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키치의 어원과 개념
1) 키치의 어원
키치라는 용어는 1860년대에 이미 독일 뮌헨의 미술가와 화상들 사이에서 통용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용어가 하나의 미적 양식으로 국제적으로 널리 사용된 것은 독일의 극작가이자 시인이었던 Wedekind가 키치를 "폭넓은 역사의 스타일이며, 근대적 시대정신의 구체적인 구현"으로 받아들이게 된 1917년 이후부터이며, 이 때부터 이 용어는 "현대 언어에서 예술적인 나쁜 취미를 지칭하는 수많은 용어들 중 진정하게 국제적 지위를 획득한 유일한 용어"로서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키치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번째로는 'Kitschen'이라는 독일어 동사에서 나왔다는 설인데, 여기에 관해서도 두 가지 주장이 있어서, 이 동사의 의미 중 '거리의 쓰레기를 끌어 모으다' 또는 '낡은 것으로 새가구를 만든다'를 의미하는 독일남부의 방언인 'kitschen'에서 유래하였다는 Moles의 설이 있고, 같은 동사에서 유래하였으나 여러 의미 중 '진흙을 가지고 손으로 문지르면서 논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Solomon의 주장으로 나뉜다. 두번째로는 'verkitschen', 즉 싸구려 물건을 헐값으로 마구 팔아 치우는 일종의 '덤핑판매'나 '불량품을 속여서 팔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세번째는 영어의 'sketch'에서 유래했다는 설로서 뮌헨에 온 영국과 미국의 미술품 구매상들은 살 만한 그림이 없을 경우 값싼 스케치화를 사들이길 좋아했는데 이를 뮌헨의 예술가들이 잘못 발음하여 스케치(sketch)에서 키치(kitsch)라는 독일어가 나왔다는 Solomon의 주장이 있고, 또 다른 견해로는 '건방지고 우쭐대는 것'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동사인 'keetcheetsya'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하는 Highet의 주장이 있다.
이상의 어원을 살펴보면 첫째, 키치의 기원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지만 모두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는다는 점, 둘째,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쓰레기나 폐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가볍고 저속한 취향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점, 세번째로는 비교적 값이 싸서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2) 키치의 개념
이상에서와 같이 출발에서부터 부정적인 어원을 갖는 키치 양식은 키치적 표현이 범람하고 있는 현대에 이르면 그 개념이 대중문화의 특성과 관련되면서 보다 풍부해지고 다양해진다.
사전에서는 키치를 "고급문화의 미적 기준을 부적절하게 모방한 대량 생산된 예술이나 사물을 의미하는 용어" 혹은 보통 "통속적이고 저속하고 값싸고 나쁜 취향으로서 쉬크와 대립되는 개념의 사물이나 이미지의 총칭"으로 정의하고 있으나 키치 양식에 관심을 보이는 사회학자들이나 미학자들의 키치 개념에 대한 설명은 다양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관점은 대체로 키치를 "전형적인 근대적 산물로서 문화의 산업화와 상업주의 그리고 증가하는 여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는 역사사회학적 접근 방법과 "허위적 예술이며 미적 가식의 다양한 형태들이 변형되어 생산된 것"이라고 보는 미적 도덕적 접근 방법으로 나누어지며, 이들 관점에 따라 이들의 키치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 혹은 긍정적 뉘앙스를 띤다.
Baudrillard는 키치를 액세서리, 민속풍의 장식물, 기념물, 아프리카의 전등갓, 흑인의 가면 등 저속하고 시시한 물건들의 총체로 보고 시뮬레이션(simulation), 복사품, 모조품,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으로서 현실에 대한 의미작용의 빈곤, 기호와 우의적 지시로 뒤죽박죽된 함축작용(connotation)의 과잉, 세부적인 것에 대한 예찬이 포화상태에 도달한 단계라고 하였고, Moles는 "키치는 애초부터 윤리적으로 부정함이라든지 진품이 아니라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Steele은 "나쁜 취미의 세련된 수용성"이라고 하였으며, Greenberg는 키치가 서구산업사회에서 출현한 새로운 문화현상으로서 현대사회에 거대한 허깨비처럼 만연되어 있으며,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예술과 원색화보가 있는 문학지, 잡지의 표지, 일러스트레이션, 광고, 호화판 잡지, 선정적인 싸구려 소설, 만화, 유행가, 탭댄스, 할리우드 영화 등으로 나타난다고 예를 들고 "참된 문화의 가치에는 무감각하면서도 특정한 문화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오락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난 대용문화가 곧 키치"라고 주장하였다. Calinescu도 키치를 "허위의 미적 형식"으로 정의하였다. 즉 "키치 개념은 모방이나 위조 혹은 자기기만을 의미"하며, "쉽게 입수할 수 있고 예술과 관계없는 사물에 미적 의의를 부여하여 진정한 예술대상에게 돌려야 할 존경을 가지고 그것을 다루는 경우 그것은 키치가 된다."고 언급한 바 있다. Houser는 "키치는 사이비 예술이며 달콤하고 싸구려 형식을 갖춘 예술로서, 위조되고 기만적인 현실묘사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문화예술 비평가들에게 키치는 참된 문화의 가치를 낮추고 천박한 복제품을 위해 재료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위조된 거짓감각의 '저속한 대중적 취향'에 지나지 않는 의미로 비쳐져 왔다. 또한 키치는 통속적 사회현상으로서 진품적 가치를 모방하는 태도와 그 산물을 의미하였다. 키치는 평균적인 감수성을 지닌 인간들에 의해, 평균적인 인간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대량소비에 맞춰 고안된 대중위락적 예술로서, 광범위한 대중의 가장 피상적인 미적 욕구 혹은 변덕을 즉각적으로 만족시켜 준다고 본다. 이와 같이 키치가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진 용어로 인식되는 것은 고급문화만을 진정하게 가치있는 문화로 보는 엘리트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키치를 긍정적인 의미로 보는 입장도 있다. 무엇이 저속하고 아닌지는 이를 구별하는 특정 관점 또는 미적 감수성의 판단에 근거하기 때문에 키치의 이해는 취향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몰르는 "키치란 의미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외연적인 현상은 아니다. 키치란 보다 본능적으로 심층에까지 달하는 내포적 현상이다. 키치란 우선 사람과 사물이 엮어내는 관계의 한 유형이다. 하나의 구체적인 사물에 대해 키치라고 말하거나 하나의 양식을 키치라고 말하기보다는 인간의 존재방식에 관한 하나의 형태를 키치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것은 인간의 존재 상태의 한 유형인 '키치적 태도'의 객관화된 형태이기 때문이다."라고 언급하여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을 나타내었다. Broch도 "일상적인 거짓예술의 의미뿐만 아니라 비판적 평가의 전래 범주들과의 미적 통합성이 결코 의심되지 않던 영역까지 확대되고, 나아가서는 생의 태도까지를 뜻하는 것"으로 키치를 정의하였다. 오늘날 키치는 대중들의 실제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영원불멸한 절대적이고 순수한 인식은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것이지 현대의 소비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키치를 불순하고 천박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순수한 인식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고급문화의 이상주의적 입장에서 보았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키치 개념은 '고급문화를 모방하며 천박한 복제품을 위해 사물을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위조된 거짓감각의 저속한 대중적 취향'이라는 소극적 부정적 의미로부터 '이러한 취향을 적극적 긍정적으로 수행하며 산업사회의 소비문화를 수용하는 대중들의 삶의 태도를 표현하는 특정 철학적 미학적 범주'라는 광범위한 영역에 속한 개념으로서 이와 같은 개념의 다양성과 평가의 이중성은 키치 개념을 보다 모호하고 복합한 개념으로 파악하게 하는 한 원인이 되어왔다.
