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에게 당구 스승이 있습니까?'
얼마전 한국 아마추어 3쿠션 대회 지방 예선의 스케줄 협의를 위해 지방의 클럽들을 순회하면서 대전의 힐 당구 클럽에 갔을 때 그 건물 4층에 위치한 대전 당구 아카데미의 원장님이신 김용석 원로님을 뵙기 위해 들렀습니다. 셰빌롯 대대 한 대와 석 대의 포켓 테이블, 그리고 다섯대의 중대가 설치된 그리 크지 않은 공간입니다만 좋은시설에서 훌륭하신 스승님을 모시고 열심히 실력을 연마하는 회원들의 모습에 부러움을 느꼈고, 우리 당구의 발전을 위해 지방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고 계시는 원로 당구인을 뵙게 되니, 모두가 그분의 마음을 닮아간다면 어렵게 느껴지는 당구 발전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다지 멀고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용석 원로께서 후배인 이상천 선수 시합의 심판을 보아주고 계시는 사진입니다.)
그러다가... 입구로 들어서게 되면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곳에 걸려있는 우리나라 당구의 초대 명인이신 고 조동성님의 초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당구인들도 많은데 왜 그분의 초상화를 걸어두셨는지를 여쭈어보았고, 그에 대한 답을 말씀하신 것을 들었을때 작은 충격이 제 마음속에 생겨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김용석 원로의 스승이신 초대 명인 고 조동성님이십니다.)
'내 스승님이시거든. 당신의 당구를 다 이어받지 못한 부족한 제자이지만 그 높으신 가르침을 항상 마음속에 모시고 싶은 마음으로 초상화를 걸어두고 항상 존경하면서 바라보는 거야.'
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조금만 당구의 수준이 높아지면 말이 짧아지면서 아래 위를 가리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실력의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그리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잘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 우리 당구계의 한 행태임을 생각해 보면 김용석 원로의 이러한 마음은 후학으로서 정말 교훈으로 새겨야 할 아름다움이 아닐까 느껴봅니다.
어떤 면에서는 제가 그분들을 언급하는 것이 오히려 그분들을 욕되게 하는 일일 수 있을 것 같아 조심스럽기는 합니다만 제게 당구를 가르쳐 주셨던 분들을 이 기회를 통해 한번 생각해보고 그 가르침을 되새겨보려 합니다.
저의 첫 스승은 군대 생활을 마치고 복학했던 시절 학교의 당구 동아리인 'Billidemy'를 통해 만났던 후배 J였습니다. 일반 4구 지수로 80이었던 저를 300으로 만들어 준 고마운 스승이기도 하지만 그를 스승으로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당구를 통해 추구해야 할 방향성에 대한 제시를 해주었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 동아리의 회칙 'Nomos of Billidemy'(nomos : 율법)의 내용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당구인으로서의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이상은, 실력 향상을 위한 노력과 경기에서의 승리보다 먼저, 진정한 당구인으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닦고 연마하는 것이라는 고상한 이념을 최우선으로 하는 그였기에, 현재 오랜동안 당구를 치지 못해 실력이 줄어든 상태이지만 지금도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또 한 분의 스승님은 서초동 남부 터미널 근처에서 'Hustler'라는 클럽을 운영하시던 프로선수 출신의 K님이십니다. 당시에는 스포츠 신문에 작은 당구 강의들이 실리던 때였고 4구 지수 120 수준이었던 저는 그 것들을 일일이 스크랩 해서 항상 가지고 다니며 나름대로 연습하곤 했었습니다. 그곳에 드나들면서 제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던 부분을 여쭤볼때마다 귀찮아 하지 않으시고 그 공략법에 대해 세세히 가르쳐 주시곤 하셨었죠.
