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飽而肥, 一餒而瘠, 謂之賤畜.
短視者, 今日有不如意事, 便潛然洒涕, 明日有合意事, 又孩然解顏.
一切憂愉悲歡, 感怒愛憎之情, 皆朝夕變遷, 自達者觀之, 不可哂乎!
한 차례 배불러 살이 찌고,
한 번 굶어 수척한 것을 일러 천한 짐승이라 한다.
안목이 짧은 사람은
오늘 뜻 같지 않은 일이 있으면 낙담하여 눈물을 줄줄 흘리고,
내일 뜻에 맞는 일이 있게 되면 생글거리며 얼굴을 편다.
일체의 근심과 기쁨, 즐거움과 분노,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모두 아침 저녁으로 변한다.
달관한 사람이 이를 보면 비웃지 않겠느냐?
-<학유가 떠날 때 노자 삼아 준 가계[贐學游家誡]>
한 두끼 굶고 비쩍 마르거나,
한 끼 배불리 먹고 금세 표가 나는 것은 천한 짐승들의 일이다.
상황의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는 것은
군자의 몸가짐이 아니다.
이랬다 저랬다 감정의 기복이 잦은 것은
내면의 수양이 그만큼 부족한 탓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들뜨고 가라앉지 마라.
세상을 다 얻은 양 날뛰지도 말고,
세상이 다 끝난 듯 한숨 쉬지도 마라.
바람이 불어 흔들 수 있는 것은 표면의 물결뿐이다.
그 깊은 물속은 미동조차 않는다.
웅숭깊은 속내를 지녀, 경박함을 끊어라.
오랫동안
모든 것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했었다
이제 삶에 대해
좀 덤덤해지고 싶다
새로운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에
잠시 머무르는 것들,
그것에 대해 다정해지고 싶다
민감하기 보다는 사려깊게
좀 더 특별하고 편안하게
그래서 내면의 균형을 잃지 않은 감각과
타자의 가치에 휘둘리지 않는
해방된 힘을 갖고 싶다
-<전경린의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중에서
저는 한문학이 전공이 아닌 사람입니다.
그저 제 이름 석자 정도 한문을 알 정도입니다.
제가 한문학의 글을 올려 드리기 시작한 것은 이유가 있어서 였습니다.
제가 몹시도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딸 셋 중 언니는 지방에 살고 있고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막내딸은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가장 가깝게 사는 저는 둘째 딸입니다.
엄마와 딸 사이라기 보다 친구처럼 지내왔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날 낙상으로 다리 골절이 왔고
의료 파업으로 수술할 병원도 마땅치 않은 시간에
다행스럽게도 김관장님께서 아는 병원을 연결해 주시어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그 날이 1999년도 수능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앞집에 사는 맞벌이 가족의 딸이 수능을 보고 왔는데
부모가 모두 직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저녁을 먹지 못하였을 것이라 생각하시고
집에서 마련한 저녁을 가져다 주다 대문앞에서 넘어 지셨지요.
수술 받으신 요일은 금요일 저녁이었고
병원에서 어머니와 있다가 월요일 아침
당시 유치원에 근무 중이라 월요 조회를 하기 위하여
어머니 곁을 떠났는데 그 사이 뇌출혈이 생겼습니다.
어머니는 뇌출혈 일어난 그 날로부터 꼭 2년 힘든 시간을 보내시다
먼 길 떠나셨습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면..이런 죄책감으로 저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 병 간호를 위하여 천직이라 생각했던 유치원을 그만 두었습니다.
당시 이사장님이 바로 김관장님이십니다.
말씀도, 움직임도 못하시는 어머니의 병간호는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잠시도 누군가 지켜주지 않으면 어떤 상태가 올 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바로 잠이었습니다.
종일 병간호를 하다가 밤이 되면 쏟아지는 잠을 쫓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잠을 쫒기 위하여 노트북을 가져다 놓았고
마침 병원에 아시는 분이 있어 인터넷을 연결해 주셨습니다.
간호일기라 할까요?
힘든 제 상황을 보고 한 분이 정 민 교수님의 글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사실 더 힘들었던 것은 병간호보다 죄책감이었습니다.
제 가슴을 두드리고 손등을 꼬집어 피를 내어도 용서가 되지 않는 그 죄책감
담당 선생님께서 아니라고, 신부님께서 아니라고 하셔도
전 그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학부 졸업논문을 특수아동에 관하여 썼습니다.
말씀도 못하시고 드시지도, 움직이시도 못하시는 내 어머니
좌반구 출혈로 말씀 못하시더라도 제가 해드리는 음식이라도 드시게 하고 싶었습니다.
6개월을 음식 드시는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흡입성 페렴으로 중환자실 가시기를 수차례
재활선생님 가망없다고 안된다 하셨지만
정말 흔히 말하는 죽기 살기로 매달렸습니다.
하드막대로 혀를 한시간 이상 건드려 자극을 주고
얼음 입안에 넣으면 뇌가 제대로 작동이 안되어
얼음물이 기도로 들어 가 눈 빨개지시며 기침하시던 어머니
차라리 함께 죽는 것이 좋겠다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지나고 식사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한 분이 쪽지를 보내왔습니다.
