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이백(李白)이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그는 타고날 때부터 아주 총명하고 머리가 좋아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보기만 하면 늘 따져 묻길 좋아했다.
이백은 매일 학당(學堂)에 가서 공부를 했는데
타고난 총명함 때문에 글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그를 매우 좋아했을 뿐만 아니라
늘 칭찬해주었다.
이렇게 되자 이백은 점점 교만해졌고 한 동안 수업을 빼먹고 놀러다녔다.
어느 날 이백이 수업을 빼먹고 밖으로 놀러나갔는데
갑자기 앞에 한 할머니가 큰 돌 옆에 쭈그리고 앉아 철봉을 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든 이백은 “할머니 지금 뭐 하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얼굴에 자상한 미소를 띠고 부드러운 말로
“지금 바늘을 만들고 있는 거란다.”라고 알려주었다.
이백은 놀라서 “이렇게 두꺼운 철봉으로 어떻게 그런 가느다란 바늘을 만들어요?”
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세상에 어려운 일이란 없단다.
단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지.
온 마음을 다 기울여 열심히 한다면 철봉은 반드시 바늘이 될 수 있단다.”라고
말하면서 이백에게 꾸준하게 나태하지 않고 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도리를 가르쳐주었다.
이백은 이 말을 듣고 나서 크게 깨달았다.
이날 이후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학습에 힘써 마침내 유명한 시인이 되었다.
흔히들 이태백으로 부르는 이 사람이 바로 시선(詩仙)으로 불리는
당대(唐代) 최고의 대시인 이백이다.
가르칠 교(敎)를 풀어보면 ‘본받을 효(爻)+아들 자(子)+칠 복(攴=攵)’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본받을 효(爻)는 셈을 가르치는 ‘산가지’
또는 학생을 다스리는 ‘회초리’로 볼 수 있다.
즉 자식(子)을 가르친다는 것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회초리로 때려서
고쳐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귀한 자식일수록 ‘사랑의 매’가 더욱 필요한 법이며 매를 아끼면 아이가
방종하거나 교만해지게 마련이다.
한편 효(爻)를 본받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교(敎)’란 ‘아이들에게 본떠서 닮도록 한다’는 의미가 된다.
즉, 필요할 경우 매를 들고 때려서라도 어른(스승)을 따라 배우게 한다는 의미가 된다.
한나라 때 나온 가장 오래된 한자 풀이서적인『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가르침(敎)이란 사람더러 모방하게 하는 것이며
배움(學)이란 모방하여 닮는 것이라고 했다.
이백은 타고난 천재였지만 꾸준히 공부하고
학습했기에 비로소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었다.
공부를 가르칠 때에도 일관성 있게 꾸준히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아이들은 순진하고 단순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잘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가르침에 일관성이 없다면
혼란만 부추길 뿐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여기서 특히 강조할 내용은 전통문화에서
교육의 중점은 지금처럼 영어나 수학을 중시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심성(心性)을 도야하는 것과 기본적인 인륜도덕을 강조했다.
수학문제를 잘 풀거나 영어 단어를 잘 암기하는 것보다는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인륜과 도덕을 알고 몸소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 체득하는 공부를 중시했다.
이런 교육의 배경에는 사람이란 후천적인 이기심과 관념에 의해 오염되면
선량한 본성이 변질되어 타락하기 때문에 반드시 잘 가르쳐 본성을 기르고
심성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깔려 있다.
이 과정에서 훌륭한 스승은 단순히 문자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인격적인 가르침을 통해 아이들의 모범이 되는 인격자여야 한다.
옛 서당 교육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아니며
아이의 실력과 수준에 따라 그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찾아 가르쳐주는
일종의 전인적인 교육체계이다.
학동들은 스승의 집을 찾아가 인사를 올리고
각자 배울 부분을 배우는데 한마디로 진도가 전부 다른 셈이다.
또한 단순한 지식의 전수에 그치지 않고
스승의 일상적인 언행을 통해 행동의 귀감으로 삼고 따라 배우게 된다.
아이들이 처음 공부에 입문할 때 가장 중시한 교육은 바로 스승을 섬기고
어른을 공경하는 도리로서 문을 드나들거나
혹은 자리에 앉거나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의 예의범절은 물론
손님을 맞이하고 청소하는 등의 기본적인 생활방식을 가르쳤다.
선인들은 이처럼 학문이란 가까운 곳에서
배움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킨 후에 보다 멀고 어려운 것을 가르쳤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몽학(蒙學) 교재인 율곡의 『격몽요결(擊蒙要訣)』
서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요즘 사람들은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은 모르고
망령되어 높고 멀어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까닭에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는 자포자기(自暴自棄)한다.
이 어찌 불쌍한 일이 아니랴.
내가 해산(海山)의 남쪽(해주의 석담을 가리킴)에 거처를 정하자
한두 학도가 추종하여 학문을 청해 왔다.
내가 스승이 될 수 없는 것이 부끄러웠으나
또한 초학(初學)이 향방을 모를 뿐 아니라,
굳은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면 피차에 도움이 없고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사게 될까 염려되었다.
이에 간략하게 책을 하나 써서 대략 마음을 세우는 것,
몸가짐을 단속하는 일,
부모를 봉양하는 법,
남을 접대하는 방법을 서술하고 이를 「격몽요결」이라 이름 하여
학도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아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 즉시 공부에 착수하게 하고,
나 역시 오랫동안 구습에 얽매어 괴로워하던 차에 이것으로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코자 하노라.”
바로 이런 까닭에 전통문화에서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거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고 하여
스승을 몹시 공경하고 존중해온 것이다.
- 취암의 수류화개실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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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수류화개실1 원문보기▶ 글쓴이 : 취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