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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12)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 라헬
라헬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떠오른다. 스칼렛 오하라는 아름답고 예쁜 여성이지만 아주 강인하고 용감해 서슴없이 자신에게 다가온 역경을 피하지 않고 극복하는 매력 있는 인물이다. 소설의 인물인 스칼렛 오하라를 배우인 비비안 리가 잘 표현했다고 당시 비평가들은 칭찬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독백하는 비비안 리의 마지막 대사는 오늘날까지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이 대사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뽑은 명대사 100개 중 1위라고 한다.
야곱은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 중에서 라헬을 더 사랑했다. 라헬은 곱고 아리따운 자태를 지닌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시대를 초월해 남자가 예쁜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만고(萬古)의 진리인가 보다. 라헬은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열정적인 성격을 지녔다. 어쩌면 시어머니 레베카와도 닮은 점이 많아 야곱이 매력을 느꼈다는 생각도 든다.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단 한 가지 자녀운(子女運)은 없었다. 언니인 레아가 자녀들을 계속 갖게 되자 질투심에 불타 자신의 몸종을 통해서 야곱의 아들을 낳았을 정도이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노력한 끝에 라헬도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환호했고 기뻐하며 아들을 더 가지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레아의 큰아들이 합환채를 밭에서 가져왔다. 아랍인들은 합환채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고 뿌리는 독성이 강한데 약간의 마약 성분이 들어있어 임신촉진제로 알고 있었다. 중동지역에서는 수태력 증진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식물이었다. 라헬은 레아의 큰아들이 가져온 합환채에 눈독을 들여 결국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당돌하고 적극적인 행동은 훗날 야곱과 언니 레아 등 모든 식구가 아버지 라반의 집에서 몰래 도망칠 때 나타났다. 야곱도 모르게 집에서 수호신 상을 훔친 것이다. 사흘 만에 야곱 식구들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난 라반은 야곱 일행을 쫓아가 잡고는 왜 집에 있는 수호신 상까지 훔쳤냐고 화를 냈다. 라반은 야곱 일행의 숙소와 짐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수호신 상을 찾아내지 못했다. 맹랑한 라헬이 낙타 안장 속에 집어넣고 자신이 깔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수호신 상은 보통 나무나 은으로 만들었고 점을 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고대 세계에서 이 가정의 수호신 상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라헬은 자신은 지금 월경 중이어서 낙타에서 내리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처럼 라헬은 자신이 원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성격이었다. 라헬은 여정 중에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질투심이 강했고 욕심과 집착도 심했던 라헬은 가족 묘지가 아닌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외롭게 묻혔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예레미야와 고통의 신비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km가량 떨어진 곳에는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톳”(예레 1,1)이 있습니다. 그의 고향이 아나톳이라는 점에서 예레미야가 사제 에브야타르 가문 출신임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에브야타르는 다윗 왕실에서 차독과 함께 사제 직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윗이 세상을 떠날 무렵, 아도니야 왕자와 솔로몬 왕자 사이에서 왕위 경쟁이 일어났는데, 이때 에브야타르는 아도니야의 편에 섰다가 좌천되어 고향 아나톳으로 쫓겨가게 됩니다. 대사제의 자리는 솔로몬을 지지한 차독이 차지하고요(1열왕 2,26-27.35). 아무튼 예레미야가 아나톳 출신이라는 점은 그가 에브야타르 사제의 후손일 가능성을 말해줍니다.
