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와 배후 시장은 기업의 생태 조건이다. 국내외 기업들이 서울 시계로부터 불과 60㎞ 떨어진 춘천을 외면하고 보다 먼 오산과 천안까지도 공장 신설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사람과 시설이 밀집한 곳이라야 산업 연관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경기도가 그런 곳이다. 인구의 절반이 이곳에 살고 인재풀이 있고 기반 시설이 세계적이다. 정보와 아이디어가 풍부하게 흐르는 곳을 국내외 기업이 마다할 리가 없다. 더욱이 경기도는 중국 진출의 교두보다. 세계가 긴장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의 한쪽 날개에 고리를 걸어 같이 비상할 수 있는 동반 전략의 전초 기지다. 수도권 세계화 전략(일명 '희망 프로젝트')을 주창한 김석철 교수의 제안에 따라 더 욕심을 낸다면 유럽연합.북미경제공동체와 겨룰 수 있는 경제공동체 '황해 연합'을 창출하고 주도할 수 있는 거대 산업 클러스터가 이미 이곳에 구축되어 있다. 따라서 경기도를 국토 균형발전과 분산 정책이라는 국내용 시각에 묶어둘 것은 아니다. 중국 경제의 엔진인 베이징-톈진, 다롄, 칭다오, 상하이 산업클러스터가 보유한 잠재력을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라는, 그야말로 동북아적 관점으로 발상을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기왕 내친김에 신행정도시에 대해 한마디 하자. 세계에서 신행정도시를 따로 두는 국가, 예를 들면 호주.캐나다.브라질.미국 등의 공통점은 세 가지다. 첫째, 국토가 너무 넓고 황무지가 많다. 그래서 인구가 특정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둘째, 다인종 사회여서 자신들이 구축한 대도시를 정치행정의 중심으로 고집한다. 셋째, 국가 건설과 통합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구축해야 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한국에 적용되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다인종 사회도 아니고, 근대국가가 건설되기 이전부터 국가는 너무나 오랫동안 존속해 왔다. 국토가 넓은 나라의 시선으로 본다면 한반도는 그저 좁은 지역에 4500만 인구가 오밀조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냥 믿어온 '인구 과밀'이란 고정관념이 바뀌어야 한다. 강원도만 제외하고 한반도 전역이 인구 과밀 지역인 것이다. 여기서 '분산'을 얘기해 봐야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 신행정도시가 수도권에서 50만 명 정도를 감량해준들 과밀 해소 효과가 어느 정도일까. 공공기관은 강제이주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민간기업에 교통망과 산업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으로 퇴거명령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행정도시 건설에 어림잡아 10조원이 든다고 가정하고 1조원짜리 공장 10개를 지어 각 지역에 분산 배치하면 성장과 분산이 동시에 이루어질지 모른다.
내치(內治)
명분에 묶인 '균형과 분산'을 중국-한반도-일본을 포괄하는 세계적 경제연합체 구축이라는 '희망 프로젝트'로 재편하면 문제 해결은 한결 쉬워진다.
한국의 기술력과 중국 시장을 노리는 외국 기업을 유치해 수도권을 황해연합의 매력 포인트로 만드는 일이다. 여기에는 물론 국내 대기업의 공장
신.증설도 선별적으로 허용해야 하고, 대공장의 지방 분산을 강제하기 전에 지방의 산업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야 순리다. 지방보다 중국행을 선택하는
대기업이 속출하면 '동북아 허브'는 말잔치로 끝난다. 더욱이 행정도시법, 공공기관 이주 계획과의 일괄타결에 막혀 외국기업 신.증설 시행령이
5개월간 공백 상태에 있었다는 게 속사정이고 보면, 13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외자를 유치하면서 피곤을 달래 온 자치단체의 경제적 이상과
중앙정부의 정치적 비전 사이에는 국민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간극이 있다. 외국기업 신.증설이 허용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 국내기업에도
해당될는지는 아직 묘연하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내기업에도 길을 터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3분의 2가 넘었다.
송호근
서울대.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