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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교역의 통로, 카라코람 실크로드 탐방기(4)
16. 고산 지대의 광활한 초원과 명마의 고장
8월 7일, 아침에 일어나니 구름이 많이 끼었다. 언제나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호텔을 나서 주변을 한 시간 넘게 산책하였다. 아침마다 산책에 나서는 이성희 씨도 동행하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곳곳에서 청소원들이 넓은 거리를 빗자루로 열심히 쓸고 있다. 거리에는 물병과 먹다버린 음식물 쓰레기 등이 군데군데 널려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는가, 물병을 몇 개 주워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중심가를 벗어나 안전한 길로 들어서서 어느 학교 모퉁이에 이르니 신문을 한데 모아놓고 판매하는 곳이 보인다. 이른 아침에 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신문과 잡지 등을 고르고 배분한다. 이를 보노라니 가판원들이 보급소에서 신문을 한 뭉치씩 들고 가던 우리의 옛 풍경이 떠오른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코치의 지도에 따라 소년들이 축구연습에 열심이고
신문과 잡지를 팔고 있는 골목길과 축구연습에 열중인 소년들
오전 9시 반, 이틀간 머문 비쉬켘을 출발하였다. 국경도시 오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치치칸이라는 산골휴양소가 오늘의 목적지다. 며칠 전에 탔던 차량보다 약간 큰 3대의 승합차에 나누어 탔다. 30분을 달려 비쉬켁 시내를 벗어나는 외곽 슈퍼마켓에서 숙소에서 먹을 물과 먹을거리들을 산 후 잘 닦여진 국도를 따라 넓은 평야지대를 한 시간여 달리니 양쪽에 큰 산맥이 버티고선 갈림길이 나온다.
일행 중 어느 분이 이 길이 탈라스전쟁으로 유명한 탈라스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탈라스 전쟁은 고구려유민의 후예인 고선지 장군이 740~751년에 걸쳐 여러 차례의 서역 원정길 중 석국(石國, 오늘의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지역)의 원정 때 치른 역사적인 전쟁이다. 몇 년 전 신장 위구르지역의 실코로드 탐방 때 고선지장군의 행적을 살핀 적이 있는데 그가 이렇게 먼 곳까지 원정길에 오른 것을 생각하며 우리겨레가 외딴곳의 세계 곳곳에 진출하여 열심히 살고 있는 오늘의 모습이 오래전의 선현들이 거쳐 갔던 전통을 이어받고 있음을 되새긴다.
오쉬 방향으로 들어서 한참을 달리니 군, 경 합동검문소가 나오고 이어서 험준한 산길로 접어든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3500여 미터의 고개정상부근에 이르니 길이가 2km 쯤 되는 긴 터널이 나온다. 좁고 긴 터널 안으로 들어서니 반대편에서 천정 벽에 닿을 듯 큰 트럭이 여러 대 지나간다. 지금은 이처럼 차량으로 넘나드는 험준한 고갯길을 낙타 등에 짐을 싣고 오가던 대상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실크로드가 오랜 문명의 동맥이요 요람인 것을 새롭게 인식한다.
여행사의 일정표에는 이 길의 제일 높은 고개 뜨루-아슈(tuur-ashu/3586m) 패스를 넘어 치치칸에 이른다고 적혀 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고개가 어느 지점인지는 지나오면서도 확실한 감이 잡히지 않는다. 뜨루-아슈 패스를 넘으니 지금까지의 험준한 산세와는 전혀 다른 넓은 초원이 나타나고 그 초원을 지나서 내리막길에 다시 비옥한 초원들이 이어진다.
루-아슈 패스를 넘어 펼쳐진 초원을 배경으로, 멀리 설산도 보인다
뜨루-아슈 패스를 넘어선 내리막길에서부터 우박이 쏟아지더니 초원으로 내려오니 비로 변한다. 넓은 초원에는 수많은 말과 양, 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데 그 중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말들을 볼 수 있다.
초원을 지나 산길을 한참 내려오니 도로변 개울가에 한적한 휴양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이 오늘의 목적지 치치칸이다. 도착시간은 오후 3시,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세차게 흐르는 개울물소리와 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굉음이 고요한 산속의 정적을 깨는 고즈넉한 분위기다. 오늘은 말복이자 입추, 삼복더위의 막바지에 시원한 개울물에 발 담그며 먼 땅에서 심신의 휴식을 취한다.
