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02. 미드웨이 해전(The Battle of Midway, 1942년)
5.2. 미드웨이 기지 공방전
내가 있던 진지 옆으로 폭탄이 떨어졌다.
정말 아슬아슬했다.
나와 함께 있던 해병대는 18~22살의 청년들이었다.
그렇게 침착한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난 깨달았다. 승리가 우리의 것임을.
-존 포드
6월 3일 새벽 3시를 기점으로 일본 해군과 미드웨이 방어군은 각각 전투 준비를 시작했다. 새벽 4시, 미드웨이에서 전투 정찰 임무를 띤 미군 카탈리나 비행정과 F4F 와일드캣들이 이륙하여 일본 함대 수색에 나섰다.
새벽 4시 30분에는 나구모 제독이 이끄는 일본 함대에서 제로센, 급강하 폭격기, 뇌격기 등으로 구성된 항공대가 이륙하여 미드웨이로 출동했다. 이때 나구모 제독은 노련한 조종사들을 후위로 뺀 다음, 경험이 적은 조종사들을 1파로 보냈다. 항공대 지휘관은 토모나가 조이치 대위였다. 원래 항공대 지휘관은 후치다 미츠오 중좌였으나 맹장염 수술을 받았기에 항공기 탑승이 불가능했고, 그 대신 자신이 신임하는 부하인 토모나가 조이치 대위를 항공대 지휘관으로 추천했다.
한편 나구모 제독은 미국 항공모함이 출현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정찰기들을 발진시켰으며, 일부 정찰기는 함선 공격용 철갑탄을 무장하여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문제는 20기나 정찰에 투입한 미군과 달리 딸랑 8기만 날렸다는 점이다. 그 넓은 해역에서 (상대적으로)쬐끄만한 미군 항공모함을 발견하기 위한 정찰기 숫자로는 매우 부족한 수준이었다. 한편, 토네급 중순양함 토네에서 발진시키기로 되어 있던 정찰기가 캐터펄트 고장으로 발진이 30분 늦어졌고, 이게 나중에 일본군이 패배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혀 왔었다.
새벽 5시 30분, 초계에 나선 미군 정찰기가 미드웨이로 날아가는 일본 해군 항공대를 발견했고, 그 25분 후에는 다른 정찰기가 일본 제1항공함대 제2항공전대(소류, 히류가 포함된)를 발견하여 보고를 올렸다. 이 당시 미국의 항모기동부대는 제1항공함대의 동북쪽 320km 지점에서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총지휘관이던 플레처 제독은 일본의 항공모함이 다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꿔서 자신이 이끄는 CV-5 요크타운은 나머지 2척의 항공모함에 대한 예비대로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스프루언스 제독에게 CV-6 엔터프라이즈와 CV-8 호넷을 동원하여 남서쪽의 일본 함대를 공격하도록 명령했다. 이에 따라 스프루언스 제독은 약 250km 거리까지 접근한 후에 공격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함대를 이동시켰다.
6시가 되자 미드웨이의 레이더에서도 일본군 대편대가 탐지되었고, 미드웨이의 모든 폭격기, 공격기 전력들은 일본함대를 공격하기 위해 곧바로 출격했다. 15분 후 일본군 편대가 미드웨이 인근 상공에 모습을 드러내자 미리 상공에서 대기중이던 F2A 버팔로와 와일드캣들이 기습적인 공격을 가하여 2기를 격추시켰지만 곧이어 제로센들이 반격에 나섰다. 결국, 미드웨이의 전투기 부대는 편대장 팍스 소령을 비롯한 많은 조종사들이 희생당했고 살아남은 조종사들의 전투기도 엄청난 손상을 입는 등 완전히 박살났다.
별다른 손실을 입지 않은 토모나가 대위의 부대는 미드웨이 섬을 폭격했고 수도관, 디젤유 저장소, 중대 본부, 수상기 격납고, 탄약고 등이 완전히 박살났다. 하지만 활주로는 의외로 멀쩡했고 이미 수비대 전원은 콘크리트 방공호로 대피한 상태였다. 미군 수비대의 피해는 전사 11명, 중경상 18명으로 집계되었으며, 일본 공격대의 피해는 이미 섬에 떡칠해 놓은 대공포 탓에 상당히 심했다. 미드웨이 상공에서 격추된 숫자는 8기에 불과했지만, 크게 피해를 입은 기체들이 많아서 귀환 도중 추락하거나 귀환 후 폐기된 기체들까지 합한 공격대의 최종 손실은 무려 22.4%에 달했다.
