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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숭사리 교회개혁포럼 원문보기 글쓴이: 반석
영화 "킹콩을 들다" 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웃음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을 맺게 해준
너무나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이다
그러면서도 신앙이 과연 무엇인지를 잘 그려준다
줄거리는 이지봉(이범수)이라는 역도선수가 올림픽에서 부상을 당하게 된다
그는 동메달을 따고서 그 부상으로 역도를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방황하다가 어느 시골 여중에 내려온다
그러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항상 홀로인 영자라는 아이와 시골소녀들에게 역도를 가르치게 된다
심장병이 있는 그는 자기몸을 돌보지 않고 늘 제자들을 생각하다가 과로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의미
고통을 극복하는 자세
스승과 제자
참 스승은 어떠한 모습이며 참 제자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이 영화는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이지봉은 부상을 당하고 나서 삶의 의미를 찾지못한다
방황하는 그에게 예전 역도를 지도해 주었던 선생님이 찾아와서 시골여중에 역도 교사로 그를 보내게 된다
이지봉은 내키지 않았지만 뚜렷한게 없는 그로서는 아무의미없이 권유에 떠밀려서 시골로 내려간다
시골여중에 내려갔지만 그는 역도를 가르치려는 의욕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역도에 대한 자신의 상처 때문이다
부상으로 인해 아픈 몸과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이라는 무관심과 설움...이 항상 그의 가슴에 상처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역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게 될거라는 피해의식속에 살아간다
그러기에 이지봉은 아무런 의미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아이들에게도 역도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건성으로 할 뿐이다
학교의 방침에 따라서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역도시합을 나가게 되는데 그 결과는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비참하게 돌아오게 된다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강력하게 역도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이지봉은 역도를 해봤자 금메달을 따지 못하거나 다치게 되면 나처럼 무엇하나 남지 않고 상처만 받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역도를 배우고 싶어한다
자신들을 증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지봉을 통해서 상처가 얼마나 자신을 속박하며 치우치게 하는가 를 볼 수 있다
이지봉은 상처받은 마음에서 모든것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자기자신이 맞을거라 생각하지만 삐뚤어진 시각이라는걸 알 수 있다
신앙을 한다 하나 상처받은 마음으로 그 마음에서 파생되어진 무수한 것들로... 숨겨진 욕망으로 성경을 보고 누구를 판단한다는 것이
수많은 오류를 낳을 수 밖에 없다
상처받은 마음에서 나오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이 꼭 옳을거라는 착각을 우리는 많이 하고 산다
어릴때부터 상처의 울타리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시각이 과연 얼마나 객관적일까?
단순히 성경을 많이 안다...또는 외운다 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공의로울 것이다 객관적일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진리의 눈을 갖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진리의 눈을 가질수 있는... 공의라는 것은 영적인 실제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 실제란 내 안에 들보를 뽑았을때만이 밝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들보를 뽑는다는 구절을 외우는 것과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실제로 뽑힌 것은 매우 다르다
그런 과정이 지나갔을때 그 내면에 진리의 세계가 만들어져서 누구에게도 판단받지 않고 그 무엇에도 속박받지 않고 진리 그 자체로 모든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리로 판단한다는 말씀처럼... 진리는 판단을 넘어선다
(생략...)
그런데 이지봉이라는 이 상처많은 사람이 아이들에게 역도를 가르치면서 그의 자세와 눈빛은 변해가기 시작한다
한없는 자기연민속에 살아왔던 이지봉이 변할 수 있었던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할 때의 그 치열함속에서 자신이 변화되고 자신의 죄를 씻어나가는 것이다
향유옥합여인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한번 살펴보자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7장47절)
주님을 안다는것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기회이며 시작이며 은혜에 답하는 삶으로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사랑은 그렇게 이지봉이라는 의미없는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을
가장 빛나는 삶의 주인공으로 다른이의 삶을 바꾸어놓게 되는 "스승"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생명은 사랑할때 가장 빛나는 것이다
역도를 배우는 어린 소녀들 중에서 이 영화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영자"라는 소녀가 나온다
영자는 버려진 아이이다
부모가 없어서 할머니 손에서 자란아이다
그런 할머니마저 돌아가시면서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천덕꾸러기로 전략한다
너무 가난해서 점심시간에 아이들이 밥을 먹을때 영자는 몰래 누가 버린 우유를 훔쳐먹으면서 배고픔을 달랬다(이지봉은 버린 우유를 먹는 영자를 보고 불쌍해서 역도부에 가입시킨다. 배고픔을 달래주려고)
그렇게 지독한 외로움과 가난만이 영자에게 존재했다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시골소녀 영자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가 찿아온다
그것은 바로 역도 와 그 역도를 가르쳐 줄 스승이다
영자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모습이며 모든 인생의 모습인 것이다
원죄 이후로 죄의 나락에 떨어진... 생명이 생명답지 못한 비참한 몰골인 것이다
원죄 이후로 그리고 죄의 대물림과 철저한 죄인이기에
어디하나 맘 붙일 수 없는게 인간의 모습이다
무엇을 해도 늘 공허하고 무엇을 해도 늘 외로운 것이...
