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아저씨. 아까 낮에 떼거지로 싸우구 들어
온...
경찰 여자복이 터졌네. 그 그 도둑놈.
미래 네?
경찰 어떤 아가씨가 달구갔어.
미래 ...(멍한 표정. 혼란스럽다.)
경찰 ... 왜 그래?
미래 (나직이) 도둑놈 도둑놈 하지 마. 니가 봤
어? 도둑질 하는 거? (나가려 다 돌아서며) 근
데... 어떻게 생긴 년인데요?
0-2. # 시내 고가 아래 작은 포장도로(밤)
인적이 없는 고가밑 소도로. 청년 하나가 안전등과 무전기를 들고
서 있다.
주변엔 주택이 없다. 고가 건너편에 자그마한 등성이가 있고, 그
윗쪽으로 판자집 몇 채가 있다.
청년은 하품을 하며 하릴없이 왔다갔다 한다.
무전기 소리.
무전기E 김 동수, 빨랑 와 봐.
청년 (무전기에) 네.
멀리서 걸어오는 경의 모습.
고가 아래까지 와 선다. 복수도 여전히 경의 곁에 있다.
등성이에 쌓아 올려진 판자 위에 앉는 경.
복수도 따라 앉는다.
담배를 피워무는 경.
경이 복수에게 담배를 준다.
담배 못 피는 복수가, 담배를 핀다. 기침을 해댄다. 하지만 계속 피
운다. 경이 주는 담배를 감히 거절할 수가 없다.
경 (불빛 어린 판자촌을 본다.) ...저기, 저 집
이 내 친구랑 그 어머니가 살던 집이예요. ...친구
는 죽고, 이젠 어머니 혼자 살아요.
복수 ...
경 ...(낮은 음성으로) 그래서... 댁을 미워해
야 돼요. 그 친구가 죽어서도 아니구요, 내 마음
이 슬퍼서두 아니구요. ...저기 늙은 어머니가, 죽을 때
까지 혼자 살아야 하기 때문에요. 그거 때문에요. ...
그 어머니가, 평생 가 져갈 외로움 만큼, 나도... 평
생동안 댁을 미워할겁니다. ...(조용히 일어선 다.)
나한테, 용서 빌지 말아요. ...용서 못합니다.
복수 ...(흔들리는 눈빛으로 경을 올려본다.)
경 ...(냉정하게 복수를 내려본다.)
이 때, 복수의 핸드폰이 울린다. 자판에 송미래란 이름이 뜬다.
경, 돌아선다.
이 때, 고가 난간을 뚫고 복수와 경의 머리 위를 나는 승용차. 박쥐
처럼 하늘을 난다.
복수와 경의 놀란 얼굴, 고가 철근이 떨어져 경의 머리 위로 향한
다.
복수, 경을 끌어당겨 힘껏 감싸 안으며 바닥으로 엎어진다.
경의 손에 들려 있던 담배불이 복수의 얼굴에 닿고, 복수의 등에
철근이 떨어진다.
놀라는 경의 얼굴.
이내 경과 복수를 향해 승용차가 떨어져 내린다.
고개 돌려 하늘을 보는 복수. 그리고 경. 포즈.
포즈된 화면 위로 승용차 부서지는 소리가 강하게 들린다.
1. # 고가 밑(밤)
복수와 경을 향해 날아오는 승용차.
복수와 경의 얼굴위로 승용차 그림자가 어린다.
경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는 복수.
복수는 최대한 경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감싼다.
승용차가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실눈을 뜨는 복수.
승용차가 둘이 뒹구는 바로 옆 켠을 타고 서너바퀴 굴러 등성이 밑
으로 떨어진다.
그 상태로 승용차가 멈출 때까지 바라보는 복수.
이내, 끙끙대는 신음소리가 난다.
복수, 불현 듯 경을 본다. 복수에 깔리고 복수의 손에 얼굴이 파묻
혀 팔을 허둥대고 있다.
복수, 재빨리 몸을 일으키는데, 등이 아프다.
경이 복수의 고통을 느낀다.
경 가만 있어요.
경이 복수의 어깨를 조심스레 받쳐준다.
천천이 일으켜 세우곤 복수의 등쪽에 찢겨진 옷을 본다.
경 (가만히 만지며) 아프죠?
이 때, 복수가 벌떡 일어나더니 승용차 쪽으로 달려간다.
경, 똥그란 눈망울로 달려가는 복수를 본다.
거꾸로 뒤집힌 승용차 운전석 안에 운전자가 있다.
차문을 여느라 애쓰지만 문이 열리지 않는다.
복수가 승용차 창문을 부수고는 운전자 구출시도를 하고 있다.
복수와 눈이 마주친 운전자. 스턴트 맨, 양 찬석이다.
양 찬석 (놀란 눈으로) 가. 절루 가.
복수 (의아한 눈빛) ... 자살할라 그랬구나. (야
단치듯.)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데...
그리곤 찬석을 끄집어 내느라 정신이 나갔다. 경도 어느새 따라와
복수를 돕는다.
찬석을 끄집어냈다.
이 때.
E 컷.
등성이 너머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우르르 뛰어온다. 한 2,30명은
됨직하다.
인상들이 험악하다.
E 뭐하는 놈이야, 저거?
복수와 경이 소리나는 쪽으로 얼굴을 들면 하늘에 두 남자가 떠 있
다.
크레인을 타고 뱅글뱅글 내려오는 감독과 촬영감독. 메가폰을 든
이가 감독이다.
신기한 듯 하늘을 바라보는 복수와 경.
E (메가폰을 든채 복수에게) 너, 소품비 물어
내. 응? (카메라 감독에게)딴 카메라에 두 잡
혔겠네, 쟤네?
복수와 경은 얼이 나갔다.
양 찬석 (널부러진 채 울상이다.) 거봐요. 내가 그냥 가라 그랬
잖아요.
E 조감독, 차 한 대 더 있지?
조감독 (밑에서) 네, 감독님.
E 빨랑 정리해. ...스턴트, 다시 가자.
양 찬석 네. 감독님.
크레인 다시 하늘로 날아 등성이 너머로 사라진다.
스탭들은 승용차 주변에서 무전기로 지시를 내리고 받는다. 승용
차를 들어올릴 크레인을 요청하던가, 소품이라던가... 그런거...
지쳐보이는 양 찬석이 어깨를 어루만지며 일어선다. 여전히 울상
이다.
양 찬석 (원망어린 눈으로 복수를 본다) 다 망쳐놓구 있어, 진
짜. ...(걸어가다가 복수를 본다) 차 뒤집힐 때마
다 겁나 죽겠단 말야, 씨.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양 찬석. 모양새가 완전 조폭이다. 등발 있
다. 얼굴에 칼자국도 있다.
복수가 유심히 양 찬석의 모습을 본다.
양 찬석은 그리 멀쩡해 보이지 않는다. 아주 아파 보인다.
경 (복수의 등을 보며) 아프겠다.
복수 (절름대는 양 찬석을 여전히 바라보며) 아
파도 잘 참네요.
경 (복수의 찢어진 등쪽 티셔츠에서 어느새
피가 새어 나왔다. 자신의 옷소 매로 복수의 피를
막는다.)
복수 (그제사) 아야. (그리곤 경을 본다.)
경 (복수의 얼굴을 보곤) 어?
복수 ?
경 (복수의 얼굴에 담배빵이 났다.) 담배빵 났
다. (놀라서 한 손으로 복수의 얼굴을 만진다.)
몽롱하게 경을 바라보는 복수. 그 모습에 갑자기 민망해지는 경.
조감독 (둘의 얼굴 사이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며 비아냥.) 에
로 찍습니까?
둘, 조감독을 본다.
조감독 빨랑 가요. 남의 영화 망치지 말구...(그리곤 재빨리 스
탭들 쪽으로 간다.)
복수 (머뭇대다가 경에게) 라면 먹을래요?
2. # 라면집(밤)
손바닥만한 라면가게.
가게 밖 창가엔 나무로 만든 선반이 있다.
그 곳에 복수와 경이 나란히 앉아 라면을 먹는다.
둘, 아무말 없이 라면만 먹는다.
국물까지 다 먹도록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물로 입을 가시고 냅킨으로 입을 닦는다.
그리곤 잠시 숨을 쉰다.
이 때, 핸드폰 벨이 울린다.
둘, 핸드폰을 꺼낸다.
핸드폰 벨소리가 같다. (음악소리 아니다. 순수 벨소리다.)
핸드폰 디자인도 같다.
복수와 경. 상대편의 핸드폰을 보곤 옅은 미소.
복수의 화면에 이름이 뜬다.
<날씬이 011-000-0000>
3. # 미래의 집-옥상(밤)
핸드폰을 들고 있는 미래.
그대로 난간에 기대서서 도심의 불빛을 바라본다.
쓸쓸한 표정의 미래.
4. # 동진의 빌라-거실(밤)
고급스런 실내. 그러나 옷가지며 물건을 여기저기 늘어놔서 지저
분하기 짝이 없다.
