 제8대 이대명[8기], 제9대 박정수[12기], 제10대 신동원[14기] 회장으로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2017년 1월에는 붓을 들고 있는 회원이 소산 김기탁(素山 金基卓)선생의 ‘소(素)’자를 따서 후소서계(後素書契)란 이름으로 모임을 만들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전시회를 열지 못하다가 김기탁선생께서 선종(善終)하시고 열게 된 것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김기탁선생은 “서예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은 유시무종(有始無終)으로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는 무한의 경지를 동경하는 수련(修練)입니다. 서(書)는 유공권(柳公權)이 말한 심정즉필정(心正则筆正)의 마음으로 항상 극기(克己) 뒤 따르지만, 순간순간의 고된 작업도 즐거움을 주는 매력이 있기에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연묵회를 지도 할 때도 항상 바른 마음을 강조했다. 서예는 마음을 형태로 풀어내는 예술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문학의 스승인 모산 심재완(慕山 沈載完)선생의 2002년 소산김기탁서예전(素山金基卓書藝展) 격려사(激勵辭)에서“오랫동안 서법(書法)지도로 정든 제자들의 열망(熱望)과 성수(聲授)을 외면할 수 없어 대학 총장의 바쁜 일정 속에서 서전(書展)을 연다한다. 망중한(忙中閑)의 여유를 보이니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다.
소산은 학생 시절 서예가 김만호 공(金萬湖 公)을 사사(師事)하며 <전국대학생서예대회>에서 입상까지 하였으니 서예 경력이 오래라 하겠다. 그는 스승을 추앙(推仰)하며 기예(技藝)와 인격(人格)을 함께 닦는데 힘쓰더니, 이제는 자신이 제자의 존경(尊敬)받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참으로 바람직한 서법계승(書法繼承)의 길이라 할 수 있겠다. 소산(素山)의 서법은 구안(歐顔)의 필법(筆法)에서 득력(得力)한 소헌체(素軒體)를 배우는데 성실(誠實)하였다. 서법과 행실(行身) 바른 삶의 정신을 이어가며 펴고 있다. 그의 서법을 보면 해행(楷行)은 당(唐)의 평온(平穩)에서 위진(魏晉)의 질탕(跌宕)을 배우고, 침경건고(沈勁健古)를 익혀 임고(臨古)와 자운(自運)의 합일조화(合一調和)를 찾는데 힘썼다. 출품한 <愛蓮說>과 해서대자(楷書大字)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보인 필법은 근엄단정(謹嚴端正)하고 온유독실(溫柔篤實)한 그의 품성(品性)을 보이니 심정서정(心正書正)의 명언(名言)을 상기(想起)시킨다. 국문학자(國文學者)요 서예가(書藝家)인 소산(素山) 대학총장(大學總長)의 중책(重責)을 수행(遂行)하며 서법 정신을 구현(具現)하고 있는 듯하다. 서도(書道)로 체득(體得)한 지혜(智慧)와 덕성(德性)이 그의 일상생활과 교육행정(敎育行政)에 반영(反映)되고 있으리라 생각할 때 소산서전(素山書展)은 한결 뜻깊은 행사가 되리라 믿어진다.
‘글씨는 사람이다’란 서(書)의 본 뜻을 생각케 하는 이 서전(書展)에 큰 성과(成果)를 기대(期待)하는 마음 간절하다.”라고 하여 김기탁선생의 필법이 근엄단정(謹嚴端正)하고 온유독실(溫柔篤實)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는 서여기인(書與其人)을 말하고 있다. 제자인 김기탁선생도 2008년 <감골의 인연전> 축사에서“서법지도(書法指導)에는 붓을 잡기 전에 ‘心正筆正’, ‘書與其人’을 되새기며, 서학인(書學人)의 자세를 밝히고, 기법(技法) 연마와 정신수양(精神修養)의 병행(竝行)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이 길을 지성무식(至誠無息)으로 연습과 반복으로 실천궁행(實踐窮行)하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마침내 동문중(同門中)에는 각고(刻苦)를 거듭하여 대한민국미술대전에 특·입선하고 도전작가(道展作家)로서 많은 작품을 하면서 서예술에 끊임없이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되로 배워 말로 쓴다.’라 하듯이 이제 제자들이 그동안 부족한 나에게 기초를 배워서 연마한 결과 장차 우리나라 서단을 이끌어갈 인재들이 되었으니 참으로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일이라 하겠습니다.”라고 하여 제자 또한 심정서정(心正筆正)하는 마음으로 서여기인(書與其人)을 생각하며 지성무식(至誠無息)으로 글씨 연습을 하라고 말하고 있다. 김기탁선생은 평소 작품 할 때 마다 덕(德)자를 좋아했다. 덕(德)자는 길척[彳]과 곧을직[直]이 합쳐진 것으로 ‘한 눈 팔지 않고 길을 똑바로 잘 가다’의 뜻인데 심(心)이 붙여진 것은 도덕심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김기탁선생이 즐겨 썼던 서예작품을 보면, 덕파무애(德波無涯), 공청검근(公淸儉勤), 숭덕업광(德崇業廣), 시혜종덕(施惠種德), 관인후덕(寬仁厚德), 적덕수복(積德受福), 심정서정(心正筆正), 퇴필여산(頹筆如山), 이근위보(以勤爲寶), 공숭유지(功崇惟志), 지성무식(至誠無息) 등등, 대체적으로 덕과 성실함을 강조하는 문장으로 글씨를 썼다. 김기탁선생은 국문학자로서 평소에 바른길을 걸어가며 짬을 내어 서예로 마음 수양하며 군자의 길을 걸어오신 것이다. 김기탁선생은 연묵회 회원이 졸업 후에도 서울을 올라오시면 항상 연묵회 회원들의 안부를 묻곤 했다. 작년에 선종(善終)하기 전에는 글씨와 관련 자료를 나에게 보내면서“네가 알아서 해라! 몸 조심해라”라는 말을 남겼다. 그 순간은 평상시 인사로만 들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니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김기탁선생의 업적으로는 국립상주대학교총장(國立尙州大學校總長1999-2003), 일선[선산]김씨농암파종친회회장(一善[善山]金氏籠巖派宗親會會長)직책을 수행했고, 서경가사연구(敍景歌辭研究 서울: 학문사,1989)외 10권의 책과 논문으로는 「매호별곡梅湖別曲」의 서경성(敍景性)외 73편을 썼다.
이번 후소서계전에 찬조로 출품한 국립 경북대학교 대구캠퍼스 출신 작가 김양동,노상동,권상호,성익창선생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학 은사(恩師)이신 권태을교수님, 영화묵연회(永和墨硏會) 고문·자문위원-전광진교수,김대원교수,최병준선생,정경화선생,김건표선생,고지완회장, 그리고 후소서계 회원과 김기탁선생의 자녀인 김혜림,김민석님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2026년3월19일
後素書契會長 靑耘 金榮培 謹識 후소서계회장 청운 김영배 삼가 기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