해질녘에 주변을 산책하니 짙은 숲속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이들도 많다. 지나오는 길에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현지가이드는 이곳에서 나는 꿀이 유명하다고 설명한다. 도로변에는 꿀과 산딸기를 파는 행상들이 많다. 일행 중에서 꿀 여러 병을 사기도 하였다. 한국에서 나는 꿀은 대부분 설탕과 농약으로 제 맛을 가진 것이 드물다며.
오래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배경이 연상되는 치치칸 휴앙지
오늘부터 현지가이드로 젊은 여성 두 명이 동행하였다. 그 중 하나는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나와 한국어를 할 줄 안다. 부모가 경찰관과 의사로 비교적 상류출신인 그녀는 한국에 유학 가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더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저녁시간에 그녀를 통하여 키르기스스탄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강정순, 정영신 두 분이 중국에서 산 쌀로 밥을 지었다며 저녁을 초대한다. 모처럼 먹는 쌀밥으로 말복잔치를 가름한 셈이다. 아픈 다리도 거의 나았다. 중앙아시아의 낯선 땅을 산 따라 길 따라 물 따라 달려와서 풍광이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즐기노라니 '물이 흐르고 꽃이 피누나.'라고 말한 옛 시인의 찬사가 떠오른다.
강정순 씨가 오래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배경이 연상된다고 말한 물가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빛이 총총하구나. 꿈결처럼 찾아온 멋지고 좋은 날이다.
추신, 어제 본 박물관 앞에는 큰 기마상이 있고 건너편 공공건물에는 준마들이 질주하는 대형 사진 전시물이 붙어 있다. 실크로드 문명 기행의 저자 정수일은 키리키스스탄이 명마의 고향이라고 적었다. 내용을 소개한다. '중앙아시아의 어디를 가나 말을 형상화한 구조물을 발견하게 된다. 말이 국가의 상징물인가 하면, 건물의 장식물로, 심지어 길 표시물로까지 등장한다. 그 형상은 날개 달린 천마에서 대지를 주름 잡는 준마, 앞발을 치켜들고 포효하는 용마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렇듯 말과 중앙아시아가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말을 이승과 저승을 잇는 영매체로, 성인의 탄생을 알리는 예시 동물로 그리고 수호신으로 여기고 숭상한다. 여기에 더해 초원이라는 태생적인 자연 환경 속에서 한혈마(汗血馬) 같은 전설적 명마가 생겨나 역사 무대에서 중앙아시아를 부가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말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애착은 남다르다. 키리키스스탄은 한혈마, 서극마 등 명마의 고향이다.'
키리키즈스탄의 초원에서 풀을 뜯거나 조련장에서 훈련 중인 말을 여러 번 보았다. 4년 전,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기숙사에서 머무는 동안 세 마리의 큰 말이 넓은 잔디밭에서 풀 뜯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말은 잘 때도 서서 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 한 밤중에 나가보니 어두운 풀밭에서 열심히 풀을 뜯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3000미터 고원에서 한혈마의 후예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17.아름다워라, 오쉬(Osh)로 가는 길
8월 8일, 아침에 일어나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불렀다. 조용한 아침, 내 영혼의 그윽이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오전 8시 반에 오쉬로 가는 길에 올랐다. 7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어제처럼 산 따라 길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포근하고 풍요로운 느낌이다. 큰 호수를 끼고 도는 산길이 아름답고 강폭이 넓은 나린강 줄기가 여러 고을을 적신다.
오쉬로 가는 길에 이런 소도시들을 여럿 지났다
오후1시반 큰 마을의 음식점들이 늘어선 길거리에서 점심을 들었다. 빵에 양과 쇠고기꽂이 두 개를 시켜 먹으니 배가 든든하다. 자동차에 과일을 싣고 이곳까지 찾아온 수박과 메론을 한 개씩 사기도.
점심 후 두 시간을 더 달려 오래된 도시 오쉬에 도착하였다. 오후 4시가 지났는데 햇볕이 따갑다. 맹위를 떨치던 한국의 더위는 한 풀 꺾였다는데 우리는 이곳에서부터부터 열흘간 더 폭염을 견뎌내야 할 참이다.
