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 일찍 자그마한 병원을 다녀왔다. 아침에 누구랑 카톡을 하다가 그 사람이 어제 아침에 병원을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시술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에.. 어떻게 시술할지도 모르는데 병원을 혼자 가지?? 시계를 보니 아침 8시였다. 그 사람 병원 예약 시간은 9시 반이라고 한다. 그 병원이 어디냐고 물어보니 말을 하지 않고 자기도 병원 이름을 잘 모르고 앞에 시작되는 병원의 이름만 대충 나에게 알려 주었다. 자기 집에서 5분 안 거리에 있는 병원이라는 말을 했기에 좀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병원을 알아내고 다시 카톡 해서 이 병원이냐고 물어보니까 그렇다고 한다. 약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병원으로 가면서 내가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굳이 오지 말라고 했기에 택시 타고 난 다음 내가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술을 받을지 모르는데 혼자 병원을 가는 그 마음은 글쎄... 그 사람은 암만 괜찮다고 하더라도...
이전에 내가 전도한 미장원 원장님이 있다. 내가 관계전도를 5년 한 이후 엄청난 불교 신자에서 예수님을 믿게 된 분이다. 암에 걸려서 항암치료를 하러 병원에 다녔는데 그때 가장 힘들었던 것이 병원에 혼자 입원하고 혼자 퇴원할 때였다고 한 기억이 있다.
나는 우리 친정엄마 간병을 약 1년간 했다. 항암 받을 때마다 병원 입원 준비를 다 해서 입원시켜 드리고 매일 병원 가고 퇴원할 때 또 퇴원시켜서 집으로 모시고 오고...
항암을 받으면서 병원에 혼자 입원하고 혼자 퇴원할 때의 그 기분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알 수 있을까? 어제 그 사람은 나의 지인이고 나를 무척 따르는 사람이었다.
어제 내 설교 스케쥴이 아침 12시여서 아침 9시 반에 그 사람의 병원 스케쥴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아 부랴부랴 병원에 갔고 내가 도착하자 막바로 그 사람은 의사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진찰받고 나와서는 일단 약을 먹어 보기로 했다고 하고 3개월 이후 시술할 것에 대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수액을 받아야 하는지 그 사람은 다시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그 사람 수액 맞는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이 사람은 나를 무척 고마워했다.
나에게는 나를 특별히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를 특별히 고마워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에 나의 사랑이 감동된 사람들이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이 왜 "임마누엘"인가 하는 것을 가끔 생각하게 된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의 하나님!'"
나는 설교하는 사람이다. 내 설교를 듣고 은혜받았다고 나를 감사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 모든 사람에게 내가 "감동이 되는 사람"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의 참으로 절박한 시간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나의 그 "함께 한 시간"에 대한 감동이 있다.
어제 그 사람은 이러한 카톡을 보내왔다.
"오늘 아침 병원에 동반해 주신 거는 평생 못 잊을 것 같아요. ㅠㅡㅠ"
그래서 3개월 이후에 내가 한국에 또 들어오니 만약 그때 시술받게 되면 알려 달라고 했다. 내가 또 병원 데려가 준다고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언제 정말 감동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일까? 우리들의 삶에 "임마누엘의 하나님" 즉슨 "나랑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깊이 믿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필요한 모든 자리에 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처럼 누군가가 홀로 어디엔가 있어야 하는 그 자리에 내가 시간이 될 때는 함께 할 수 있으면 함께 해 주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일들은 그들이 나를 얼마만큼 더 사랑 해주고 더 고마워해 달라는 몸짓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그 사람들은 나를 통하여 "임마누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고 감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하나님을 알려 줄 수 있는 많고 다양한 통로들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누군가 재정이 필요할 때 그들에게 우리가 갖고 있는 재정을 나눠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우리가 베풀어준 재정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이 이렇게 하나님의 속성을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는데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는 내게 "짐"으로 느껴지는 많은 일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겠다.
어제 같은 날은 아침에는 병원 심방 오후 설교 그리고 이어진 기도해 주는 시간 그리고 또 그다음 이어진 "만남 사역"을 마치고 택시 타고 집에 오니 저녁 늦은 시간이었고 내 몸이 너무 피곤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괜찮다. 죄를 지으면서 피곤한 사람들도 이 땅에는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선행하면서 피곤한 것이고 한 사람에게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느라고 피곤했던 것이니 이런 피곤함은 "특권"이라고 하겠다.
개역개정 시편 102편
13. 주께서 일어나사 시온을 긍휼히 여기시리니 지금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라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You will arise and have compassion on Zion, for it is time to show favor to her; the appointed time has come.
"정한 기한이 다가옴이니이다" 이 말씀이 마음에 와닿는다.
하나님은 무엇을 언제 왜 "정한 기한"으로 정하는 것일까?
내가 두란노 바이블 학교에서 강의한 제목 중 하나가 "하나님!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때!"이다.
하나님을 알아 가면서 내가 깨달은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이라는 분을 알다 보면 그분의 뜻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에는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대한 질문이 있을 수밖에 없구나 하는 것이다.
과연 이 본문 말씀이 뜻하는 "정한 기한"은 무엇일까? 그리고 "다가옴"이라는 말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들의 삶에 적용하면 좋을까?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정한 때가 모든 일에 가장 "완전한 때"임을 저는 압니다.
우리가 그 때를 모르는 것은 그 때가 이르는 그 시간까지 우리는 내일 일을 모르는 제한된 인생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매 순간 의지하라 하심으로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주님 언제가 주님이 정하신 때이고 그 때는 무엇을 정해놓으셨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정한 기한이라고 함은 언제일까요? 우리는 오늘 무엇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가장 하나님 보시기에 "지혜로운 종의 삶"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