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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칼럼]추수감사절의 역사적 유래
장 자 옥 목사/간석제일교회
추수감사절이 지켜지게 된 역사적 유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영국 국교의 핍박을 받던 청교도들은 마음대로 전도하고 마음대로 교회를 조직할 수 있는 신앙의 자유를 찾기 원했다. 그리하여 1620년 스피드웰(Speedwell)호와 메이플라워(Mayflower)호, 두 배가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스피드웰호는 항해도중 물이 새 들어와 되돌아오게 된다. 이들은 배를 수리해 다시 출항하지만 불행하게도 항해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메이플라워호 혼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항해에 성공해 프리스머에 도착하게 된다. 이 배와 함께 떠난 가구 수는 70가구였고, 인원은 102명이었다. 이들은 12월 21일(어느 자료는 11월 29일로 되어있음) 프리스머에 무사히 상륙하게 됐지만 무서운 겨울을 지나고 보니, 추위와 식량부족으로 약 절반가량이 죽고 말았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었고, 부모를 잃었으며, 아내를 잃고 남편을 잃었다. 악몽 같은 겨울을 보내고 다음 해 봄이 됐을 때는 남자라고는 27명만 남았다. 그 중에 장정은 21명 뿐이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었다. 이렇게 해서 3년간의 천신만고 끝에 수확을 얻은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당시, 프리머스 식민지 장관(지사)이었던 윌리엄 브래드 포드는 감사절 선언을 이렇게 했다. “위대한 하늘 아버지께서 옥수수와 밀, 완두콩, 땅콩, 호박 등 많은 채소를 풍부하게 거두게 하셨고, 인디언들과 맹수의 위험에서 우리를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셨다. 우리 순례자들이 이곳에 도착한지 3년 만인 1623년 11월 29일 목요일 아침, 여러분 모두는 부인들과 자녀들에 이르기까지 예배당이나 동산에 모여서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께 그의 축복에 대하여 예물을 드리며 감사절을 지킬 것을 나 지사는 선언합니다.”라고 했다. 그 후 1789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이 첫 경축을 기념하기 위해 감사절을 선언했다. 그러나 제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감사절을 ‘왕정의 관습’이라 하여 폐지시켜 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는 추수감사절은 몇몇 주에서만 소규모로 지켜졌고 또 정확한 날짜를 알 수가 없어 그들의 생각대로 지켜지게 됐다. 그런데 1828년 어느 잡지회사의 편집장이자 작가인 헤일 여사가 추수감사절 복구를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등 그녀의 헌신적 노력에 의해 링컨 대통령은 1836년 11월의 네 번째 목요일을 공식적인 감사절로 선언했고, 1941년에는 미국 의회에서 공휴일로 통과되게 됐다.
첫댓글 추수감사절 말고 초막절을 지키세요들~~~
미국 국민도 아닌데 왜 따라하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