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 400원입니다
손 원
"진료비 400원입니다." 며칠 전 아버님이 진료받은 병원 창구직원의 목소리다. 고령이신 아버님은 병원 갈 일이 많다. 오늘도 읍내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한 달 치 약 처방을 받았다. 수납 창구에서 진료비를 계산하는데 400원이라고 했다. 자식 된 입장에서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진료가 있기까지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 걷기조차 불편하신 아버님을 승용차에 모셔 와서 휠체어에 태워 진료받았다. 나의 수고는 마땅하나 충실한 진료를 받고도 400원이라니 모든 수고가 그 정도일까라는 행복한 의문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님을 위해서 고작 400원의 지출에 대한 자격지심이기도 했다.
행복한 고민이고 감사할 일이다. 구순을 넘기신 아버님은 6.25 참전용사로 보훈 혜택을 받는다. 지난 해 보훈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약 처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영수증을 살펴보니 국가 부담 90%, 자부담 10%로 되어 있어 큰 혜택을 받고 있음을 알았다. 노령으로 병원을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데 대구에 있는 보훈병원은 거리가 멀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군지역 병원을 협력병원으로 지정하여 같은 혜택을 주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버님이 자주 가시는 병원이 있었는데 그 병원은 보훈 혜택이 없었다. 다만 노인에 해당하는 진료비를 부담했다. 그 정도로도 큰 혜택으로 여기고 단골병원으로 이용했었다. 의료비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버님은 2년 전부터 재가 요양보호를 받고 있다. 휴일을 제외한 매일 요양보호사가 방문하여 아버님을 보살핀다. 한 주 걸러 목욕차가 와서 목욕 서비스도 받고 있다. 매달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일부만 자부담이고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한다. 아버님께는 물론 우리 부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하루를 장담할 수 없는 노령이시기에 매일 근접 보호가 필요하다. 아버님은 거동조차도 힘들어하신다. 노인성 청각장애로 전화도 어렵다. 평일은 방문 요양을 받고 휴일은 우리 부부가 가서 일주일 분 먹거리며 집 안 청소까지 하고 온다. 평일은 유아기 손자 둘을 돌보는 우리 부부에게 방문요양은 더없이 고맙다.
요즘 독거노인이 많다. 핵가족 시대에 자식과 한집에서 거주하는 경우는 드물다. 산업사회인 지금 노인은 노인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같이 사는 것을 불편해 한다. 같이 살고 싶어도 생활공간이나 각종 여건상 어렵다. 이런 사정을 해결하기 위하여 적절한 사회보장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노인을 위한 장기 요양보험료를 부담하고 있고, 수급 시에도 일부를 부담은 하고 있지만 가계에 큰 부담은 아니기에 다행스럽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를 겪는다. 늙어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더 많은 보살핌이 필요하다. 지금의 요양보호제도는 그런대로 혜택이 괜찮다고 하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인 것 같다. 저출산 고령화로 건강보험재정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요양급여 수준이 대폭 줄어들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건보재정이 보다 건실해 지고 보험 혜택도 더 든든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할 때다.
아버님의 경우 의료실비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건강보험을 적용받고 본인 부담분에 대하여는 보훈 혜택을 받기에 실제 자부담은 훨씬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은 건강보험과 실비보험에 가입하여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있다. 실비보험 가입은 선택적이지만 건강보험료와 별도로 매월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 지금 우리나라도 선진국 수준의 각종 복지혜택이 시행되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의료혜택인 것 같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민의 보험료 부담은 줄이고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해마다 오르는 건강보험료가 줄어드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부존자원이 적은 우리나라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보험재정의 건전한 운영에 기댈 수밖에 없다. 국민이 낸 보험료를 아껴 적립해 나가야 한다. 건강보험공단, 의료기관, 국민들이 보험료 절약에 동참해야 한다.
의료기관 방문 시 "진료비 400원입니다"라는 수납직원의 목소리를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2023. 3.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