소파에 누운채 핸드폰을 들고 있는 동진.
거실바닥엔 로봇 바둑이가 틱틱 소리를 내며 걸어오고 있다.
발가락으로 바둑이를 툭 밀쳐본다.
바둑이가 뒤집어진다.
5. # 라면집(밤)
경의 핸드폰 화면에 뜬 동진의 전화번호.
<기자 011-000-0000>
둘, 울리는 핸드폰을 쥐고 망설인다. 그러나 받지 않는다.
벨소리가 멈춘다.
경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경 라면 잘 먹었습니다. ...그리구 이제... 다
시는... 아저씨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꾸벅
인사를 하곤 돌아선다.)
복수 ...저기요. (일어선다)
경 ...(멈춰선다)
복수 ...벌 받고 싶은데...
경 ...(돌아본다.)
복수 ...뭐든 했으면 좋겠는데... 어뜩케...
경 ...(고개 숙인다. 나직한 음색으로) 아무 것
도 하지 말아요. 난 그냥... 아 저씨 미워할래요.
미워하게... ...그냥 둬요.
고개 숙인채 잠시 침묵에 빠진 경, 이내 자리를 뜬다.
복수의 눈매가 서늘해진다.
복수 (경의 멀어지는 등 뒤에서 작은 소리로 혼
잣말한다.) 다신... 안 그럴께요.
얼굴을 돌려 허공을 보는 복수.
헤어져 멀어지는 둘의 모습이 부감으로 보인다.
F.O.
6. # 밴드 연습실(낮)
밴드가 이상한 음악을 한다.
20초짜리 중고차 로고송이다.
가사는 별거 없다. 20초동안 별리가 이상한 신음소리를 내다가 마
지막에 중고차 상호를 하이 키로 고함치듯 내뱉는다. 상호 “헬로
우 올드 카”
경 몇 초야?
별리 20초.
경 15초에 맞추랬는데?
기홍 신음을 짧게 가.
정국 그럼 맛이 안 산다.
별리 ...(비아냥) 예술을 하네, 아주.
기홍 200만원 짜리야, 이거.
별리 돈에 환장했냐? (경에게) 이쁜아. 어뜩해?
신음 줄여, 말어?
경 전체적으로 좀 빨리 가자.
정국 오케이.
정국의 드럼이 리드한다.
별리의 빠른 신음. 숨이 찼던지 마지막 상호에 힘이 빠진다. 그래
서 섹시한 버전이 됐다.
별리 헥... 숨차다.
기홍 이게 더 낫다.
정국 내 입장에서두... (미소) 더 야해.
경 ... 어쩌지? 언니. 20초루 다시 한 번 해 봐.
별리 (버럭 소리친다.) 그만해. (소파에 풀썩 앉
는다.) 느끼해 죽겠네.
이 때, 철문이 꽝 열린다.
밴드들 돌아본다. 미래다.
미래를 보자, 별리가 기타를 벗어 젖히며 미래 앞에 선다. 그리고
고개를 한껏 치켜든다. 귀엽다.
미래 (별리를 보며) 야.
별리 왜?
미래 코딱지 보여. (별리를 스치며 경 앞에 선
다.) 너.
경 ...
미래 어젯밤에 니가 파출소 갔냐?
경 (겁난다.) ...네.
미래 ...(야린다.)
경 ...
미래 (경의 손을 덥썩 낚아채며 악수하듯 흔들
어 댄다.) 고맙다.
경 ...
미래 니가 내 남편, 도둑 아니라 그랬다며?
경 ...
동료들이 경을 쳐다본다.
미래 (자상하게) 잘했다. 사람이 살면서, 모든
걸 법으로 하려는 거 있잖아, 그 거, 참 치사한 짓
이잖니? 안 그러니? 맘에 들었어, 너.
별리 ...왜 쟤가 니 맘에 들어야 되냐?
미래 (별리는 안 보고 경만 보며) 왜냐면... 만약
에 니가 치사하게 굴었으면, 나, 여기 불지를
라 그랬다. 무섭지? (경에게 윙크를 하며) 앞으로도 조심
해 줘.
경 저...
미래 (돌아본다)
경 (미래의 손목을 보며) 그 시계, 어디서 사
셨어요?
미래 (손목을 들어 보이면 경의 잃어버린 시계
다.) ...내 남편이 사 줬다. 왜?
경 ...네에.
미래 애 참, 싱겁네.
그리곤 미소지으며 연습실을 나간다.
별리 (궁금한 듯) 이쁘냐, 시계? 난 별룬데?
기홍 (경에게 따지듯) 그 놈, 도둑이라며? 왜 아
니라 그래?
정국 ...(경을 바라만 보다가) 그만하고, 다시
한 번 가자. (드럼 리드)
별리 (보컬은 하지 않고 경을 본다.) ... 너, 감
자 좋아해?
경 ?
별리 그 도둑놈, 꼭 감자같이 생겼드라. (그리
곤 기타를 맨다)
경, 숨이 막힌다.
7. # 밴드 연습실 현관 앞(낮)
계단에서 팔짱을 두른채 현관 구석을 빤히 바라보는 미래. 눈빛이
심상치 않다.
구석엔 경의 기타와 그 옆에 포장된 유순이네 치킨이 놓여있다. <
꼬꼬닭 치킨>
기타와 치킨 앞에 가 서는 미래. 감이 불길하다.
8. # 보라매 공원 (낮)
공원을 두리번대며 걸어가는 복수. 볼에 일회용 반창고를 붙였다.
꼬붕이 인상을 긁으며 복수를 뒤따른다.
꼬붕 (우뚝 멈춰서서 화낸다.) 아, 왜 그러는
데? 왜, 왜, 왜? 왜 그러는데?
복수 소리는 지르구 그러냐. 민망하게... 우리
잘살자, 꼬붕아. 멋지게 살자, 우 리 응? (감탄한
다.) 진짜 멋있드라. 그 사람. 하늘을 막 날라다녀.
꼬붕 (애원조로) 나, 지금 좋아. 그냥 걸어 다닐
래. 형이랑 예술적으로 지갑 수 거하는거, ...행복
해. 난 내 기술에 자부심을 느껴. 돈도 잘 벌고, 기술도
좋구, 뭐가 부족해?
복수 미래가 부족해.
꼬붕 송 미래?
복수 아니, 아니. 우리의 장래. 이 기술로 살다
간, 우리의 말년이 아주 불쾌해 진다. 너 몰랐지?
난 알았잖아. ...근데, 딱 제대루 걸렸어. 목숨걸구 일하
는 사람, 아픔을 참을 줄 아는 인간. 너 못봤지? 보여줄
게.
꼬붕 난, 내 기술에 목숨 걸었어.
복수 (정수리에 힘껏 꿀밤을 준다.) 닥쳐, 이놈
아. ...이 근처랬는데? (지나가던 경비에게) 아저
씨. 이 근처에요, 어깨들이 모여서요, 위험한 짓하구 그런
데가 있다대요?
경비 액션스쿨.
복수 (씩 웃는다.) ...영어 좀 하시네?
경비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 영맨 하나 들어가
네. 거기야.
복수의 미소. 꼬붕의 눈살. 꼬붕은 아픈지 머리통을 만지작댄다.
9. # 액션스쿨-플로어(낮)
복수와 꼬붕이 들어선다.
이 때, 마루바닥을 덤블링하며 복수를 향해 날아오는 양 찬석.
복수와 꼬붕, 겁에 절어 소리치며 얼싸안는다.
복수와 꼬붕의 바로 코 앞에 서 있던 양 찬석이 갑자기 하늘을 날
아오른다.
눈알이 빠질 정도로 놀라서 천장을 바라보는 복수와 꼬붕.
꼬붕 (박수를 치며 환호성) 와아아.
그러다 갑자기 바닥으로 퉁 떨어진다.
양 찬석, 조금 전의 우아한 자태는 간 곳 없다. 아파서 죽을 똥 살
똥이다.
양 찬석 (바닥을 뒹굴며 줄 조정 스턴트들에게) 호흡 좀 맞쳐,
제바알.
복수, 양 찬석에게 다가간다. 양 찬석, 복수를 본다. 복수가 미소짓
는다.
양 찬석, 복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기억났다는 듯 손가락으로 복수
를 가리키는데...
갑자기 들어 올려지는 양 찬석.
양 찬석 (허공에서 바둥댄다. 소리친다.) 악. 나, 죽겠다아.
꼬붕 (또 박수치며 환호성.) 야아. 재밌다. 재밌다, 재밌다.
복수 (흐믓하게 꼬붕을 보며 꼬붕의 머리통을
어루만진다.) 응? 혹났네.
10. # 미래의 연습실(낮)
미래가 탁자 위에 턱을 괴고 앉아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탁자 위엔 포장된 치킨이 놓여있다.
미래의 뒷 편에선 치어리더들이 운동복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
고 있다.
치어1 (멀리서 미래에게) 복순 언제 왔다 간거야? 증말 우린
주지 말래, 꼬꼬 닭 치킨?
미래 (퉁명스레) 응.