오후 7시 지나서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오쉬의 재래시장을 찾았다. 시장으로 가는 도중 길가의자에 아내와 함께 앉아있던 갓난아이를 안은 중년남자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흡족한 표정이다. 볼 펜 하나 쥐어주며 행복하기를 기원하였다. 넓은 장터에 옷가지, 과일, 식료품 가게 등이 일부는 문을 닫기 시작한다. 재래시장의 물가가 슈퍼마켓보다 저렴하다. 복숭아, 자두, 과일과 오이, 토마토 등을 사고 장터음식점에서 간단히 저녁을 들었다. 따끈한 차를 곁들여 차려주는 저녁식사, 옛날의 과객들이 이렇게 먹었으리라.
호텔에 돌아오니 저녁 8시 반, 오래된 건물에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아 저녁인데도 덥다. 어제 산골 휴양소에서는 약간 추웠는데. 더위를 타는 룸메이트는 베란다에 매트를 깔고 단잠에 빠져든다. 좋은 꿈, 꾸시라.
호텔에서 잡은 오쉬의 모습, 숲이 울창하고 고색이 창연하다
추신, 영국을 꺾고 4강에 오른 축구팀은 브라질에 3대0으로 석패했다는 소식이다. 기라성 같은 올림픽무대에서 4강에 오른 것도 장한 일, 일본과 동메달을 겨룬다니 좋은 성과 있기를 바란다.
18. 솔로몬의 왕좌를 찾아서
8월 9일, 새벽에 일어나 창밖을 살피니 별빛이 영롱하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오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해발800m)인데 도시의 뒤 쪽에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돌산이 자리 잡고 있다. 일찍이 솔로몬 왕이 기도 드렸다는'솔로몬왕의 왕좌, 현장에는 이슬람의 성지'로 적혀있는 유명한 곳이다. 일출도 볼 겸 새벽5시 쯤 지나 룸메이트와 함께 산으로 향하였다. 20여분 걸어서 산 밑에 이르러 정상으로 가는 길을 찾으나 눈에 띄지 않는다. 사람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있는 가파른 바위산을 힘겹게 걸어서 가까스로 정상에 올랐다.
새벽에 암벽으로 올라가며 찍은 솔로몬왕의 왕좌가 있는 정상의 모습
정상에서 살피니 계단으로 이어진 길이 양편으로 나 있는데 제대로 살피지 못하여 위험한 코스를 택한 셈이다. 정상에 오른 시간은 오전 6시, 아직 해가 뜨지 않았다. 현지인에게 '솔로몬의 왕좌'가 어디인가 물으니 정상 언저리를 가리킨다. 자세히 보니 청년 두 명이 앉아서 기도드리는 모습이 보인다. 정면으로 해가 솟아오르는 그 지점이 왕좌라 여겨 청년들이 일어선 후 그 자리에 앉아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노라니 토함산의 석굴암이 동해에서 떠오르는 햇살과 마주치는 장소인 것이 뇌리에 스친다.
뒤따라 올라온 부부일행과 사진을 찍으며 전날 시장에서 사 온 오이를 하나씩 나눠먹었다. 날이 밝아오자 많은 시민들이 계단 길을 따라 정상으로 다가온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인파들이 딛고 간 발자국에 닳았을까, 정상의 바위들이 반들반들 윤이 나고 한 곳에는 앉으면 스르르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미끄럼바위도 있다.
오르던 쪽의 반대편 계단 길을 내려오는 도중에 큰 동굴을 이용하여 세운 박물관이 있다.(입구에는 박물관과 sulaiman too를 합하여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열지 않아 유리창사이로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박물관 관람을 가름하였다.
오쉬는 대상들이 오가던 실크로드의 중요한 길목인데 세월에 밀려서일까 숲속에 쌓인 아름다운 풍경에 비하여 건물들은 낡고 퇴락하여 옛날의 번성했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지혜와 명예, 부를 한 몸에 거머쥔 솔로몬의 영광을 되찾을 날은 언제인가, 멀리서 '솔로몬의 왕좌'를 찾아온 나그네는 그날이 어서 회복되기를 빈다.
