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왕 시대에 삼년간 기근이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지를 않아서 산천초목이 마르고 흉년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왜 이 땅에 흉년이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다윗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다 사울왕의 죄 때문이다.’ ‘사울왕이 죽은지가 20년이 지났는데 왜 지금 사울의 죄를 물으십니까?’ ‘사울이 죄없는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했기 때문이다. 그 후손들이 원한이 맺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다윗왕이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해야 원한이 풀리겠느냐?’ 그들이 ‘사울의 후손 일곱명을 우리에게 내어 주시면 우리가 그들을 나무에 목 매달아 죽이겠나이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의 후손 일곱을 잡아서 기브온 사람들에게 주었고 기브온 주민들이 사울의 후손 일곱을 나무에 목매달아 죽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늘에 서 비가 내리고 기근이 그쳤다고...
우리가 인생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는데 그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잘못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금령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죄가 문제였습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이 왜 그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가인이 동생에게 분노가 가득 할 때 하나님이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셨지만 가인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동생을 죽이는 살인죄를 지었고, 평생을 세상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에덴에서 추방되고 남자는 노동,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가인이 죄를 지어 온 세상을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노아 때에 사람들이 죄를 지어 대 홍수 심판으로 땅위의 생명체들이 다 홍수로 진멸되었다고 했습니다. 다윗때에 죄로 인하여 기근과 흉년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문제는 죄 때문입니다. 모든 문제는 죄 때문인 것입니다. 지금 온 세계를 덮치고 있는 코로나라는 전염병도 우리가 모르는 죄 때문일 겁니다. 세계최강대국의 대통령이 억압받는 제3세계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가혹하게 대했고 그들을 억압해 왔습니다. 그 결과 코로나라는 재앙의 직격탄을 맞아 십삼만명이나 죽어나가지 않습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희생을 당해야 깨달을지..... 세계최강대국에서 전염병하나 막지 못하여 한국전쟁 월남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보다 더 많이 사망한 것 이상하지 않습니까?
문제는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죽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롬6:23) 그러나 죄를 이기고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는 원리가 성경말씀에 있습니다. 오늘은 기독교의 근본 진리 죄의 용서, 속죄의 원리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위한 대가를 치뤘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나의 모든 허물과 죄를 예수님이 그 몸에 대신 지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12절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 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몸에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에에서 죄값을 지불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 대하여 한가지 장치를 해 놓으셨는데, 그것이 속죄의 제사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지만 소나 양을 나 대신 죽여 속죄하는 길을 열어 주셨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지어 에덴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죽옷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속죄의 원리입니다. 죄는 아담과 하와가 지었지만 짐승의 희생으로 아담과 하와의 죄를 용서해 주셨던 것입니다.
구약 성경의 율법,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하나님의 말씀에는 속죄의 진리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것이 피로서 정결케 되나니 그러므로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피를 통하여 죄를 용서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제사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소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이 한 제물을 준비하셨습니다. 그 제물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속죄 제물이 되셔서 한 영원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온 인류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 피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히브리서 9:12절에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속죄를 믿는 것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속죄는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내가 치러야 할 죄값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제물의 속죄 제사로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14에서‘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1:12)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나의 모든 허물과 죄를 정결하게 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므로 그 자녀도 거룩합니다. 내가 거룩한 일을 해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된 것입니다.
왕의 아들이 되는 것은 무엇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왕을 아버지로 두면 왕의 아들이 됩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고난받는 히브리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애굽의 공주가 갈대상자에 담긴 히브리 아이를 자기의 아들로 키웠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족으로 자랐습니다. 그 어머니 핫셉수트는 대단히 유명한 여왕이어서 모세는 왕의 아들로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온전하게 하셨다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거룩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속된 세상에 사는 내가 거룩한 교회에 속해 있으면 거룩해 집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교회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하셨고 가지는 몸에 붙어 있어야 과실을 많이 맺는다고 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날마더 거룩하고 깨끗하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얼굴을 세수하고 하루쯤 지나면 때가 묻습니다. 때를 깨끗이 씻어야 깨끗한 얼굴이 됩니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죄를 날마다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옛날에 제가 도금 공장을 했습니다. 주로 혁대 버클을 도금했습니다. 버클을 도금하려면 맨 먼저 녹을 제거합니다. 황산에 담가두면 녹이 빠집니다. 사람의 더러운 죄는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해 집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사람의 더러운 죄를 날마다 깨끗하게 하고 온전하게 합니다.