7시를 전후로 마무리된 공격의 성과를 관찰한 결과 미군의 저항이 심해 2차 공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토모나가 대위는 함대에 2차 공격이 필요하다고 타전했다. 나구모를 비롯한 일본 함대 수뇌부도 70기의 단발 폭격기/공격기로 한 번에 미드웨이의 지상 기지를 무력화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았기에 후속 공격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드웨이로부터 반격이 시작되면서 일본함대의 계획은 꼬이기 시작한다.
비슷한 시간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미군 공격대들이 일본 함대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VT-8(제 8뇌격비행대)소속 TBF 어벤저 6대와 육군 항공대 소속 B-26 4대로, 모두 뇌격을 실시했으나 각각 5대, 2대의 피해를 입은 채 공격에는 실패했다. 이 B-26 가운데 하나는 치명적 타격을 입은 후 아카기의 함교에 충돌할 뻔 했으나 간발의 차이로 비껴나가 갑판 너머로 추락했다. 조종사가 의도적으로 자폭을 하려 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추락 코스가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만약 이 B-26이 아카기의 함교에 그대로 격돌했더라면 1 기동부대 지휘부 전원이 전멸했을 수도 있다.
이들이 물러난 뒤인 7시 55분경 로프톤 헨더슨 소령이 이끄는 SBD 돈틀리스 16대가 일본 제1항공함대 상공에 도착하였다. 헨더슨 소령은 비행대를 8대씩 2개의 비행중대로 나누어 각각 히류와 소류를 공격하기도록 했고 엘머 글리던 대위에게 1개의 비행중대의 지휘를 맡겼다. 하지만 일본 함대 상공을 초계하던 제로센에 걸려서 6대의 돈틀리스가 공격을 시도하기도 전에 격추당하고 말았다. 헨더슨 소령도 제로센에 격추당해 전사했다. 이때 헨더슨은 이왕 죽는 거 동귀어진의 심정으로 카가에 충돌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해수면에 추락했다. 이후 글리던 대위가 지휘권을 이어받아 남은 10대의 돈틀리스를 이끌고 히류를 공격했다. 그러나 돈틀리스가 떨어뜨린 폭탄은 모두 히류에서 빗나갔다. 히류 또한 대공포와 대공기관포로 돈틀리스를 공격했지만 한대도 격추시키지 못했다. 폭격을 마친 돈틀리스는 철수 도중 제로센에게 두대 더 격추당하여 8기가 미드웨이로 귀환했으나 이중에서 6기는 다시 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파된 상황이었다.
헨더슨 소령의 부대에 이어서 8시 30분경에 구형 빈디케이터 급강하 폭격기들이 도착했으나 이들 역시 피해만 입은 채 공격에 실패했다. 핸더슨 공격대와 빈디케이터들이 박살나던 동안 B-17 폭격기들이 수평 폭격을 가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인해 실패했다. 종합하자면 첫 공격은 성과가 없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 일본 함대는 대혼란에 빠지는데, 미군 조종사들의 공격에 맞서 회피기동을 할 때마다 함상 작업이 중지됐으므로 안 그래도 모자란 시간을 더 잡아먹는 와중에, 끼어든 미군 잠수함 노틸러스 호를 잡으러 다니느라 항공모함, 호위함정 할 것 없이 함대 진형이 죄다 흐트러지고 말았다. 거기에다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항공기들의 공격과 이들을 막으려는 제로센들의 요격이 진행되는 와중에 1차 공격대가 함대 상공에 도착해서 착함을 기다리는 등 바다와 하늘 모두 난장판이었다. 미군처럼 무전기와 레이더가 충실하고 별도의 통제 시설까지 갖췄다면 아군 함정들과 항공기들을 적절히 통제하며 이런 상황에 대해 대응 가능했을지도 몰랐지만, 당시 일본 함대의 통제 수단은 수신호, 발광 신호, 조명탄, 연막이 전부였고 통제 시설이라곤 일본 항모 특유의 좁아터진 함교 뿐이었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은 제1기동함대 수뇌부들의 상황 파악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말았다.
하나 주목할 점은 이 때 일본 함대가 거둔 전과는 모두 제로센에 의한 것이었고 대공포화에 의한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일례로 헨더슨 부대에서 격추된 돈틀리스는 전부 초계하던 제로센들이 대함 공격 전후에 격추시킨 것이며, 대공포는 한대도 격추시키지 못했다. 더군다나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미군 조종사들은 대부분 신참들이어서 대공포화를 제대로 회피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이토록 빈약하고 비효율적인 대공포화는 얼마 안가 일본함대에게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다.
