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에 정석이 있는가?/안성환/230929
동양철학박사이자 성균관교육원장을 지낸 박재희교수의 글을 읽고 정리한다.
제사의 정석은 한마디로 말하면 ‘없다’이다. 박교수는 제사를 축제로 정의하며 축제는 남녀모두가 행복해야 된다고 한다. 우리의 풍습은 명절이 다가오면 제사에 대한 스트레스는 가정마다 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받고 있다. 최근 국가기관의 장을 지내신 이름을 대면 알만한 분이 조상의 산소 파서 화장하여 강물에 뿌려야겠다고 하였다. 이유는 해마다 묘사등이 부담이었다고 했다. 지식있는 사회 식자층이 저정도이니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우리나라는 어느나라 못지 않게 족보를 잘 정리해온 전통있는 민족임에 틀림없다. 족보를 통해 자기의 혈통과 출신을 확인해주는 중요한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런 역할이 제사 때문에 일어난 스트레스의 갈증을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은 족보나 촌수개념이 없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특히 박교수는 명절이 다가오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부모님이 요양원에 계시는데 제사를 지내야 되나?” 또 “제사 대신 산소에 가서 예를 표시하면 안되는지?” “부모님 제사를 같은 날로 합사(合祀)하면 안되는지?” 그리고 제사의 절차와 음식, 제사를 모시는 조상의 범위 등 다양한 질문을 받는다고 하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답은 한가지라고 한다. “지금 처한 형편대로 하세요” 라고 한다. 결국 제사는 정석이 없다는 뜻이다.
실예로 율곡선생은 장손이 제사를 혼자지내면 부담이 되니 자손들이 돌아가며 지내라고 권유했다고한다. 가난하면 가정형편에 맞춰 지내고, 병이 있으면 있는 힘 만큼는 제사를 지내라 햐셨다고 한다. 이 말은 제사는 공경과 정성만 있을 뿐이라는 말이다. 고려시대에는 사찰에서 재(齋)를 지냈고, 조선시대에는 사당에서 제사를 지냈으니 현대에 와서 교회나 성당 등에서 조상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어 박교수는 조선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예를 들었다. 여기에 제사는 길예(吉禮)로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조상의 매개로 흩어졌던 자손들이 모여 평소 풍족하게 못 먹던 음식과 술을 준비하여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축제는 모두가 행복해야지 남자는 행복하고 여자들은 불행한 제사와 명절은 조상은 원치않는다는 것이다. 조선의 법전 『경국대전』에서도 일반 서민들은 부모제사만 지낼 것을 권유하며, 반드시 장손이 지낼 필요도 없다고 했다. 아들, 딸, 외손 등 구별없이 돌아가며 지내는 윤회봉사도 조선시대에는 자주 시행 되었다고 한다.
정리하면 “제사는 어떤 방법으로 지내도 괜찮다.” 하지만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숭배마음은 버려서는 안된다. 일부의 사람들은 사회가 혼란한 것은 학교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람들도있다. 학교가 교육하고 책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가훈(家訓)이란 뜻을 풀어 보면 잘 알수 있다. 가훈은 가정에서 가르치는 ‘가정교훈’이다. 사람의 기본은 가정에서 이루어 져야 된다는 말이다. 옛 사람들이 남을 욕할 때 “누구자식인지, 참 못됐다” 라던지 아니면 “누구집 자식인지 본데없다”하지 “어느선생 제자인지 참 못됐다” 하지 않는다. 집에서 잘못 가르쳐 놓고 선생에게 나무라는 것도 참 우스운 이야기다. 족보를 보면 쌍놈은 없다, 모두 훌륭한 선조를 모시고 있다. 이런 것은 단순이 조상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훌륭한 조상을 교육의 자료로 활용하여 후손들이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일 것이다. 제사는 자기 마음 가는데로 모시드라도 조상을 존경하고 높이는 전통마저 버려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큰 착각이다.
한가위날 박재희교수의 글에 공감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느낌을 정리한다,
2023년 9월 29일 추석날 안성환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