2. 키치 발생의 사회적 배경
1) 키치의 발생과 산업혁명
키치의 발생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논의가 있어 왔으나 근대 이전으로 보는 주장과 근대 이후로 보는 두 가지 주장으로 요약된다. 근대 이전으로 보는 주장에는 키치라는 개념으로 명명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와 유사한 미적 현상이 고대 로마시대 때부터 있어왔다는 입장과 후기 이집트에서 봉건적 농경문화의 영향 아래 성립되어 그리스의 고전기 후기와 헬레니즘기에 확립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한편 Broch는 16세기 전기 프로테스탄티즘의 청교도주의에 토대를 갖고 있으면서 19세기의 금욕주의에 대한 반발로 키치적 현상이 널리 확산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들과는 달리 키치의 발생에 관한 Calinescu와 Moles의 견해는 산업혁명 이후로 보는 입장인데, 현재는 이 견해가 보다 설득력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Calinescu는 키치의 발생을 18, 19세기 자본주의 성립과 연루된 모더니티의 문제로부터 시작된다고 보았다. 즉 키치의 출현에는 산업혁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키치가 부와 소비에 중점을 두는 후기 산업사회에 이르러서는 경제적인 발전과 더불어 미적 모더니티를 획득함으로써 더욱 주목을 받으며 폭넓게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Moles도 키치적 사물과 이에 대한 태도의 발생은 서구 자본주의 시민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본다. 사회가 풍요로워지면 욕구보다는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수단이 많아지게 되며, 이 결과 일부에서는 장식이나 덧붙이기의 과잉적 행위가 나타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민계급이 자신들의 논리와 규범을 예술작품의 생산과 관계지으려는 태도가 등장했던 것이다. 19세기 말까지는 주로 극히 제한된 일부 계층에게만 미적 감수성 개발의 기회가 제공되었다. 상류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의 문제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에 심미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고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다. 따라서 하류계층이 향유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예술형태는 민속예술이었으며 이는 주로 공예적인 전통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가속화된 산업화 사회에서 수많은 하류계층들은 새로운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고 공장에서 만들어진 산업제품을 소비하는 도시생활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이 소비가능한 잉여수입을 얻기 시작했을 때 마침내 중류계층으로 상승하는 '사회적 지위이동 현상'이 일어났다. 사회적 지위 이동 현상과 함께 중하류 계층의 사람들은 부자와 귀족들이 자신들의 부와 지위를 표시하기 위해 순수미술을 사용하는 방식과 모습을 모방하기 시작하면서 키치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키치는 '상류계층으로부터 내려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중엽 산업혁명으로 초래된 새로운 시대는 대부분의 사회계급을 소비자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취향의 문제를 역사 정면에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의 파장은 우선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왔고, 다음으로는 상품생산과 공급의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혁명은 사회의 경제적 기반에 거대한 구조적 변화를 유발시키면서 농촌에서 유입된 도시서민들에게 풍요한 물질적 기반과 보다 나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산업혁명이 초래한 두번째 결과는 대량생산이라는 기술적 진보에 의해 상품 공급 능력이 엄청나게 팽창했고, 전보다 풍부해진 상품공급은 소비자 상품의 사회적 반경을 훨씬 더 '아래로' 확대시켰다는 점이다. '키치'라는 용어가 출현한 것은 바로 이 시기, 즉 1860년 무렵이다. 즉 키치는 시민사회의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기세로 등장하였으며, 그 시기는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새로운 산업과 상업문화로부터 키치라는 문화현상이 초래된 데에는 사회적 지위 이동과 함께 미적 감수성을 개발할 수 없었던 중하류 계층의 심미적 소외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소외현상의 발생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가 키치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대량생산된 미술품 등의 오브제의 증가였다. 키치는 언제 어느 때나 소유가 가능했으며, 19세기 말에 출현한 백화점은 값싼 '미술품 같은 사물'들의 전시장이었다. 백화점은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눈뜨게 해줌과 동시에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물건을 공급해 주면서 그 물건들을 사용하는 쾌적한 생활방식까지도 창출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상업문화의 가속적 발전과 그 궤도를 같이 하여 산업생산이 본격화되고 소비가 급속히 증가하는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대중소비의 가장 현저한 현상의 하나가 된다. Baudrillard는 대중 소비문화 속의 이와 같은 키치 현상을 지적하고, 이를 지위이동의 동기로부터 유발된 것으로 재해석하여 "키치는 계급적 욕구, 계급상승에 대한 예감, 상층 계급문화의 형식, 습속, 차이 표시 기호에의 주술적 동화의 표현으로 사용된다."고 분석하였다.
요약하면, 키치의 발생은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야기된 사회문화적 변화를 기반으로 하면서 19세기에 이미 널리 일반화된 현상이었으나, 본질적으로는 인간의 소외감과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에 근거하여 거의 모든 시대에 존재하면서 인간의 문화를 관통하는 현상이었으며, 키치가 미적 논의의 대상으로 긴장감과 사회문화적 의미를 가지고 인간의 생활에 다가온 것은 대중적인 소비가 폭발적으로 이루어지는 20세기에 들어와서였다.
2) 현대사회에서의 키치
Moles는 키치의 진가가 두드러진 두 시기를 부르주아 사회의 부흥기와 끊임없이 사물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현대 소비사회로 지목하였다.
한편 Greenberg의 설명에 따르면 "고급문화와 키치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가지는데 고급문화는 부자와 교양인을 위해, 키치는 도시화된 신흥 대중들이 증대된 여가시간을 즐기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했다."고 한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Homo consuman)'라는 명제는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소비사회 풍조를 간명하게 요약해 주는 표어이다. 이 시기에는 고급문화가 대중문화 내의 키치적 요소를 끌어들이면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밀어내게 된다. 또한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는 취향의 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견해가 바뀌어 소위 '좋은 취향'에 대한 단선적인 기준들이 거부당하고, 결과적으로 이 세상에는 나쁜 취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식이 점차 자리잡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에 이르면 예술, 디자인, 패션 그리고 소집단 문화에 대한 논의들이 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 및 개념의 발생과 더불어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고 주변적 문화 현상이었던 키치가 포스트모더니즘 현상 중 대표적 지위를 얻으면서 문화와 예술의 전면으로 확대되면서 부각되게 된다. 예술에 있어서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가 없어지고 양자가 혼용되면서 다양한 배경을 가진 대중들은 다층적인 문화예술을 제공받게 되었다. 즉 1980년대에 들어서서 취향의 문제, 문화적 지위, 통속적인 것과의 갈등이라는 문제들이 서서히 재설정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결과 현대 소비사회에서 키치의 범위는 액세서리, 민속풍의 장식물, 기념품 등의 잡다한 주변적 물건들의 총체로서 뿐만 아니라 회화와 조각, 음악, 문학 등 고급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공예, 디자인, 건축, 심지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부터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게 되었다. 즉 키치는 대중 계급에 의해서 만들어진 언제 어디에서나 볼 수 있게 된 문화적 우세종이 된 것이다.
