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권 늘
피카소의 화실 외
안료와 석유 냄새가 섞여 있었다
두 눈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서 있는 그로테스크한 여인
*
속도위반을 알리는 딱지 두어 장이
책상 밑으로 떨어지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말일까지 안 내면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사실과 함께
성깔 있다고 소문 난 유튜버가 욕설과 함께
나라를 망친다는 말이 끝나기 전. 소리를 지웠다
오래된 잠시에 갇혀 있는 일
어제의 통닭이 소주와 함께 밤을 지키고
감금의 고통에서 바둥거리다 사라지는 문장들
깜빡이는 램프가 용지 걸림을 알리는 프린터에
다시 인쇄 버튼을 누른 방 안의 공기는 회색으로 물들었다
베게 위에 저지른 가루 똥을 근거로 수소문 하다
바퀴벌레에 인질이 되어버린 밤
허리 쯤에서 찍힌 마침표가 멋쩍게 웃는다
*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괴이한 물건들
물감과 붓 사이를 오가는 서랍 속의 흰쥐와 방치한 캔버스
펼친 얼굴에 누운 코를 가진 흉상의 괴이한 미소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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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후 5시경입니다
채색은 원치 않습니다
회차를 위한 여분의 철로가 보이는 역
등을 앞세운 침묵은 줄을 잇고
1. 2. 3. 4.
출구는 모두 산업단지입니다
지식산업센터라는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요!
3분의 간극은 출근에 묻히고
잃어버린 색은 일상을 물들입니다
동지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낯익은 얼굴이 졸고 있는 어제 그 자리
입안에 머물다 사라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내일은 할 수 있을까요
우연히 만난 남국의 친구에게 던진 설레발 덕에 비산하는 오늘의 난제들
적응은 놀랍지만 관절은 경직되어 있습니다
매정하게 떠나버린 녀석은 제가 아닌 듯 시침을 뚝 떼고
건너편에서 손님을 기다립니다
“미안하지만 이 시간. 도심으로 가는 손님은 없습니다”
출발지가 다른 꿈들을 한곳으로 모으는 마법의 역사를 지키던
편의점은 아침을 넘어서며 문을 닫습니다
채색은 필요치 않습니다
그런데
편의점은 언제 다시 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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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늘|2015년 《문학광장》으로 등단했다. 인천예총예술상. 환경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별 다방의 추억』. 『기억에 대한 오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