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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 계속하여서.....
종로초등학교와 양키시장 편입니다..
경상감영 선화당은 수리중이고...
그 앞뜰의 나무 모양이 재미있어서..
정자도 ....
우체국은... 자리는 옛날 그대로인데 건물은 새로지은 신식 건물로 바뀌었다... 길옆으로 둥그스럽한 빨간 우체통이 있엇던 자리에는 네모난 신식? 우체통이 있구나..
우체국을 지나면서 중앙로쪽으로의 모습... 이 길이 참 큰 길로 기억하는데 지금보니 왜 이렇게 좁아 보이나..
만경관은 아직 영업하시는 모양이지??..
길건너 경찰서 건물도 그자리에 있고.. 그 옆으로 길따라 쭉 가면..
학교 길 답게.. 인도 구분이 확실하구나... 안전상 매우 중요한 구분이다...서울에도 초등학교 주변에는 이런식의 인도 구분이 있으면 좋겠다....
소방서 가기전에... 종로 초등학교 이정표가 나온다... 얼마만인가... 반갑다..
긴데... 왠 유치원??? 아마도 학생이 모자라는 모양이지??
그래서... 입구에 간판이 두개 구나... 어찌 되었던 아직까지 그자리에 그대로 있어준 것만해도 고맙다...
정문 건너편에는 빵집이 있었는데 약국으로 바뀌었구나... 그 빵집의 식뻥 맛이 그립다..
소방서도 그 위치에 그대로고... 다만 정오에 시이렌을 울려주던 망루는 보이지 안는다...
경찰서와 소방서 사이에 학교 입구 길... 포징이 잘 되어있다....좁아 보이지만 어쩌리요...
옛날 자리에 그대로 있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요새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주차 공간도 무시 못할 정도로 필수적인 공간이 된 모양이다.. 바닥 정리가 잘 되어있다.
초등학교 전경... 우리가 다닐 때 목조건물은 헐어 없애 버렸고 건물 뒤편으로 새로 지은 콘크리트 건물을 3층으로 증축하여 쓰고 있는것 같다..제비 모양을 본뜬 학교 마크가 반갑다...
철봉대와 모래사장... 그리고 저..담장...다 그대로인 것 갔다... 아련히 50여년 전의 추억이 하나하나 생각나는구나...
축구 꼴대... 그 때는 꼴대가 없고 대신에 발로 적당히 간격을 재어서 적당한 크기의 돌맹이로 골 위치를 정하고...
만약 공중볼의 경우.. 골키퍼가 손을 들어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은 노꼴로 하기로 하고 공을 차고 놀았다...이 운동장에서..
유치원 취향의 건물 장식??
식당이 아이고... 영양 급식소랍니다...
견물 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이 학교 동문중에 가장 출세 하신 양반??? 전모 대통령 내외분... 여기를 함 방문하신 모양이다...
소인과는 달리... 환영이 대단하시다..
위층으로 올라가는계단... 내 기억상의 계단은 건물 밖으로 난 것 같은데.. 증축하면서 안쪽으로 만든것 같다..
지역 구민들이 이용하시기도 하는 모양이다..
윗층에서 보이는 유치원 원생들의 놀이터??
교실 안의 풍경... 학급당 인원이 한 30명 정도??
5학년 1반 교실도 있고..
과학 실습실??
6학년 2반도 있다...아마도 학년당 두 학급만 있는 모양이다...나는 6학년 3반 출신인데??
건물 내부의 벽보판에...
저 정구장 자리는 예전에 풀장-- 그 때의 발음대로 라면 뿌루장-- 자리였다... 메꾸고 지역 주민들의 정구장으로 쓰고 있다..
축구 꼴대 뒤로 보이는 저 담장은 옛날의 추억이 많이 생각나는 곳인데...
이 나무는 건물 구관과 신관 사이에 있던 걸로 기억된다..... 그때는 그냥 큰 나무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 나무에 이름을 부쳤구나...
이 곳애서 최제우 선생이 최후를 마친 곳이란다... 그래서 나무 이름을 최제우 나무라고 지었답니다..
이 담장은 ... 그 때에는 가시 철조망이 위로 쳐 있었다.. 축구하다가 공중볼을 잘 못차면 이 담장위로 날라와서 철조망에 걸리곤 했는데..
결렸다 하면 그날은 그걸로 상황 끝이였다,,,
축구볼이 가죽 겉피는 없고 속의 말랑한 고무공이라서.. 걸렸다하면 픽 소리와 함께 바람이 새 나갔으니..
그대로 그날 공차기는 끝이였다,,,. 수리해서 다시 쓸려면 며칠 결렸었고...
지금은 그 원수? 같던 철조망이 없어졌구나..
이 자리는 일본애들이 신성시 하던 신사자리로 기억하는데.. 큰 나무 몇개만 남아있다..
다시 유치원 교실을 돌아가다보니...