예레미야가 활동한 시대는 기원전 7세기 후반 요시야 임금 때부터 유다 왕국이 멸망한 6세기 초까지입니다. 그야말로 격동기였는데, 당시 대국(大國)인 아시리아의 몰락(기원전 612년)과 유다 왕국의 몰락(기원전 587년)이 일어난 때입니다. 사실 비극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앙이 다가오는 낌새를 알아차리는 혜안이 필요한데, 옛 이스라엘에서는 예언자들이 그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의 죄가 쌓여 한계에 달하는 기색이 감지될 때마다 ‘나팔을 불어 경고하는 파수꾼’(예레 4,5-6)처럼 백성에게 회개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순간 파수꾼 나팔을 불었던 예언자가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스라엘 역사상 예언자가 겪는 고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이도 예레미야입니다. 자국에 닥칠 재앙의 기운을 감지하고 동족에게 경고를 보냈지만, 오히려 백성은 거짓말로 불안감을 조장하는 예언자라고 그를 매도해 평생 괴로워해야 했던 사나이입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
윤동주 시인의 이 시구는 예수님을 향한 것이지만, 예레미야가 예언자로서 살다 간 모습도 그려보게 해줍니다. 그가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 그리스도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미리 걸은 예언자라는 점 외에도, 말씀을 전하라 하시는 하느님과 들으려 하지 않는 백성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열한 삶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들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백성(2,35)과 그런 오만함 때문에 당장은 당신 백성을 구해주실 생각이 없으신 하느님 사이에서 찢어지는 고통을 그는 체험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오는 정반대의 감정, 말씀이 주는 기쁨(15,16)과 그 말씀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15,17-18)을 한 몸에 껴안으며 동시에 그로 인해 갈라져야 했던, 어찌 보면 그리스도만큼이나 격렬하게 고뇌했을 예언자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전달한 신탁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결국에는 동족이 미래를 옳게 설계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었으니, 마침내 행복한 사나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레미야가 박해를 무릅쓰고 전달한 말씀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은 망국의 비극을 극복하고 바빌론 유배 뒤에도 민족 정체성과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우리의 마음 밭은 어떠합니까?(마르 4,1-9)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말씀과 함께 시작된 예수님의 복음 선포 활동은 이제 본격적인 궤도에 오릅니다. 열두 명의 제자를 뽑으시어 갈릴래아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시고, 그들의 고통과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해 주시며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바로 당신을 통해 온전히 드러나기 시작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당신을 찾아온 이들이 하느님 나라의 놀라운 신비를 쉽게 알아듣고 올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런 가르침 가운데 마르코가 가장 먼저 전하는 비유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지닌 능력과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올바른 태도를 설명해주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밭에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어떤 씨는 길에 떨어져 새들이 먹어 버렸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 햇볕을 견디지 못해 바싹 말라버렸고,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씨는 좋은 밭에 떨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2000년이 지나 전혀 다른 문화와 지역에 사는 우리가 이 비유를 들으면 ‘도대체 씨를 뿌리는 그 사람은 왜 씨를 아무 곳이나 함부로 뿌리는 거지? 농사를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인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이 비유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지역의 파종법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밭을 갈아 이랑과 고랑을 만든 다음, 고랑에 씨를 뿌려 농사를 짓거나 아예 못자리에서 모를 어느 정도 키운 다음 그 모를 논에 직접 옮겨 심는 이앙법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의 경우, 씨앗을 바람에 날리면서 밭에 뿌리거나 나귀 등에 씨앗 자루를 실어 놓고 자루 밑에 구멍을 뚫은 뒤 나귀를 돌아다니게 하면서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 이유는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은 돌이 너무 많아 경작이 어려웠기 때문이고, 또 땅을 개간하여 농토를 만들어도 땅속에 돌이나 가시나무 잔뿌리가 많아 파종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씨앗은 길가나 돌밭, 또 어떤 씨앗은 가시덤불에 떨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씨를 뿌리는 농부는 그저 자신이 뿌린 씨가 좋은 밭에 떨어져 뿌리를 잘 내리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씨앗은 누구에게나 전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배움이 높건 낮건, 시간이 많든 적든 하느님의 말씀은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전해질지 모릅니다. 다만 그 말씀의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밭에 달린 문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지닌 놀라운 능력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서른 배를 넘어 백 배, 아니 그 이상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은 어떠합니까?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3) 요나서
누구에게도 예외없는 하느님의 보편 사랑
구약 성경 예언서 가운데 요나서 만큼 그리스도교 성미술에 영감을 준 경전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미술가들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어른들이 자녀들과 아이들에게 요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신앙생활의 교훈을 전승해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나 예언자의 됨됨이보다는 흥미로운 삶의 여정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중 요나를 언급하셨죠. 주님께서는 당신께 기적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청을 거절하시면서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39-4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의미가 무엇보다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실현하는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죠. 실제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주님 부활로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셨다”고 선포합니다.(1코린 15,4)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은 요나서를 오바드야서 다음, 미카서 앞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우리말로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이는 구약 성경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종종 사용되기도 했습니다.(호세 7,1; 11,11; 시편 74,19)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그리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어 요나를 음차해 ‘Ιωναs’(요나스), ‘Ionas’, ‘요나서’로 표기합니다.