글의 기품이나 품위를 위하여 음악 선곡에 신경을 써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소스를 알려 달라하셨습니다.
저는 한문학의 기품이나 품위를 위하여 이 글들을 작성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을 겪고 계시는 분들이
행여 저처럼 옛선인들의 글로 위로가 된다면,,하는 바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읽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소스를 막아 놓거나 원글에 제 감정의 글을 올리는 것도 많이 자제하였습니다.
누구나 행하는 일에는 나름대로의 목적과 그 보람을 찾고자 합니다.
제 원함은 힘들다 느끼면 한 없이 힘든 세상살이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일 뿐
전문적인 한문학의 코너가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행여
제 글에서 한문학의 품위를 손상시킨 일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 드립니다.
위 사진은 어머니 삼성의료원에서 나오시어
수원 노블카운티 너싱홈에 계실 때 사진입니다
제가 아직도 수원을 못가는 이유가
이 시간을 떨쳐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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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쪽지 주신 님, 이 글로 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글은 제 개인적인 글이 있어 소스도 스크랩도 막아 놓았습니다. 양해바랍니다.
새아침님 ~ 이제는 마음 편히 하시길 바랍니다 어머님의 진정하신 바램은 새아침께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사시는 것이니까요 사랑합니다
작은별님 걱정하지 마셔요. 시간이 약이라고 지금은 마음 편안합니다. 오히려 2년 세월 고통속에 계시도록 제가 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제 새삶을 나오고 나니 쪽지가 떠 클릭하니 지워지더군요. 감사합니다.
새아침님 감사드립니다 정중히.. 저 또한많이 힘든시간 헤매일때 아침님에 글을보게되엿어요 우연히 정성이 담긴 글과마음에 음악과함게주시는 글속에 이제는 자신을 버리구 마음을열구 그냥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에 이제야 감사에 글드립니다 그렇게힘든시간과어려운상황인되도 주시는 글은 늘 정겨움 포근한 이불속 같앗는뎅 ..감사드려요 늘 건강하시구요
시냇물1님 감사합니다. 전공 아닌 사람이 글을 올리려니 여간 조심스럽지 않답니다.^^* 덕분에 저희집에 한문학에 관한 책들이 많아졌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되었다니 다행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모님 인상도 좋으시고 인상이 참하시네요. 한시는 어려워서 어쩌다 보았는데 오늘 글을 보고 이런분도 있구나하고 느껴집니다. 뭔가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글이 잘안되네요. 저도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어려운 한시라 생각하지 마시고 현대시에서 그저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라 받아드리시면 조금은 부담을 덜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해 주신 마음..감사드립니다.
새아침님의 효심과 여리고 이쁜 마음이 느껴짐니다. 저는 아직 어머님께서 건강하시니 어머님에 대한 애뜻한 마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머님 병간호를 위해 천직을 버리신 새아침님은 진정한 자식입니다. 새아침님의 효심을 깊이 새겨갑니다.
아휴..제 불효의 짧은 자서전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한문학을 접하게된 동기를 말씀드리고 제가 한문학 전공이 아님을 밝히다 보니..이렇게 되었습니다. 어느 누군들 이런 상황에서 저처럼 하지 않았겠습니까, 죄인에게 주시는 위로로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고전문학쪽에 관심이 많아 한문학을 나름대로 공부를 하다가 정민교수님의 책을 사서 보았습니다. 제 책장에 한문학에 관한 책들이 제법 쌓여져가고 있습니다. 새아침님 글을 대하면 언제나 새아침님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어 좋았습니다. 마음의 가책....저도 가지고 있어 이번 글은 더욱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또한 새아침님이 주시는 한시들은 대부분 학습중에 있는 것이라 잘 보고 있어요..그래서 늘 감사드립니다.
하하 바로 이렇게 공부하시는 분들이 글을 읽고 계시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랍니다. 앞으로 좋은글 있으시면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글쓰기 권한을 바꾸어 놓겠습니다. 열심히 공부 하시어 인스턴트에 젖어있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젖어 들 수 있는 깊은 글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약간은 빛바랜 사진이 참으로 정겹게 느껴집니다. 이런 사진첩을 보면서 어머니를 회상할 수 있는 것도 다행입니다. 이제는 죄책감에서 해방되시기 바랍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운명이기 때문이지요. 그리움도 세월이 흐르면 퇴색되어 지듯이 어머님께 향한 죄책감도 퇴색되어지기를 바랍니다.^^* 한시를 올리면서 음악을 선곡하시느라 고생하시는 걸 아는데 아마 쪽지를 보내신분의 취향이 아닌듯 하군요. 개념치 마시어요. 이방을 찾는 분들의 취향을 다 맞추어 드릴수는 없잖아요. 전 아주 좋습니다. ^^*
제가 이렇게 긴 글을 올리게 된 이유는 무척 순박하신 분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기분을 상하게 하는 느낌은 전혀 없었습니다. 짧게 쪽지로 답해 드리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제 불효를 털어 놓게 되었습니다. 음악 좋으시다니 감사합니다. 음악은 제 취향이니 그대로 밀고 나가겠습니다.^^* 몸은 좀 괜찮아지셨는지요. 빠른 쾌유 기원드립니다.