반대편으로 내려오니 호텔로 가는 길이 헷갈린다. 시의 중심에서 많이 벗어난 듯 한참을 걸어도 호텔 쪽의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워 마침 골목에서 나오는 티코차량의 운전자에게 호텔가는 길을 물었다. 건장한 체격의 젊은 운전자는 호텔카드를 보더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 후 자기 차에 타라고 말한다. 차안에는 다른 젊은이가 타고 있고 뒷좌석에 배터리가 실려 있다. 잠시 후 도착한 곳은 차량부품가게들이 몰려있는 운전자의 점포다. 그곳에 싣고 온 배터리를 내려놓고 우리를 호텔까지 데려다 준다. 우리 이름을 묻고 자기의 이름도 알려주는데 운전자의 이름은 낯설어서 까먹고 핫산이라고 부른 청년의 이름이 생각난다. 티코 외에 마티스, 다마스, 아반떼 등 한국 차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젊은 사장의 꾸밈없는 친절에 감사하여 주머니에 있는 볼펜을 기념으로 주니 기뻐한다.(키르키스스탄에는 가까운 우즈베키스탄에 대우자동차공장이 있어서인지 대우차가 많다.)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자동차부품가게 앞에서
호텔에 도착하니 오전 8시가 넘었다. 로비에 있던 가이드가 국수를 판다고 알려준다. 메뉴판에 키릴문자로 국시라고 적혀있고 값은 70솜(약1800원)이다. 맛이 담백하고 영양가도 있어 보인다. 호텔 사장이 한국인 3세이고 식당에는 고려인도 두 명이 일한다. 63세의 여사장은 경주 최 씨이고 딸 하나를 두고 있다며 따뜻하게 조국의 손님들을 대한다.
전날 저녁에 바자르를 둘러보고 아침에 솔로몬왕좌를 탐방하며 오가는 길에 오쉬의 대부분을 돌아본 셈, 낮에는 뜨거워서 밖에 나가지 않고 객실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저녁식사는 호텔식당에서 여러 사람이 함께 들고 밖에 나가 생맥주를 한 잔씩 마셨다.
바람을 쐬고 호텔에 돌아와 지갑이 든 가방을 찾으니 온 데 간 데 없다. 기억을 되살리니 호텔 식당에서 의자에 걸어놓고 그대로 나온 것 같다. 서둘러 식당에 내려가니 종업원이 알아차리고 보관한 가방을 건네준다. 감사의 뜻을 전하며 가방 속에 있는 볼펜을 두 자루 쥐어주니 침술 겸용인 것을 받아들고 신기한 표정이다.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쁨을 소중히 간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공연장을 돌아보며'구원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추신, 어제는 어머니의 93회 생신일이다. 먼 길 떠나와서 두 번이나 꿈에 어머니를 뵈었는데 오늘 아침에 동생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어머니 생신 축하파티를 뜻 깊게 치렀습니다. 먼 길 건강 조심하시고 즐거운 여행되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행정수도 프레토리아의 보우트레커 기념관 입구에서 어머니가 두 자녀를 양 옆에 끼고 있는 동상의 숙연한 모습을 보며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은 위대한 존재임을 되새긴 적이 있다. 며칠 전 비스켁의 '꺼지지 않는 불' 앞의 여성상, 오늘저녁 오쉬의 호텔 맞은편에 있는 문화공연장의 돌로 만든 여러 석상 중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상 앞에서 옷깃을 여미며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평생 자녀들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 강녕하소서.
19. 출입국 절차가 불편한 육로 여행
8월 10일, 새벽에 일어나 밤하늘을 살피니 하현 달이 중천에 뜨고 은하수의 뭇별들은 어둠 속에 숨었다. 이어서 먼동이 밝아오고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이 온 누리를 밝힌다.
오전 8시에 문을 연다는 호텔 식당에 7시쯤 식사하겠다고 예약을 했더니 고려인 주방장이 일찍 나와서 음식을 차려 준다. 말은 안 통하지만 밝은 눈인사로 호의를 나타낸다. 아무쪼록 행복한 삶을 이루시라.
오전 8시 반, 호텔을 출발하여 20여 분 거리에 있는 국경으로 향하였다. 국경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인파가 출국장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계속 몰려드는 출국자들로 초입에서부터 몸싸움이 벌어진다. 군인들이 질서를 촉구하여도 서로 밀치고 막느라 아우성이다.