3. 키치의 특성과 유형
1) 키치의 특성
키치의 특성이 조형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키치가 가지는 조형적 특징을 Moles는 부적절성, 누적, 공감각, 중용 혹은 범용의 네 가지로 설명하였고, Kowalski는 누적, 이질성, 기능장애, 부적절성, 공감각, 축소형으로 나누어 언급한 바 있고, 김소연은 누적, 기능장애, 부적절성, 공감각, 중용 혹은 범용으로 설명하였다.
본 연구자는 키치가 가지는 조형적 특징을 다음 여섯 가지로 분석하였다.
가. 누적성
사물들을 통해서 사회적 지위의 상승이나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시작된 키치의 지위상승 욕구는 변화되어 가장 단순하고 순진한 표현형태 즉, 수집열로 주로 나타났다. '더 많이'라는 충동은 대중문화의 특징이 되었으며, 이는 현대에 이르러서 단순함을 거부하는 키치적 태도와 결합하여 과도한 장식과 과잉적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된다. 이와 같은 욕구는 미적 요소의 과도한 축적(과잉장식)이나 사물에 대한 과잉정보의 제공 그리고 두 가지 이상의 감각영역을 동시에 자극하는 공감각의 형태로 나타난다. 즉 형식, 내용, 기능 등의 밀집을 통해서 시각적 집중현상을 유도하는 것이다. 여백의 공간을 남기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채워버리는 것이고, 가능한 모든 총체적인 아름다운 이미지 작용을 위해서 모순된 힘들이 서로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장식,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들 중에 어떤 것도 만드는 사람이 즐거워서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것을 눈여겨보는 것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특정한 사회적 지위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 그 평균적인 사람들은 막대한 양의 무익한 장식들을 그들이 속해 있거나 속하기를 열망하는 훌륭한 삶의 조건으로부터 어떻게든 분리될 수 없는 것들로 간주한다."는 말은 키치의 누적성과 지위상승욕구와의 관계를 잘 설명한 것이다. 일상 생활을 일련의 장식적 사물로 채워 쾌적함을 느끼고 풍부하게 하려는 열망은 모방과 허위라는 가상적 형식 속에서라도 '차이'를 소유하려는 노력과 아울러 이런 상징적 상품들이 꾸준히 팔릴 수 있도록 해준다. 자신이 위치한 계층과 어떤 사물이 상징하는 지위계층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그 사물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해지게 된다. 결국 이와 같은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함축을 동반하는 기호로서의 사물은 확대 재생산된다.
Moles는 여러 감각을 동시에 이용하는 키치의 공감각을 웨딩케랺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스펀지 케랺에 크림을 바르고, 사탕을 붙이고, 초콜릿을 입히고 거기에 바나나를 놓고 색깔까지 칠해서 마치 바벨탑이나 시골교회 같아진 케이크에는 키치의 정신이 흐른다고 보았기 때문인데, 동시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영역의 감각에 자극을 퍼부어 키치적인 효과가 나타나면서 "상이한 체험 영역의 동질화 현상" 즉, "키치의 분위기"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물이 끓으면 하모니카 소리가 나는 주전자, 태엽을 감으면 음악이 나오는 선물함이나 향수 냄새가 나는 책 등이 그 예이다.
나. 부적절성
키치 사물들은 여러 목적에 동시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다. 키치 사물의 부적절성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그 재료에 있으며 키치는 언제나 목표로부터 약간 빗나간 곳을 겨냥한다. 병마개 위에 장식으로 붙어 있는 정치가의 흉상이라든가, 기도서용 문진의 크기로 축소된 예수의 흉상 등 키치에는 크기의 불균형 차원의 위화 등이 존재한다. 또한 키치의 부적절성은 미적 대상의 결합이나 배열과 관련해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본래 가지고 있는 목적뿐만 아니라 동시에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과정에서 형태, 크기, 형식적 내용 등이 부적절하게 표현되는 형태를 말한다. 이런 경우 키치적 사물이나 태도가 과장되어 나타나게 되며 결국은 가지고 있던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현상을 보여 주게 되는데, "개별적으로 보면 절대로 키치적이지 않은 대상들도 그 배열이나 결합에 따라 키치의 효과를 야기할 수 있게 된다."는 Calinescu의 주장은 부적절성을 설명한 것이라 할 것이다.
