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촌 모임이 있어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양재역에 내려 모임 장소로 가는데, 이혼전문변호사 광고가 넘쳐나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더니, 양재역 인근에 서울가정법원이 있더군요.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시간 여유가 있어 광고판을 찬찬이 들여다보았습니다. TV에 수시로 나오는 유명 변호사를 비롯하여 모든 이들이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재밌는 문구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홀로 서는 황혼을 응원합니다.”란 문구 앞에서는 아연실색했습니다. 사촌들과 식사를 하면서 이 얘길 꺼냈더니 사촌동생도 같은 생각이었다며 분개하기까지 했습니다.
오래 전, 이혼이 흉이던, 주홍글씨 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남사스러워서, 애들 때문에 참고 살거나, 혹 이혼해도 쉬쉬하며 살았던 가정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혼이 계급장처럼 된 듯한 느낌마저 들기도 하는 세상입니다. 자신의 삶이 있는데 가족 때문에, 주위의 눈 때문에 참고 희생하는 건 분명 온당치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두 번 세 번 이혼한 게 자랑할 일도 아닙니다. 아울러, 수임을 하면 누구든 변호를 해야 하는 것이 기본 책무인 변호사라 해도, ‘홀로 서는 황혼을 응원하는 일’은 참으로 잘못된 직업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달에 있을 총선 후보자들-탈락한 지망생들 포함-을 보면 변호사, 검사 출신 등 율사들이 발에 채일 정도입니다.‘금배지를 줍는 일’도 그들에겐 쉬운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서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들 중 금도를 넘은 변론을 한 경력, 2차가해 의심 건들이 문제가 된 이도 꽤 있었습니다. 그러고도 고개 숙일 줄 모르는 면면을 보며, 그들이 요즘의 한국 정치에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부부의 이혼이 되었건, 정치꾼들의 이합집산이 되었건, 헤어지는, 떠나는 이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홀로 서건, 함께 가건, 모두의 황혼이 아름다웠으면 합니다. 내 삶이 그러하기 위해 평소에 갈무리를 잘 하여야겠다 싶습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제게는 화두입니다. 낙화도 꽃이어늘...
거목은, 고택은 그 자리를 지킬 뿐,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표정으로 옆자리를 내줍니다. 그래서 어떨 땐 사람보다 더 편하고 좋을 때가 있습니다. 며칠 전 칠곡의 보호수, 고택을 돌며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390588562
낙화(모셔온 글)=======
가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의 시집 <적막강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