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 김대현 법사 / bbs '장병의 시간']
좋아하는 것을 향해 열심히 해 나가는 마음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성장시키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집착을 하지 말라고 하면 그런 것까지 다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착을 내려놓으라는 말은 그런 뜻이 아니죠.
그저 돌처럼, 무정물처럼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말고 멍하니 있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집착은 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것, 우리를 가슴 뛰게 하는 것
우리의 열정을 끓어오르게 하는 것을 집착하는 대신 선호할 수가 있습니다.
이 차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머무는 바 없이, 집착하는 바 없이 마음을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바, 행하되 행함이 없는 무위의 삶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과에 대한 집착 없이 매순간 그저 선호한 것을 행하여보는 것이죠.
선호는 단순히 원할 뿐, 집착이 없는 순수한 동기입니다.
집착이 없다고 선호하는 것까지 없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선호는 결과에 대한 집착이나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강력한 힘을 지닙니다.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안 이뤄지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에
오히려 집착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로 나타나기 쉽습니다.
한쪽에서는 얻고 싶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얻지 못하는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이죠.
이처럼 집착에는 힘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함으로써 에너지가 분산되기 쉽습니다.
동시에 서로 다른 힘이 싸우게 되니 우주법계에서는 어느 한 쪽으로 힘을 실어줘야 할지를 모르게 됩니다.
그러나 순수한 선호는 집착도 없고 두려움도 없기 때문에
거기에 의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우주적인 힘이 붙게 되기 쉽습니다.
선호는 오로지 한 방향으로 힘이 집중됩니다.
안 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없이, 즉 반대로 이루어지는 힘 없이
그저 원하는 것을 선호하는 에너지 쪽으로만 힘이 집중됩니다.
바로 그때 '돼도 좋고 안 돼도 좋은'.. 여유로운 마음이 생겨나죠.
마음 내는 대로 그 무엇이든 가볍게 흔적없이 저질러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에 행위하는 그 자체로서 이미 충분할 뿐,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게 됩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무위의 행이 축제와 같이 매순간 이어지는 것이죠.
거기에 어찌 힘이 붙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과에 대한 집착이 없다면 자유롭게 그 무엇이든 마음을 내어 저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에너지가 생기고 열정이 생기고 톡톡 튀는 생기로움이 일어나겠죠.
그러나 집착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크게 실망하거나 주저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또한 실패를 통한 하나의 배움이라는 경험을 얻었음을 신기해하고, 또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도전할 겁니다.
실패로인해 실망하고 아파하는 데 보내는 시간이나 에너지 낭비가 선호에는 들어있지 않습니다.
자식의 좋은 성적에 집착하지는 말고 좋은 성적이 나오는 쪽을 조금 더 선호할 수가 있습니다.
집착은 좋은 성적이라는 결과에 대한 집착이지만
선호는 '나쁜 성적보다는 좋은 성적이 더 낫다' 라고 하는 단순한 선호일 뿐이기 때문에
설사 원치 않는 성적이 나오더라도 크게 괴롭지 않습니다.
선호란 말 그대로 단순히 선호일 뿐이기 때문이죠.
선호는 되든 되지 않든 큰 상관이 없습니다.
직장 상사나 선임병이 자꾸만 일을 맡기지 않았으면 하고, 또 나를 좀 내버려두기를 바라는 마음에 집착하기보다는
일을 좀 나에게 안 시키는 쪽을 선호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선호하게 되면 괴로울 게 없으니까요.
될 수 있으면 그쪽이면 좋겠다.. 하는 정도입니다.
일을 시키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저 받아들여 행하면서도 마음이 괴롭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집착하지 않고 선호하게 된다면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삶은 안정감과 평화를 찾게 됩니다.
