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밖의 한국 사찰
뉴욕 조계사, 1991년 6월호.
뉴욕 근교에는 현재 원각사를 비롯하여 전등사 등 8개의 사찰이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400여개에 달하는 한인교회에 비하면 아직도 몇개의 사찰이 더 세워질 수 있다. 뉴욕 최초의 사찰인 원각사가 1974년 세워져 초대 주지로 구윤각 스님과 이어서 행원스님이 1976년까지 있다가 '부처님 오신날' 행사가 끝나는 날 인사말을 통해 법안스님에게 주지직을 인계한다고 발표하였다.
지금도 숭산스님은 아주 바쁘게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있지만 당시 숭산스님은 프로비덴스 홍법원을 세워 미주에서의 활동 본거지로 만든 다음 나성의 한국 최초의 사찰인 달마사를 세우고 또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숭산스님이 뉴욕과 맺은 인연도 있고 하여 뉴욕 원각사에서 큰 역할을 하면서 지낸 이선조보살(최명심행),의사인 강자구씨 등과 함께 숭산스님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갈 조계사를 1977년에 맨하탄 31가에 개원했다. 뉴욕에서 2번째 사찰이 세워진 셈이다.
이때 같이 참여한 강자구씨는 현재 조계사 이사장으로 있으며 매월 2번씩 정기법회에서 법문을 하고 있다. "강 자구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불교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고 이선조씨는 말했다.이 세사람 외에 원각사 초대 신도회장을 지낸 이순배씨도 오늘까지 조계사와 쭉 인연을 맺고 있다.
조계사는 개원하면서 10여명의 의사들이 참여하여 활기를 띠면서 많은 신도들이 모여들였다. 개원 후 한동안 조계사에 계셨던 숭산스님이 오늘은 나성, 내일은 시카고, 다음 날은 시애틀로 다시 정처없이 다니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조계사에만 주석하면서 법회를 이끌 수 없었다. 숭산스님이 절에 없을 때는 신도들이 돌아가면서 신행담도 하면서 법회를 하곤했다. 그러나 예불을 하고 불교 맛을 내기 위해서는 절에 상주하는 스님이 계셔야 하기 때문에 신도들은 조계사에 주석할 수 있는 스님을 물색하였다. 이렇게하여 현재 하와이 불은사 주지로 계시는 자은스님, 정법스님, 동성스님, 현뉴욕불국사 주지 성해스님, 도철스님 등이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년간 조계사에 있다가 떠나갔다.
1980년도부터 조계사에 다니고 회장도 지낸 이규원거사는 스님들이 자주 바뀌니까 그 피해는 아주 컸다고 말하며 " 동성 스님 당시에는 절이 잘 되었으나 동성스님이 절을 떠나고 절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들이 미국생활에 적응이 잘 안 돼 오래 못계셨던 것 같습니다. 절이 어려울 때 어떻게 해서든지 절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절을 나오려고 결심했습니다”라고 지난시절을 말했다. 이렇게 자주 주지스님들이 바뀌다보니까 주지스님들이 바뀔 때마다 절에 큰 영향을 주었다. 주지스님에 따라 신도들이 많이 모이기도 했으나 또 어떤 때는 절 기본 비용도 나오지 않았 다. 그래서 조계사는 뉴욕 일원의 불자들에게 무언가 불안감을 주었다. 그나마 도철스님을 마지막으로 마땅한 주지스님이 없어 고민하던 중 당시 전등사에 계시던 도명스님을 이선조씨 등이 모셔와 도명스님이 1985년 9월 주지로 취임하면서 안정적인 기반의 틀을 마련하였다.
도명스님이 조계사 주지로 취임 할 당시에는 신도들이 아주 적었으며 위치는 맨하탄 17가 5에비뉴 4층으로 원각사와 아주 가까운 곳이었다. 도명스님은 동국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서울 보문사에서 보문동 스님들에게 강의를 하다가 미국에 왔다. 여기에서 강의를 많이 한 경험이 있어 도명스님의 강의는 짧고도 재미있으며, 그러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확실히 전달한다.
이때까지 조계사는 미국인들과 같이 생활하였기 때문에 미국인들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여러 가지 갈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주차문제 등을 고려하여 현재 조계사 건물인 우드사이드로 88년 1월에 2층 건물을 구입하여 이사를 했다. 재정은 맨하탄의 건물을 팔아서 미국인들과 똑같이 나눈 16만 5천달러로 다운페이를 했다. 1층은1천 6백 50스퀘어피트(실평수 46평), 2층은 약1천 스퀘어피트(실평수 28평). 원래 장의사였던 이 건물은 이사 올 당시만 해도 너무 낡아서 4만 5천 달러를 들여 내부를 새롭게 장식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1층 법당에서 법회 뿐 아니라 결혼식등 잔치와 문화행사를 훌륭하게 할 수 있다.
조계사는 우드사이드로 이사 온 직후 에는 건물도 낡았고 위치도 알려지지 않아서 절 운영이 아주 힘들었다. 그래서 주지 도명스님은 만나는 사람마다 조계사를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다녔다. 한때는모게지가 부담스러워 도명스님이 홈 워크를 할려고 생각을 할 정도였다. 이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원만성보살 등이 적극적으로 스님을 도와 그 위기를 넘기면서 신도들이 늘어났다. 여러 스님들이 자주 주지로 있다가 가곤 해서 불안하던 조계사가 도명스님이 주지로 취임하고 절을 맨하탄에 서 우드사이드로 옮기면서 비로소 본 궤도에 올랐다. 그리하여 현재는 원각사, 전등사와 함께 조계사는 뉴욕 굴지의 절로 자리를 잡았다.
현재 신도는 약 100세대이고 법회에는 평균 40~50 명이 모인다. 기관으로는 신도회와 이사회가 있다.강자구, 이규원, 이선조, 나덕자, 이기용, 일우행,신승자, 박종성, 신승자, 이순배, 이다옥씨등이 조계사 발전을위해 그동안 많이 노력했다.
조계사는 현재 조계사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는 젊은 이기용씨 등이 있지만 신도층이 노보살님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미주의 다른 사찰과 똑같다.
현재는 조실스님으로 계시는 숭산스님이 1년에 3~ 4차례 특별 법문을 하고 있을 뿐 별다른 행사를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신도들을 모으고 절 운영에 탄력을 주기 위하여 정기법회 이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뉴욕불교 나아가 미주불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기를 바란다.
1991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