5.3. 미국 항공모함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한편 나구모 제독은 2차 공격을 위해 당시 대기 중이던 공격대에서 함선 공격용 무기들을 철거하고 육상 공격용 폭탄을 장착하라고 지시한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아까 늦게 출발했던 정찰기(토네의)가 플레처 제독이 지휘하던 17기동부대를 발견하고 보고를 올렸지만, 함종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다가 무전기 고장으로 그 보고조차 늦게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나구모 제독은 15분 가량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다 일단 제1항공전대(아카기, 카가가 포함된)에는 무장 전환 작업을 중지하고 적의 함종을 파악할 것을 지시했다.
그 사이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미군 공격대의 습격이 이어졌지만 역시 기량 부족이었던 까닭에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단 폭탄은 날아오니 회피 기동을 해야 했으므로, 이번에도 무장 전환 작업이 중단되는 등 난장판이 또 벌어졌다. 핸더슨 공격대의 공격이 끝났을 무렵 아까 그 정찰기가 추가로 "항공모함은 없었다"라는 보고를 올린 덕분에 나구모 제독은 안심할 수 있었으며, 무장 전환 작업 재개를 지시했다. 그런데 그 정찰기에서 다시 "항공모함 1척을 봤던 것 같다"고 보고를 번복하는 바람에 나구모 제독과 참모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 미드웨이에서 파견한 공격 부대(빈디케이터, B-17)가 또 나타나면서 대응할 시간을 더 빼앗겼다.
당시 일본 해군의 교리를 그대로 따를 경우, 함재기의 발진 과정에 필요한 절차들(무장, 급유, 이동, 엔진 예열, 기타 등등)을 아무리 서둘러도 당시 일본의 항공모함과 함재기와 항모 승조원들로서는 1차 공격대의 귀환 이전에 함재기들을 출격시킬 수 없었다. 정찰기의 보고를 접수한 직후 바로 출격 지시를 내렸어도, 함재기들의 출격이 완료될 때까지 토모나가 공격대는 최소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도 귀환하는 기체들이 멀쩡하고, 적의 공격이나 기타 지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실제로는 1차 공격대의 함재기 중 다수가 심한 피해를 입어서 한시바삐 착륙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미군의 추가공격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함대 방공을 위해 전투기들을 수시로 띄워야 했다. 또한, 적기가 전투기들의 방어를 뚫고 공격하면 이를 회피하기 위해 항공모함이 회피기동을 할 수밖에 없으며 그 동안 함재기가 뜨고 내리지 못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비행 갑판 위에 계류되지 않은 비행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협이 된다. 더군다나 함종, 규모, 위치 모든 게 불확실했으므로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함재기들을 보냈다가는 허를 찔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정들이 맞물린 탓에 그 시점에서는 공격대를 발진시킬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것 저런 것 다 무시하고 함재기를 날려보냈다 한들 그 시점에서는 이미 늦었다. 정찰기의 보고가 들어온 시점에서 이미 미군 함재기들은 일본 함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후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이 들이닥쳤을 때, 비행 갑판 아래의 격납고 안에는 연료와 무장을 가득 채운 함재기들이 가득하고 각종 무장들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격납고 여기저기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로 인해 명중률은 높으나 뇌격에 비해 낮은 파괴력을 가진 급강하 폭격임에도 불구하고 이 함재기들과 폭탄들이 유폭해서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만약 이러한 유폭이 없었다면 일본의 항공모함 중 절반 정도는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
5.4. 미군 비행대의 발진
후술할 미군 뇌격기 부대의 참상은, 태평양 전쟁 개전당시 미군의 경험과 준비 부족이 빚어낸 비극이었다. 당시 미해군항공대의 경우 이러한 대규모 장거리 대함공격을 상정한 훈련을 한 적이 없었다. 때문에, 당시 미 항모비행부대의 공격은 전술 레벨에서 실수가 이어졌고, 전혀 의도치 않았던 축차공격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미드웨이 해전 당시 미군 각 항공모함의 비행대는 각각 3개의 비행대대로 구성되어 있다. TBD 데버스테이터로 구성된 뇌격기대대, F4F 와일드캣의 전투기대대, SBD 돈틀리스의 급강하폭격기대대. 각 비행대대의 지휘관은 소령이며, 이 3개 대대로 구성된 항모 전체의 비행대 지휘관은 중령이다.
