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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악비ㅡ
송나라 고종은 양주의 행궁에서 후궁들과 즐기다가 금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놀라서 후궁들을 내팽개치고
혼자서 양자강을 건너 도망갔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그 뒤 생식 불능이 되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충격으로 인한 발기부전 내지 성기 내의 혈관에 이상이 생겼는지?
정화는 명나라대의 환관으로, 아버지가 원나라 추종 세력으로 끝까지 저항했기 때문에, 끝내 그는 고자가 되었다.
영락제의 명을 받아 동아프리카까지 남해 원정을 지휘했다.
일부에선 서양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고도 주장한다.
명나라 건국황제 홍무제는 수도 남경에 궁전을 짓던 노동자 천여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하자 그대
로 모두 거세했다.
명나라 정통제는 묘족 남자아이 3만여 명을 대거 붙잡아와 모두 거세해서 환관으로 삼았다.
명나라와 청나라대의 중국 연안 해적들은 소년을 고자로 만들어 배에 싣고 다니면서 성욕을 풀었다고 한다.
명나라 말기에 환관 정원이 5천 명인데 2만 명의 고자들이 몰려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문제는, 탈락한 1만 5천 명은 짤없이 괜히 불알만 자른 실업자가 됐다는 것이다.
시험도 탈락하고 고자가 되어 사회에서 낙오해버린 이들은 도둑 떼가 되어 사회문제가 됐는데, 특이하게도
지나가는 행인의 불알을 움켜잡아 비틀어서 행동불능으로 만들고 물건을 털었다고 한다.
청나라 말기에 반란을 일으켰던 위구르의 지도자 야쿱 벡의 반란이 진압된 후 야쿱 벡의 미성년 자손들은
모두 거세되어 환관이 되었다.
마오쩌뚱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1955년에 실시한 건강검진에서] 불임이라는 판정이 나왔다.
전립선은 건강했고 성욕, 성기능에도 문제가 없었으나 정자에 이상이 있어서 아이를 가질 수는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고자가 되기 이전에 이미 10명의 자식을 두어 다산한 상태였으며, 성관계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이후 60년대까지 왕성한 성욕을 발휘했다.
ㅡ마오쩌뚱ㅡ
장제스는 33세 때 창녀와의 관계 중에 부고환염에 걸려서 자손을 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성행위 자체는 가능했지만 이후 둘째 부인 천제루, 셋째 부인 쑹메이링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했다.
결국 장제스의 자식은 첫째 부인인 마오푸메이 사이에서 낳은 장징궈가 전부다.
사실 장징궈도 장제스의 아들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
즉, 장제스는 어릴 때 화로에 그곳을 데어 그 후로 고자가 되었고, 장징궈도 그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징궈를 보면 전형적인 중국집 아저씨 스타일로 상당한 미남이었던 장제스와는 현격한 외모 차이를 보이는데, 아무래도 부자관계로 보기는 영 어색한 면이 있는데 어머니인 마오푸메이 사진을 보면 장징궈랑 닮았다.
즉, 장징궈는 사생아가 아니라 아버지랑 너무 안 닮았다는 것 뿐이다.
ㅡ장제스ㅡ
저우언라이는 대장정 도중에 건강을 해쳐 역시 고자가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그보다는 아내 덩잉차오 여사
가 건강문제로 사산한 후 부부가 불임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부부 금슬은 저우언라이가 죽는 순간까지 매우 좋았다.
저우언라이는 호색이 일반화된 그 세대 중국 지도부에서도 아내만 쳐다보는 순정파로 이름 높았다.
만년에 방광암으로 여러번 수술을 하는 등 고생했는데, 만약 암이 그곳까지 전이되었다면 본의 아니게 고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ㅡ저우언라이ㅡ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