다. 유희적 낭만성
'Romantic'이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방언인 로만스어로 쓰여진 이야기'를 의미하는 불어 'romant'에서 유래한다. 낭만주의는 일종의 문화적 혁명이었으며,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첫째로, 엄격한 규칙이나 질서에 구속되지 않고 풍부한 상상력을 구사하며, 생의 자유롭고 무한한 유동에 따라 분방한 감정을 유출한다. 그러므로 음악적, 주관적, 동적이며 생성하는 양식이다. 둘째로, 미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간적으로는 외국의, 시간적으로는 과거시대 예술에, 자국의 당대 예술들과 동등한 가치를 두고자하는 상대주의이며, 여기에서 exoticism 내지 cosmopolitanism이 생성되었다. 셋째로, 보편성보다는 개성을 중시하며 자기고백의 경향이 뚜렷하다. 넷째로, '무한'의 이념을 추구하며 늘 현실을 고양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연을 사랑하며 먼 나라를 동경하고 과거를 찬미하는 등 현실과 유리되지만 현실의 이상화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현실세계에 대한 반사적 작용으로 유희를 사용한다. 지루한 일상의 생활로부터 혹은 무거운 삶으로부터 벗어나 색다른 체험을 위해서 다른 것으로 변화를 추구하는 이탈의 과정은 그 자체가 하나의 즐거운 놀이가 된다. 이탈을 본질로 하고 있는 유희는 '속아주기'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Goffman은 "놀이의 재미의 방향은 직선적이라기보다는 순환적이다. 만일 우리가 마술의 놀이적 속임수에 우리 자신을 열 수 없다면 우리는 마술에 전혀 반응할 수 없다. 우리는 마술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용서할 줄 안다. 이런 의미에서 놀이태도는 속아주는 건강한 생명력의 승리인 것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키치에는 이런 건강한 유희적 감상이 존재한다. 또한 키치 인간은 현실의 압박 앞에서 퇴행하여 현실에 대한 피난처로 유토피아를 꿈꾸는 현실도피적 성향이 강하다. 이 유토피아는 휴식과 유희적 즐거움을 제공하고 정신적 피난처가 되는데 이런 경우 낭만적 전원 풍경의 형태로 나타나거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환상적인 형태 혹은 이국적인 정서를 풍기는 형태로 표현된다. Killy는 키치를 "세속화 된 동화의 세계"라고 정의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동화의 세계는 대개 시대를 알 수 없는 먼 옛날 이야기이거나 장소를 알 수 없는 먼 다른 나라 이야기였음을 기억한다. 그리고 점차 자라나면서 그 모든 확인할 수 없는 것들에게 구체적인 이미지를 짝지어 주는 과정이 이어지고, 어른이 되어서는 마침내 그 아득한 기억 속의 남겨진 근원적 이미지들을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일에 직접 가담하게 된다. 이런 환상의 메커니즘으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즉 키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 키치는 여가의 빈 시간을 재미와 흥분으로 채우며 공허한 공간을 아름다운 가상을 통하여 끊임없이 환각을 일으키게 하여 현실로부터 도피해 나가게 하는데, 이런 도피에 대한 환상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곳은 '역사'라는 전원이다. 즉 과거로의 회귀라는 형식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낭만주의적인 정서인 이국취향은 부르주아 성립기 당시의 세계에 대한 모멸의 태도로서 나타났는데, 급진적인 현실 참여와 보헤미안적인 이탈로 이원화하여 표출되었다. 낭만주의자들 중의 일부가 자신이 몸담고 있던 사회를 떠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으며 '낯선 자연'이 그려진 풍경의 세계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고갱이 그린 타이티 풍경의 복제품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키치 품목 중의 하나가 되어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이국취향과 키치가 얼마나 잘 결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이국취향의 도피적 정서는 현실보다 환상을, 진실보다 허위를 선호하는 키치와 잘 맞아떨어질 수밖에 없다. Greenberg는 "키치는 자기가 태어난 도시들에만 갇혀있지 않고 지리적인 경계선과 문화적인 경계선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산업주의의 또 하나의 대량생산품인 키치는 세계정복의 장도에 올라 토속문화들을 하나하나 없애버렸다. 그래서 그것은 이제 바야흐로 보편적인 문화, 이제까지 목격된 최초의 전인류의 문화가 되고 있다."고 하며 국적 불명의 이국적 키치가 범람하는 현상을 설명하였다.
라. 자기기만성
근본적으로 키치는 미적 과장과 자기기만의 세계이다. 키치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인 자기기만의 특성은 20세기 문화의 질적 저하현상 혹은 일상생활의 사물화 현상이 확대되는 것에 상응하여 나쁜 취미가 개재된 모든 예술적 산물 혹은 대중문화 산물 일반과 키치가 동일시될 수 있을 정도의 상황이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문화의 키치화 현상에 따라 단순히 부를 의미하는 것이 되어버린 진정한 예술과 미적 위신이 부여된 잘 고안된 비예술 사이에 '미적 부적절성'의 개념이 적용되는 무수한 단계(예를 든다면 백만장자의 엘리베이터에 걸려있는 램브란트 그림으로부터 싸구려 모조 금팔찌에 이르기까지)의 물건들, 취미영역들 모두가 키치적 성격을 띠게 되는 것이다.
하나의 키치 그림이 있다고 할 때 거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코 그 그림에 그려진 대상이 아니다. 이 때 그림 혹은 그림의 대상이란 어떤 기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하나의 자극제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욕구의 대상이 아니라 욕구 자체이며, 키치가 통상적인 '단순한 향수'의 대상들 이상의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점 때문이다. 현실세계의 대상이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 인간은 욕구를 갈망하게 된다.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어떤 정서를 보증해 주고 있는 대상과의 만남이 없는 경우라면 향수되거나 추구되는 것은 어떤 대상이 아니라 그 정서 혹은 기분이다. 따라서 종교적 키치는 신과의 만남이 없이도 종교적 감정을 일깨우려 하며, 성적인 키치는 사랑하는 대상이 없어도 사랑의 느낌을 주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키치는 자기향수를 위해 대상으로부터 일종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키치가 자기기만의 형식이라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키치의 욕구 대상이 욕구 그 자체 혹은 일종의 정서나 분위기라고 할 때 중요한 것은 이 정서가 다름 아닌 자신의 정서라는 사실이다. 키치에서 성립하는 미적 주객관계는 자아와 자아의 감정 사이의 주객관계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키치의 미적 주체는 대상으로부터 얻어낼 수 없는 정서를 이미 자신 속에 있는 도식화되어 고착된 어떤 정서로 대치한다.
요컨대 키치는 뭔가 잃어버린 낙원을 찾지만 대용물을 설정함으로써 그리고 그 대용물이 꾸며낸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함으로써 거짓낙원을 찾게 하는 자기기만의 형식인 것이다.
마. 쾌락성
키치에 대한 일반화된 견해 중의 하나는 키치를 "근대적인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쾌락의 문제"로 보는 입장이다.
Sharp에 의하면 "키치는 이 나라 대다수 사람이 가지고 살기 원하는 값싸고, 천박하고, 감상적이고, 허접쓰레기 같고, 예쁘고, 귀여운 것을 의미한다. 이 대중 문화는 취미와 세련의 장벽을 넘어서 기존 문화의 저장고 속으로 흡수되었다."고 하였으며 Adorno는 현대 일상의 단조로움과 권태가 기분전환이나 단순한 즐거움에 대한 광범위한 욕구로 창출되었음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은 단순한 즐거움을 갖기를 원한다. 싸구려 상업적 오락의 전영역은 이 욕구를 반영한다. 그것은 패턴화 되어 있고 소화되기 쉽게 조리되어 있음으로써 심리적 이완을 유도한다."고 하였다. 생활 속에서 아무 즐거움도 발견할 수 없게 될 경우 우리는 언제든지 세계로부터 이탈하여 자신을 자극하는 단순한 즐거움으로 이동하려는 욕구를 느낀다. 이 욕구의 충족은 점점 더 욕구의 체계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더불어 모든 정서를 보다 접근이 용이하고 빠르며 예측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락과 여흥으로서의 효과를 지니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강박관념이 생겨난다. 차츰 순수한 정서를 느끼는 빈도는 적어지며 그에 대한 욕구도 잠들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순수한 정서를 경험하는 것은 오직 인위적인 자극에 의해서만 가능해진다. 즉 키치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인위적 자극에 의해 대체 영역이 고도로 복합적인 정서와 체험영역에까지 이르면서 키치는 점차 커다란 힘으로 문화를 키치화시키게 된다.
