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시골에서는 동네마다 누에를 길렀던 생각이 난다. 누에를 기를 장소가 없었기에 사람이 자는 방에 함께 잠을 재워야 하는 아주 친숙한 벌레로 할머니가 누에고치 실을 타래에 감으며 올라오는 번데기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중국의 고서 『잠경(蠶經)』에 “황제비 서릉씨가 누에 키우는 것을 시작했다. [黃帝王妃西陵氏始蠶]”라는 기록이 있어, BC 2650년경에 누에치기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누에는 옷을 만드는 비단을 생산하는 벌레로 하늘천[天] 과 벌레충[蟲]이 합쳐진 글자로 ‘하늘이 내려준 벌레’라고 하였다. 갑골문으로 누에잠(蠶)은 누에를 나타내기 위해 그 꼬물꼬물하는 모양을 그렸다. 이런 서예를 누에에 비유한다면, 누에 속에 있을 때는 액체이지만 밖으로 나오면서 기화(氣化) 현상에 의하여 실로 변하여 나오듯이 서예도 마음을 형태로 풀어내는 예술이다.
유초(維初)선생은 문경에서 태어나 1989년 경북대[구 상주대] 잠업과를 졸업 후 잠업(蠶業) 전공을 살려, 수원시 국립잠종장(國立蠶種場)에 우리나라 누에씨의 원종(原種)사육과 누에 병 검사 업무를 맡았으며, 누에 유전자 350계통을 사육 유지하고, 산업곤충, 환경곤충, 정서곤충 사육을 담당했다. 이후 2014년 수원에서 전주로 이전하여 여러 업무를 담당하다가 농촌진흥청 국립 농업과학원 수확 후 관리공학과에서 연구사업 부서에서 자연의 벌레를 연구하면서 짬을 내어 본인이 좋아하는 북위풍(北魏風)의 글씨를 써 왔다. 강유위 『광예주쌍즙』에서 북위풍의 글씨를 당나라를 경계로 하여 평한 것을 보면,
“당 이전의 글씨는 빽빽하고 당 이후의 글씨는 성글다. 당 이전의 글씨는 무성하고 당 이후의 글씨는 시들하다. 당 이전의 글씨는 펼쳐지고 당 이후의 글씨는 줄어든다. 당 이전의 글씨는 도탑고 당 이후의 글씨는 얇다. 당 이전의 글씨는 온화하고 당 이후의 글씨는 다툰다. 당 이전의 글씨는 까칠까칠하고 당 이후의 글씨는 메끄럽다. 당 이전의 글씨는 구불구불하고 당 이후의 글씨는 곧다. 당 이전의 글씨는 늘어뜨리고 당 이후의 글씨는 말아들인다. 배우는 사람이 북비(北碑)를 열심히 관찰하면 저절로 그것을 체득하게 된다.” 라고 평가하여 당 이전의 글씨를 질박고 무게가 있는 글씨로 평하고 당 이후의 글씨를 메끄럽고 가볍게 평한다.
유초선생의 출품한 작품을 보면, <천자동사>,<사공도 24시품 중 전아>,<천구평보>,<시풍인락,영억만세> 북위풍(北魏風)의 글씨로 굵은 획과 가는 획을 적절히 안배하여 방필의 강건하고 씩씩한 필세와 부드러운 맛을 함께 지니고 있다. <맹교의 유자음>,<박학독지>는 진조판(秦詔版)의 글씨를 연구하여 쓴 글씨로, 가지런하면서도 구불구불한 획으로 거칠면서 들쑥날쑥한 글씨를 구사하고 있다. 그 나머지는 갑골문,금문,예서,행초작품이 출품되었다. 이러한 작품에는 평생을 자연과 함께 살아 온 삶에 맞게 소박함이 스며들어 있어 너무 화려한 조화(造花)를 나타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원으로 갑작스러운 개인전 열게 되어 작품구상과 연습량의 부족으로 미흡한 작품이 보이는 것은 다음 개인전에서 펼쳐 보이리라 생각된다. 2026년 03월 19일 永和書樓에서 靑耘 金榮培 識(영화서루 청운 김영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