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바세계 남섬부주 동양 대한민국…” 불교식으로 장례를 치러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 봤을 상용시식의 한 구절이다. ‘사바세계’, ‘동양’, ‘대한민국’ 같은 익숙한 단어들이 나열되는 가운데 조금 낯선 말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남섬부주(南贍部洲)’이다.
-------- 설일체유부의 논서인 『아비달마구사론』의 「분별세품」에는 기세간(器世間), 곧 세계의 형상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이에 따르면 세계의 가운데에는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바깥에는 일곱 개의 산이 겹겹이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다. 이 일곱 겹의 산 바깥에는 다시 동서남북으로 네 개의 대륙이 있다. 동쪽의 비제하주(毘提訶洲, Videha), 서쪽의 구타니주(瞿陀尼洲, Godaniya), 남쪽의 섬부주(贍部洲, Jambu), 북쪽의 구로주(俱盧洲, Kuru)가 그것이다.
-------- 남섬부주는 이 가운데 남쪽에 있는 대륙인 섬부주를 말하는 것이다. 남섬부주에서 지하로 2만 유순(由旬: 고대 인도의 거리 단위. 1유순이 약 15km라는 설이 있음)을 내려가면 깊이와 넓이가 역시 2만 유순인 무간지옥이 있다. 이 무간지옥 위로는 일곱 개의 지옥이 겹겹이 쌓여 있다. 남섬부주의 지하에는 지옥뿐만 아니라 염마왕(琰魔王, yamaraja), 곧 염라대왕도 있다. 염마왕의 나라는 지하로 5백 유순을 내려간 곳에 있는데, 온갖 아귀들은 이곳을 본처로 한다.
-------- 여기까지만 본다면 남섬부주는 사실과는 동떨어진 상상의 공간에 불과한 것만 같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남섬부주는 한 변의 길이가 2천 유순인 역정삼각형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이 남섬부주의 북쪽에는 세 겹의 흑산(黑山)이 있고, 그 흑산의 북쪽에는 대설산(大雪山)이 있는데, 여기서 ‘대설’이라는 말은 ‘mahahimalaya’를 번역한 것이다. 모양은 역정삼각형에 가깝고 북쪽에는 눈에 덮인 ‘마하히말라야’ 산이 있는 땅이 어디일까? 바로 인도이다. 인도인들은 그들이 살아가던 땅이 곧 남섬부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남섬부주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의미도 갖게 되었다. 상용시식에서 ‘사바세계’, ‘동양’, ‘대한민국’이 나열될 때 남섬부주도 그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