요나서는 “주님의 말씀이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에게 내렸다”로 시작합니다.(1,1) 그래서 요나 예언자가 기원전 8세기 북 왕국 이스라엘 예로보암 2세 임금에게 이스라엘의 땅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던 ‘요나 벤 아미타이’(2열왕 14,25)와 같은 사람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학계에서는 예로보암 2세 때 활동했던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는 ‘국수주의자’인 반면 요나서의 주인공인 ‘만민 보편 구원주의자’로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 볼 수 없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기원전 539년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대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은 복속된 민족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우호 정책을 폅니다. 키루스 임금은 기원전 538년 칙령을 반포하고 유다인들을 해방시킵니다. 바빌론 포로 유다인 가운데 4만 9897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귀환자들은 즈루빠벨과 에즈라·느헤미야의 지도로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합니다. 즈루빠벨은 예루살렘 성전을 기원전 515년에 준공해 봉헌합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재조직했죠. 그리고 사제이며 율법학자인 에즈라는 이스라엘의 민족적ㆍ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율법 중심의 유다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을 근거로 하느님의 백성다운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면서 이민족과의 완전한 분리를 강요합니다. 유다인들은 에즈라를 ‘제2의 모세’라고 칭송하며 그의 요구대로 이미 혼인해 자녀를 둔 이민족 아내를 내치고 이방인과 그 문화를 배격하면서 율법 중심의 폐쇄적인 삶을 고집스레 살아갑니다.
요나서는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의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배타적 분리주의 삶을 배격하면서 하느님의 자비가 모든 민족에게도 열려 있다는 보편 구원관을 드러냅니다. 이 보편 구원관은 제2이사야서(이사 40-55장)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래서 요나서는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 상당 기간이 흐른 뒤 제작됐고, 기원전 180년께 최종 편집됐으리라 짐작합니다.
요나서는 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상 세 장면으로 구분됩니다. 성경학자들은 독립적으로 전승돼 오던 이야기가 편집자의 손을 거쳐 보편 구원관에 기초해 일관된 이야기로 재구성했을 것으로 봅니다.
첫째 장면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도주 그리고 회개’입니다.(1-2장) 요나가 아시리아의 수도인니네베로 가라는 하느님의 명을 어기고 반대편 땅끝인 타르테소스로 도망치다 큰 물고기에 삼켜져 고통스러운 사흘을 보낸 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주님의 부르심을 재확인합니다.
둘째 장면은 ‘니네베에서의 설교’입니다.(3장) 요나는 니네베로 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니네베 사람들은 임금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식하며 회개합니다.
셋째 장면은 ‘하느님 자애를 깨우침’입니다.(4장) 요나서의 절정이자 결론 부분으로 하느님께서는 책벌하시려고 하다가도 인간이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누구도 예외 없이 당신의 보편적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을 요나에게 깨우쳐주십니다.
요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신탁 형식으로 전하는 일반 예언서와 달리 요나가 경험한 사건들을 통해 교훈을 전해줍니다. 요나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기에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은 주어진다고 합니다. 동시에 요나서는 모든 이가 용서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11) 뛰는 야곱 위에 나는 삼촌 라반
영어속담에 ‘Talent above talent’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로 표현된다. 성경에서 이 속담을 잘 나타내는 인물로 바로 레베카의 오빠, 야곱의 삼촌인 라반을 들 수 있다. 타인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마치 도움을 주는 척하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 우리 주위에서 지금이나 과거의 사건에서 한두 명은 떠오를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피해야 하는 부류의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이 혈연이나 지연, 직장 등으로 묶인 관계도 많다. 그런데 상대를 바르게 아는 것과 속고 있으면서도 잘 모르는 것은 전혀 다르다. 상대를 이용하는 사람은 자기의 발톱을 드러낼 때까지 자신의 진짜 모습을 위장한다. 상대의 약점이나 취약한 점을 잘 이용하는 이는 상대가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고 피해를 보는 당사자는 마치 은인을 만난 것처럼 고마움을 느끼게 한다.