치어2 혼자 잘 먹구 잘 살아라.
미래, 말없이 핸드폰만 만지작 대다가, 이내 팔꿈치 밑에 깔려 있
는 간호학 책을 본다.
연필로 줄까지 그어 가면서...
이 때, 탁자 위 사무실 전화기가 울린다.
미래 (수화기를 든다.)네. ...서 영은요? 잠깐만
요. 영은야?
치어3 (소곤댄다) 누구래?
미래 (수화기) 누구세요? ...(영은에게) 니 팬이
래.
치어3 (손을 절래절래 젓는다.)
미래 (수화기) 없다는데요. ...(가만히 듣고 있
다가 소리 지른다.) 알긴 뭘 알 어, 임마? 보지도
않고 여기 있는 걸 어뜩케 알어, 니가? 니가 귀신이
야? ...없어. 걔 짤렸어. (수화기를 끊는다.)
치어3 (황당하다) 언니.
미래 (책만 본다.)
치어3 ...너무 했다. 그렇게 막 나가면 내 팬클럽에서 나 죽이
러 온단말야.
치어2 (치어 1에게) 언니, 쟨 우리보다 난 것두 없는데, 왜 그
렇게 팬이 많아?
치어1 (당연하단 듯) 대학생이잖아. 우린 고졸이구...
다시 전화벨.
미래 (수화기) 네. ...없어요. (수화기를 끊는
다.)
치어3 (의심스런 눈으로) 내 전화 아니야?
미래 맞어. (그리곤 책만 본다.)
치어3 (속상한 듯) 나, 비지니스 있단 말야. 누가 광고 모델
하자구 약속잡자 그랬는데...
미래 (무표정)
치어3 (미래의 간호학 책을 획 덮는다.) 간호사가 되려면, 간
호학 책을 보는게 아니라, 수능 준비를 해야 돼.
국어, 영어, 수학. ...대학에 가야 간호사 공 불 하
지.
미래 (야린다) 나쁜 년.
치어3 ...
미래 진작 말을 했어야지, 기집애야. ...몰랐잖
아.
11. # 밴드 연습실 현관(낮)
멤버들이 나온다.
우르르 몰려 나와 계단을 오른다.
경이 뒤늦게 나와 현관을 잠근다.
그러다 계단을 오르려는데, 구석에 놓인 기타를 본다.
기타를 만지는 경.
물끄러미 서 있다.
12. # 액션스쿨-사무실(낮)
사무용 의자에 앉아 어깨에 얼음주머니를 부벼대는 찬석.
역시나 사무용 의자에 마주 앉은 복수와 꼬붕.
양찬석이 유리컵에 물을 따르더니 생식 한포를 타서 한 모금씩 마
신다.
양찬석 (복수에게) 특기가 뭔데요?
복수 소매치기요.
양찬석 ...? (꼬붕에게) 그 쪽은?
꼬붕 소매치기요.
양찬석 ...? (고개를 갸웃대며 한참을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
까 줄을 잡아당기던 후배가 들어온다.) 야, 요즘 소
매치기 연기도 스턴트맨이 한다던?
스턴트1 들은 바 없습니다, 감독님.
양찬석 ... (생각에 잠긴다. 혼잣말) 아, 훔치고 달릴 때... (그
리곤 복수와 꼬붕을 보며 미소) 그럼 달리기가 특
기겠네요?
복수 (웃으며) 누가 쫓아와야 제대로 뛰지, 안
그럼 달리기 안돼요, 우린.
양찬석 (의아하다. 혼잣말.) 연기를 참 희한하게 배웠네. (다
시 복수에게) 어느 팀에 있었어요?
꼬붕 우린 조직 싫어해서요. 형이랑 나랑 둘이
독립군으루...
양찬석 음. 힘들었겠네. 뭉치는게 좋지. 계약문제나 일거리 만
드는 거나... 그리고 서로 노하우도 교환하구, 개발
하구... 스턴트 경험이 있다니까, 긴 말은 안 할
께요. 잘 합시다. 아, 근데... (복수를 보며) 아니, 경험자가 그 땐
왜 그랬지?
복수 네?
양찬석 촬영하는데, 그렇게 뛰어드는게 어딨어?
복수 ... 몰랐어요. 촬영인지...
양찬석 ... 하긴, 뭐. 그 쪽 제작팀에서 제대로 했어야지. 보행
자 통제가 안 된 거 잖어. (몸서리를 치며 아줌마
처럼) 나, 그날 세 번 구른 거 알아요? ...제 작비
가 얼마나 빵빵한 덴지, 승용차 세 댈 부숴. ...나, 그 날, “그래, 죽
지, 뭐.” 그랬다니까.
복수 (진지하다.) 존경합니다. 선생님. (찬석의
컵에 든 가루즙을 보며) 이거 먹으면 선생님처
럼 튼튼해 지나요?
13. # 미래의 연습실(낮)
미래, 치킨을 뜯어 먹고 있다.
이미 상자안엔 닭뼈만 수북히 쌓여있다.
미래 (실눈을 뜨며) 고 복수. 뭔가가 이상해. ...
이상해,이상해.
이 때, 노크소리.
미래 (닭다리를 든 채, 소리친다) 누구야?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낯선 남자. 양복을 입었다.
양복 저, 서 영은씨가...
미래 (불쾌하게) 왜요?
양복 ... 광고건으로 전화드렸는데...
미래 (눈을 굴린다.) 무슨 광고요?
양복 본인하고 말씀을 나눠야 되는데...
미래 ... 내가 본인이라면?
양복 ... 아, 그러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인터
넷이 들썩들썩 합니다. 서 영은 씨 팬클럽이 대 여
섯 군데는 되드라구요. ...저희가, 20대를 타겟으로 영
업을 하려구요, 서 영은씨같은 인터넷형 모델을 찾았
습니다.
미래 ...그래서요?
양복 (명함을 준다.) 사진 광고를 계획 중인데,
도와주십시오. 모델료,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미래, 찔리기도 하고 욕심도 나는 제안이다.
명함을 본다.
<헬로우 중고차 -대표 전 강>
14. # 북악 스카이 웨이(낮)
동진의 빌라가 위치한 청량한 오르막 도로다.
동진, 신나게 오픈카를 몬다.
경, 세찬 바람에 두 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쥔 채 곤혹스러워 한다.
15. # 동진의 집- 현관(해질녁)
동진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문이 닫힌다.
동진이 거실로 들어선다.
소파에 앉는 동진.
그런데 경이 없다.
다시 현관으로 간다.
동진이 문을 열면 경이 서 있다.
바람에 머리칼이 흐트러져서, 꼭 머리채 잡고 싸움이라도 치룬 아
줌마 꼴이다.
동진 왜 안 들어와요?
경 문이 닫혀서 안 열렸어요.
동진 아, 맞어, 맞어. 자동으로 잠긴다, 이 문.
그러니까, 내 뒤에 바짝 붙어 왔 어야지.
동진의 안내를 받으며 올라서는 경.
16. # 동진의 집-거실(해질녘)
넓고 고급스런 집이지만, 동진의 물건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서 난
장판이다.
소파 위에 앉는 경.
동진, 경을 올려다 보며 바닥에 앉는다.
동진 (경의 머리칼을 보며 낄낄 웃는다.) 히히.
머리가 꽃다발이 됐네? (경의 머리칼을 다듬어
준다.)
경 ...(덩달아 자신의 머리를 쓸어 내린다.)
동진 (경의 무릎을 짚으며 얼굴을 바짝 들이댄
다.) 뭐 주까?
경 네?
동진 술 주까, 쥬스 줄까, 커피 줄까?
경 ...라면 주세요.
동진 배 고파? 저녁 안 먹었어?
경 네.
동진 ... (실눈을 뜬다.) 내가 만나자 그래서, 또
회 사줄 줄 알았구나.
경 네.
동진 (웃으며) 약았네.
경 집으로 올 줄은 몰랐어요. 이런 숲 속에,
이런 집이 있는 줄도 몰랐구요. 밥 먹으러 음식점
가는 줄 알았어요, 난.
동진 (장난스레) 밥 안 사 주면, 나 안 만나겠
다, 자기는?
경 그러니까... 버릇 들이지 마세요. 비싼 거
사주면, 또 그러겠지, 기대되거 든요.
동진 ...기대해두 돼. 나 부자야. (일어서며 신나
게) 라면 끓여 줘야지.
동진이 저만치 미닫이 유리문 안으로 사라진다.
경, 소파에 널려있는 옷가지 때문에 앉은 자리가 불편하다.
엉덩이 쪽에 있는 옷을 들면 동진의 속옷이다.
경, 안되겠다. 대충 치워야겠다.
경이 주섬주섬 거실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구석까지 갔을 때, 강아지 소파가 보인다.
경, 미안한 생각에 입술을 오므린다.
근데, 소파 안쪽에 금속성 물체가 보인다.
손으로 들어본다. 로봇 바둑이. 경, 미소짓는다.
로봇을 강아지 소파 위에 얹어 놓는다.
