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사랑 2
-묵서재 일기 25
석야 신웅순
“허허, 세월 참 빨라.”
“인생 뜬 구름이야.”
어렸을 적 어르신들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다.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어르신 말씀이 뼈에 사무친다.
칠십년이 이리 빨리 올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갈수록 시계가 빨라진다. 만추의 바람이 옷깃을 스친다.
젊은 시절엔 틈 사이로, 중년 시절엔 뜰 가운데서 달을 보았다. 이제는 누각 위에서 달을 본다. 먼 길을 걸어온 것이 꿈만 같다. 저쪽이 엊그젠데 벌써 여기다.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시는 시계추를 되돌릴 수 없다.
우수수 가을바람에 낙엽이 진다.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나갔다. 강물에 산 그림자가 잠겨있고 하늘은 아득해 무채색이다. 흰구름은 하늘 너머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다. 늦가을 저 산촌에다 무슨 생각을 내려놓고 가는 것이냐. 만추엔 누구나 다 시인이다. 아니다 나그네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 불현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욕심을 버리는 것? 아내는 늘 내가 책상에 앉아 있는 걸 보며 이젠 공부 욕심을 버릴 때도 되지 않았느냐 한다. 나는 생활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욕심이라 생각하는가 보다.
그래, 노욕일지 모르겠다.
한 수 읊는다.
강물은 아득히 흐르는 게 아니다
산은 까마득히 서 있는 게 아니다
한 인생 슬픈 생각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 신웅순의 「늦사랑2」
강물은 흐르는 줄만 알았다. 아니다.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바다에 이르겠는가. 한 번 다다르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 산은 서 있는 줄만 알았다. 아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구름이 오고 달이 뜨겠느냐.
9월 막바지인데도 오후엔 30도를 오르내린다. 더위도 가실만도 할 텐데 자오선을 지나다 그만 길을 잃었나 보다.
만추의 계절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참 부산하다. 이젠 마음의 평화를 얻을 만도 할 텐데 그러하지 못하니 그것이 내 살아있다는 증거인가.
달력 한 장 넘기면 초겨울이다. 거기에 내가 있다. 바람도 누군가가 몹시도 그리운가 한 쪽으로만 한 쪽으로만 분다.
-대전문학 109.2024.11/12,217~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