야곱은 에사우에게 죽을 끓여주고 장자권을 샀다. 그리고 이사악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 에사우는 분노에 가득 차 하루 종일 야곱을 찾았지만, 그의 머리카락조차 볼 수 없었다. 야곱이 어머니 레베카의 도움을 받아 삼촌 라반에게 피신했기 때문이다. 야곱은 사기꾼, 모사꾼이라는 이름의 이미지처럼 꾀가 많고 머리가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항상 한 수 위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삼촌 라반은 처음에는 야곱을 환대하고 반겼다. 시간이 지나면서 라반은 젊고 힘이 좋은 야곱에게 욕심을 냈다. 먼저 라반은 야곱이 자신의 딸인 라헬에게 마음이 있음을 간파하고 야곱을 붙잡아 둘 계략을 짠다. 라반은 야곱에게 라헬과 짝이 되면 좋겠다면서 조건을 걸었다. 라반은 야곱이 7년간 자신을 도와주면 라헬과 결혼시켜 주겠다고 제안했다. 어차피 형에게 쫓기는 신세인 야곱도 안전한 피신처가 되는 라반의 곁에 머물고 자신이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일거양득이라 생각했다.
야곱은 라반에게 최선을 다해 일하며 7년의 세월을 견디었다. 당시의 근동지방의 풍속은 친척 사이에 결혼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남자는 결혼할 때 장인에게 결혼 지참금을 지급해야 했다. 신랑 측은 돈이나 보석, 가축을 선물하거나 노동으로도 지참금을 대신할 수 있었다. 야곱은 라반과 무상 노동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셈이었다.
드디어 약속한 7년의 시간이 흘러 야곱은 라헬과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야곱은 자신이 결혼한 여인이 라헬의 언니인 레아라는 사실에 혼비백산했다. 그러자 라반은 당시 관습을 들먹이며 동생이 언니보다 먼저 시집갈 수 없지 않냐며 7년만 더 일해주면 라헬과도 결혼을 승낙하겠다고 또다시 제안했다. 사실 라반은 언제부터인가 큰 그림을 그렸다는 생각이 든다. 야곱에게는 사실 선택지가 없었다. 14년 동안이나 야곱을 자신의 곁에 두고 좋은 노동력을 사용할 수 있는 라반의 계략이었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통곡의 벽
유다교의 최고 성지는 단연 통곡의 벽입니다. 그래서 늘 붐비지만, 성인식을 치르는 월요일과 목요일에는 더 떠들썩해집니다. 여자아이는 만 12세부터, 남자아이는 13세부터 율법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성인이 됩니다. 이날, 가족과 친지들은 사탕을 던지고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기뻐합니다. 성인식을 통곡의 벽에서 하는 건, 과거 그 위 모리야산에 성전이 자리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리야산 위의 성전을 마지막으로 보수한 이는 2,000년 전 헤로데 임금입니다. 그는 모리야산을 평평하게 깎아 500미터 길이의 광장으로 만든 뒤, 그 위에 성전을 개축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강도들의 소굴로 변질된 성전을 꾸짖으며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으리라고 예고하신 대로, 기원 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는 열혈당원들의 반란을 진압하며 징벌 차원으로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이는 당시 유다인들에게, 명성황후 시해나 숭례문 화재 사건에서 우리가 느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고통의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 모리야산에는 성전을 받치던 바깥벽들만 남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서쪽 벽이 바로 통곡의 벽입니다. 유다인들이 유독 서쪽 벽을 성지로 삼아 기도하는 건, 그 벽이 성전의 지성소와 가장 가까운 곳인 데다, 솔로몬 임금이 “당신 종과 당신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주십시오.”(1열왕 8,30)라고 하느님께 청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통곡의 벽은 오늘날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심장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걸까요? 이는 유다인들이 로마에 거슬러 일으킨 제2차 반란 사건(132-13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기원후 66년 발발한 열혈당원들의 반란 뒤, 132년에는 바르 코흐바 혁명이 일어납니다. 유다인들이 연이어 반란을 일으키자 이에 분노한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재위 117-138년)는 유다인들을 예루살렘에서 내쫓았습니다. 이후 유다인들은 성전파괴일인 아브 월 9일에만 출입을 허락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유다인들이 서쪽 벽을 붙들고 밤새 통곡하다가, 이튿날 울며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또한 전승에 따르면, 성전이 무너지던 날 그 벽이 이슬에 젖어 마치 우는 것처럼 보였다고도 합니다. 다만 불과 60년 전만 해도 통곡의 벽은 유다인들에게 ‘화중지병’(畵中之餠) 곧 그림의 떡과 같았는데요, 그때는 동-예루살렘이 요르단의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1967년 일어난 6일 전쟁 뒤에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통합(?)에 성공합니다.
