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일제시대인 1925년에 태어나셨는데
외할머니 김월례씨는 정신여학교에서 김필례씨와 같은 시기에 공부하셨어서
김필례씨와 친구라고...
그리고 옛날 부통령 이셨던 함태영씨가 엄마 이모부라고 하셨다
나 어릴때 어른들은 곧잘
"네 외할머니는 아주 얌전하시고 젊쟎으신 분이셨다"하셨었다.
엄마는 1살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셔
젖을 못먹어, 말라 비틀어져 다리가 비비 꼬일정도였다 한다.
그래서 친척들이 "너 할머니 고생시키지 말고 빨리 죽어라" 했다는데
엄마의 할머니인 외증조 할머니가 미음이랑 온갖 몸에 좋은것들을
정성으로 먹여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한다
외증조 할머니께서는 엄마가 학교 다닐때도
매일 따듯한 점심을 만들고 목장 우유도 따듯이 데워 품에안고
점심시간에 학교로 가져가 엄마에게 주시곤 했다한다.
오죽하면 학교 선생님이 "이젠 다 컷으니까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했다고..
엄마는 운동을 잘해서 스케이트 선수셨었고 그시절에는 운동 선수가 많지 않았는지
탁구대회에도 출전 하셨었다고 한다.
엄마는 활달하고 웃으운 소리를 잘해 친구들을 "와 하하" 웃게 만들곤 해서
친구들이 엄마를 재미있는 새, 뼁귄이라고 불렀다 한다
엄마는 여고를 졸업후
경성보육전문학교에서 공부를 하시고 유치원선생님 자격증을 얻으셨다.
위 사진에 있는 다른 유치원 선생님이 엄마 친구 "영은이 아줌마"인데
영은 아줌마가 우리 한테 참 잘 해주셨고.. 나 결혼할때도 좋은 선물을 보내 주셨는데
일찍 돌아가셨다. 지금이라도 따님인 "은영"씨라도 찾아 신세를 갚고 싶은데
영은, 은영.. 성도 모르고.. 사람을 찾을 길이 없다
우리 외갓집은 독실한 기독교집안 이었고 외증조 할머니께서는 초창기 승동교회 전도사 이시고,
외할아버지께서는 승동교회 장로님 이셨다.
엄마도 어릴때 부터 승동교회에 다니셨고 찬양대원으로 봉사하셨다 한다.
성가대원 몇명이 일본 학도병으로 징집되에 나가게 되서, 성가대원들과 목사님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한다.
뒤에 일장기가 보이고..,
위의 사진속 남자는 이미 학도병으로 떠난후라.. 사진만..
맨 뒷줄 왼쪽에서 4번째가 엄마이시고
맨 앞줄 왼쪽에서 7번째가 승동교회 이덕흥 목사님(이분이 후에 엄마결혼식 주례를 해 주셨다)
맨 뒷줄 오른쪽 끝이 우리 고모님은 이때 지금 우석의대 전신인 여의전을 다니셨는데
훗날 맨앞줄 왼쪽에서 4번째 남자와 결혼을 하셨다. 아마 이때 성가대할때 두분이 사귀신듯..
그리고 맨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 남자가 훗날 육군 참모총장이 되신 김계원씨인데
김계원씨는 평생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셨다고 한다.
내가 이 사진을 보고 엄마한테 "와우 엄마~ 김계원씨와 결혼 했으면 좋았을 것을..." 했더니
저때는 그분이 키도작고, 말도 없으시고.. 성가대 여자들 한테 인기가 없으셨었다고..
엄마는 국민학교때 부터 단짝이었던 정현아줌마의 이종사촌오빠인
동갑인 우리 아버지와 연애를 하셔, 소화19년 12월에 학생인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다.
결혼후 엄마는 우리 아버지가 공부하는 학생이라 경제력이 없으셔서
아버지 외갓집에서 사셨었는데
그 외갓집은 독실한 기도교 집안으로
아버지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서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아
아버지의 이모님들이 경기여고의 전신인 한성고등여학교와 경성고등 보통학교,
숙명 고등 여학교, 진명여자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시는둥
다섯딸 모두 일제시대때 고등 보통학교에서 근대교육을 받으셨다 한다
아버지의 큰이모께서는 1919년 삼일운동이 발발하자 5월에 김마리아, 신의경등과 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상해 임시정부와 연결,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헌납하는 한편 애국지사들의 비밀연락을 맡아 활동하셨다 한다
1921년에는 김상옥이 윤익중등과 혁신단을 조직하고 혁신공보를 발행하여
친일 매국노를 처단하기 위한 암살단을 조직하자
자기집을 주요 회의장소로 제공하고,
신화수가 작성한 암살단 취지문을
동생들과 함께 비밀리에 등사판으로 수백장을 제작하고
숙소및 의복 자금등을 공급하며
적극 협조 하셨다고 한다
또한 김상옥을 자기집에 피신시키고
여동생과 함께 김상옥이 숨겨놓은 권총도 대신 찾아오는등
김상옥의 마지막 서울 시가전을 응원하셨다 한다
이일로 인해 아버지의 큰이모 및 온 가족이 일경에게 끌려가 잔혹한 고문을 받고
아버지 큰 이모께서는 1923년 12월에는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셨다 한다
그사이 아버지 이모님들은 독립운동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사랑에 빠져
큰이모는 딸하나, 아들하나 낳으시고
둘째이모는 독립운동가 가재창씨와 딸 둘(엄마친구 정현이 아줌마가 가재창씨 딸이다)
그리고 육이오전 대한부인회 회장도 하셨다는 셋째따님이
독립운동을 하시던 우리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다.