가까스로 키르키스스탄의 출국 수속을 마치고 우즈베키스탄의 입국장에 들어서니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그대로 기다린다. 우즈베키스탄의 시차가 한 시간 늦어서 그쪽시간으로 9시가 지나서야 입국 수속을 시작한다. 단체 비자라서 순서를 맞추어 대기하고 있는데 입국 수속을 맡은 직원은 여권을 한꺼번에 거두어서 엿장수 맘대로 호명을 한다. 다음 창구에서는 지니고 있는 현금을 나라별로 적어내고 이를 일일이 합산하여 확인하느라 무려 두 시간이 걸린다. 후진국일수록 출입국 수속이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것을 자주 느끼는데 우즈베키스탄의 무질서한 입국 절차는 너무나 짜증스럽다.
입국 수속을 마친 후에 다음이동 장소인 페르가나(Fergana)까지 택시를 이용하게 된다. 마약 반입 단속 등의 이유로 국경 부근은 버스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세 사람이 한 조로 택시에 올랐다. 페르가나 까지는 약 150km, 총알택시처럼 빠르게 달리는데도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 키르키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의 국경 인근 도시 이동에 여섯 시간이나 소요된 셈이다.
한국인 단체 여행팀에 트레킹 차림의 유럽인들이 여러 명 끼어 있고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양국인이 출입국자의 대부분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직접 싣고 오는 화물 자동차도 여러 대가 눈에 띈다. 동서 교역의 오아시스 실크로드가 지금도 물자 교역의 중추 기능을 담당하고 그 길을 따라 문화와 문명의 탐방객들이 폭염 속에 땀 흘리며 머나먼 순례의 발걸음을 옮기는 셈이다.
페르가나는 중앙아시아의 곡창지대로 알려진 전략적 요충지다. 키르기스스탄의 목줄 깊은 곳까지 파고 든 넓은 평원을 차지하려고 숱한 전쟁을 치렀을 터, 한 때는 당나라가 이곳을 지배하기도 하였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잠시 쉬다가 바자르를 찾았다. 호텔보다 암시장의 환율이 높아서 시장의 환전상으로부터 100달러를 281,000숨(1달러에 2810숨)으로 바꿨다. 천 숨 짜리 지폐가 세 뭉치나 되어 이를 간수하기도 신경 쓰인다. 시장은 각종 과일과 식료품, 채소류 등이 여러 매장에 가득 진열되어 있고 찾는 이들도 많아서 크게 붐빈다. 어린 소녀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고 많은 이들이 '카레이(한국)'라고 묻는 등 관심을 표한다.
저녁 7시에 호텔 창밖으로 저녁 해가 넘어간다.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조석으로 관찰하는 것도 여행에서 누리는 기쁨 중의 하나다. 룸메이트가 외출하고 들어오면서 큼지막한 사슬릭(큰 빵 위에 꼬치구이를 얹었다)을 사 가지고 와서 과일과 함께 저녁을 든든하게 들었다.
저녁인데도 밖은 무척 덥다. 수영장에 나가니 일행들이 맥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다. 잠시 어울리다가 객실로 돌아오니 고요한 밤의 정적 속에 우즈베키스탄의 첫 날이 깊어간다.
20. 소박하고 친절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8월 11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수영장의 벤치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나타나 짧은 영어로 말을 건넨다.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니 반가운 표정이다. 현지인들이 텔레비전에 방영된 '주몽'과 '장보고'를 즐겨 본다고 들었기에 이를 확인하니 몸으로 액션을 취하며 매우 좋다고 말한다.
5시에 산책길에 나섰다. 새벽 이른 시간에 청소하는 이들이 도로를 빗자루로 열심히 쓸고 있다. 한참을 걸어가니 국립은행과 대학이 나타나고 어린이 공원도 보인다. 큰 공원에는 구소련에서 독립한 후 초대 대통령이 되어 지금까지 집권 중인 카리모프 대통령의 동상이 커다랗게 세워져 있다. 중앙아시아의 영웅인 티무르의 공적을 크게 부각시키는 그의 속셈은 제2의 티무르가 되고 싶은 의도가 내재해 있다는 지적이 있는데 우즈베키스탄인들의 신망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바자르에 이르니 아침 시간인데도 전을 펴는 상인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어디서나 시장은 살아 움직이는 삶의 현장이다. 빵 등 식료품을 건사하는 여인들의 손길이 바쁘고 고깃간에서는 육중한 고깃덩어리 등을 다루는 남자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바자르가 시발점인 버스 노선이 여럿이다. 숙소로 가는 6번 버스에 탑승하니 호텔 앞에서 멈춘다. 요금은 500숨(약 200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버스에서 내려 동행한 이승희 씨와 함께 호텔 주변 주택가 쪽으로 걸어가니 길가의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많이 달려 있다. 손에 닿는 곳의 열매를 따려하니 경찰차가 멎으며 경관이 손짓으로 따 먹으라고 한다. 그가 바로 옆에 있는 집에 들어갔다 나오며 큰 수박덩이를 안겨 준다.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함께 포즈를 취하였다.
