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 너마저!"(Et tu, Brute!)
이 말은 죽음의 순간에서 관용과 믿음을 베풀었던 사람의 배신을 탄식하는
극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고 배신에 대한 관용구의 하나로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다.
모든 음모는 근자소행(近者所行)이라 하지 않던가 !
카이사르(씨저)가 죽은 장소는 그의 오랜 숙적이자 결국 카이사르에 의해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되었던 폼페이우스가 만든 집회소(curia pompeia)라는 점,
더군다나 그의 조상(彫像) 아래였다는 점 역시 극적인 요소를 더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Julius Caesar, BC 100.7.12~BC 44.3.15]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이자 장군.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함께 3두동맹을 맺고 콘술이 되어 민중의 큰 인기를 얻었으며
지방장관으로서는 갈리아전쟁을 수행하였다.
1인 지배자가 되어 각종 사회정책, 역서의 개정 등의 개혁사업을 추진하였으나
브루투스 등에게 암살되었다.
마르쿠스 브루투스 [Marcus Junius Brutus, BC 85~BC 42]
로마 공화정 말기의 정치가.
공화정 말기 내란 때 폼페이우스에게 가담하여 카이사르에게 대항했으나
팔사로스의 회전(會戰) 후 카이사르는 그를 사면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재간을 높이 평가하여 B. C 46년 갈리아 키사르피나의 총독(總督),
BC 44년에는 플라에토르(法務官)의 요직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지난 날 로마의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창건한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Brutus, Lucius Junius] )의 자손이라고 자처한 그는
왕이 되고자 하는 카이사르의 야심을 알아채고,
그 해 3월 15일 동지 카시우스 등과 함께 카이사르를 암살하였다.
그 때 카이사르는 “브루투스여! 너마저?”라고 외치며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의 형세는 그가 로마에 머무를 형편이 못되어 이탈리아를 떠나 그리스로 갔다.
마케도니아 총독 호르텐시우스의 지지를 얻어서 군대를 징모(徵募)하고,
원로원(元老院)에 의해 발칸반도에서의 군대 명령권을 부여받았다.
이윽고 동방 제주(諸州)에서의 상급 명령권까지도 카시우스와 함께 받았으나,
BC 42년 안토니우스 및 옥타비아누스의 군대와 필리피에서 싸우다가 패전하여 자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