그러던 어느날... 제가 혼자서 연습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연습에 치중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뭔가 이상한, 누군가 저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그 분께서 캠코더를 들고 제 자세를 촬영해 주시고 계시더군요. 요즘엔 핸드폰에도 카메라가 달려나오고 디지털 캠코더도 많이 보급이 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아날로그 캠코더도 흔하지는 않았었던 것 같습니다. TV에 선을 연결해서 제 폼을 보여주셨을 때 전 정말 놀랐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만화 '슬램 덩크'를 보면 안감독님의 특훈 지시에 따라 주인공 강백호가 골 밑 슛을 연습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백호의 친구들은 옆에서 그의 슛 모습을 캠코더로 촬영을 해줍니다. 연습 후에 숙소에서 자신의 슛 모습을 바라보던 백호는 '이건 내가 아니야!' 하며 엉터리 같은 자신의 슛 폼을 부정합니다. 자신의 슛 동작이 멋질 것이라고 혼자 생각해온 백호가 비디오 화면에 비춰지는 자신을 보며 놀랐던 것 만큼 저도 어정쩡한 제 폼을 보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분께 캠코더를 통해 자세와 샷을 배운 이후 상당한 시일이 지난 후에 이 슬램 덩크라는 만화가 나왔지만 이 장면을 볼 때마다, 그리고 누군가와 자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비슷한 방법을 통해 저를 가르치셨던 그 분이 무척이나 그립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 선수이시며 인터넷 사이트 Total Billiard Korea를 통해 롱고니 큐와 아담 큐의 에이전트를 하고 계시는 K선수의 친 형님이시더군요.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클럽을 정리하셨기에 오랫동안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었습니다만 지난번 정말로 대회 전주 투어에서 동생이신 K선수와의 만남을 통해 그분의 근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당구 관련 업종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계시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분을 그리워하고 있는 만큼 꼭 다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위 두 분의 도움으로 300이라는 지수가 되었지만 먼저 소개한 후배 J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구를 멀리하게 되었고, 뒤에 소개드린 K님도 갑작스레 클럽을 정리하셔서 연락이 오랫동안 끊겨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인터넷이라는 것이 PC방들의 등장을 인해 활성화되게 되었고 '당구'라는 검색어로 검색을 하다가 현재의 스승님이신 C님께서 운영하시는 인터넷 당구 동호회 '당구매니아클럽'의 초창기 회원으로 가입을 하게 됩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당구 서적 '당구 매니아', 그리고 '스리쿠션 매니아'의 저자이신 이 분과의 만남을 통해 그동안 잘못하고 있었던 기초 부분을 다시 배우게 됩니다. 제 사제인 김병기(닉네임 도마뱀 대구BMC 운영자)와의 인연도 이 분께 공을 함께 배웠던 것에서 시작되었었구요.
아직까지도 이 세분께서 제게 가르쳐주신 모든 것을 깨우치지 못했습니다. 저의 영민하지 못한 재능과 게으름으로 인한 것이기에 이 스승님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에 앞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물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공을 배웠기에 이 스승님들 외에도 제게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인천 선수회 소속으로 한동안 당구를 떠나셨다가 얼마전에 다시 돌아오신 C님, 경기도 선수회 소속으로 산본에서 클럽을 운영하시다가 지금은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셔서 클럽을 운영하시는 C님, 역시 경기도 선수회 소속이시며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탑 랭커의 한 분이시고 일산에서 클럽을 운영하시는 L님, 함께 당구를 고민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연구를 아낌없이 알려주시는 전북 선수회 소속의 S님, 대한당구연맹 포켓이사와 서울당구연맹의 전무이사로 수고하셨고 서초동에서 클럽을 운영하시는 P님...
어떤 분들은 자신의 당구가 자기 혼자 배운 것인 것인양 실력이 높아질수록 의기양양해 하면서 심한 경우 오만과 독선의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스승 조동성님을 존경하며 그리워하시는 김용석 원로님의 그 고상하신 마음을 잠시 엿보며 이러한 마음들이 많아질수록 따스하고 아름다운 풍경들이 더 많이 생겨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당신에게 당구 스승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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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노출증환자님의 자료입니다..
잘 보았습니다!>.음..스승이라.!..배움이라는길을 열어 주신분이라면..신길호 선생님입니다!..저한테는..^^
전 있습니다!!! 좀전까지도 한수 배우고 왔는걸요,,,ㅋ 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나타나는 절 언제나 반겨주시는 선생님!!감사드립니다...
좋은 선생님 이시죠..^^*........ 그런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인천에....ㅎㅎㅎ회장님이시라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