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이야기
.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이제 늦은 밤에는 서늘한 찬 기운이 흘러, 홑이불이 얇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군대생활을 할 때도 이맘때쯤이면 고향 생각이 제일 많이 나곤 했는데, 임진강 바람이 더욱 싸하게 느껴지는 깊은 밤, 경계 근무를 서는 강둑에서 제 각각 울어대던 풀벌레 소리에 공조(共助)하여 상념의 나래를 무한히 펴곤 했습니다.
.
꿈과 낭만을 펼치던 지난 세월을 반추(反芻)하기에도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이지만, 아무래도 세월의 흐름과 연륜의 퇴적으로 인해 꿈과 낭만은‘반추’에 그치고, 이 시기의 현실적인 실행 과제 중의 하나인 벌초(伐草)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집안에서는 일 년에 한, 두 번 정도 조상들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하는데, 그 시기를 정확이 아는 이가 매우 드뭅니다.
.
먼저 계절과 달의 흐름을 보면, 음력 1, 2, 3월은 봄이요, 4, 5, 6월은 여름, 7, 8, 9월은 가을, 10, 11, 12월은 겨울인데, 여기에도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력 1월은 양력 2월에 해당하는데, 이때도 춥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도 봄으로 나눈 것은 이때부터 하늘의 기운은 봄기운이 내려오지만, 땅에서는 그 기운을 받아 감응하여 현실이 나타나는 관계로 실제 기운은 춥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유추하여 보면, 음력 7월은 양력 8월로, 우리가 느끼기에는 가을이 아닌 여름 기운으로 와 닿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운은 음력7월부터 이미 가을 기운이 내려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절 변화에 민감한 식물들은 이미 가을임을 알아차리고 성장을 멈추고 결실을 준비하여, 가을의 중기(中期)인 음력8월에는 열매 맺기를 마치고, 음력 9월이면 가을의 말기(末期)로 수확을 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음력의 흐름이 다소 부정확하여 그 보완책으로 나온 것이 절기(節氣)입니다. 절기는 태양력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용해 왔는데, 음력의 날짜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일정한 날짜 간격을 두고 정한 것이라(바꾸어 말하면 태양의 공전주기를 계산하여), 태양력과 자연히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는데 다시 돌아와 가을을 보면 음력7월, 더 정확히 말하면 입추부터 가을의 전기(前期)가 시작되어 식물들은 결실에 들어가고, 더 지나 가을의 중기인 음력8월이 되면 풀씨가 여물기 때문에, 풀의 성장은 멈추고(그래야 벌초 후 새싹이 나오지 않음) 풀씨는 여물기 전인(여물면 이것이 땅에 떨어져 싹이 남) 이때 즉 음력 7월, 더 자세히 말하면 입추부터 백로 전이 되는데, 반가(班家)에서는 대부분 음력 7월 중으로 하라고 하며, “8월에 벌초하는 자식은 자식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
벌초의 시기에 대해서는 이제 정확하게 알았고 그 범위는 어떻게 될까요?
이름 있는 종가 집에서는 시조 묘에서 중시조 묘, 입향조 묘 등 그 범위가 대단히 넓지만, 일반적인 집안에서는 자신의 직계선조, 즉 고조부까지는 반드시 해야 하며, 직계 장손일 경우에는 5대조 7대조 등 그 조상이 장자(長子)가 아닌 경우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며, 직계가 아닌 처가(妻家) 쪽일 경우에는 아마도 처삼촌 정도까지가 해당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처삼촌 묘를 돌 볼 처가 쪽 후손이 없을 경우 자신이 벌초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말에 성의 없고 대충 대충 하는 일을 두고 “처삼촌 묘에 벌초 하듯이 한다.”고 하는 말에서 유추(類推) 할 수 있습니다.
.
요즘 벌초는 대부분 예초기나 기계를 이용하여 풀을 자르고, 갈퀴로 끌어서 치우는 것이 보통입니다. 더욱 깔끔하게 산소를 관리 하려면 벌초 후에 잔디에 뿌리는 제초제를 살포해 두면 잡풀은 죽고 잔디만 살아 깨끗한 산소가 되며, 해마다 잔디를 새로 심어도 자꾸 죽는 경우에는 전문가를 불러 감정을 받아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국민장례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