그래서 결혼을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한다고들 한다
연예인들에게는 군중속에 고독이라는 말이 었다
가정을 이룬 사람들에게 왜 사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이때문에 산다 라고 한다
자신의 존재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늘 공허함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런 죄인에게 그 공허함과 외로움을 벗어버릴 수 있는 원래의 존재를 회복할수 있는 신앙이라는 것이 찾아오며 그 신앙의 길을 인도해주실 스승되신 주님께서 찾아오신 것이다
이지봉은 아이들에게 역도를 하면서 겪게 될 어려움을 얘기한다
비인기 종목이라 언제나 사람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며 냉대받을 것이라 말한다
그래도 하겠느냐고 물어본다
아이들은 상관없다 고 대답한다
주목받지 못하고 냉대받는 것...
참신앙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 늘 찬밥신세인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왔지만 주님께서 이들이 나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먹고 배부른 까닭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인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나 내 살과 피를 먹어라 라고 말씀하신다
결과는 그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돌아가고 몇몇 제자들만 남았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늘 알곡과 쭉정이를 잘 가려내신다
교회도 많고 교인도 너무나도 많은 시대이다
그러나 참신앙인은 심히 적은 것이 현실인 것 같다
믿는다 라고 말속에서 진정성이란 언제나 주님을 향한 그리움과 다른 영혼들에 대한 애뜻함이 늘 살아있는 바로 그 삶 자체라고 생각한다
늘 십자가를 사모함이 내 심령에서 자라나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은 안다 라는 인지, 지적동의 적인 개념을 믿음이라고 너무 많이 오용하는 것 같다
안다 라는 개념, 인지 라는 개념이 믿음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은 씨와 같은 믿음인 것이다. 나무가 되지 못한...
밀알 비유, 달란트 비유, 좋은 땅 비유, 좋은 열매 맺지 못할 때 도끼로 찍는 다는 말씀, 장성한 분량 에 대한 말씀 등등
신앙은 늘 자라갈 때 그것이 살아있고 의미있는 것이다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지만 전혀 의인스럽지 않는 신앙스럽지 않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보일까 말까한 씨를 가졌다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자기 주장일 뿐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모였다가 다시 돌아간 사람들에 대해서 연연해 하지 않으셨다. 그 생명들에 대해서 사랑하지 않으셨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의 머리숫자에 대해서 연연해 하지 않으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의 교회와 매우 많이 다른 모습이다
교회는 성장론을 향해서 달려간다
전도, 전도. 전도...
부흥, 부흥, 부흥...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데 모든것이 집중되어 있다보니까 늘 사람들이 원하는 축복적이고 기복적이고 문제해결 적인 말씀들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말씀이 아닌 그저 인간의 말일 것이다
성경을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구약을 통해서 선지자들이 늘 일괄되게 하셨던 말씀이 회개하라 였고
예수님의 첫마디도 회개하라 라는 말씀이셨다
하지만 회개하라 라고 하면 별로 재미가 없는 것이다
예수이름으로 무엇이든 될줄 믿습니다... 축복합니다...
라는 말이 더욱 달콤한 것이다
그 달콤함이 얼마나 영혼을 무디게 하고 죽어가게 하는가...
얼마나 신앙이 신앙되지 못하게 하는가...