오전 7시, 일본군을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도착한 미국 항모기동부대는 즉시 공격 부대를 발진시켰다. 이때 스프루언스 제독도 한 가지 삽질을 하고 있었는데, 1분 1초가 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함대 상공에서 편대를 이룬 후에 공격하러 가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이는 엔터프라이즈 중심의 16기동부대가 항공모함간의 전투를 해보지 못한 탓이 컸다. 반면 플레처 제독은 요크타운의 비행대에게 날아가면서 편대를 형성하도록 지시를 해 둔 상황이었다. 더불어 일본 항공모함에서 파견한 공격대에게 공격당할 우려가 있었으므로 미처 제독이 지휘하는 호넷 중심의 18기동부대에게 멀리 분리할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 항공모함 기동 부대는 세 척이 각각 활동했으며, 그 결과 일본 함대의 타격력 분산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었다.
함재기를 발진시키고 있던 엔터프라이즈에서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 몇 대가 말썽을 부려 출격이 늦어지자 다급해진 스프루언스 제독은 7시 52분 그냥 기다리지 말고 공격에 나서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항공기들은 그 즉시 일본 함대를 찾아 비행을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 호넷, 요크타운 3개의 항공모함에서 도합 152기의 항공기들이 발진하여 대규모 편대가 형성되었다.
한편, 앞서 제1항공함대를 노렸다가 호위함정들의 공격을 받고 물러났던 미국의 나왈급 잠수함 SS-168 노틸러스는 기회를 엿보다가 일본의 구축함 아라시를 발견했는데, 그대로 가면 아라시에게 포착당할 상황이라 선제 공격을 했으나 유효타를 주지 못해 아라시의 폭뢰 공격을 피해 잠수해야 했다. 노틸러스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다시 살짝 부상했으나 아라시가 아직 남아 있어서 별수없이 다시 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계속 집적거리는 노틸러스에게 정신이 팔린 아라시는 본대에서 뒤쳐졌고, 황급히 본대를 따라 항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아라시의 행적은 본 해전의 절정을 이끌어낸다.
한편 미군 비행 부대는 날아가면서도 삽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호넷의 비행대에서 발생한 심각한 분열이었다.
호넷의 비행대에는 지휘 계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호넷 비행대의 총지휘관인 링 중령은 부하들에게 권위주의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과시욕이 강해 부하들의 큰 불만을 사고 있었다. 게다가 과거 조종경력에서 사건사고 기록 때문에 부하들에게 그 자질까지 의심받고 있었다. 때문에 링 중령에 대해 부하들의 불만이 상당했고 일부 부하들은 군사재판에 회부될 각오를 하고 지휘관을 교체해 달라고 요구하려 하는 등 거의 항명 직전의 상황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날 출격한 호넷의 비행대에서 편대가 와해되는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전투가 끝난 후 호넷의 함장 미처 대령이 왜곡된 보고서를 올렸기 때문에 호넷의 비행대 내에서 정확하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이후에도 명확히 밝혀지지지 않았으나, 해당 부대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일 사건을 재구성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호넷에서 출격한 후 8시 30분경 제8뇌격기대대의 대대장 존 C. 월드론 소령이 비행대 총사령관인 링 중령에게 지금 비행대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 자신이 말하는 방향으로 틀어야 한다고 링 중령에게 말했다. 하지만 호넷 비행대의 총지휘관인 링 중령은 전 부하들이 무선으로 듣는 상황에서 자신의 권위에 정면 도전했다고 생각하며 월드론 소령의 제안을 기각했다. 이에 한동안 링 중령과 티격태격하며 말싸움을 벌이던 월드론 소령은 결국 독단으로 제8뇌격기대대의 방향을 틀어 비행대에서 이탈해 버리며 항명했다. 이때 월드론 소령은 링 중령에게 "Well, the hell with you."라는 욕설을 퍼붓었다. 오늘날 표현으로 말하자면 "엿이나 처드쇼" 혹은 "F*** you!" 정도의 표현이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험악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월드론 소령의 직감대로 호넷의 제8뇌격기대대는 마침내 일본함대를 발견했고 곧 공격에 들어갔지만, 그의 제8뇌격기대대는 끝내 전멸해버리고 만다. 상세는 후술할 내용을 참고.
월드론 소령의 제8뇌격기기대대가 이탈한지 30분 가량 지난 9시경 호넷 비행대 중 와일드캣 전투기 10기로 구성된 제8전투기대대의 연료가 바닥났다. 제8전투기대대의 대대장 미첼 소령은 링 중령에게서 아무런 지시가 없자, 링 중령에게 보고없이 와일드캣 10기를 이끌고 호넷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귀환 중 연료가 고갈되어 10대 모두 해상에 불시착했다. 10명의 파일럿들은 구명보트에서 상어와 사투를 벌이는 등 4~5일간 바다를 헤매다가 8명은 구조되었으나, 2명은 실종되었다.
