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급 리조트 '반얀트리' 호권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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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호텔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반얀트리의 호권핑 회장. 아시아 토종 브랜드인 반얀트리는 차별화된 감성 서비스와 고급화 전략을 통해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 조선DB
호권핑 회장은 싱가포르 명문가의 후손으로, 올해 포브스의 싱가포르 부호 랭킹 19위(자산 2억8000만달러)에 올랐다. 친환경과 휴양을 융합한 반얀트리의 경영 전략은 프랑스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에서 경영 혁신 사례로 채택되기도 했다. 현재 태국, 필리핀, 중국, 바레인, 멕시코 등 세계 각지에 23개 리조트 및 호텔과 61개의 스파, 73개 갤러리, 2개의 골프 코스를 운영한다. 한국에서는 서울 남산에 있는 타워호텔을 반얀트리 브랜드로 개조해 내년에 오픈할 예정이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호 회장에게서, 럭셔리 브랜드 창안자가 가짐직한 호사스러움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학창시절 사회주의자였고, 한때 신문기자 생활도 했다. 1981년 부친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쓰러지자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에 가업을 이었다.
그는 1990년대 동남아시아에서 저임금에 바탕을 둔 제조업체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그는 이때 두 가지를 절감했다고 했다. "아시아 기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살아남으려면 자체 기술이나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하나이고, 세계무대에서 5등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 또 하나입니다."
그는 사업에 입문한 초기에 석유 관련 회사를 차렸다가 부도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당시 깨달았던 문제의식을, 우연한 기회에 호텔 사업에 접목하면서 성공 가도에 들어섰다. 그는 1994년 가족 별장 후보지를 찾아다니다 태국 푸껫에서 주석(朱錫) 폐광 지역을 발견했다. 2억달러를 투자해 그 땅을 사들이고 폐광 주변을 깨끗이 정리한 뒤 환경과 휴식의 개념을 융합한 리조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반얀트리라고 이름지었다. 반얀트리는 아시아에 자생하는 등나무과 식물의 이름이다. 마음의 평화와 내적 조화를 중시하는 아시아적 가치와 이미지를 잘 드러내는 브랜드 네이밍이다.
최초의 반얀트리 리조트는 한 해 3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몰디브, 빈탄 등 동남아시아 각지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여행업계의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반얀트리는 고급 호텔 하면 흔히 떠오르는 화려한 샹들리에나 빈틈없는 룸서비스, 고급 식당 같은 외양적 요소보다, 함께 온 연인이나 가족들이 서로 친밀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감성(感性) 서비스에 더 집중하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가령 리조트 객실마다 독립 풀을 제공해 이용자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갖도록 했다. 아로마를 소재로 한 고급 마사지와 스파 시스템도 도입하는 등 최고급 휴식 서비스를 다양하게 개발했다.
반얀트리는 포시즌 등 경쟁업체에 비해 고가(高價) 전략을 택했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선뜻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그러나 호 회장 자신은 스스로를 "구치,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표현하면서, 인터뷰 내내 '열망(aspiration)'과 '친밀감(intimacy)'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패션 분야의 명품 브랜드처럼, 배타적 소유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누구나 한 번쯤 이용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주고, 또 한 번 이용한 사람들이 다시 찾게 만드는 '친밀감'에 주안점을 두지요."
그는 이런 브랜드 전략을, 애플의 아이폰에 비유했다. 아이폰은 다른 휴대폰보다는 비싸지만,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갖기를 열망하고, 또 아이폰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친밀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투숙객들이 느낀 친밀감의 기억을, 주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파하도록 만드는 '입소문 마케팅'에 힘을 쏟는 것도 이런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와 태국의 정국 불안, 신종인플루엔자A의 발생으로 이어지는 계속된 악재는 반얀트리에도 충격을 안겨줬다. 2007년 8190만 싱가포르달러(약 680억원)이던 순이익이 2008년엔 700만 싱가포르달러로 줄어들었다. 작년 3분기 이후엔 한번(올 1분기)을 제외하고는 계속 적자 행진이다. 다만 올 3분기 적자가 97만 싱가포르달러로 2분기의 424만 싱가포르달러에 비해 줄어든 게 그나마 위안이다.
하지만 호 회장은 "여행업계에서 정치 불안이나 경제 침체 등의 위기는 변수(變數)가 아니라 늘 닥치는 상수(常數)"라고 말했다. "따라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이야말로 진짜 경쟁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