엄마는 결혼후 아버지와 청진동에 여관을 했었던.. 방이 20여개인 아버지 외갓집에서 살았는데
그곳에는 아버지 이종사촌들이 모여살고
또 아버지 고종사촌까지 사돈집에 와서 학교 다니고
또 할아버지와 같이 독립운동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훗날 유명한 만화가되신 김성환씨(그때 경복고등학교 학생)도
한때 그집에서 같이 살았다 한다.
그래서 그집에 그때 식구들이 20여명이었었다 한다.
엄마 보다 2살많은 진희 아줌마는 지금 우석대학교 의과대학 전신이니 여의전에
엄마의 단짝이었던 정현이 아줌마는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다니시는둥
정현이 아줌마 동생인 대현이 아줌마는 이화여대 영문과에 다니시고...
나이또래 이모들, 삼촌들은 모두 대학교에 다니는데
엄마만 어린 나와 내동생을 키우면서 그 많은 식구들 살림살이 하고.. 고생을 하셨다 한다.
그때는 외갓집도 청진동에 있어서
외증조 할머니께서는 우리식구들 옷을 철철히 보내주셨는데
위의 사진을 보면 내가 외증조 할머니가 만들어 보내신, 치마, 저고리, 그리고 버선을 신고있다
외증조 할머니는 또 나 먹이라고 장조림, 굴비등 밑반찬 떨어지지 않게 보내주셨다 한다.
내가 굴비를 좋아 하는걸 보고 엄마는 "어릴때 외중조 할머니가 보내주신것 많이 먹어서
그런것 같다"고 말씀 하시곤 했다.
친정에서 손에 물한방울 안뭍치고 호강만 하던 엄마가
결혼해서 시외할머니, 시이모님들, 시누이들, 시동생들.. 층층시하에 살림하고
아이들 키우고.. 고생의 시작이었다.
엄마의 평생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우선 이야기를 여기서 멈추고
다음에 시간있을때 우리엄마(2)를 쓰려고 한다
첫댓글 어머님 98세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이지요.
제 친정어머니께서 병명도 모르시고
고통으로 울부짖으시면서
"하나님 어서 절 데려가 주십시오."
하셨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인데,
이제 화장실에 다니실 정도로 회복되셨지요.
청이님 어머님께서도 저리 아기처럼
순수하신 생명을 연명하실수 있는것도 하나님의 은혜지요.
어느 생명을 우리가 원하는대로 할수 있을까요?
청이님 내외분을 뵈면 정말 마땅히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본을 보여주시는 분으로 제가 많이 존경합니다.
저는 지금 큰딸집에서 타이핑하고 있어요.
내일 큰딸내외가 손주들 컨퍼런스때문에
아침일찍 학교에 가야 한다네요.그래서 오늘밤
큰딸집에서 자고 가려고 해요.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도와 주려고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들께서도 다들 저희들을 그렇게 키우셨지요.
청이님 어머님께서 오래전 미국에 오셔서
청이님 아드님들을 돌봐 주셨다고 하셨지요.
어머님 건강하셔서 100세 넘도록 사셨으면 좋겠어요.
생일 축하 말씀 감사합니다.
어머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시고
화장실을 혼자 다니실 수 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푸른하늘님이랑 온 가족의 기도의 힘이 큰것 같습니다
푸른하늘님이 손주들이랑 따님 뒷바라지 잘 해주시고
따님이 손주들 키우는데 올인을 하는걸 보면
부럽습니다.
혹시 어머님이 이화여고 나오셨나요?
제 친정어머님이 26년생이셨는데
재작년에 돌아가셨어요
엄마 여고시절 사진을 보는 느낌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이화여고 나오셨고
운동하는 사진도 많았어요
정구, 체조, 스케이트 등등
청이님 어머니께서 건강하게 사시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편안히 가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따님, 사위복이 큰 분이세요
어쩜 그리 부모님을 잘 섬기실까요
덕담 감사합니다
저도 엄마가 아프시지 않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 편안히 가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머님께서 이화여고를 졸업 하셨군요
엄마 세대.. 아니 할머니 세대부터 경기여고와 이화여고는
명문이었지요
우리 엄마는 덕성여고를 졸업하시고
경성보육 전문학교를 졸업 하셨습니다.
어머니를 정성스레 모시느라 청이님 내외분의 생활은 하나도 없는거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래도 육신의 부모에게 잘하라는 주님말씀대로 잘 하시고 계시니,하늘에 차곡차곡 상급을 쌓을꺼예요
할머니께서 평안하게 천국가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청이님 어머님의 98세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어머님께서 많이 왜소해 지신것 같아 보입니다.
병으로 인한 고통이 없으신것이 감사하네요.
어머님의 파란만장한 삶, 드라마로 만들면 대한민국
보통 사람들의 근.현대사가 되겠군요.
귀하게 자라신 분께서 결혼후 그렇게 고생을 하셨군요.
어머님의 다음 이야기 기다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