어느 아저씨인가... 정말 바보 아니신가...?
학교 뒷문이다...
나는 주로 이 뒷문으로 많이 다녔다..집에서 더 가깝고...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아서..
역시 앞문과 같이 인도 쪽으로 안전하게 구분을 해 놓았다..보기에도 참 좋다..
저 코너 자리에는 국화빵집이 있었고...
다시 중앙로.. 향촌동 쪽으로...도로 바닥은 잘 정리 되어있다...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의 주 통학로..
향촌동 시장 골목...술집이 많이 있던 곳이였는데,, 지금은 아닌 모양이다...
다시 대구역 쪽으로..앞 오른쪽은 옛날의 상업은행 건물...
이 중앙로 코너의 좋은 위치에 있던 은행 건물이... 지금은 비어있다... 쓸 곳이 그렇게도 없나???
이 거리도 벌써 역사 속으로 무쳐가시는가??
중앙로 건너... 자유극장 쪽으로...
다시 옛날 상업은행 자리... 이 자리에 이런 건물이 비어있으니..참....
도심 한 가운데서 황량함을 느꼇으니..무엇이 이 곳을 이렇게 만드셨나???... 대구의 주산인 팔공산을 잘 못 모셨는가??
팔공산 정상에 함 올라가 보시라..우리가 즐겨 찾던 때의 그 모습과 너무나도 달라졌으니...
어느 곳을 가 보아도 그 도시의 주봉을 이렇게 학대? 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눈으로 보이는 철탑만 그 몇개 이던가???
할아버지 산의 정상의 정수리에 그렇게 수 많은 못을 박아 놓았으니???
중앙로... 그때는 중앙통이라고 불렀었지??
대구역 방향으로...
중앙로를 건너서... 금은방이 많던 거리였는대 아직도 몇몇 점포가 있다..
자유극장 자리는 이렇게 상호가 바뀌었고..
그 옆 골목쪽으로... 피난살이 하면서 살던 집이 이 부근이다..
저 철계단위는 극장 간판을 그리던 곳이였고... 그 때는 이 극장 간판 미술? 수준이 아마도 대구에서 최고였지??
골목안으로 들어가면 피난와서 두번 쩨 살던 살림 집이 있던 곳인데... 이제는 헐리고 없다.....
재개발을 하는곳인지 이닌지 ..주위를 둘러볼려니 아무 것도 볼 것이 없다고 말해주는 친절함만 ....
이 중국집자리에는 제법 고급 양식당이 있었고...영감하고 몇번 식사를 한 기억이 새롭다..
........ 이 골목애서... 위의 종로초등학교까지 근 6년간을 다녔다...
골목을 벗어나니... 바로 중앙로...
송죽극장은.... 옷가게로 바뀌었고...
송죽극장 건너편의 옛날 우리집 가계도.... 아마도 여기였지??
아니면 이 곳 정도였으리라...하도 거기가 거기 같아 헷갈린다...이 근처에서 근 20년간 양품 장사를 하셨지...
여기서..교동시장 쪽으로.... 양키골목이라고 이제는 공식? 명칭인 모양이다...
길 건너가면서...동성로 쪽으로...대구 제일의 번화가였는데... 지금도 그 명성이??
양키 골목?안... 여기도 사긴이 멈추어선듯... 바닥이 잘 정리 된것 말고는 옛모습 그대로 인듯...
시장 골목 ? 들어와서 천번째 "T" 자형 갈림길이 나있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자기 점포를 갖게 된 곳인데...누가??? 우리 부모님이...
피난민 시절 초기에 길가에서 노점상을 한참이나 하셨던 시절에 이 건물 주로 부터 들어와서 장사를 하시라고 권유를 받으셨단다...
처음에는 장사가 될까하고 많이 망설였지만 함 점포를 차리고 처음으로 집안?으로 들어가신 곳이 여기였다..
그 전통?은 어찌할수 없는 모양이지... 지금도 수입품을 전문으로 하시는 점포가....
그 시절애는 길가에서 행인을 직접 상대해도 장사가 될끼 말까 할 정도였는데..안으로 들어가면 더더욱 어렵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하셨던 모양이다...
여기에 평양에서 약국을 했던 점포의 상호명을 그대로 써서... 소위 샹호를 걸고 대구에서 개업을 하신 곳인데...
안정된 점포를 갖게 되니...노점상은 매일 그 자리가 바뀌었단다...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였으니...
길안으로 들어가 가게를 차리게 되니 그나마 안정?된 손님들이 찾아들게 되고... 따라서 장사도 안정이 되셨단다...
....시장안은.... 바닥이 깨끗하게 정리된것 말고는 ... 그 때와 비슷한 정도???
그 시절의 시장 상인 대부분은 이북에서 남하한 피난민들이였다...
