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씨가 사랑하는 아들과 이별하게 된 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던
15일 발생한 교통사고 때문이다. 새벽에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임군은 택시를 미처 보지 못하고 부딪혔다. 심정지가 온 임군을
119 구급대가 심폐소생술로 살렸지만 크게 다친 뇌는 수술 후에도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임군은 뇌사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게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임씨 부부는 19일 최종적으로 뇌 CT
(컴퓨터 단층 촬영)를 찍어봤지만 뇌사 판정엔 변함이 없었다. 그러자 임성훈씨는 아들의 장기기증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기증 같은 건 안 하려고 했다. 하지만 뇌 사진 찍고
나서 집사람과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니 착한 아들 헌태가
착한 일하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군의 할아버지,
할머니 등 가족들과 논의를 거쳐 아들을 떠나보내 주기로
결정했다. 임씨는 “아버지에게 ‘헌태 장기는 누구 몸에
들어갈지 모르지만 살아 숨 쉬고 있을 거다. 그렇게
나도 위안 삼고 싶다’고 말했더니 ‘너 알아서 해라’고
해서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고 했다.
결국 임헌태 군은 21일 수술대에 올라 자신의 폐와 간(2명),
췌장, 신장(2명), 심장을 남들을 위해 나눠줬다. 장기뿐 아니라
피부 조직도 100명 넘게 기증했다. 임씨는 “병원 앞에서
수술이 끝나길 기다리는데 앰뷸런스들이 하나씩 들어와서
장기를 가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힘들게 오래 수술하면
우리 헌태가 얼마나 힘들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좋은 일
했다고 생각하며 참았다”고 말했다. 임군은 23일 가족과 친구
50여명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부산추모공원에 안치됐다.
임군은 평소 임씨 가족에게 듬직하고 착한 아들이었다.
1남1녀 중 맏이로 전교 1~2등을 다퉜다.
격투기 사범을 했던 아버지를 닮아 농구, 축구 등
스포츠도 곧잘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고
가족들에게도 늘 살가운 존재였다. 임군은 "나중에 크면
검사가 돼서 나쁜 사람 잡고 착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그래서 공부와 운동,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자 노력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해
검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착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던 꿈은 현실이 됐다.
< 중앙일보, 정종훈 기자... 20190926 게재 인용 >
중앙일보 기사 내용을 읽고 또 읽으며 마음 아팠다.
문득 오래전의 울 아들 기증이 오버랩되며 떠올랐던
까닭이며... 임헌태군이 중3이고, 아들은 고1이었기에
더 마음이 아렸던 것이다. 중앙일보 등 여러 신문에
2000년 3월,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난 강석민 기사가
게재되었었다. 행복하게 맘껏 살아갔어야 하는 데...
< 올림픽공원 추모행사 2014.9.13.
한 학생이 추모 그림과 글을 남겼다 >
뇌사장기기증 가족의 슬픔과 아픔...
이루 말할 수 없는 그 선경험(先經驗)들...
가슴 아파하는 많은 분들과 함께... 눈물 훔친다.
임헌태 군의 아름답고 멋진 마지막 모습에 감사하며...
모든 가족분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간절히 전한다.
R.I.P. Rest In Pe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