이 인위적 자극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이다. 사물에서 즐거움을 발견하고 그 사물의 소유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쾌락이 된다. 키치 인간이 추구하는 쾌락은 철저하게 오락을 위한 것이며 부적절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여타의 쾌락과는 구별된다. 이런 경우 사물에게 혹은 사물을 향유한 인간에게도 일종의 관능이 존재한다. 이 관능은 사람에게 미적 행위의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또한 쾌락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의 욕망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이제 소비는 일정한 기본욕구들의 단순한 성취 이상의 것이 되었으며, 단순히 경제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방식의 하나가 되었다. "키치는 감정의 물신화와 더불어 물화과정으로 인간을 시장에 접합하는 과정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가능한 한 더욱 더 집약적인 형태로 쾌락과 방종을 즐기고 싶어한다. 이 쾌락의 획득을 위해 수많은 관능적 키치가 만들어지며 사물을 통하여 쾌락을 경험하는 형태는 주로 성의 자유로운 표현, 즉 관능성과 관계되어 나타나게 된다.
바. 중층성
우나미 아키라는 Broch의 '여러 가지 가치의 하락 시대는 곧 키치의 시대'라는 명제를 기반으로 하여 이렇게 주장하였다. "가치가 하락되면 무엇 한가지만으로는 존재가치가 유지될 수 없게 되고, 여러 요소들을 짜 합쳐야 겨우 뭔가가 성립하는 것이 아닐까? 본질 그 자체의 가치가 희박해가고 있으므로 여분의 것, 장식적인 것을 부가함으로써 겨우 뭔가가 성립한다. 중층화, 마구잡이식으로서의 키치가 가치하락의 시대에 출현한다고 하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이며, 이러한 중층적인 구조가 키치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있는 것, 다른 데서 가져온 것, 확대한 것, 여분의 것을 끌어 모은 일종의 패치워크(patch work)와 같은 것이 키치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키치는 극히 현대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아키라의 논의에서 알 수 있는 속성은 키치가 여러 요소의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키치적 산물에서 볼 수 있는 이 중층성은 키치의 형식상의 특성일 뿐만 아니라 내용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Moles의 말처럼 사물 그 자체의 사용 기능에 사회적 기능이 부과되어 키치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중층성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조형적으로 모자이크적인 특성을 갖는다. 즉 여러 조형적 특성들이 한데 어울어지는 양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키치는 현실의 모습을 왜곡하거나 실제의 모습을 가림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2) 키치의 유형
키치적 산물의 유형적 분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는데 가장 알려진 주장은 키치가 제공하는 정서적 효과를 중심으로 한 심리학적 분류로서 Holthusen이나 Gonda가 제안한 '달콤한 키치'와 '시큼한 키치'의 분류이다. 이 분류는 이것은 성적충동과 죽음에 대한 충동, 쾌락원리와 파괴충동과 같은 프로이드의 대립개념을 키치에 적용한 것이다. 달콤한 키치는 포도당과 같은 것이며, 마이센의 도자기, 정원에 놓여진 인물상과 개구리 모양의 작은 장식물 그리고 장미빛 인형들, 빵집 문 앞에 걸려 있는 커다란 데코레이션 케랺, 사탕과자 등이 그 예이다. 그에 반해 멕시코에 있는 설탕으로 만든 두개골과 미국에서 자주 보는 플라스틱 해골, 또는 괴기영화 및 공포영화 같은 것들이 시큼한 키치에 해당된다.
두번째 유형으로는 키치의 목적에 의한 분류로서, Calinescu는 키치를 '선전을 위해 생산된 키치'와 '오락을 위해 생산된 키치'로 나누고 전자에는 정치적 키치, 종교적 키치를, 후자에는 연애소설, 돈벌이용 예술작품, 고급잡지 등을 예로 들었으나 이 두 가지 범주 사이의 명확한 구분은 불가능하며 상호교차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세번째는 키치 대상을 용도별로 열거하여 구분하는 방법인데 Dorfles는 기념비, 크리스찬, 광고, 영화, 포르노, 건축, 전통, 관광 등으로 구분하였다.
네번째는 대립되는 다양한 주제와 표현정서로 분류하는 방법으로서 Moles가 달콤함과 씁쓸함, 종교적 키치와 세속적 키치, 관능적 키치와 가정적 키치, 이국취향과 향토성, 전통성과 미래지향성 등으로 분류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런 키치적 산물의 분류에서 나아가 키치 현상을 키치적 산물과 키치적 태도로 구분하는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방법도 있다. Moles는 키치를 산물과 태도로 분류하고 인간의 유형을 금욕주의적 유형, 쾌락주의적 유형, 공격적 유형, 소유욕의 유형, 초현실주의적 유형, 기능주의적 유형, 그리고 키치적 유형 등 7가지로 분류하고 인간이 실제의 삶에서 어떤 대상과 관계를 맺을 때, 대상의 실제적 가치에 덧붙여진 중층적 가치를 소비하고 있다면 그것은 태도로서의 키치가 되며 그 키치를 소비하는 사람은 '키치 인간'이 된다고 하였다. 키치 인간이란 키치는 물론 키치가 아닌 작품이나 상황들조차도 키치로 경험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상황에 따라 이런 '키치 인간'적 속성을 드러낼 수 있어서 순수 예술작품을 체험하는 사람과 키치를 경험하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그것은 키치가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에서 피할 수 없는 가능한 태도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Moles는 키치를 보는 관점을 키치적 산물에 국한시키지 않고 주체 문제로 확대 이동하였다. 즉 키치적 산물에 대한 관심이 키치적 태도에 대한 관심으로 이동하고, '키치 대상'에서 '키치 인간'으로 개념 논의를 확장시킨 것이다. 그는 키치적 양식을 실존의 한 양태를 표현하는 철학적 미학적 양식으로 파악하고 따라서 이를 전통적 범주들과의 동렬에 자리하는 의미있고 가치있는 독립적 범주로 자리매김하였다.
[대중문화와 키치]
1. 엘리트(고급)문화와 키치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주요 시각예술은 건축, 회화, 조각이었다. 그것은 사회에서 가장 부강했던 군주나 왕가, 귀족, 교회, 상인 혹은 의회, 동업조합 등과 같은 개인 및 집단, 제도 등의 실질적 후원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 때와는 다르게 오늘날의 문화를 지배하는 것은 고급문화가 아니라 대중문화이다. 산업의 발전,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발달 및 도시화한 소비사회의 돌연한 출현은 고급예술가들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끼쳐 왔던 사회적 맥락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꿔 놓았다. 다양한 종류의 기계가 사회적, 과학기술적 변화에 중대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테면 색채 사진술과 그 인쇄술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화가가 색채 이미지 제작에서 진정한 독점을 누렸지만 이제는 고도로 향상된 품질의 색채 이미지와 그 복제물이 카메라와 인쇄기의 사용으로 수백 만점씩 신속하고 용이하게 제작될 수 있다. 결국 순수예술이 완전히 사장되지는 않았더라도 그 지위와 힘, 또 그 권위의 쇠퇴에 따라 사회적 기능 또한 변화된 것이다. Foucault와 Lyotard의 지적대로 결국 문화 내에서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단일한 이성의 기준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이념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이든 그리고 오늘날의 어떠한 문화적 사물이든 대중문화라는 문화 상황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대중문화라는 개념은 대중교육의 전파와 대중매체의 발전으로 엄청나게 확대된 문화시장의 존재와 함께 이제 원칙적으로 어떤 종류의 문화라도 누구에게나 접근이 가능해진 현대의 문화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Howe의 말처럼 대중문화란 우리가 아무리 부정적 인식을 갖는다해도 숨을 쉬기 위해서는 누구도 벗어 날 수 없는, 우리 모두 호흡하며 사는 문화적 대기권과 같다.
