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시리즈의 리메이크가 시작되었다. 내가 오리지날 [007 카지노 로얄]을 처음 보았을 때가, 중학생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뒤, 케이블 TV를 통해 여러번 보기는 했지만 [007] 뒤에 붙는 영화의 제목은 바뀌어도 007 시리즈의 특징들이 여전히 존재했었다. 가령 뭇 여성들에게 너무나 매혹적인 제임스 본드라든가, 팔등신 미녀의 뇌살적인 몸매가 화면을 꽉 채우던 본드 걸들, 그리고 정보전에 사용되는 특이한 소품들이 반드시 등장했었다. 기본 얼개는 냉전 시대의 스파이전이지만, 그리고 그 뒤에는 세계를 위협하는 폭력 세력과의 싸움이었지만, 힘의 양대 축은 분명히 존재했었다. 또 메인 플롯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본드의 멜로였다.
새롭게 리메이크 된 [007 카지노 로얄]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세월이 흘렀으니까, 시대가 변했으니까, 사람들의 감각이 변했으니까, 바뀌는 것은 당연하리라. 하지만 예전의 007 시리즈가 보여준 파괴력 이상의 것들이 등장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제임스 본드가 그렇게 깔끔한 신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숀 코네리 혹은 로저 무어로 대표되는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는 전형적인 영국 신사류의 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리메이크작의 제임스 본드는 거칠고 반항적이며 상처 많은 케릭터로 등장한다.
본드걸은 또 어떤가? 8등신 미녀는 간데 없다. 그 대신 지적인 여자가 등장한다. 꼭 그녀를 본드걸이라고 불러야 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제임스 본드의 신형무기는 특별한 것이 없다. 즉 예전 시리즈의 주요 특징들은 깡그리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리메이크작의 특징은 무엇인가?
없다. 캐릭터에 혁명적 변화를 주기는 했지만, 지루하다. 물량 공세는 커졌지만 내러티브의 파워풀한 전개가 받쳐주지 못하고 새롭게 변화된 캐릭터의 장점이 돋보이지 않는다. 영화 보는 동안 자꾸만 예전의 007 시리즈가 가졌던 장점들을 되새겨 보았다. 물론 트랜드가 변했으니까 지금 예전 시리즈의 007을 보면 낡은 감각에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007 시리즈가 막 나올 무렵에는 그것이 당대의 패션이었다. 과연 리메이크작이 그 정도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나는 부정적이다. 새로운 캐릭터의 매력은 있다. 그러나 아직 그 매력이 살아나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