영혼에 독약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정말 천국에 관심이 있다면 십자가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달콤함이 별로 재미없는 말일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진정 사랑하는 한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다
그리고 이지봉 선생님은 계속 말한다
역도부에서는 그만할래요, 포기할래요 라는 말은 없다고
신앙의 정신은 늘 그런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언제나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다
역도부 아이들이 성적을 내면서 협회에서 역도부 아이들을 다른 학교 다른 코치에게 데려간다
이지봉 선생님과 아이들이 어쩔수 없이 이별을 하게 된다
하지만 늘 서로에 대한 그리움에는 변함이 없다
신앙은 언제나 늘 그리움...인것 같다
새로 역도를 가리치게 된 역도부 코치는 아이들에게 성적만을 강조한다
아이들의 미래, 몸상태, 마음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무리한 성과주의 운동으로 몸과 맘이 병들어 간다
삯꾼의 모습이 이런 갓이다
영혼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이다
큰 교회, 많은 사람들, 안정된 생활... 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에 더 관심을 둘뿐
진정 그 영혼이 주님앞에 신부단장 되어질 수 있는 천국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직 표면적인 것에 몰두한다
신앙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성과주의 적인 것이 아니다
신앙은 내면이며 그 내면이 구체적으로 변화되어서 외면까지 바꾸어 가는 것이다
(들보를 뽑아낼 때... 자기를 부인할 때...)
그래서 성경에서는 가르치는 자에게 화가 더 크다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가르치치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지봉 선생은 학대받는 몸과 맘이 병들어 가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 아파한다
세세한 부분까지 늘 챙겨주고 신경쓴다
늘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한다
참 목자의 모습인 것이다
아이들이 중요한 시합에 나가게 되었다
이지봉 선생은 중요한 시합에 나갈 아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런데 그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편지를 부치려 가는데 과로와 심장병으로 쓰러지게 된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쓰러지면서도 편지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 순간까지... 그 죽음의 순간까지 아이들이 눈에 아른 거린 것이다
시합장에 이지봉의 제자인 3명의 역도부 소녀들이 시합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영자가 허리통증으로 무척 고통스러워 한다
계속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코치가 와서는 영자앞에 진통제를 던져놓고 한마디 하면서 간다
이거 먹고도 아프면 시합에서 빼주겠다고
고통하는 영자 그리고 실의에 빠져있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비보가 들려온다
예전에 이지봉 선생님 밑에서 함께 운동했던 아이들이 시합장에 선생님의 편지를 들고 온 것이다
그러면서 “선생님이... 선생님이...”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서럽게 울기만 한다
영자도 다른 아이들도 우는 아이들과 편지를 보면서 직감적으로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안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마지막 편지를 영자에게 그리고 다른 아이들에게 전해준다
영자와 아이들은 그 편지를 받으면서 오열한다
너무너무 서럽게 운다
(이 장면을 보는 나 역시 평평 울 수밖에 없었다)
늘 가난과 외로움이 친구였던 영자에게 사랑을 깨닫게 해 준 선생님... 은 영자의 삶 그 자체였던 것이다
영자는 서럽게 울면서 편지를 열어본다
편지에서 스승은 이런 말을 한다
“하늘처럼 맑은 사람이 있다
소처럼 착한 사람이 있다
나는 그 사람이 영자라고 생각해"
그 안에 감추어져있는 생명의 본질을 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영자에게 마냥 하늘처럼 맑고 소처럼 착한 면만 있었을까... 이렇게 좋은 면만 있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은 늘 영자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상처...열등감... 자기연민... 이 얼마나 영자에게 많았을까
그런데 선생님은 그런 병들어 있는 영자에게서 하늘처럼 맑은 생명력 을 본 것이다
주님께서도 우리 인생의 죄와 허물을 주목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영혼을...