이처럼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그 이면의 원동력이 집착인지
아니면 순수한 선호인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집착의 크기는 곧 괴로움의 크기이지만
순수한 선호는 여러분을 생기롭게 하고 깨어나게 하고 에너지 낭비가 없게 하면서도
매순간 열정이 넘치는 삶으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삶은 매순간 신기하고 새로운 도전이지 실패라는 것은 없습니다.
도전이 있을 뿐 실패가 없는 삶,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사실 우리 삶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또다른 성공이 있을 뿐이죠.
집착할 때에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왜곡해서 보게 됩니다.
상황 자체를 전체적으로 통찰하거나 상의상관적인 인연관계를 큰 틀에서 이해하는 길이 닫기고 맙니다.
돈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은 그 집착심 때문에 눈 앞의 돈에만 신경을 쓸 뿐
그것으로 인해, 크게 볼 때 결국에는 손해를 볼 수도 있음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사람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은 오직 그 사람을 내 사람으로 하려는 것에만 신경쓸 뿐
그 집착심이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떠나게 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데 네가 어떻게 배신할 수 있느냐?'고 말하곤 하죠.
스스로 자초한 일인 줄 모르고 상대방을 탓하는 겁니다.
이처럼 집착은 전체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삶의 시선을 빼앗아갑니다.
집착할 때 세상을 보는 눈이 제한되고, 비좁아지고, 왜곡되고 뒤틀린 채
전체를 크게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로운 통찰의 시야가 닫히게 됩니다.
집착에서 벗어나게 될 때 비로소 내 앞에 놓여있는 삶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나의 이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삶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인연에 따라 어떤 과보가 오게 될지에 대한
전체적이고 지혜로운 통찰이 뒤따르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정견의 시야가 열리게 됩니다.
그러면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가 어디에 집착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견해가 집착으로인해 제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자신은 올바르고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 집착하고 있는지 알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삶 속에서
나를 초조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하거나, 근심걱정하게 하는 것
그로인해 화를 잘내게 하는 것 등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어떤 때 내 마음이 평상심에서 벗어나게 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죠.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나, 그것을 할 때는 늘 심각해지거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또한
집착이 있을 때 나타나는 주요한 반응들입니다.
이런 반응들이 나타날 때마다 '집착이구나' 알아차려보십시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단지 받아들여봄으로써 집착을 내려놓아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집착하는 것을 단지 선호하는 것으로 바꿈으로써 심각도를 떨어뜨릴 수도 있겠죠.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 반응을 지켜보게 된다면
그 집착은 저절로 가벼워지고 삶에 대한 안목은 더욱 폭 넓어지며 지혜로운 견해가 열리게 됩니다.
※ 내 생각: 아마도 '선호'는 집착과 무원(원력)의 중간단계 내지는 '약한 바람(집착)'에 대한 설명이 아닌가 생각되고
소치올림픽에서 아사다마오의 쇼트는 집착, 프리는 선호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쇼트 16위, 트리플악셀 실패 → 프리에서는 마음 비우고 오히려 잘해서 종합 6위, 트리플악셀도 성공)
☞ 마음을 비웠더니, 매사에 의욕도 없어졌어요..<법륜스님> http://cafe.daum.net/santam/IQ3h/184
무주상은 집착보다 더 큰 에너지 <법륜스님> http://cafe.daum.net/santam/IQ3h/188
[탐심] 욕심을 다 버리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나? http://cafe.daum.net/santam/ITr2/11
집착과 노력, 욕심과 원 → 그 미묘한 차이에 대하여 http://cafe.daum.net/santam/IQZL/281
첫댓글 아~ 집착과 선호가 그런거군요
제가 궁금했던 부분이라 반가운 글 잘 읽고 갑니다 ㅡ 꾸벅...
고맙습니다 . . . _()_
고맙습니다. ()
집착을 버려야겠어요ᆞ고맙습니다~~~^ ^♡♡♡
삶 자체를 선호하는 식으로 살면 더욱 즐거워 질까요?
집착은 버리고 가볍게 살아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