이제 제8폭격기대대만 남은 링 중령의 호넷 비행대는 계속 서진했으나 10시경 돈틀리스 급강하 폭격기의 연료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이에 제8폭격기대대의 대대장 존슨 소령도 링 중령에게 보고없이 돈틀리스 17대를 이끌고 귀환했다. 링 중령이 대형을 이탈하지 말라고 명령했으나 제8폭격기대대는 이를 무시했다. 귀환 도중 연료 부족으로 돈틀리스 3기가 해상 등에 불시착했다.
전투 후 호넷의 함장 미처 대령은 이날 전투에 참여한 각 예하 비행대 지휘관의 전투보고서를 상부에 올리지 않았고 자신의 전투보고서만을 스프루언스 소장에게 제출했는데, 이때문에 미처 대령이 링 중령 사태에 관련된 일을 고의로 은폐하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미처 대령의 전투보고서는 이후 생존자들의 증언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보고서를 받아든 스프루언스 소장도 내용이 의심스럽다면서 격노하기도 했다. 미드웨어 해전 이후 미처 대령은 제독으로 승진했으나, 스프루언스 소장은 미처를 한직으로 보내버렸다.
한편, 엔터프라이즈 소속 비행대의 경우, 상술한 바와 같이 함대 상공에서 편대 구성을 하려다가 이를 취소하고 일본 함대로 향하는 중에 비행단 전체의 편대 구성을 시도했으나, 그만 중간에 각 비행대대 별로 흩어져버리고 만다. 엔터프라이즈의 제6급강하폭격기대대는 원래 계획한 경로로 날아갔지만 일본함대는 이미 북쪽으로 변침한 뒤였다. 엔터프라이즈의 제6전투기대대는 호넷의 제8뇌격기대대를 엔터프라이즈의 비행대로 착각하고 뒤따라가다가 그마저도 놓쳐버렸고, 본 전투내내 엉뚱한 곳을 헤메고 말았다. 엔터프라이즈 비행대 중 제6뇌격기대대만이 우연의 일치로 일본함대를 제대로 찾을 수 있었으나...
그나마 요크타운의 비행대만이 건재를 유지한 채 일본함대 상공에 도달했지만, 막판의 전술적 착오로 인해 뇌격기들과 급강하폭격기들이 따로 움직이게 되었다. 상세는 후술할 내용 참고.
5.5. 미 뇌격기 부대의 전멸
3개의 뇌격기대대가 순차적으로 일본 함대를 공격했는데, 09시 20분에 제8뇌격기대대가, 09시 37분에 제6뇌격기대대가, 10시 10분에 제3뇌격기대대가 뇌격을 개시했다. 각 뇌격기대대의 공격시간은 약 30분이었다. 따라서 제8뇌격기대대가 전멸하기 전에 제6뇌격기대대가 공격을 시작했으며, 제6뇌격기대대가 공격을 마친지 몇분후에 제3뇌격기대대의 뇌격이 시작되었다.
5.5.1. 제8뇌격기대대의 전멸
09시 20분, 링 중령의 본대가 엉뚱한 곳을 비행하고 있는 동안, 본대에서 이탈한 존 C. 월드론 소령이 이끄는 호넷의 제8뇌격기대대 15기는 정말 그의 말대로 일본 함대를 정면에서 발견하고 곧바로 뇌격에 돌입했다. 그러나 구려터진 항공어뢰와 전투기 호위의 부재 탓에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일본 초계 전투기인 제로센 24기에 모두 격추당하여 비상 탈출에 성공한 조이 게이 소위를 제외한 29명의 탑승원 전원이 전사했다.