경 (로봇에게 명령한다.) 앉어. (로봇 움직이
지 않는다. 로봇을 들어서 구석 을 보면 made in
japan) 일본어로 해야 되나?
17. # 동진의 집-식당(저녁)
식탁에 라면과 김치를 올리곤 유리문을 연다.
동진 라면 먹어, 자기야.
거실로 나간다.
18. # 동진의 집-거실(저녁)
동진이 입을 벌리고 서 있다.
경은 자신의 무릎에 로봇 바둑이를 올린 채,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있다.
거실이 빛난다.
어느새 치웠는지, 말끔히 정리된 실내가 거짓말 같다.
경 (로봇을 들어보이며) 이거 일본어루 해야
되죠?
동진, 갑자기 거실로 달려가 경을 덮친다.
경을 깔아 뭉개며 얼굴을 감싼다.
동진 (얼굴을 들이대며) 같이 살자, 전 경.
경 ...한 기자님.
동진 응?
경 바둑이가 이상해요.
동진이 몸을 일으키면 동진에게 깔려던 로봇의 다리가 비틀어졌
다.
동진, 울상이다.
동진 (경에게 투덜댄다.) 넌, 내 바둑이들이 그
렇게 싫으냐?
경 ...미안해요.
동진 ...(진지하게) 자기야.
경 네.
동진 ...니가 미안할 일이 아니잖니? (로봇을 들
어 보이며) 이거 내가 깔구 뭉 갠거야.
경 ...그건 그러네요. ...하지만, 먼저번 하얀
강아진...
동진 그것두 그래. 내가 그렇게 아끼는 강아지
라면... 그걸 그렇게 아무데나 놔 두고 가도 되나?
경 ...안돼죠.
동진 주인은 아무데나 버려둔 걸, 니가 주워서
보호했잖아. ...잃어버린 것도 바둑이 잘못이지.
걔가 도망간거라며? 그러구 보니까 니가 미안할 일이
없네. 전반적으로... 자긴 첨부터, 바둑이 무시해두 되
는 거였잖어.
경 ... 에이, 어뜩케 그래요? 나 말곤, 그 강아
지 데리구 있을 사람이 한 명 두 없었는데?
동진 ...(따스한 미소) ...내 바둑인 예뻐서, 누구
든 잘 델구 있을걸? 사실 난 걱 정 하나두 안한
다. 내 바둑이한테 자신이 있거든. (경의 손등을 만진다.)
바둑이 대신 나는, 널 얻었다. ...강아지보다, 니가 딱
두 배는 더 좋다.
경 ...
동진 ... (경의 얼굴을 어루 만지며 얼굴을 가까
이 한다.) 뽀뽀할래.
경 (동진의 입술이 코 앞까지 왔을 때 무심하
게) 라면 주세요.
동진 (놀라서 벌떡 일어서며 식당으로) 이런.
다 불었겠다. (막 뛰어간다.)
경, 가슴을 만지며 가쁘게 숨을 몰아 쉰다. 콩닥대는 마음을 달랜
다.
경 (혼잣말) 아우, 떨려.
동진E (신경질) 불었잖아. 그러게 왜 거기서 쓸데없이 시간
을 끌어?
경 (혼잣말) 시간은 자기가 끌어 놓구서...
19. # 만원버스(저녁)
꼬붕과 복수가 서 있다.
복수의 눈빛이 약아진다. 앞에 선 남자의 뒷 주머니에 지갑이 있
다.
복수, 눈알이 돌아간다.
복수의 손이 저절로 남자의 주머니 쪽을 기어 오른다.
지갑에 손가락이 닿는다.
그러다 고개를 흔들며 눈을 감는다.
복수 (외마디) 안돼.
그리곤 남자의 엉덩이쪽 주머니를 손바닥으로 탁 누른다.
남자, 화들짝 놀라서 복수를 본다.
그리곤 복수의 뺨을 갈긴다.
남자 이런 변태새끼. (주먹을 들며) 확 기냥...
(눈에 힘을 빡 주곤 고개 돌린 다.)
뺨을 감싸쥐고 있는 복수.
꼬붕, 안타깝게 복수를 본다.
꼬붕 (무심히 버스 천장을 본다.) 버릇이 얼루가
냐? (그런데 손은 이미 옆 쪽 여자의 가방안으
로 가 있다.)
복수 (여자에게) 아가씨. 가방 열렸어요.
여자 어머.. (꼬붕의 손이 재빨리 달아난다.) 고
마워요.
꼬붕, 복수를 야린다.
복수 (꼬붕을 보며) 우리 서로 도와야 해. (한
숨. 그러더니 대뜸) 우리 둘이 손 잡구 있을래?
남자 (다시 뒤돌아 보며 인상을 쓴다.) 변태새
끼.
20. # 헬로우 중고차(저녁)
양복이 내리더니 부랴부랴 조수석 쪽으로 간다.
문을 여는 미래.
그 문을 잡아 열어주는 양복.
양복 아, 제가 열어 드려야 되는데...
미래 (무안하다.) 뭐, 저두 손이 있는데..
양복 그래두 톱스타신데... (문을 닫으며 안내한
다.)
21. # 중고차 사무실(저녁)
강이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다.
그 앞에 기술자가 앉았다.
강 (기술자에게) 염 기사님. 엄살 좀 떨지
마. ...내가 신문을 봤는데, 어떤데 선, 폐차장 차두
새걸루 바꿔서 판다드라.
기술자 그런건 부속품 비용이 만만찮지요.
이 때, 미래가 양복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온다.
양복 사장님. 서 영은씹니다.
강 (힐끔 본다.) 잠깐만요. (양복에게) 아가
씨, 드링크 한 병 드려.
양복 네.
미래, 얌전을 떨며 엉거주춤 서 있다. 강이 대화하는 사이 양복이
건내준 드링크를 벌컥 한 입에 마신다.
강 (다시 기술자에게) 이보세요, 염기사님. 비
용이 들거면, 뭐하러 폐차장 차를 갖다 씁니
까? ...10만원에 맞쳐 봐, 수리비.
기술자 아, 그러면 차 가다가 터진다니깐요?
강 터지던 말던. 누가 중고차 사래? 불안하면
새거 타라 그래. 그게 중고차 산 놈 잘못이지,
염기사 잘못이야?
기술자 아, 참.
강 아쉬우면 사고 안나는 차루 제대루 만들
어 줘, 염기사가... 10만원 한도에 서... 됐어, 가 봐.
기술자 사장님.
강 (버럭) 가. 나랑 밤새 노닥거릴래? 얼른 일
어서.
기술자,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나간다.
강 (쭈뼛대며 서 있는 미래를 본다.) 서 영은
씨?
미래 네. (얌전하다.)
강 (아래 위로 훑는다.) 뭐 이렇게 빼빼야?
미래 네?
강 (양복에게) 난 살집이 있는게 좋은데?
미래 ...
양복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마른 여잘 더 좋아합
니다, 사장님.
강 (미래를 보며) 응? 왜 서서 그래요? 앉아
요.
미래 네.
강 (계속 훑어 보기만 한다. 그러더니 양복에
게 실소) 야하. 증말 요즘 애들 취향, 못 말리겠
다. (그리곤 다시 훑어본다.) ...얼마 줄까요?
미래 ... 제가 뭘 하는 건지, 설명두 안해 주셨는
데...
강 (짜증스레)사진 몇 방 찍으면 돼. 치어걸
복 입구... 뭐 대단한 거 한다구 다 알라 그래? 몸
만 빌려 주는 건데...
미래 (인상이 구겨진다. 참는다. 침을 삼킨
다.) ...치어걸이 아니라, 치어리더라 고 하
세요. 치어걸은 콩글리쉬예요.
강 (미래를 가만히 본다.) 되게 건방지네. (입
맛을 다신다.) 아, 신경 거슬려. ...빨랑. 몸 값 얼
마드려?
미래 ...(입술을 문다.) 얼마나 있는데?
강 ...(입을 벌린다.) 얘 봐라.
미래 (비아냥) 계속 눈알이 빠지도록 봐 놓고,
뭘 또 보냐?
강 (어이가 없다. 양복에게) 얘, 맞어? 얘가
치어걸 스타야?
미래 치어리더라니까, 이 자식아?
강 (벌떡 일어난다) 이게 근데...
미래, 탁자 옆 쪽에 있는 플라스틱 빗자루로 강의 얼굴을 쓸어내린
다.
강, 아픈 기색보단 오히려 기막혀 놀랜다.
미래, 빗자루를 뒤집어 손잡이 쪽을 강의 배로 푹 찌르려는데 강
이 한 손으론 자루를 잡아 막고, 나머지 한손을 미래의 얼굴 위로
들어 올려 내리칠 기세다.
미래, 겁도 없이 눈을 똑바로 뜨고 강을 본다.
강 아쭈. (그러면서 곧 내리칠 듯이 자꾸 손
을 주춤댄다.) 얘 봐라. 어? 얘 봐라. 때린다.
미래 때려라. ...싫어? 알았어. (강의 뺨을 후려
친다.)