문화는 우리가 우리의 세계를 해석하고 구성하는 관념과 활동을 의미한다. 가치있고 뛰어난 것으로만 제한된 문화의 개념에서 '전적으로 자연적인' 일상의 잠복된 의미를 밝히려는 시도가 프랑스의 철학자 Barthes에 의해 제안되었다. 그는 오늘날 부르주아 사회 내의 모든 즉흥적 형태들과 의례들이 어떻게 어느 순간에 체계적으로 신화로 전환되는지를 밝히는 데 관심을 두었다. Barthes의 문화에 대한 견해는 미술관, 도서관, 오페라 하우스를 넘어서 일상 삶의 전체를 포괄한다. 언어학에서 기초한 방법을 언어 외부의 다른 담론의 체계들 예를 들면 패션, 영화, 음식에 적용한 Barthes의 방법은 오늘날 문화 연구에 있어서 완전히 다른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종래의 문화라고 판정받은 순수미술, 음악과 문학에서 벗어나 Barthes는 '제도와 일상의 평범한 행동'까지를 포함하는 다원적인 문화개념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다. 문화라는 것을 특권화된 소수가 인간경험의 매우 제한된 영역에서 생산한 '최고의 것'이 아니라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범위를 포함하는 것으로 파악했던 것이다. 또한 소비는 종래의 개념보다 더욱 그 의미가 확대되었는데 소비재와 서비스가 만들어지고, 구입되며, 사용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게 되었으며, 소비재를 만들어내는 디자인 및 생산시스템은 완전히 문화적인 작업으로 간주되었다. 소비자가 시간, 주의 및 소득을 아낌없이 바치는 소비재들은 문화적 의미로 차 있으며 현대 사회의 소비자들은 완전히 문화적인 목적을 위해 사물을 이용한다. 그들은 문화적인 범주와 원리를 표현하고, 이상을 구현하고, 자신에 대한 관념을 구성하며,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소비재의 의미를 사용한다. 소비는 그 성격에 있어서 철저하게 문화적인 것이다. 소비재가 없다면 현대의 선진사회는 그들 문화의 재생산, 표현 및 조작의 중요 수단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 재화들을 만들어내는 디자인, 제품개발 광고 및 유행의 세계 자체가 우리 문화 우주의 중요한 저자이다. 이제 소비는 문화적인 고려에 의해서 형성되고, 촉진되며, 또 구속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화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혹은 공유해야 할 의식과 가치를 배양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창조하고 유지하며, 자아를 구축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 변화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적 속성을 지닌다.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 문화를 이루는 내용은 바로 구체적인 일상의 삶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그리고 그 문화의 내용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동과 실천의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이러한 일상 삶이라는 현상에 더욱 구체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실제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삶이란 일상생활에서의 행동이 만들어내는 '실천 양식'을 뜻한다. 이는 피상적인 '개념'이 아닌, 구체적인 삶의 세계 속에서의 자아 즉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종합적인 생활감각을 반영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일상적인 행동이야말로 우리가 참여하는 삶의 형태가 어떠한 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2. 대중문화와 키치
Bennett의 주장에 따르면 대중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 구성과 조직이 끊임없이 변하는 즉 살아있는 존재이며, 대중문화는 서로 다른 가치와 이념들이 만나고 섞이면서 서로의 입지를 대중의 의식 가운데 틀지우기 위해 경쟁하는 문화적 형식과 실천의 영역이라고 한다. Hamilton은 대중문화의 계율이라 생각되는 사항들을 열한 가지로 분류하였다. 이들은 대중을 위해 고안되고 통속적일 것, 단시간 안에 해결되는 일시적일 것, 쉽게 잊혀지는 소비적일 것, 가격이 저렴할 것, 대량생산이 가능 할 것, 젊음에 관한 것일 것, 재치가 있을 것, 성적 매력이 있을 것, 참신할 것, 매혹적일 것, 대형사업일 것 등으로서 이 사항들은 대부분 키치와 맥락을 같이 한다.
Althusser도 역시 "현대사회에서는 어떤 종류의 개인의 정체성도 부르주아의 신화이며 따라서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주체란 일종의 가상"이라고 언급하였는데, 이 주장처럼 키치도 역시 인간이 물질적 환경에 대해 보여주는 하나의 태도이며, 생산과 소비의 새로운 관계 즉 부르주아 사회가 만들어 준 결과가 되는 것이다. 키치는 사회가 피해 갈 수 없는 일종의 숙명이며, 엔트로피(entropy)와 마찬가지로 사회 속에서 필연적으로 증대해 가는 것이다. 키치는 문화의 한 범주이며, 키치의 범람은 모든 영역에서 차용한 차이 표시 기호의 산업적 생산에 의한 다양화와 사물의 통속적인 대중화에서 생긴다. 또한 기성의 기호와 무질서한 매매의 결과이기도 한데 이 현상은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소비사회의 사회학적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소비사회는 지위이동이 가능한 유동적인 사회이다. 폭 넓은 층의 사람들이 더 나은 사회 계급의 지위에 올라가면 그와 동시에 문화적 욕구를 지니게 되는데 그것은 그 지위를 기호로 표시하고 싶은 욕구와 같은 것이다. 사회의 어느 수준에서라도 '위의 계층으로 올라간' 집단은 자신들에게 어울리는 사물의 파노플리(panoplie)를 원한다. 따라서 대중의 통속성이나 저속한 취향을 비난하는 것은 소용없다. 키치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수요가 있어야 되며 이 수요는 사회적 지위 이동에 따라 결정된다. 사회적 이동이 없는 사회에서 키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경우에는 특권계급 전용의 차이 표시 용구로서 아주 약간의 사치품이 있으면 충분하다. 현대의 서구 사회가 오늘날 끊임없는 사회적 이동 단계에 들어간 이상 이 경향은 계속될 것이다. 키치와 진짜 사물은 오늘날 끊임없이 변화하고 증가하는 차이 표시 용구의 논리에 따라서 함께 소비의 세계를 조직하고 있다. 키치의 이 표시 가치는 빈약한 것이지만 이 빈약한 가치는 통계적으로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힘을 갖고 있다.
