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앙리 2세
그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프랑스 궁중에는 국왕 앙리가 어떻게 죽어가는가를 기술한 노스트라다무스의 악명높은 예언에 대해 아무도 감히 발설하지 못했다.
야전의 단 일격의 싸움에서 젊은 사자는 늙은 사자를 압도하리라.
황금투구안의 눈을 그가 찌르니
일격에 두 군데의 상처로 그는 비참하게 죽더라.
이 예언은 4년 뒤인 1559년에 현실이 되었다. 사자(獅子)의 문장(紋章)을 가진 앙리는 국왕 직속 의 스코틀란드 근위대 대장인 몽고메리라는 젊은 사관과 진선 마상(馬上)창시합을 겨뤘다. 그런데 우연히 몽고메리의 창이 앙리의 금빛 투구를 관동하여 눈과 목을 찌르게 되었다. 왕은 열흘이나 괴로와 죽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적중한 것은 앙리의 미망인 까떼린 데 메디치에게는 충격이었다. 왕비는 예언자를 철저히 믿게 되었고 그의 후견인이 되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노스트라다무스를 궁궐의 거울에 미래의 모든 프랑스 왕의 '환상'이 비치도록 했다. 아마도 옆방에 사람들을 배치해서 영상을 반사시키는 속임수를 쓴 것 같은데 미신을 잘 믿는 까떼린 왕奏?매우 감명을 받았고 그러써 왕비의 그에 대한 신임은 더욱 확고해졌다. 앞날을 보장받게 되자 비로소 노스트 라다무스는 전인류의 미래를 웅장하게 예언한 저작을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또한 까떼린 왕비의 세 아들이 어머니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을 정확히 예언했다.
루이 16세
1791년에 바렌느로 도망쳤다가 결국 혁명군에게 잡힌 루이 16세와 앙뜨와네뜨 왕비의 운명은 다음과 같이 조목조목 기술되어 있다.
루이 16세 앙뜨와네뜨 왕비 처형되는 루이 16세
밤이 되자 렌느의 숲속에 이르러 도망길에 나선 두 사람은 헤메도다. 흰 보석으로 유명한 왕비와 바렌느에서 회색 사제복을 입은 왕 까뻬 왕가에서 선발된 그가 소란과 불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살륙의 원인이더라. |
왕과 왕비는 탈출하여 밤이 되자 숲지대까지 도망쳤으나 길을 잃었고 하필이면 나쁜 길을 택했다. 흰보석이라 함은 왕비의 평판을 악화시킨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을 지칭한 듯 하며 실제로 왕비는 흰옷을 입는 습관이 있었다. 사제복의 왕이라 함은 한때 불임증에 걸렸던 왕을 은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체포되었을 때 회색옷을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은 까뻬 왕가의 일원이었으며 길로틴에 의한 처형법(피비린내 나는 살육)은 그가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왕은 혁명과 그에 따르는 폭력의 원인이었다.
연관된 구절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왕과 왕비를 한 때 위기에서 피난시켰던 솔스라는 사람의 이름까지도 댔다.
※ 참고
입헌군주제의 수립을 추진하던 중, 7월 14일 파리 시민의 바스티유감옥 습격으로 프랑스혁명
의 막이 올랐다. 10월 6일 왕은 파리 시민에 의하여 베르사유에서 파리로 옮겨져 완전히 민중
의 감시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후 콩트 드 미라보의 중개로 의회와 궁정 사이가 안정되는 듯
하였으나, 1791년 6월 왕은 일족과 함께 파리를 탈출, 국외로 도망하려다 바렌에서 체포되었
다. 1791년의 헌법 성립과 동시에 입헌군주제의 원수의 지위가 보장되었으나, 1792년 8월 10
일 파리 시민의 재차 봉기로 체포되어 탕플탑(塔)에 유폐(幽閉)되고 왕권은 정지되었다(9월
21일). 12월부터 열린 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1793년 1월 처형되었다.
나폴레옹
예언자는 나폴레옹의 출현을 예견했으며 그를 제 1의 반기독교적 인물이라고 썼다.
( 제 2의 인물은 히틀러,제 3의 인물은 아직 출현하지 않은듯 한다 ) 나폴레옹의 권력 장악과 그가 통치했던 시대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폴레옹 초상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
이탈리아 부근에서 황제가 탄생하리다. 그는 제국에 대해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르리라. |
사실 나폴레옹은 몰락할 때까지 프랑스로 하여금 인력과 정치권력에서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또한 나폴레옹의 운명도 예언했다.
대제국을 곧 작은 땅과 맞바꾸게 되지만 작은 땅은 곧 커지리라.
그 좁은 땅 가운데에 그는 그의 홀(笏)을 내려놓게 되리라. |
나폴레옹은 엘바라는 작은 섬에 유배되지만 탈출하여 100일동안 정권을 잡게 되며 그의 제국은 또다시 커진다. 그러나 남대서양의 세인트 헬레나라는 더 좁은 섬에 유배된 그는 모든 권력의 꿈을 잃게 된다.
찰스 1세
노스트라다무스는 찰스 1세에 대해 많은 예언을 했을 뿐 아니라 로드대주교와 크롬웰에 대한 예언도 했다.
찰스 1세의 초상 찰스 1세 사형집행
잉글랜드 왕국에서 무책임한 자는 쫓겨날 것이로되 고문관은 분노 때문에 화형에 처해지리라. 그의 신하들은 비겁하게 엎드려 굴복하리니 왕인 체하는 자가 왕위에 오를 뻔하리라. |
찰스가 왕권을 잃은 것은 무책임한 성격때문이었다. 고문 로드 대주교는 1645년에 참수형(화형이 아님)을 당했다. 비겁하게 굴복했던 신하들이란 스코틀란드인들로서 1646년 그들의 왕을 의회에 팔아 넘겼으며, '왕인체하는 자'란 아마도 '호민관'으로서 거의 왕위에 오를 뻔했던 올리버 크롬웰을 뜻하는 것 같다.
찰스에 관한 가장 예리한 예언은 이렇다.
'런던의 의회는 그들의 국왕을 사형시킬 것이며... 그의 죽음은 의회의 체발(剃髮)한 무리들 때문이로다. ' |
예언자는 분명히 머리를 짧게 깎는 청교도의 원두당(圓頭黨)을 지칭하고 있었다. 예언자는 또한 '공포에 질린 도시, 부서진 다리의 도시'에 대해서도 썼다. 그것은 아마 다리(橋)를 뜻하는 라틴어 퐁스(pons)와 '부서진'을 뜻하는 라틴어 프락투스(fractus)에서 유래한 폰티프락트(Pomtefract)란 도시를 지칭하는 성싶다. 그 도시는 크롬웰파가 두 번이나 점령했으나 시민들은 찰스를 저항했다.
루이 파스퇴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최근에의 역사적인 일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서도 시대와 이름이 예언되고 있다.
루이 파스퇴르
파스퇴르는 신과 같은 명성으로 축복받으리니 때는 달이 태음주기를 끝냈을 때의 일이로다. |
파스퇴르는 1889년 파스퇴르 연구소를 설립하여 의학부문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지구의 태음주기는 19년이다. 1889년이 바로 이 태음주기가 완료되던 해였다.
히로시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에 관해서도 예언되었다.
항구 근처의 두 도시에서는 지금껏 유례가 없던 참화가 두 번 일어나리. |
두 도시는 바다에 명해 있고 그 두 곳에서 있었던 핵폭발의 참화는 인류가 일찌기 경험한 바 없었다.
히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된 장면
첫댓글 노스트라다무스의 실현된 예언 잘 읽었습니다.
실현된 예언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참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