강 어?
미래 (그리곤 돌아서 나가며 놀리듯) 잘 있어.
22. # 미래의 집 앞(밤)
우울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는 미래.
복수가 집 앞에 서 있다. 미래를 보곤 귀엽게 웃는다.
미래는 화를 낼 기력도 없다.
복수 늦었네.
미래 그래서?
복수 ... 아파보이는데?
미래 (힘없이) 아프다.
복수 어디가? 아프면 안돼,야. ...(미래의 손목
을 잡아끈다.)병원 가자.
미래 고달퍼서 아프다. ...나, 왜 이렇게 안 풀리
냐?
복수 ... 왜? 너, 치어리더 짤렸어? 나이 많다구
이젠 가래?
미래 부채질을 해라, 아주. ...너, 지난 번에 왜
전화 안 받았냐?
복수 ...
미래 됐다. 화 낼 힘두 없어. 가 봐. (대문을 연
다.) 올라 오던지, 가든지.
복수 ...미래야.
미래 왜 불러, 귀찮게.
복수 기쁘게 해 주까?
미래 (돌아본다.)
복수 나, 퇴직했어. (빵긋 웃는다.)
미래 ...
복수 좋지?
미래 (퉁명스레) 뭘로 먹구 살게?
복수 ...에이. (화낸다.) 너한테 빌붙을까봐 걱정
되냐? (돌아선다.) 나쁜 기집 애. 좋아할 줄 알
았는데...
복수, 씩씩대며 걸어 내려 간다.
미래, 걸어가는 복수를 한참동안 바라본다. 잔잔한 미소가 돈다.
미래 (소리친다) 기뻐, 복수야.
복수 (소리친다) 알어, 기집애야.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미래 (미소 지으며 한참을 복수의 걸어가는 모
습을 지켜본다. 혼잣말) ...니 마 음이 ...참, 자유롭
겠다. 그렇지?
따스한 표정으로 멀어지는 복수를 바라본다.
밤이 깊다.
F.O.
23. # 복수의 집-중섭의 방(새벽)
중섭이 부시시 일어난다. 복수가 없다.
중섭, 화들짝 놀라서 밖으로 나간다.
24. # 복수집-마당(새벽)
중섭 복수야. 복수야.
복수를 찾아 헤맨다.
25. # 집 앞 승리 수퍼 앞(새벽)
운동복을 입고 오르막길을 뛰어오는 복수.
수퍼 앞에서 무릎을 짚으며 헐떡인다.
수퍼 주인이 나온다.
복수가 다시 뛰려 할 때...
주인 (우유를 들고 나온다.) 아들내미.
복수 (돌아본다.)
주인 이거 먹어. (작은 우유팩 하나를 내민다.)
복수 (주머니를 뒤진다.) 돈 안갖구 나왔는데...
주인 그냥 먹어. 작품값이야.
복수 ?
주인이 구멍가게 위에 붙은 간판을 가리킨다.
복수, 간판을 본다. 가게명 <승리 수퍼>. 한팔도 안되는 간판이다.
가게이름 왼편 여백에, 주인집 부부가 V자를 한 그림이 그려져 있
다.
마치 대통령 선거 포스터 같다.
주인 아버지가 그려 주셨어. ...그 집 음료수는
평생 공짜야.
복수 (주인에게 다가간다. 주인이 내민 우유를
거절하며) 이걸루 가져 갈께요. (큰 우유팩을 꺼낸
다.)
주인 (당황)
복수 이 정돈 주셔야죠. (간판을 보며) 물감도
꽤 들었겠구만...(다시 뛰어간 다.)
주인 내가 손핼 보는게 아닐까?
26. # 복수집-마당(새벽)
복수가 들어오면 툇마루에 앉아있던 중섭이 벌떡 일어난다.
중섭 (화가 났다.) 어딜 갔다 와, 이 놈아?
복수 ...(놀랐다) 왜 그래?
중섭 (복수를 보고 씩씩 대다가 힘이 빠지듯 툇
마루에 털썩 앉는다.)...꿈을 꿨 는데... 박 정달이
그 놈이, 널 죽어라 패구선, 강물에 풍덩 던져 버리잖
아. 아휴. ...그냥 꼭 죽은 놈처럼, 눈도 안 뜨고 흘러가
는데, 잡으려고 해 도 발이 떨어져야지. 아휴. ...
니가 없어져서, 밤새 나 자는 사이에, 박가 놈이
잡아갔나. ...아휴.
복수 ...(눈가가 떨린다.)
중섭 (안도한다.) 됐어. (나무라듯) 어딜 가면
간다 그래, 이 녀석아.
복수 운동했어.
중섭 (복수를 본다. 투정한다.) ...운동두 하지
마. 그냥 집에 있어.
복수 아빤. ...잠깐만. (부엌으로 가더니 컵 두
개와 젓가락을 가지고 나온다. 그러더니 툇마루
에서 생식 상자를 끌어낸다. 두 포를 꺼내 우유에 타 젓
는다. 우유컵을 내밀며) 마셔. (그리곤 자신도 벌컥벌
컥 마신다.)
중섭 (복수를 보고만 있다.)
복수 뭐해? 마셔.
중섭 이거 뭐냐?
복수 남은 돈 다 털어서 이거 샀잖아. (포장지
를 보여 준다.) 호박, 현미, 알파 현미, 케일... 뭐
야? 하나, 둘, 셋... 서른 개두 넘네. 이게 암 환자한테 직
빵이래. 그러니까 일반 사람이면 훨씬 더 좋지.
중섭 ...(걱정스레) 너 왜 몸관리 하니? 몸 키워
서 뭐 할라 그래? (생각났다는 듯) 너, 이제 조폭
같은 거 하려구...
복수 (역정) 아, 아빤 왜 날 자꾸 검은 세계루만
몰아? 날 보면 그냥 꺼매? 내 인생이 그냥 깜
깜해?
중섭 ... (할말을 잃고 말을 돌린다.) 맛있냐?
(생식 탄 우유를 마신다.)
복수 ...(우유를 마시는 중섭을 따스하게 바라본
다.)
중섭 (우유를 다 마시곤) 든든하네. (웃으며) 그
래. 먹어서 나쁠 건 없겠다.
복수 (그런 중섭을 보며 따스하게) 아빠.
중섭 응?
복수 ...그렇게 나쁜 꿈을 꾸고 살았구나, 아빤.
나 때문에 매일 매일...
중섭 ...(마루로 올라서며 방으로 간다.) 이불이
나 개야겠다.
복수, 마루에 걸터 앉아 중섭의 뒷모습을 본다.
27. # 미래의 집-식탁(아침)
현지가 생수에 생식을 타서 먹는다.
욕실로 가려던 미래가 현지 곁으로 온다.
미래 미숫가루 어디서 났냐?
현지 미숫가루 아닌데?
미래 그럼 뭐야?
현지 복수가... 살두 안찌구, 몸에 좋은거라구
갖구 왔드라. 내꺼랑, 언니꺼랑.
미래 ...(현지를 빤히 본다.) 왜에? 인형 버리듯
이 던져 버리지 그랬냐? 복수가 갖구 온건데?
현지 ...음식을 버리냐?
미래 그럼, 냅둬. 내가 다 먹게.
현지 ...오래두면 썩어, 음식. (식탁을 떠난다.)
미래 (등 뒤로) 속 보인다, 송 현지. ...너, 그 고
양이 인형은, 싸구려 같애서 버 렸지? (현지가 대
답이 없다. 새삼 놀랍다.) 조고 봐라. 진짠가부네.
28. # 경의 집-강의 방(아침)
출근하는 강에게 미선이 손수건을 챙겨준다.
미선 오늘은 날짜 지켜요.
강 (달력을 본다. 날짜판에 빨간 표시가 되어
있다. 사랑하는 날이다.) ...오 늘 안돼.
미선 (울상) 나 좀 살려줘요.
강 (역정) 애 못낳는다구 죽어? 난 아직 안 급
해. 애 좋아하지두 않구.
미선 (사정조) 난 급해요. 애두 좋아해요.
강 죽자 사자 기도하잖아. 기도하면 되지, 날
짜까지 맞쳐야 되니? 짐승이 야? 애 낳자구 사
랑하게?
미선 ...(울먹인다.) 노력을 해야... 기도를 들어
주시죠. 흑. (흐느낀다.) 아버님 볼 때 마다, 얼마
나 조마조마 한데요. (입을 가리지만 흐느낌이 새어 나
온다.)
강 (미선을 바라본다. 다정히) ...울지마. 아침
부터 여자가 울면, 남자가 재수 없다. ...알았으니
까, 울지마. ...아버지 걱정두 말구. 내 말은 잘 들으시니
까, 내가 알아서 해.
미선의 등을 토닥인다.
29. # 경의 집-안방(아침)
인옥이 침대에 누운채 인상을 쓴다.
인옥 아으, 진짜. 욕실 문 좀 닫아요. 습관도 드
러워 죽겠어.
변기 내리는 소리가 난다.