또한 개개의 인간은 심리적 사회적 과정에 의해 통합되며 그 결과 사회 전체가 키치화 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 의해 사회적인 관계도 영향을 받아 키치화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고급 예술 작품과 대중매체의 산물은 그 질적 척도에 따라 분류될 수는 있지만 고급문화의 입장에서 대중문화를 경멸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이며 키치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지금껏 키치는 대중문화와 동일하게 정의되어 왔는데, 키치란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고급문화와 상대되는 저급하고 불순한 것으로 정의하는 부정적 판단 역시 고급문화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대중문화를 벗어나 살 수 없듯이 키치 또한 부르주아 문명이 만들어낸 가장 보편적이고 명확한 산물인 동시에 생활방식의 창조이기 때문에 비록 고급예술이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일상생활의 미적인 양태임에는 틀림이 없다. 키치는 고급예술이 가지는 초월성을 거부하며 가장 넓은 계층에 뿌리를 두고 확산된 대다수의 현대인이 비켜갈 수 없는 사회적 산물인 것이다.
. 예술과 키치
지금까지 예술과 키치의 관계에서 키치는 부정적 가치의 것으로, 예술은 긍정적인 것으로 키치에 대립적인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다. 오랫동안 키치는 전통적 예술의 대립물로서 혹은 허위나 기만으로 파악되어 예술이 가지는 진리 또는 초월성과는 상반되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Crick은 예술과 키치를 구분하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예술》
① 숙고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이며 조작되거나 권력의 입장을 취하지 않음.
② 폐쇄적, 환원적이지 않으며 문제의식을 던져 준다.
③ 자기지시적이며 새로운 창조의 산물, 기술적 수단과의 긴장 상태 유지.
④ 구조와 장식이 상호의존적 관계.
⑤ 제의적 형식이 역사적 타당성에서 나옴. 실체 없이 제의적이지 않다.
《키치》
① 방종, 탐닉의 결과로서 실물 이상일 것. 즉 허위적일 것.
② 최종적, 비신비적, 명시적, 정서적 자극됨. 경계 분명.
③ 이중적 부정. 예술작품으로 자신을 제시하는 오류를 범함.
④ 구조와 장식의 단순한 공존.
⑤ 전통과 무관하게 과거의 제의를 환상적으로 차용.
그러나 키치의 입장에서 볼 때 이와 같이 미적인 것을 예술과 아름다움에 국한시키는 입장, 다시 말하면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나누는 이분법은 키치나 예술 모두가 인간의 정서와 관계한다는 점에서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 미적 상황이 삶의 다른 양상들과 분리된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가치들에 의해 영향받은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언제나 삶의 맥락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화병이나 찬송가가 이전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키치는 우리 시대의 일상 예술이며 키치에 대항개념이란 없다."라고 언급한 Rosenberg의 주장은 현대에 있어서의 키치와 예술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한 것이다. 실제로 예술사를 살펴보면 현대 이전에도 예술과 키치 사이의 빈번한 교류와 상호 침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Broch는 근대적인 키치의 융성기를 낭만주의가 미적 이상의 개념에 가져온 변화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낭만주의 이전에 미적 이상은 가능한 어떤 예술 작품에 관련해서도 초월적이라고 여겨졌다. 미는 절대적이며 실제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모델이며 가치기준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기 동안 미적 이상은 이전의 초월성의 흔적을 상실하였고 이 과정에서 모든 키치 형태의 기본적인 필수조건을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낭만주의가 바로 키치는 아니지만 키치의 어머니이며, 그 어린이는 어머니와 아주 닮아서 그들은 구별할 수 없는 순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키치는 역사적 현실 혹은 당대의 현실을 상투어들로 대치하면서 명백히 낭만주의적 세계관과 일반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몇몇 정서적 욕구 위에서 번성한다. 상당 정도 키치는 낭만주의의 진부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낭만주의 혁명은 취미의 기준을 거의 완전히 상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또 많은 낭만주의자들은 감상 취향의 예술개념을 증진시켰고, 잇따라 그 개념은 다양한 종류의 심미적인 현실 도피를 향한 길을 열었다. 불행하거나 지루하기만 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욕망이 낭만주의와 키치가 공유하고 있는 매력의 요소이다. 낭만주의 시기에는 중산계급이 번영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행복의 조건을 조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 문화적 상황이 키치적 심리상태를 조성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산계급은 다른 계층들을 흡수하면서 사회의 유사총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미는 절대적이지도 초월적인 것도 아니라는 낭만주의적 심리상태로 출발한 중산계급은 낭만주의를 변증법적으로 일상성과 결합시키는 동시에 그러한 심리상태를 쾌적함에 대한 기호로까지 승화시켜 갔다.
1) 문학에서의 키치
키치 문학은 스테레오 타입의 문학이다. 그러므로 키치 문학을 만들어 내는 연상체계는 매우 진부하다. 발상은 거의 자동적인 연상작용으로 추출된 것이며 그로 인해 아무런 저항없이 모두에게 수용된다. 문학에 있어 키치는 그 연상의 진부함을 척도로 산출되게 된다. 그리고 상하이의 마약이나 파나마 운하의 주식, 매춘부의 몸, 중국 도자기 등 모든 것이 사회적 산물로서 매매대상으로 존재하듯이 키치 문학 또한 돈으로 살 수 있는 사회적 산물이다. 소비의 문학인 것이다.
예를 들면 키치 문학에 등장하는 집은 다양한 수십 가지의 양식이 한 거실 안에 공존하며, 거실이 사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물들이 새롭게 하나씩 더해져 간다. 그 거실 안을 들여다보면 테이블 위에는 테이블보가, 테이블보 위에는 냅킨이, 냅킨 위에는 받침접시가, 받침접시 위에는 컵이, 설탕통 위에는 각설탕 집게가 놓여 있다. 또 키치 문학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또한 단순히 해변가에 살고 있다는 표현으로는 그녀를 만족스럽게 표현할 수 없다. 그녀는 솔 향기가 가득한 숲속 하얀 집에 살고 있으며 그 앞바다는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 물결로 출렁거리고 있다. 그녀의 이름도 평범한 이름이 아니라 막달레나 혹은 브륀휠드 같이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름이어야 한다. 그녀의 약혼자는 귀공자라든가 청년장교여야만 한다. 꽃이 만발한 그녀의 정원은 천국으로 착각될 정도이며, 그 꽃들은 흔한 것들이 아니고 남국의 정서를 한껏 뿜어낸다.
이러한 문학에는 일종의 현상으로서의 키치, 다시 말하자면 극단적인 감정중심주의로서의 키치가 현실에 대한 부적합함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즉 현실도피의 문학으로서의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Stendhal이 그 의도나 내용을 고려해 볼 때 시녀를 위한 문학이라고 언급했던 키치 문학은 중산계급과 시민계급을 겨냥한 것이며, 그 후원자들도 물론 중산계급이다. 잔심부름꾼과 상점점원들이 즐겨보는 문학인 동시에 연약한 여성노동자들의 문학으로서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문학이다. 그들은 항상 쾌적함을 추구할 뿐이며 그 쾌적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그 쾌적한 상태의 파괴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다.