호텔의 아침 식사가 성찬이다. 식당에서 수박을 자르려 하였는데 수박을 포함한 과일류가 풍성하고 빵과 소시지, 햄, 달걀, 요구르트, 흰 죽과 음료 등이 다채롭고 깔끔하다.
한국과 일본의 올림픽 축구 3, 4위전에서 한국이 2:0으로 승리하여 축제 분위기다. 현지에서 어제 밤에 생중계하고 오전에 다시 재방송한다. 텔레비전에서는 10일 현재의 메달 순위도 전한다. 한국이 금메달 12개로 5위에 랭크되었다는 내용이다. 우즈베키스탄인들이 한국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겠다. 덩달아 어깨가 펴지는구나.
오전 8시 반에 호텔을 나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로 향하였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교통수단은 택시, 트렁크에 큰 가방을 다 실을 수 없어 한 대에 세 사람이 탑승하여 여섯 시간 걸리는 장거리 이동이다. 전날의 택시 기사가 젊고 운전 태도가 난폭하여 불편하였는데 나이가 지긋한 운전기사의 매너가 좋아서 유쾌한 장거리 드라이브가 되었다.
도중에 여권을 확인하는 검문소에서 30분 이상 지체하고 가스를 주입하는데 30분 이상 소요되는 외에는 줄곧 달려오는 주변 경관이 볼 만하다. 프레그나를 출발하여 두 시간 동안은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이다. 전날 두 시간의 평원을 달린 것과 합하면 연장 거리 300여㎞가 평원으로 이어진 셈이다. 옥수수, 목화, 감자 등의 밭작물과 포도, 석류, 수박 등 열대 과일을 재배하는 곳들이 눈에 많이 띈다.
큰 산과 계곡이 한 시간 넘게 이어지다가 타슈켄트에 가까워지면서 다시 평원이 펼쳐진다. 타슈켄트의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3시, 10층 규모의 꽤 큰 호텔이 프레그나의 시설보다 화려하고 고급이다. 며칠간 열악한 숙박시설로 약간 불편하였는데 막판에 좋은 시설을 접하니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는 말처럼 유쾌한 기분이다. 여장을 푼 후, 땀도 식히고 근육도 풀어줄 겸 수영장에서 한 시간여 즐기고 나오니 한결 쾌적하다.
10여 일만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15년 전에 '회상의 열차'(1937년에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의 처절한 삶을 회상하여 1997년 시민단체인 '우리 민족 돕기 운동'주관으로 블라디보스톡에서 타슈켄트까지 10일 동안 탑승한 행사의 명칭)를 타고 타슈켄트에 온 것을 떠올리며 안부를 전한 것이다. 그 때 아내와 함께 만난 고려인 할머니가 품에서 꺼내 목이 메어 읽어 준 망향가의 가사가 생각난다.
1. 고국산천을 떠나서 수천 리 타향에 산 설고 물 선 타향에 객을 정하니 섭섭한 마음은 고향뿐이오 다만 생각나노니 정드신 친구라
2. 고산심해에 육지가 천리를 격허고 은연중에 기벽으로 답을 처스니 고국 본향 생각은 더욱 간절코 돌아갈 기회는 만년하도다. (3, 4절도 있다)
택시를 함께 타고 온 정 선생은 타슈켄트가 왠지 고향처럼 포근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도시, 타슈켄트에서 지금도 고향을 그리는 동포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고향의 따뜻한 정을 듬뿍 안겨주고 싶은 마음이다.
타슈켄트의 나무와 꽃들이 울창하고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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