사실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월드론 소령의 제8뇌격기대대 뒤를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제6전투기대대가 일본 함대 앞까지 쫓아왔다. 그런데 제6전투기대대는 앞서 가는 뇌격기대대가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제6뇌격기대대라고 착각하고 있었으므로, 앞선 뇌격기들이 강하하여 뇌격이 돌입하자 상공에 대기하면서 무선으로 지원 요청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소속이 다른 제8뇌격기대대와 제6전투기대대는 주파수가 달라 무선 통신이 불가능했다. 윌드론 소령의 제8뇌격기대대는 애타게 지원 신호를 보냈으나 제6전투기대대는 무선을 수신하지 못한채 제8뇌격기대대가 전멸할 때까지 상공을 선회하기만 하고 있다. 제6전투기대대는 6600m 상공에서 선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구름에 가려 아래에서 제8뇌격기대대가 전멸하고 있는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5.5.2. 제6뇌격기대대의 공격
뒤를 이어서 09시 37분 제8뇌격기대대가 거의 전멸해가고 있던 시점에 콘신 린제이 소령이 이끄는 엔터프라이즈의 제6뇌격기대대 14기가 도착하여 뇌격에 돌입했다. 제6뇌격기대대는 엘리 대위가 이끄는 중대와 린제이 소령이 이끄는 중대로 나뉘어 뇌격에 들어갔다. 그러나 제6뇌격기대대 역시 전투기 호위를 받지 못했다. 앞서 서술된 것과 같이 제6뇌격기대대를 호위해야할 제6전투기대대는 중간에 흩어져 엉뚱하게 제8전투기대대를 따라갔는데, 이때문에 제6전투기대대는 제8뇌격기대대를 따라 먼저 일본 함대 인근 상공에 도달해 있었지만, 이 과정에서 과도하게 연료를 소모하여 정작 제6뇌격기대대가 전투기 지원을 애타게 요청했을 때는 연료가 떨어진 바람에 지원해 줄 수 없었다. 결국 전투기 호위의 부재 속에 엔터프라이즈의 제6뇌격기대대는 엘리 중대가 먼저 카가를 향해 접근했으나 엘리 대위를 포함한 5기가 격추되었고 2기가 생존하여 항공어뢰를 발사하였다. 그러나 카가의 함장 오카다 지사쿠 대좌는 카가를 급히 좌측으로 틀어 어뢰를 피했다. 린제이 중대에서는 린제이 소령을 포함한 4기가 격추당하고 3기가 생존하여 항공어뢰를 발사하였으나 카가의 오카다 함장은 급격히 우회전하여 어뢰를 피해나갔다. 이렇게 제6뇌격기대대 역시 단 한발의 어뢰도 명중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앞선 제8뇌격기대대와 달리 전멸은 면하고 총 5기의 뇌격기가 생존하여 전투현장에서 빠져 나왔는데, 이는 일본군의 제로센들이 앞선 제8뇌격기대대를 공격하느라 기관포탄을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귀환하던 5기의 뇌격기 중 1기는 도중 엔진이 멈추면서 해상에 불시착하고 4기만이 엔터프라이즈로 귀환했는데 1기는 파손이 심해 바로 처분되었다. 해상에 불시착한 탑승원 2명은 해상에서 상어의 공격 및 굶주림과 갈증, 일광화상 등에 시달리며 무려 17일 동안 태평양을 표류하다가 구조되었다.
5.5.3. 제3뇌격기대대의 공격
곧이어 10시 10분 요크타운의 제3뇌격기대대 12기가 도착해서 일본 함대의 가장 앞쪽에 있던 항공모함 히류에 공격을 가했다. 요크타운 소속의 비행대는 편대를 갖추어 날아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제3전투기대대의 와일드캣 전투기들의 호위가 제대로 이루어졌다. 이 제3전투기대대대의 지휘관은 타치 위브 전술의 창시자였던 존 S. 태치 소령이었다. 와일드캣 호위 전투기 편대는 태치 소령의 지휘에 따라 타치 위브 전술을 선보이면서 그런대로 뇌격기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주옥같은 항공 어뢰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히류를 향해 발사된 어뢰 5발 중 한발도 명중되지 못했다. 또 호위 전투기 세력 또한 열세였던 까닭에 요크타운의 제3뇌격기대대도 일본 군함에 이렇다 할 피해를 주지 못한채 데버스테이터 뇌격기 12기 가운데 제로센의 요격에 10기가 격추당했고 2기는 연료부족으로 해면에 불시착했다. 뇌격대원 24명 중 21명이 전사했다.