Tocqueville은 민주주의 시대에 독자들이 가지는 욕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들이 문학에 바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짧기 때문에 그 시간 전체를 최대한 이용하고자 한다. 그들은 쉽게 구할 수 있고 빨리 읽히며, 이해하는데 학구적 탐구가 필요없는 책을 선호한다. 그들은 자족적이며 쉽게 즐길 수 있는 미를 필요로 하며 무엇보다 예기치 못한 새로운 속성을 원한다. 실제생활의 단조로움에 익숙해진 그들은 급속한 정서변화, 놀라운 추이들을 추구하며, 작가들은 세부의 완성보다는 줄거리 전개의 속도를 목표로 할 것이다. 얇은 책들이 두꺼운 책보다 더 흔할 것이다. 작가의 목적은 즐겁게 하는 것보다 오히려 놀라게 하는 것이며, 취미를 만족시키기보다는 열정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어서 Tocqueville은 민주주의가 문학 및 모든 예술에서 상업주의를 조장한다고 언급했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몇몇 위대한 작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시장을 위해 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상인 계급에게 문학취미를 고취시켰을 뿐 아니라 문학에 상업정신을 끌어 들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과는 달리 작가가 어렵지 않게 상대적으로 빈약한 명성과 풍부한 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은근히 믿을 것이다." 이 같은 구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주장의 대부분을 키치에 적용해도 된다는 점이다. 오락과 여흥으로서의 예술, 용이한 접근성, 빠르고 예측 가능한 효과들(명예를 획득하기보다는 즉각적인 재정적 수입에 더욱 관심이 있는), 작가측의 '상업정신', 일상생활의 단조로움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독서 대중의 욕구 등등이 대개 사회학적 시각을 가지고 키치를 정의하는 경우 되풀이되는 요소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키치 문학은 소비의 문학, 상업적 문학이다.
2) 건축에서의 키치
Moles에 의하면 건축에 대한 키치의 예를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모사품'으로서의 키치 건축의 예를 Viollet Le Duc의 작품으로 설명하였다. 그의 건축은 '중세의 성'의 이미지를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전형적인 이미지로 획일화 시켜 보여 주었는데 그는 만약 건축에서 모사품이 오리지널과 같은 수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 그 모사품은 지금까지 건축된 것들 가운데서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건축물로서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다양한 형식의 특징들을 무차별적으로 축적하는 키치의 성격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건축물에서 찾고 있는데, 예를 들면 겔레르트 호텔(Hôtel Géllèrt)과 부다페스트의 카페 헝가리아(Café Hungaria) 등 그 수를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부다페스트는 도시 전체가 대부분 키치 전성기에 세워진 건축물로 가득 차 있다. 그 곳에서는 유약이 칠해진 벽돌로 쌓은 힌두교의 파고다가 7층짜리 임대아파트 건물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시대의 건축가들이 갖가지 자유로운 양식으로 건축문화를 표현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실이다. 그것은 건축가가 부르주아를 상대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해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뉴욕이 절정기에 도달할 때까지의 예를 통해 건축의 영역에서 기능적 요소까지도 본래 의미에서 이탈해 유행에 편승함으로써 기능적 의미는 완전히 상실한 채 장식적 요소만 추종하는 키치의 속성을 볼 수 있다. 뉴욕은 그랜드 세트랄 역을 건축하면서 그 200개의 기둥을 여러 양식으로 장식하였다. 그 중에서는 이집트 양식이 가장 많이 쓰였다. 고층건물들의 경우 일층에는 도리아식, 이층에는 이오니아식, 삼층에는 코린트 양식이 전반적으로 사용되었다가 이들을 절충해서 사용하기도 하고 소위 샌드위치 방법(아래층과 최고층만 도리아식으로 장식하는)을 쓰기도 하였다.
1920년대에는 수직방향의 고딕 양식의 특징이 건축작업의 일률적인 형태였으나 1935년부터 수평방향의 선을 장식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등장하였다. 물론 바우하우스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는 그 당시까지는 택지부족과 같은 문제로 그다지 고민 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에서 수평선을 강조한 넓은 땅을 이용하는 설계를 보여준 바 있는 Mendelssohn의 영향이 누구보다 컸다. 이 경향은 택지가 부족한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건축에서의 키치의 주요 테마로 활용되고 있다. 합리적 기능이 상실되고 장식적 기능만 남은 것이다.
건축의 영역에서의 키치적인 사고가 미국이라는 커다란 문명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키치가 '좋은 취미'와 갈등이 생기면 언제나 건축영역에서 제일 먼저 융합이 검토된다.
3) 음악에서의 키치
키치 음악의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테크닉은 불협화음이 전혀 없는 멜로디이다. 이것은 세계 어디서에서도 예외가 없다. 그것은 키치라는 양식이 중산계급이 부를 전유하는 과정 속에서 산출된 양식이며, 그러한 사회가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편안한 기분으로 듣도록 통합된 전체, 누구나 알고 있는 곡에서 채집한 멜로디를 대중사회에 맞도록 편곡한 형식이다. 몰르의 언급에 따르면 키치 음악은 일반적으로 경음악과 같은 장르에 속한다고 한다. '경음악'을 독일어로는 unterhaltungsmusik, 즉 unterhalten하는 음악이라고 부른다. Unterhalten이라는 독일어 동사는 분리동사로 사용될 때는 '밑에서 받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며, 비분리동사로 사용될 때는 '이야기를 하다, 누구와 무엇을 환담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즉 경음악이란 매일 매일의 생활을 '아래에서 받쳐주는' 것인 동시에 개인이 음의 세계와 끊임없이 주고받는 미적인 대화이며 환담인 것이다.
이런 미적 커뮤니케이션 영역인 음악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키치적 요소는 목적과 수단의 불균형 현상, 축적 효과와 공감각 효과, 중용의 현상 등이다.
목적과 수단의 불균형 현상은 오늘날의 음악이 그 본래의 주제 또는 목적을 상실한 채 물질적 성격만 강조하여 커뮤니케이션의 수단, 매체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대중적인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대규모 오케스트라가 동원된다든지 다양한 레퍼토리의 멜로디를 오르간만으로 연주한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음악적인 공감각을 실현하고자 각 음을 동시에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테크닉과 리듬의 변용 등이 동원되어 사용된다.
또 중용의 현상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는 교회음악이나 합창음악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곡들을 일상적인 음악으로 변용해 연주함으로써 일상성의 구조 속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Mendelssohn의 결혼행진곡이 아코디온 연주로, Beethoven의 제9번 교향곡이 브라스밴드로 연주되는 것 등이다.
키치 음악이 수용되는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가 거기에서 우리들의 지난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며 우리에게 낯익은 과거와 그 시절의 일상적인 추억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재인식이라는 이 요소가 키치 음악이 함유하고 있는 즐거움의 본질적인 요소 중의 하나이다. 음의 영역에서도 사회는 곧 문화적 관습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즉 Moles는 "음의 언어가 존재한다"고 하여 키치 음악이 가지는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언급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