통곡의 벽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하는 유다인들을 보고는, 졸면 안 돼 몸을 흔든다는 둥, 몸을 흔들어 기도를 바치면 두 배가 되기 때문이라는 둥 재미있게 추측하곤 하지만, 사실 이는 온몸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려는 몸짓입니다. 기도한 뒤에는 주님께 등을 보이지 않으려고 뒷걸음질로 나옵니다. 이런 유다인들을 볼 때면, 성전 건물은 외형에 불과할 뿐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는 데는 거창한 무엇이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마르코와 함께 떠나는 복음 여행] 손을 뻗어라(마르 3,1-6)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되자 다른 유다인처럼 회당으로 가시어 예배에 참석하십니다. 회당에 들어서자, 그곳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소문이 무성하던 예수님을 바라보며 수군거립니다. 그들 사이로 보이는 손이 오그라든 병을 겪고 있던 사람의 모습이 예수님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어느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던 그 사람을 보시며 그가 겪고 있을 아픔을 예수님께서는 알아차리십니다. 그를 유심히 바라보는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저 사람이 또 무슨 기적을 일으키려나 봅니다. 어디 한 번 지켜봅시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또 하는지.’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은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이미 안식일에 금지된 ‘밀 이삭을 뜯는 행동’(마르 2,23 참조)을 했던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안식일 규정을 어기는지 눈을 부릅뜨고 쳐다봅니다. 그들의 따가운 시선을 보시며 예수님께서는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불러 사람들 앞에 세우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당신과 제자들을 비난하던 그들에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율법의 참된 정신을 알려주셨지만, 그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분명하게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그들에게 설명해 주신 것입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것입니다. 그 옛날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렛날 쉬신 것 같이 인간이 일에 짓눌려 살지 않도록, 그리고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마련해 주신 날입니다. 그런데 거꾸로 안식일이 인간을 옥죄는 멍에가 되어버렸습니다.
마르코는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노기어린 모습으로 바라보셨지만, 오히려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셨다고 묘사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던 그들은 안식일에 담긴 하느님의 마음, 곧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손을 뻗어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손을 뻗자 오그라들어 있던 손이 제 모습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이 삶을 되찾았다는 기쁨보다 그들 권력의 기반이 되는 율법을 어긴 모습에 분개하며 바리사이와 헤로데 당원들은 예수님을 없애버릴 모의를 합니다. 손이 오그라들어 고통을 안고 살아가던 사람이 그 고통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권능이 예수님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자기 욕심에 마음이 오그라든 그들은 하느님의 권능을 보지 못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보다 그들이 더 아파 보입니다.
안식일은 하느님께서 당신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하셨던 인간이 그 은총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마련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율법의 규정 속에 담긴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율법은 언제나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는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