깨끗하게 된 것을 도금을 하죠. 먼저 니켈 도금을 하고 다음에 금도금을 하면 번쩍번쩍 빛이 납니다. 금도금을 하기 위해서는 도금조에 금을 녹여야 합니다. 염산과 질산염을 3:1로 한 물을 왕수라고 합니다. 왕수에 금을 넣으면 금이 녹아 버리죠. 그곳에서 도금을 하면 번쩍번쩍 금빛나는 버클이 되어 나옵니다. 마찬가지 원리로 보혈로 깨끗하게 된 우리는 왕수와 같은 교회 안에서 온전한 모습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고 교회에서 완전해 집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속죄의 원리 세 번째는 그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은혜의 복음입니다. 사람은 누가 나에게 잘못한 것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꺼집어 냅니다. 이것을 뒤끝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뒤끝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고백한 죄와 악을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컴퓨터를 쓰다보면 다시 복구가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오래전에 윈도우즈 95가 나오고 아는 장로님이 컴퓨터를 조립해 주었습니다. 사진을 그곳에 많이 저장했습니다. 당시 디카가 처음 나오고 디카로 찍은 사진을 그곳에 보관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찍은 사진과 동영상도 보관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컴퓨터가 고장이 났습니다. 고칠 수가 없어서 컴퓨터를 포맷했습니다. 모든 자료가 삭제되었습니다. 모든 사진들이 다 없어졌습니다. 다시는 그 사진을 볼 수 없습니다. 컴퓨터를 포맷하면 아무 것도 기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는 것이 모든 자료가 삭제된 것과 같습니다. 다 없어진 것입니다.
어떤 천주교회에서 기도 많이 하는 성도 한분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족집게처럼 알아냈습니다. 나의 지난날에 대하여 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신통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그에게 묻고 미래에 대해서도 상담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교회 신부님이 은근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신부님이 그 신자를 불러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나는 과거에 잘못이 많은 사람입니다. 나의 과거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그 신도가 한참을 기도하더니 ‘신부님, 하나님이 모두 잊어버렸다고 하십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기억이 없다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용서입니다. 그 은혜를 굳게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에드워드 하이머씨는 유명한 조각가인 동시에 알프스 산의 등반가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마티호온이란 험한 정상을 오르지 못해 늘 야심에 차 있었습니다. 그는 몇 번이나 시도해보았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데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이태리 등반대들과 함께 그 산을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등반대는 네 명의 등반가와 세 명의 안내자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예정대로 모든 것이 잘되어 그들은 드디어 그 정상을 정복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하이머 씨는 그 자신의 생애에 최고의 환희를 느꼈습니다.
이제 그들은 밧줄을 타고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두의 안내자가 먼저 밧줄을 몸에 감고 발 디딜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를 따르던 한 등반가가 비명을 지르며 선두 안내자에게로 덮쳐 내렸습니다. 이에 놀란 그 뒤의 두 등반가도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산장에 남아있던 두 안내자와 하이머씨는 밧줄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다시 중심을 잡도록 밧줄을 단단히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밧줄이 힘없이 끊어지면서 네 사람은 4천 피트나 되는 빙하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고조사 과정에서 어이없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밧줄이 규격품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알프스의 규격품은 밧줄안에 붉은 줄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들이 붉은 줄이 들어간 알프스클럽의 규격품 밧줄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무서운 사고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천국에 오르는데도 예수의 보혈이라는 밧줄이 규격품입니다. 그 외의 다른 밧줄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끊어져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예수 십자가를 굳게 잡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