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통찰력이다.
사업가에게 필요한 통찰력이고,
미래를 꿈꾸는 자의 추진력이다.
태풍 같은 환경도 속사람이 강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강해지는가?
먼저 말씀으로 뿌리를 내린다.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말씀으로 해석한다.
구원의 근거도 하나님 말씀이고,
인생의 나침판도 하나님 말씀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한다.
근심을 묵상하듯,
말씀을 묵상하라.
두 번째 적의 공격을 대적하라.
영적 존재 마귀는 사람을 이용한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이면에 내 영혼을 파괴하는 마귀의 유혹을 간파하라.
육적인 생각과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한다.
상황을 주시하고 절망하게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험은 테스트이지만,
마귀는 주는 시험은 유혹이다. 즉 하나님은 이길 힘을 주고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지만,
마귀는 자포자기, 피하게 한다.
마귀는 늘 이런저런 생각을 던지는데 그중에 믿음 없는 생각이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생각,
자기 합리화, 자기 신념,
사명보다 환경에 지배받는 생각이다.
나로부터, 혹은 주변으로부터 오는 생각인지 분별하고,
먼저 내게 문제가 없는지 살피라.
내 속에 분노, 상처, 자아 치유를 위해 기도하고,
상대방과 싸우지 말고 마귀를 대적하는 기도를 하라!
마귀의 목표는 내 영혼을 파괴하는 것이니, 절대로 마귀 공격에 속지 말라.
셋째, 고난은 속사람을 강하게 한다.
나이 40세에 모세는 광야로 나갔다. 광야 40년 동안 부서지고 깨졌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의식이 깨져야 하나님이 쓰시기 편한 도구가 된다.
구원받은 백성의 삶의 목표는 편한 길이 아니다.
하나님이 쓰시기 편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구원의 감격이 있는 자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난받는 것을 감사하다.
증인의 다름 이름은 순교자다. 선교사의 동명은 순교자이다.
초대 교회 성도들,
구한말 조선 땅에 선교사들,
예수를 위해 핍박 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던 자들에게 고달픈 삶, 어려운 환경, 가난도 슬픔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고 대천덕 신부님이 생각난다.
1968년 강원도 태백에서 재소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시작했다. 지금은 그의 자녀가 예수원에서 또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평범하고 평안한 삶 보단,
없는 중에 기도하고,
고통 중에 찬양하는
절망 중에 전도하는 부모의 삶을 존경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이 얼마나 풍성한지,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보기를 원했다.
내 속사람은 예수로 충만한가?
예수 없이 죽어가는 영혼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가?
지금 내 눈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보는 것이 결정하니, 오직 예수만 바라보자!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