안방 욕실에서 나오는 낙관.
낙관 (무심하게) 한 두해 겪나, 이러는 거? 왜
그렇게 못 참어?
인옥 한 두해 얘기해요? 싫어 죽겠다구? 문만
닫으면 되는 걸, 왜 안해요? 네?
낙관 (야단 맞은 어린애처럼) 아, 답답해서 그
래. ...몸이 커서 그런가, 욕실만 가면 답답해.
인옥 당신 몸이 욕실보다 커요? 욕실밖으로 삐
져 나올까봐 그래요?
낙관 알았어어. ...열은 좀 내렸어? (인옥의 이
마를 짚으려 손을 뻗는다.)
인옥 (낙관의 손을 뿌리치며) 만지지 말아요. 손
두 안 씻었어, 보나마나. ...대 통령 생일상두 그
정도는 아니지. 온 동네 잔치를 해대는데, 몸이 남아날
까, 내가.
낙관 ...그래두, 내가 이 일대에선 유진데, 그 정
돈 베풀고 살아야지. 그래야 뒷 말이 없지.
인옥 경이 한테나 좀 베풀지.
낙관 (쭈뼛 선다.) 베풀짓을 해야 베풀지.
이 때, 노크.
경이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온다. 낙관의 표정이 굳는다.
경이 인옥에게 가는 사이, 낙관은 옷장문을 열고 출근 준비를 한
다.
경 (인옥에게 다가와 앉는다. 인옥의 이마를
짚으며) 엄마. 괜찮아?
인옥 (미소) 괜찮아. 지금 나가게?
경 공연없으면 안 나가두 되는데...
인옥 오늘 공연있어?
경 응. ...보컬 바뀌구 처음이거든. 일찍 만나
서 연습 좀 더 해야 돼.
인옥 그래? 얼른 가. 용돈은 있어?
경 (낙관의 눈치를 본다.) ...자꾸 용돈 얘기
하지마. 나, 돈 쓰는데 문제 없 어, 엄마. (일어선
다.) 공연 끝나구 포도 사올게. 엄마 좋아하는 거.
인옥 그래. 잘해, 공연.
경, 고개를 숙이고 낙관을 지나친다.
낙관 (엄한 소리로) 공연 끝나면 곧장 날라 와.
니 어머니, 너라두 있어야 편 해. 아플 때, 며느
리 수발받는것두 곤욕이야.
경 네. (나간다)
인옥 (낙관에게) 애 좀 작작 잡아요. ...지 친구
그렇게 되고, 가슴 아파하는 거 못 봤어요? ...몇
푼 되도 않는 거, 좀 도와 줬으면 좋잖아.
낙관 (화낸다.) 그렇게 빨리 갈 줄 누가 알았
어? ...그 샐 못 참구 가냐?
인옥 (짜증) 죽는 걸 참아요?
인옥, 이불을 뒤집어 쓴다.
낙관, 할 말이 없다.
30. # 꼬꼬닭 치킨(점심)
유순이 닭을 튀기고 있다.
복수는 바닥에서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있다.
유순 (무심하게) 요즘은 한시두 몸을 가만두질
않니, 왜?
복수 힘 길러서 엄마랑 또 한 판 붙을라구.
유순 (픽 웃는다.) 넌 나 못 이겨.
복수 왜?
유순 내가 인생을 싸움으로 다진 년인데, 니깟
게 날 이겨?
복수 드센 것두 자랑인가?
유순 드세지 않았으면, 성호랑 벌써 한강다리
갔다. ...근데, 닭은 엊다 갔다 날 르는 거야? 어제
두 싸가드니...
복수 엄마.
유순 왜?
복수 갑자기 연해진 이유가 뭘까?
유순 닭살이 그 전보다 연해졌니?
복수 아니, ...엄마가.
유순 (갑자기 뾰로통해진다. 그리곤 닭을 포장
한다.)
복수 ... (실눈을 뜨고 본다.) 적응이 안되는데?
응? 엄마?
유순 (포장을 내민다.) 다 됐어. 냉장고에서 무
우 꺼내 가.
복수 ... 내일 또 올건데, 내일두 친절해 줄거지?
유순 (짜증) 이게 지금 누굴 갖구 놀아? 오지
마. 남자새끼들은 하나같이 저래, 어뜩케... 마음 좀
누그러 뜨리면, 아주 밟아 제낄려 들어.
복수 ...승질 나오네, 우리 엄마. ...성호는 학교
에서 아직 안 왔어?
유순 ...올 때 됐어.
복수 (닭 포장을 들고 나가며) 성호, 못 보고 가
겠네.
유순 (망설이다가) ...보구 가.
복수 ...
유순 보구 가, 성호. ...너 안 오면, 나, 싫어하겠
대.
복수 ...불안해, 그게?
유순 ...그러니까... ...얼굴, 뵈 주 고 가.
복수, 물끄러미 유순을 본다.
이 때, 조용히 유리문이 열린다.
성호가 복수를 보자, 입이 벌어진다.
유순, 그런 성호를 보곤 보일 듯 말 듯 입가에 미소가 감돈다.
31. # 밴드 연습실 현관(낮)
몰래 내려와 치킨과 생식상자를 놓아두는 복수.
이 때 현관에 붙어있는 공연 포스터를 본다.
다섯팀이 출연하는 공연 포스터.
유심히 살펴보는 복수.
공연날짜가 오늘이다.
이 때, 안에서 인기척이 난다.
복수, 부랴부랴 계단을 올라 건물 밖으로 도망간다.
연습실 안에서 나오는 건 별리. 별리, 잠을 잤는지 부수수한 모습
으로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그러다 문득 구석에 놓여진 치킨팩과 생식을 본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물건을 발로 슬쩍 뒤적인다.
천천이 쭈그려 앉는다. 치킨 비닐을 그냥 한 번 풀어본다.
일어선다. 둘레 둘레, 느릿 느릿 주변을 살핀다.
그러더니 쪼그려 앉아서 닭다리를 든다. 구석 모서리에 머리를 쳐
박고, 계속 쪼그린 채로 몰래 닭다리를 뜯어 먹는다. 무덤파서 해
골먹는 구미호 같은 자세다.
이 때, 계단에서 인기척. 누군가 경쾌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온
다.
별리 화들짝 놀라서 들고 있던 닭다리와 또 하나를 더 잽싸 집어
서, 밴드 연습실로 도망쳐 들어간다.
1층 현관으로 나가려던 미래, 괜시리 지하가 궁금하다.
미래가 살금살금 지하 계단으로 내려온다.
치킨을 본다. 생식도 본다.
둘레둘레 살피더니 생식과 치킨을 들고 간다.
현관문을 여는 별리.
구석으로 와 보면 생식과 치킨이 없어졌다.
별리 헤. (닭다리를 들고) 두 개나 훔쳤지롱.
32. # 실내 공연장(저녁)
앞선 팀이 공연중이다.
경의 팀과 칼라가 다르다.
밝고 가볍고 경쾌하다.
노브레인이나 크라잉 넛 같은 밴드다.
경의 밴드도 구석 벽에 자신들의 악기 가방을 내려 놓은 채, 공연
을 즐기고 있다.
고개를 흔들며... 근데, 별리가 없다.
밴드들, 두리번 댄다.
33. # 공연장 여자 화장실(저녁)
별리가 한 칸에 들어가 변기뚜껑을 내리고 앉아있다.
볼일 보는 거 아니다.
인상을 긁으며 생각에 잠겨있다.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별리가 나오면 경이 바삐 들어온다.
경 왜 이렇게 땀이 나?
별리 (가슴을 쓸어내린다.) 답답해.
경 소화 안돼? 소화제 사다주까? 소화제 사다
주께, 맥주랑 마셔.
별리, 대답도 않고 인상을 쓴 채 화장실을 나간다.
34. # 공연장 밖(저녁)
공연장으로 들어온 경.
손엔 맥주와 소화제 알약을 들고 있다.
별리를 찾는다.
별리는 밴드 멤버들 쪽에 구석에 쭈그려 앉아있다. 인상을 박박,
긁을대로 긁었다.
경의 미소. 이 때, 경의 앞에서 얼굴을 돌리는 남자. 동진이다.
둘, 놀라며 반가워 한다.
경이 뭐라는지 동진은 들리지 않는다.
동진이 경을 공연장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리고 관객 속을 헤매며 여전히 두리번대는 복수의 모습도 보인
다.
경을 찾지만 경이 보이지 않는다.
35. # 공연장 밖 일각(저녁)
손을 잡고 경을 끌고 나오는 동진.
동진 뭐라구?
경 (좋아라) 어뜩케 알구 왔어요, 우리 공연?
말두 안했는데? 감동이다, 증 말. (궁금한 듯) 별
걸 다 알아낸다. 기자라 모르는게 없나봐.
동진 ...아, 나 취재 나왔어. 인디밴드 기사 쓰려
구.
경 (민망) 아아. 난 일부러 온 줄 알구...
동진 잘 됐네. 자기네 연주 보겠네. 너무 좋다,
응?