그 절망적인 상황하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악착같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오래지 않아 고향땅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날을 기다리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내 기억상으로도... 그 암담했던 시절에도... 이 분들은 낭만을 잊지 않고 계셨으니...
철마다 한두푼씩 추렴을 해서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같이 하시곤 했다...
그 때 같이 부르던 애창곡은 예외 없이... "타향살이 몇 해던가?"...였으니...
사장을 약간 벗어난 곳에... 골목안으로 들어오면... 지금은 기억이 아물하지만 파난외서 첫번째 살던 집이 이 부근 이였으리라....
이곳에서 노점 할 물건과 기구를 준비했다가 통금이풀리자 마자 잠울 싸들고 시장안으로 달려가곤 히셨으리라...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그 시절에 내 남동생을 잃게 되었으니... 디프테리아 전염병으로...
열이 펄펄나는 아이를 바로 데리고 병원으로 갈수가 없었으니.. 통금 때문에...
나중에야 알은 것이였지만 그대로 업고 갔으면 될것을... 이북 생각만하고... 북에서는 통금 시간에 밖으로 나가면 무조건 총질을 당하였단다...
통금이 풀린시간에 병원에 달려가니... 이미 애는 죽었더란다... 고인?의 나이 생후 여섯달 밖에 안된 젖먹이가... 낯선 대구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동생을 앞산 어딘가에 묻고 돌아오신 아버님이 손에 들고 오신 할미꽃 한송이가 아직도 기억속에 아련하다..
그 때는 살기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자식을 잃어버리고서도 눈물 한방을 안 나오시더란다...
그저 "우리 살게 해 줄려고 네가 먼저 가는구나" 라는 생각 뿐이셨단다...나무괸세음보살...
생활이 조금 안정 되고 나서 그 잘난? 아들 하나 더 얻을려고.... 내리 셋을 더 생산 하셨지만...
내리 셋이 다 여식아 뿐이였다... 역시 팔자란 어찌 할수 없는 것인가??
피난와서 비교적 생활이 안정된 시기의 동문동 집으로 가는 길... 이제는 전자상가가 가득하다..
수형당 빵집이 있던 길이였는데...
집으로 들어가던 골목 모퉁이의 파출소는 그대로 자리에 있는데... 비교적 고급 여관이였던 문화여관 자리는 이제 할리고 빈터만...
그 옆의 교장 선생님 댁은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지붕만 새 것으로 간 것 같고... 너무 반갑다... 다 들 안녕하신지..
이 집도... 이제는 문화재 급인 모양이다...하긴 적어도 100 년 정도는 되었으려니...
골목안에서 동네 야구를 하던 갈림길에는 이제 차만 가득하고...
내 호적상의 본적지인 이곳 동문동 1 번지는 집은 없어지고 그 빈자리에 주차장이 ...
이 곳 공터 대부분이 마땅히 지을 건물이 없는지.. 거의 다가 임시 방편으로 주차장으로 쓰고 있다 ...
이런식의 주차장은 시내 곳곳에서 삐진 이빨 자국처럼 도시 풍광을 "영 아니올씨다"로 만들고 있다...
다시 방향을 잡아... 대구시청쪽으로 가보자...
대구 시청... 역시 관공서는 굳세어라...뒤로는 신축한 건물??
시청 앞으로 큰 길이 났다... 나는 처음 가보는 길인데.. 방향을 잡아서 부속 중고등 쪽으로 가보자...
이정표는 친절하지만... 나는 영 생소하다... 하여튼 계속 가보기로 한다..
큰 길의 거의 끝나는 부분의 교차로에서..멀리 낯이 익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하...얼마만인가...
부속 초등학교는 자리는 그대로 지만 완전히 새 건물로 단장 한 것 같고...
중학교 뒷문 쪽으로..이 길도 많이 커진것 같다...
드뎌... 저 수양버들이 눈에 익고... 학교 뒷문이 보인다...학생들도... 아마도 우리 후배들이겠지...
이 나무 그늘아래 운동장에서는 주로 야구를 했었고...운동장 건너 강당건물이 반갑다..그 옆의 벽돌 건물도...
이 고등학교 건물은 새로 지은것 같다...
이상 종로초등과 양키 골목은 마치고... 후속 부속 중고등 편으로 이어집니다...
첫댓글 50년전의 서사시...대단한 기억력이네. 종로옆 진골목에서 불로막걸리 한사발은 하였는가. 내가 술빚이 있는데 말일시..
빚은 무슨...불로막걸리라... 참 묵고싶다... 진 골목이 어디고??
중앙통쪽으로 종로와 나란히 가는 좁고 긴(사투리로 '긴'이 '진'으로 바뀜) 골목... 진골목식당, 등나무식당. 예전식당 등 노타리들이 주로 찾는 추억의 주점들, 시에서 보존하는 곳이라지. 대구명주가 불로막걸린데 모르면 원래 대구사람 아닌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