생명을 바라보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스승의 눈이며 생명을 꿰뜷어 볼 수 있는 진리의 눈인 것이다
죄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생명을 보고 그저 사랑하는 것이다
편지를 읽고나서 영자는 일어난다
코치가 준 진통제를 발로 밣으면서 결의에 찬 얼굴로벨트를 찬다
그리고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어서 일어나라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건 이렇게 울고만 있는게 아니야"
그리고 나서 가슴에 새겨진 무슨 여중이라는 글자를 손으로 뜯어낸다
그리고 매직으로 그 가슴에다가 이 지 봉 이라는 이름을 쓴다
다른 아이들도 영자를 따라한다
그때 코치가 그것을 보고 무슨짓이냐면서 영자와 아이들의 빰을 때린다
계속 맞으면서도 영자와 아이들은 상관치 않고 스승의 이름을 가슴에 새긴다
우리의 스승은 주님이신데 스승의 이름은 가슴에 새긴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는 참 이질적인 정서이다
스승의 이름을 소중히 여길때
그리고 그 이름이 가슴에 완전히 새겨질때까지 많은 시험과 환란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땨귀를 맞아도 영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은혜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제자의 모습이며 군사로 모집된 자의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역기를 들러 나가는데 편지의 대사가 들려온다
“영자야, 많은 날 외로움으로 살야야만 했던 영자의 마음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더 이상 외로워만 하면서 누군가를 그리워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단다
이제는 그만 일어나라
영자의 전성시대가 시작될 것이다“
생명답게 살라는 것이다
더 이상 자기 연민에 자기 상처에 갇혀있지 말고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존재성을 찾으라는 것이다
역기를 들러 나가는 영자의 모습이 전투에 나가는 전사와 같은 모습이다
스승의 정신으로 무장된 모습이다
그리고 영자는 무거운 무게의 역기를 돌아가신 스승을 생각하면서 도전한다
엄청난 무게의 역기를 들고 있는 장면에서 무척 고통스러워 하지만 결국 영자는 해내게 된다
역기를 드는데 성공하고 나서 영자는 하늘을 응시한다
스승이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있을거라는 마음으로 하늘을 응시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언제나 나를 바라보신다 라는 마음으로 나는 늘 살아갈까...
기록을 세운 그리고 역기를 들고서 내려온 영자에게 많은 가자들이 몰려든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가슴에 새겨진 이지봉 이라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훈련은 어떻게 받으셨나요?“
여러 질문이 이어지는데 어느 기자가 물어본다
“좋아하는 가수 하나만 말해봐, 서태지, 김건모, 신승훈... 많잖아. 하나만 얘기해 봐.”
침묵하던 영자가 입을 연다
“양희은요... 양희은요... 엉엉엉”
왜 영자의 세대와 맞지않은 가수 양희은 이라고 했을까
스승이 흥얼거리면서 불렸던 노래가 바로 양희은의 노래였던 것이다
이것이 제자이며 신앙인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희은을 통해서 스승을 말하는 것이다
가슴에 새겨놓은 이지봉이라는 이름도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드러내는 것이다
언제나 늘 스승이 먼저인 것이다
스승의 마음, 스승의 관심이 나의 마음과 관심이 되는 것이다
그럴때 어느새 나로 모르게 스승과 닮아 있는 것이다
스승을 말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죠...” 라는 일상적인 혹은 관념적인 말뿐인 것이 아니라
그 눈빛... 그 삶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합이 끝나고 아이들은 관을 어깨에 매고 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선생님을 장사하고 나서 산에서 “선 생 님...” 이라고 목놓아 부른다
왜 그렇게 목놓아 부를까
그리움...인 것이다
신앙은 늘 주님을 향한 그리움 인것 같다
너무 많은 의미들이 있는데 다 쓰지 못함이 좀더 상세하게 적지 못함이 아위움으로 남는다
짧게 몇 가지만 더 짚어보려 한다
교육감의 말
"스승은 제자의 영혼까지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지봉 선생님의 말
"너희가 동메달을 딴다고 너희 인생까지 동메달은 아니다. 매순간 인생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이 금메달인 것이다.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동기와 과정을 중요시 하신다
영자가 진통제를 밣는 모습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고통에 맞서는 신앙의 자세인 것이다
주님께서 고통을 피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다 체흘하셨던 것처럼
나역시 고통을 그대로 체흘하는 것이다
고통의 불이 지나갔을때 정금이 되어지며 초월로 들어갈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이 필요한 이유는
그 고통의 불을 통해서 불순물이 제거되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모든 욕망들이 이 고통의 불속에서 태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중간쯤에서 이지봉은 시합전날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너희가 드는 그 무게가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너희 인생에 무게보다는 가벼울 것이다“
신앙에서 겪는 고통이 죄악중에서 겪는 고통과 비교할 수 없이 값진 것이다
역기를 든다는 것은
결국 나를 증명하는 것이다
고통의 무게에 눌리지 않는 존재성 을 증명하는 것이다
고통속에서도 결코 눌리지 않는 존재...
그것이 생명 이다
실제사진
많은 나눔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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