경 (명랑하게) 우리 밴드, 잘 해요.
동진 그럼 연주 끝나구 인터뷰 해줘야 된다. 약
속했다.
경 (기분좋게) 네.
동진 (경의 손을 잡는다.) 공연 끝나구 봐요, 자
기. 집까지 내가 데려다 줄게. 차 뚜껑 열구...
경, 미소짓는다.
공연장을 나오던 복수가 손을 마주 잡은 둘을 본다.
둘, 공연장 쪽으로 온다.
복수, 허겁지겁 공연장 안으로 들어간다.
36. # 공연장(저녁)
이미 앞 팀의 공연이 끝났다.
동진은 사진기자와 귓속말을 한다.
무대에선 경의 밴드가 조율 중이다.
경은 무대 한 구석에서 별리에게 맥주와 소화제를 준다.
경을 바라보던 동진이 고개를 갸웃한다.
복수는 동진을 본다.
별리가 무대 중앙으로 나간다.
경이 별리에게 고개짓을 하면 별리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경 (다소곳한 멘트) 안녕하세요. 000(밴드이
름) 입니다.
환호하는 청중.
경, 정국을 본다.
리드하는 드럼.
베이스, 키보드 연주를 시작한다. 앞 선 밴드와 다른 칼라의 음악.
동진이 호기심 어리게 밴드를 본다.
경, 불안하다. 기타 소리가 안난다.
경과 기홍, 정국이 불안한 눈빛을 주고 받는다.
별리를 바라보는 밴드들.
아직 군중은 눈치를 못챘다.
별리의 손이 떨리고 있다.
이제 보컬이 시작된다.
마이크 앞에 바짝 다가 선 별리.
입을 벌리는가 싶더니 거친 숨소리만 난다.
별리,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 그냥 우두커니 섰다.
연주가 멈춘다.
별리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조용한 실내에 별리의 거친 숨소리만 울린다.
손등으로 얼굴의 땀을 닦아대는 별리.
별리, 고개를 숙이더니 기타를 벗는다.
그리곤 조용히 경 쪽을 스쳐 무대밑으로 내려가는데...
경 (작은 소리로) 언니.
별리 (내려가며 작은 소리로) ...너무 떨려. 못하
겠다.
별리가 내려와 기타집에 기타를 넣는다.
모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경, 청중을 본다.
동진과 눈이 마주친다.
동진, 애써 눈길을 피하곤 자리를 뜬다.
복수, 자리를 피하는 동진과 고개숙인 경의 모습을 본다.
37. # 공연장 외부(밤)
기타를 맨 별리가 벽에 기대어 풀이 죽어 서 있고, 밴드가 별리를
에워쌓다.
각자의 악기들을 매고 든채로...
기홍 (한참을 째려 보더니) 잘난척은 독판 하두
만. ...(버럭) 앨범을 냈다면서, 어뜩케 공연을 한
번두 안해 봐? 무슨 밴드가 그러냐? 그럼 허구헌 날,
지 방에서, 저 혼자서 연주하구 노래하구 그런거야?
별리 (맹하게) 앨범은 야, 녹음실가서 했지, 그
걸 내 방에서 어뜩케 하냐?
정국 야, 별리. ...왜 그랬어? 왜 그 얘길 안했
어?
별리 ...아, 쪽팔리까...
기홍 짤러. 사기야.
경 사기는 아니지 않나? ...우리가 돈을 준 것
두 아니구. 오히려 우리 연습실 까지 만들어 줬는
데...
별리 (경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린다.) 씨. 넌
진짜 착해. ...근데, 난 증말 사 람들이 무섭다. 사
람들 눈이, 나만 보고 있는데,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경 (별리의 볼을 두드린다.) ...수줍음이 많구
나.
별리 (또 운다.) 응. 나 되게 부끄럼 타. (서럽
게 훌쩍인다.)
어이없이 웃어버리는 밴드. 그리곤 별리의 머리털을 쓰다듬는다.
셋다 한 번씩.
밴드는 별리를 사랑한다.
38. # 공연장로비(밤)
밴드들, 공연장 로비로 들어선다.
한 켠에 소파가 있다.
앞 선 밴드가 소파에 앉아있고 사진기자가 밴드의 사진을 찍는다.
동진이 인터뷰 중이다.
경이, 동진 쪽으로 간다.
인터뷰를 마쳤는지 동진과 밴드가 악수를 나눈다.
경이 천천이 다가온다.
동진, 반가이 맞는다.
경 (밴드를 가리키며) 저희 밴드랑 인사하실
래요?
동진 (힐끔 보곤) 자기야. 한 밴드만 더 인터뷰
따야 되거든? 친구들 먼저 가 라 그러구, 우리
둘은 쫌 있다가 보자, 응? 요기 앉아서 기다려.
동진, 바삐 공연장 안으로 들어간다.
경, 우두커니 동진을 본다.
그리고 한 켠에 서 있는 밴드를 본다. 참 불쌍한 꼴로 만화처럼 서
있다, 셋은...
OL.
시간경과.
텅 빈 로비에 경, 홀로 소파에 앉아있다.
공연장에서 일군의 청중이 나온다.
경, 일어선다. 청중들이 거의 다 빠져 나왔는데, 동진은 보이지 않
는다.
경, 공연장 쪽으로 간다.
공연장 문 앞에 가 서면 동진이 한 밴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을 보자, 밴드에게 고개짓을 하곤 경에게 다가온다.
경 끝났어요?
동진 아직... 쫌만 응? 미안. (가려는데)
경 저어...
동진 (돌아선다)
경 실망했죠? ...음악, 제대루 들려주고 싶었
는데...
동진 음악 망쳤어두 난 전경 좋아해. 그럼 됐
지, 뭐? 음악성 없다구 싫어할까 봐?
경 ...(말문이 막힌다.) 음악성이 없다구요?
동진 자기네 음악, 녹음한 거 있지? 언제 둘이
같이 듣자. 와인 마시면서...
경 (의아한 듯) 와인이요?
동진 (자랑하듯) 우리집에 죽이는 와인 있다. 우
리 서로 할 얘기 많으니까, 자 기 음악 배경으로
깔구, 분위기 한 번 잡자구요.
경 (의아한 듯) 배경으로 깐다구요, 제 음악을
요?
동진 (바삐 간다) 쫌 있다 봐. 가지 마. 절대
루... (그러다가 다시 다가온다.) 근 데, 자기 약같은
거 해?
경 약이요?
동진 ...아니야. 잘못 봤겠지, 내가? 보컬이 맥주
랑 알약같은 걸 먹은 거 같았 는데? 아니지? 자
긴 그런 짓 안하지? 난 전경 믿어. (들어가려다 말고
아쉽다는 듯)근데, 밴드 연습 좀 많이 하지 그랬어.
나, 공연장에서 그러 는 거 첨 봤잖아. 멤버들이 문
제가 있나 봐. 자긴 잘 했을텐데...(그리곤 바삐
간다) 여기서 이따 보자, 전경?
동진이 달려 들어간다.
경, 넋이 나갔다. 한참을 서 있는데, 화가 나지만 화낼 기회를 놓쳤
다.
입맛이 쓰다.
경, 돌아서서 공연장을 나간다.
39. # 공연장 밖 거리(밤)
건반을 대각선으로 맨채 공연장 건물에서 바삐 걸어나오는 경의
모습이 어둡다.
빠른 걸음으로 거리를 걸어간다.
그러다 뛰기 시작한다.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뛰어가는 경을 발견한 복수.
복수도 건너편 도로에서 경과 같은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경, 숨이 찰 정도로 뛰어가다가 숨을 몰아 쉬며 그 자리에 주저 앉
는다.
복수도 멈춰선다.
경, 한참 숨을 고르다가 코 앞에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복수, 그 상태로 서 있다.
경, 비닐 봉투 두개를 들고 나온다. 한 개는 청포도송이가 들어있
고, 또 한 개엔 소주팩 몇 개가 들어있다.
비닐 속에서 소주팩을 꺼내 빨대로 빤다. 소주를 빨며 길을 걷는
다.
복수도 걷는다.
경, 몇 걸음 가지도 않고 이미 소주팩을 비웠다.
다시 비닐봉투에서 소주팩을 꺼낸다. 다시 빨대로 빤다.
복수, 걱정스레 경을 보며 걷는다.
경, 또 몇 걸음 안가서 소주팩을 꺼낸다.
이번엔, 소주팩을 이로 뜯어 벌컥벌컥 마신다.
안되겠다. 복수가 길을 건넌다.
경, 걸음이 느려진다. 다시 소주팩을 뜯는다.
복수, 경 가까이 다가간다.
복수 (경이 마시려던 소주팩을 빼앗는다. 인상
을 쓴다.) 그만해요.
경 (복수가 빼앗았던 소주팩을 다시 빼앗는
다.) 뭐하세요, 여기서? 왜 또 나 타났어요?
복수 ...저,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서 경에게 주
며 등을 보인다. 흰색 면티셔츠 를 입었다.) 여기
다, 싸인 좀 해 주세요. 000(밴드이름) 팬이거든요?