이처럼 3개 항모에서 출격한 뇌격기대대들은 단 한발의 어뢰도 명중시키지 못하며 거의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한채 거의 모두 전멸하는 참극을 겪었다. 일본 함대를 지키던 제로센 초계기들의 파일럿들은 최고의 기량을 가진 베테랑들이었다. 일본 제로센들은 요령 있게 미군 뇌격기들을 흐트러뜨린 뒤 집중 공격을 가했다. 게다가 3개의 미군 뇌격기대대 중 2개는 앞서 말한 삽질들 때문에 전투기들의 호위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요크타운의 제3뇌격기대대는 제3전투기대대의 제대로된 호위를 받았음에도 일본군의 초계기들에게 전멸당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들 뇌격기대대의 희생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반복된 공격 덕분에 일본 해군은 전열을 정비할 시간을 빼앗기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제로센들도 뇌격기를 방어하기 위한 반복된 전투로 피로가 누적되었고 전투과정에서 실탄과 연료를 소모하였다. 또, 뇌격기들을 요격하기 위해 일본의 방공 전투기들이 모두 저공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이게 극적인 반전의 계기 중 하나가 된다.일례로 태치 소령이 이끌던 요크타운 소속 4기의 와일드캣 편대는 타치 위브 전술을 사용하며 4:10의 숫적 열세 속에서도 일본군 전투기들을 상대로 1대가 격추당하는 동안 3대의 제로센을 격추하며 분전, 일본군 전투기들을 20분 가량 저공에 붙잡아두고 있었다. 그럼에도 태치 소령의 편대는 2배 이상의 숫적 열세로 시종일관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훗날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당시 일본 함대의 고위 지휘관들은 미군의 목숨을 건 공격에서 사무라이를 연상했다고 술회했다. 한편, 그들의 희생은 헛된것이 아니였음을 증명하게 되는데, 모두가 요크타운의 제3뇌격기대대와 제3전투기대대의 히류 공격에 정신이 팔려 있던 그 순간...
엔터프라이즈 소속의 제6급강하폭격기대대는 일본 해군이 있을 곳으로 예상된 지점에 도착하였지만, 일본 함대가 이미 변침해 버린 관계로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제6급강하폭격기대대 대대장 C. 웨이드 맥클러스키 소령이 전투기 출신인지라 선공필승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돈틀리스 폭격기의 본래 순항 속도보다 빠른 190노트의 속도로 날아 연료가 슬슬 간당간당해질 때였다. 결국 남서쪽으로 좀더 비행을 해보고 귀환하기로 결정했는데, 때마침 정말 운 좋게도 가느다란 항적을 하나 발견하였다. 이 항적을 따라가면 일본 함대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맥클러스키 소령은 추적을 시작했는데, 이 항적이 바로 아까 노틸러스를 잡으려다 뒤쳐진 아라시의 항적이었다.
이들 엔터프라이즈 소속 제6급강하폭기기대대는 요크타운의 제3뇌격기대대와 제3전투기대대가 아직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던 시점인 10시 22분에 일본 함대의 상공에 도착했다. 제로센들은 요크타운의 뇌격기들과 전투기들을 막으려고 모두 해수면 근처로 내려가 있어서 방해가 될 전투기 세력도 없었다. 상공을 감시하던 견시병들도 모두 저공에 있던 미군 뇌격기들에 익숙해진 터라 고공에 있던 급강하 폭격기들을 일찍 발견하지 못했다.
최적의 공격 위치에 있었던 엔터프라이즈의 제6급강하폭격기대대는 항공모함 카가를 먼저 공격하였다. 이들은 미드웨이의 육군 조종사들과는 달리 스스로 베테랑이라고 자부할 만큼 경험 많은 조종사들이었기에 그야말로 완벽한 급강하 폭격을 선보였으며, 2개 비행대 28대. 폭탄 합계 50발(...)이 한꺼번에 덤벼드는 통에 결국 카가는 회피 기동에도 불구하고 여러 발의 폭탄을 얻어맞았다. 카가에 대한 명중탄은 공식적으로 4발이지만, 워낙 짧은 시간에 집중적으로 맞다 보니 맞는 쪽은 물론이고 때린 쪽도 정확하게 몇 발이 명중했는지 모를 지경이었으므로 실제로는 10발 전후로 명중한 것으로 역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여기에 연료와 무장이 가득한 전투기,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무장들이 유폭을 일으키면서 카가의 비행 갑판과 격납고가 절반 이상 날아가고 남은 구역들도 불지옥으로 돌변했다. 이 와중에 함교도 직격탄을 얻어맞아 카가의 지휘부는 몰살당했다. 