딸을 키워보니 어머니에게는 딸이 있어야 한다는것 많이 느낍니다 말하지않아도 알아서 눈빛만 보아도 내가 하는행동 그대로 다하는것 보면 때론 흐뭇합니다...나도 딸중 막내이지만 그래도 어머니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하는데.....새아침님 어머니 많이 닮으셨네요....누구나 한번은 이세산 떠남니다 조금 먼저가서 자리잡고 계심다생각하면 덜 슬퍼집니다.....누가 그러더군요 이땅에 사는동안 고생이라고.....
친정 동네가면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어머니 빼다 박았다고..전 제가 더 이쁜 것 같은데 ㅎㅎ 딸이 있어 좋으시겠습니다. 언니나 저 둘다 복이 없어 아들 하나씩이라 가끔 이야기 한답니다. 길동님 닮았으면 착하고 이쁘겠네요. 어제 새삶나눔터 정기총회 준비하면서 여름 작은예수회 캠프에 갔더 사진들 보면서 지나고 나니 더 좋았던 시간으로 느껴지더군요. 길동님 모습도 보여 한참 보았습니다. ^^*
**오늘도 이 한 글이 가슴에 와 닿아 많은 위로겸 안위를 받고 갑니다...글을 대함에 생각과 마음에 깨달음이 있기에 기대어 쉼을 얻고 싶은것이 사람의 본능 아닐런지요...이곳에 많은 창들을 모두다 열어보지는 못하지만 시간이 나면 오래도록 보고 또 봅니다...어느 자리에 앉고 서심에 새아침님 늘 힘내십시요......참고로 닉네임(새아침)이 참 좋습니다.....
허브로님 감사합니다. 힘 내시라는 그 말씀에 힘이 납니다. 많은 시간 들여 하는 이 일이 과연 보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때도 많습니다. 돌아보니 어느새 5년이 되었네요. 내가 좋아하는 것일까? 남 좋으라고 하는 것일까? 남이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좋은것일까? 시간에 쪼달릴 때는 이런 생각도 들곤 합니다. 당장 곁에 손 뻗으면 넘어져 일어서지 못하고 우는 이웃들이 있는데 이 시간에 그에게 손 내밀어 잡아 주는 일이 더 보람된 일 아닐까..나이 먹어가고 몸 삐그덕 소리 들리니 이런 생각이 더 깊어만 집니다. 이 글 한 편 올리기 위해 쓰는 시간, 오십 중반을 달리다보니 꽤 긴 시간이란 생각도 들어서요. 닉네임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물 받은 닉입니다. 처음엔 남성적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에 드는 닉이랍니다. 늘 행복의 천사가 님 곁에 머물기 바랍니다.
가끔 이방엘 들어옵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참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리고 글 속에서 느낌니다..어떤 건 참 이렇구나 저렇구나..하면서 혼자서 고개 끄덕 끄덕.... 항상 고마움을 느껴요...뎃글은 많이 적질 않아도..어느분이 이렇게 고운 글들을 담아 놓으셨나...그래서 마음으로나마 기원올리옵니다..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면서..._()_
다와님 감사합니다. 허브로님과 다와님의 글을 대하니 긴 시간 펼치며 땀 흘린 마음에 훈풍이 도는 것 같습니다. 바삭거리는 마음에 요란하지 않은 빗줄기 내린 듯 합니다. 다와님 정보를 보니 문득 동생이 보고 싶어지는군요. 보고 싶어도 오랜 시간 비행기 탈 자신이 없어 보러도 못갑니다. 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고 자비속의 삶 이으시기 바랍니다.()
저두 그래요..보고싶어도..사실 비행기 탈 자신이 없어서 이년을 버텼지만...내년초여름즈음엔 동생들과 조카들 때문에 용기를 내어서 가 보려구요..감사해요.
글을 읽으며 많은 것을 깨닳게 하였습니다. 곁에 계실 때는 소중함을 잘 모르다 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님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어 알지만, 저는 아직 친정어머님이 살아계시기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살아계실제 잘 해드리려 노력하고 있답니다. 어느날 잘 아는 언니의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셨는데...그 언니가 저에게 하는 말씀이 어머님께 잘 해드리라는 말과 더불어 계실때는 전화도 자주 못드리고 거꾸로 어머님께서 전화를 자주 하셨는데..그때는 그 전화도 어찌나 귀찮 말씀이 잔소리처럼만 들리던지..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님의 목소리마저도 못 듣는다 생각하니 슬픔이 커다랗게 밀려오더라 하더군요.
아침이면 늘 전화를 하셨지요. 내용은 리바이블이 훨씬 더 많기도 했고요. 귀에 수화기를 대고 출근 준비를 해야 했던 그 시간, 돌아 보니 정말 커다란 행복이었던 것을..친구분의 말씀 맞습니다. 허니 꼭 자주 연락 드리세요. 쇼도 가끔 하시고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