경 (이미 술에 취해 풀린 눈으로 복수를 노려
본다)
복수 (등을 돌린채) 처음 음악 들어갈 때... 다
른 밴드하곤 되게 다르드라. ...음 악이 뭔가 좀 달라
요. 그죠?
경 (들고 있던 소주팩을 복수에게 던진다.)
복수 (엎질러진 소주로 온 몸을 적신다.)
경 ...(눈망울이 아른 거린다) 놀려요?
복수 ...
경 (흔들리는 눈동자.) 재밌었어요?
복수 ...
경 웃겼어요?
복수 ...
경 (눈물이 글썽인다.) 뭐가 다른데요? 딴 밴
드랑?
복수 ...밴드를 보는데... 처음부터...(말을 멈춘
다.) 마음이 ...아팠어요.
경 (눈물이 흐른다.)
40. # 공연장 로비(밤)
동진이 부랴부랴 뛰어온다.
경이 없다.
동진, 둘레 둘레 찾아보지만 없다.
동진, 허탈한 표정으로 서 있다.
41. # 경의 정류장 (밤)
택시에서 내리는 복수. 경을 부축하며 택시 문을 닫는다.
경을 벤취에 앉힌다.
경은 늘어질 만큼 늘어져서 몸을 가눌 수가 없다.
복수가 경의 얼굴을 받쳐 준다.
경 이상하네. 나, 원래 술 안 취하는데... 하,
이상하네.
복수 집 가르쳐 주면, 내가 데려다 줄께요.
경 (고개를 든다.) 우리 집까지 알아서 뭐 할
건데요? 우리 집에 들어와서 도둑질 할라구요?
(그리곤 다시 고개가 떨어진다.)
복수 ... (혼잣말) 아. 많이 취했네. 이런 말을 하
는 아가씨가 아닌데...
경 (다시 고개를 든다.) 내 시계가, 왜 그 여
자 손목에 있을까? (복수를 본 다.) 그 응원단 여
자.
복수 ... (할 말이 없다.)
경 ...(고개 숙인다. 한숨.) ...음악성이 없대
요. 제대루 들어보지두 않구서... 배경음으로 깔구
분위기 잡재요. 내 음악이 분위기 잡을 만한 건가? 분
위길 깨면 깼지...(고개를 치켜 들어 복수를 본다) 나더
러 마약 하녜요. 하. 세상에... (한숨)
복수 ...무시하면 되잖아요.
경 (벌떡 일어선다) 어뜩케 무시해요? 음악기
사 쓰는 기잔데...(몸이 흔들린 다.) 그 사람이 전
문가지, 아저씨가 전문가예요? 아저씬 멋두 모르면서...
내 시계나 갖구와요.
경이 일어서서 비실비실 간다. 그러다가 복수가 들고 있던 경의 포
도든 비닐 봉투를 빼앗는다.
경 내 놔. 우리 엄마꺼야. ...(그리곤 다른 봉
투에서 소주팩 하나를 집어든 다.) 가. 왜 나타나
서 그래? 신경쓰이게... 우리집 근처엔 얼씬두 마라. ...
도둑.
경이 비틀대며 걸어간다.
걱정스레 경을 바라보는 복수.
42. # 경의 집-낙관의 방(밤)
인옥이 침대맡에서 몸살약과 물을 먹는다.
미선이 물쟁반을 받쳐준다.
인옥 아직 아무도 안 들어왔니?
미선 네. 어머니, 죽 좀 데울까요?
인옥 됐다.
미선이 나간다.
인옥, 침대에 기대 앉으며, 베드 테이블 위의 소설책을 집어든다.
소설책을 넘기는데, 명함이 꽂혀있다.
<기계공학과 교수/ 김 무영 / 핸드폰000-000-0000>
인옥, 명함을 만지작댄다.
테이블 위의 전화기로 손을 뻗는다.
수화기를 들어 번호를 누른다. 신호음이 간다.
초조한 눈빛의 인옥.
한참 신호가 가도 안 받자 인옥이 수화기를 내리려 할 때.
건너편에서 전화를 받는다.
무영 E 네. 김 무영입니다.
인옥 (침을 꼴깍 삼킨다)
무영E 김 무영입니다. 여보세요?
인옥 여보세요?
무영E 네. 여보세요?
인옥 (떨리듯) 김 무영 교수님이세요?
무영E 네. 누구십니까?
인옥 저...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침묵) ...
나, ...인옥이야.
무영E ...
인옥 강 인옥.
무영E ...
인옥 들려? ...김 무영씨.
무영E (딸깍)
상대편 전화가 끊긴다. 인옥, 쓸쓸한 표정으로 수화기를 들고 있다
가 가만히 내려 놓는다.
43. # 거실- 안방 앞(밤)
빠꼼히 열려진 안방 문틈.
손잡이를 잡은 채, 차마 들어가지 못하는 낙관.
어둡게 서 있다.
주방에서 나온 미선
미선 아버님, 언제 오셨어요?
낙관, 대답없이 현관 밖으로 나간다.
44. # 안방(밤)
미선E 어디 가세요, 아버님?
인옥이 쭈볏 놀란다.
그리곤 이내 도도해진다.
45. # 경의 집-정원(밤)
정원에 서서 담배를 무는 낙관.
어둡고 슬프다.
담배 연기가 느릿하게 낙관을 감싼다.
한참동안 담배를 피우곤, 한 켠에 담배를 눌러끈다.
외로운 눈동자가 되어 버린 낙관의 슬픔.
이 때, 대문밖에서 신발 밑창 끌리듯 늘어지는 발자국 소리.
46. # 경의 집 앞(밤)
소주팩을 빨며 비닐 두 개를 들고, 길 전체를 갈지자로 비틀비틀
걸어오는 경.
이윽고 대문앞에 매달린다.
경 (귀염을 떤다.) 문 좀 열어주세요. 초인종
이 안 보여요. 문 좀 열어주세 요.
대문이 화들짝 열린다.
경이 뒤로 발랑 넘어진다.
초점을 맞추면 낙관이 대문 앞에 버티고 서 있다.
경 (일어선다) 다녀 왔습니다, 아바마마.
낙관 어머니 아프니까 일찍 들어오라 그랬다.
들었냐?
경 (취해서 겁이 없다) 일찍 온건데? 바루 왔
어요.
낙관 (한심한 표정으로) 지금 손에 들고 있는거
술이야?
경 아뇨. 쥬스예요, 쥬스.
낙관이 경의 뺨을 때린다.
경, 뒤로 발랑 넘어진다.
경의 비닐 주머니에서 포도알이 쏟아져 내린다.
낙관 (포도송이를 밟으며 경 앞에 선다.) 엊다대
구 주정을 해? 일어나.
경, 얼굴을 쓸어내리며 일어선다.
비틀대는 건 여전하지만, 표정은 금새 어두워졌다.
낙관 음악을 해? 그게 음악이야? 술 쳐먹구 머
리통 흔들어 대는게 음악이야? 제대루 된거 하라
구 피아노 가르쳤드니, 병신 육갑을 하구 있냐? 그게
음악이야?
경 (나직이) 그것두 음악이구, 저것두 음악이
예요. 클래식두 음악이구, 술 쳐먹구 머리통 흔
들어 대는 것두 음악이예요. 아빠네 호텔 캬바레 지루
박두 음악이구, 아빠 친구들 좋아하는 뽕짝두 음악이
구, 다, 음악이예요. 다, 각자가 좋아하는 음악이예
요. ...아빤 배운게 없어서 그런거 모를거예 요.
낙관의 손이 경의 뺨을 향하면 경이 눈을 꼭 감는다.
이 때, 낙관의 손목을 부여잡는 손. 복수다.
경, 눈을 뜬다.
낙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복수를 본다.) 넌
뭐야?
복수 무슨 아버지가, 자식을 때립니까?
낙관 뭐?
복수 우리 아버진, 내가 별 드러운 짓을 다 해
두 손 한 번 안대든데?
낙관 (잡힌 손목을 보며) 놔.
복수 놔 드릴테니까, 때리지 마세요. (손목을 푼
다.) 어쩌면 그렇게 독하게 따 님을 때리세요?
낙관 (경을 보며) 얘두 니네 그지 밴드냐?
경 (복수에게) 얼른 가요. (글썽. 낙관에게)
잘못했어요.
낙관 나한테 잘못한 거 없어. 니 인생 자체가 잘
못이야.
복수 ...아저씨.
낙관 (꼬나본다.)
복수 친아버지 아니시죠?
경, 입이 벌어진다.
낙관, 눈빛이 흔들린다.
복수 (경에게) 진짜 아버지 따루 있을 거예요.
무슨 아버지가 이래? 아버지, 다시 찾아봐요.
(낙관을 보며) 이 사람, 아니야.
이 때, 복수를 향해 날아오는 낙관의 주먹.
복수가 바닥으로 널부러지고 경이 복수를 향해 몸을 굽힌다.
고개드는 복수의 얼굴. 입가에서 피가 흐른다.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