함장 오카다 대좌를 포함한 중좌 이상 장교 전원이 전사하면서 항공 장교였던 소좌 한 명이 함장직을 인수했지만, 집중된 공격과 지휘부의 몰살로 대응이 늦어지며 카가는 이 해전에서 격침당한 일본 항모들 중 최대의 인명 피해를 기록하게 된다. 당시 참전한 파일럿 더스티 클리스는 피아 식별을 위해 갑판에 큼직하게 그려 넣은 일장기에 명중한 폭탄도 있었고(당장 본인부터가 노렸다. 다만 적중은 실패하고 가장자리에 맞았다고) 아예 갑판 위에서 대기 중이던 제로센에게 명중한 폭탄까지 있었다고 증언했다. 꽤나 혼란스러웠던 당시 상황 탓에, 일본군과 미군 양쪽 모두에서 당시 카가를 비롯한 일본군 항모의 비행 갑판에 함재기들이 가득했다는 증언이 있는 반면 당시 미군 현장 지휘관들의 보고서에는 비행 갑판 위에는 소수의 제로센들만 있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아카기는 처음에 카가가 얻어맞고 있을 때 비교적 가까이 있었으나 운 좋게도 폭격기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유인즉, 원래 폭격 수칙대로 하자면 맥클러스키 소령의 비행대가 가장 마지막에 아카기를 공격하고 공격 장면을 촬영해야 했으나 이런 대규모 대함 공격의 경험이 부족했던 데다, 원래 전투기 비행대 출신에다 폭격대 지휘관이 된 지도 얼마 안 된 비행대 지휘관 맥클러스키 소령은 이 수칙을 못 떠올린 채 가장 먼저 발견한 카가를 향해 급강하를 시작해 버렸으며, 나머지 휘하 폭격기도 카가 쪽으로만 갔던 것. 원래 수칙대로라면 맥클러스키 비행대의 뒤를 따르던 이름값하는 리처드 홀시 '딕' 베스트 대위가 지휘하는 비행대가 카가를 공격해야 했고 실제로 이들 비행대들도 대부분은 맥클러스키 소령의 편대와 상관없이 카가로 몰려가 버렸다. 이렇게 아카기는 운 좋게 살아남는 듯 했으나, 제대로 된 수칙과 공격 순서를 기억해 낸 베스트 대위가 뭔가 일이 꼬였음을 깨닫고, 그 즉시 편대원 둘을 데리고 빠져서 아카기를 공격하러 갔다. 그리고 이들은 아카기의 운명을 바꿔 버렸다. 첫 번째 공격은 빗나갔고, 두 번째로 프레드릭 T. 위버가 폭격을 감행했지만 빗나갔다. 그러나 이 일격은 선체 바로 근처에서 터지면서 아카기의 키를 고장내 버렸다. 덤으로 비상시 탄약고를 침수시켜 유폭을 방지하게 하는 물펌프도 고장내 버렸다. 그리고 베스트 대위가 베스트한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는데, 이 공격은 비행 갑판 한복판을 관통해 격납고 안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아카기의 소화 장치와 방화 커튼이 망가졌고, 바로 옆에 있던 무장을 가득 실은 뇌격기들의 대폭발이 다른 항공기와 무장을 유폭시켜 아카기를 생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편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기 부대가 막 공격을 시작한 시점에 맥스 레슬리 중령이 이끄는 요크타운 소속의 제3급강하폭격기대대도 도착하여 소류에 공격을 가했다. 총 세발이 명중했는데, 한발은 선수, 한발은 선미, 한발은 선체 중앙에 명중했는데 셋 다 1000파운드 짜리 폭탄이었고 중앙에 떨어진 한발은 격납고 내부까지 관통한 뒤 터지는 바람에 소류는 순식간에 큰 피해를 입었고 결국 아카기, 카가와 같은 신세(침몰)가 된다.
히류는 급강하 폭격기들의 공격에서 벗어나 있었으나, 그 자신도 요크타운의 제3뇌격기대대에게 공격을 받고 있었던 상황이라서 아군의 참화를 눈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과거의 통설에서는 히류가 나머지 3척들과 거리를 멀리 두고 있어서 급강하 폭격기들의 공격을 피한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 당시의 일본 함대 진형을 보면 오히려 히류는 소류 가까이에 있었다. 원래 히류를 향한 공격이 먼저 시작되었지만 앞서 언급된 것처럼 뇌격기들의 작전시간은 약30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제3뇌격기대대보다 늦게 도착한 급강하 폭격기들이 5분만에 일본 항모를 격침시키고 돌아간 후에도 히류를 향한 뇌격기들의 공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술된 것처럼 제3뇌격기대대 역시 한발의 어뢰도 맞추지 못한 채 전멸했고, 4척의 항공모함 가운데 히류만이 무사히 살아남았다.
아카기에 탑승하고 있던 나구모 제독은 간신히 탈출하여 경순양함 나가라로 사령부를 옮겼다. 나구모 제독은 자신의 주특기였던 수뢰전을 실시하기 위해 미군 함대를 향해 자신의 함대를 전진시켰다. 미국 함대도 자신들처럼 수상함으로 최후 결전을 벌이러 접근할 것이라고 믿은 탓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