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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아니니 그렇게 혼비백산 할 것 없소."
"네놈이 어떻게 이렇게 멀쩡히 살아온 것이냐?"
담우개가 뒷걸음질을 멈추고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호를 바라보았다.
"당신 같은 인간에게 그런 것을 세세히 설명해 줄만큼 속이
좋은 인간이 아니오 난."
천호가 천천히 칼을 들어올렸다.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번거러움을 감수하는 수밖에. 가만히 앉
아서 네놈들이 쓰러지는 꼴을 보는 것이 더 없는 즐거움이었지
만 때로는 굳은 몸을 푸는 것도 괜찮은 일이지."
한참 더 멍하니 천호를 바라보던 담우개가 소매를 걷어올리며
쌍장을 내밀었다.
우웅-
담우개의 쌍장에서 강기가 일어 주변의 공기를 진동시켰다.
"후후! 율자춘이 누구에게도 주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넘겨준
무공이지. 그 괴물은 최후까지 살아남는 사람은 나백상이 아니라
나라는 걸 간파했던 것이지."
담우개가 음흉하게 웃으며 천호를 노려보았다.
"다시 벼랑으로 떨어지거라!"
담우개의 쌍장에서 붉은 기운이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나왔다.
스슥-
천호가 태연하게 칼을 흔들었다.
사파의 무공이든 정파의 무공이든 그것을 운용하는 자에 의해
파생된 것일 뿐, 그 뿌리는 결국 하나이다.
그 뿌리만 잘라버린다면 가지들은 저절로 무너져 내린다.
휘리릭-
천호의 도가 담우개가 펼친 무공의 뿌리를 잘라갔다.
"이럴수가?"
어떤 식으로도 파해 할 수 없다고 생각된 악마의 절기가 연기
처럼 흩어져 버렸다.
"이, 이놈. 어떤 술수를 부린 것이냐?"
파앗-
천호의 도가 다시 파공음을 울렸다.
"으아악!"
담우개의 손목이 허공으로 잘려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
"으아악! 내 손. 안 돼, 안 돼. 내손……."
담우개가 미친 듯이 절벽 끝으로 뛰어갔다. 하지만 절벽 아래
로 떨어진 손은 이미 까만 점이 되어있었다.
"이놈! 감히 내 손, 내 손목을 자르다니……."
담우개가 이성을 잃고 허둥댔다.
"부하들의 생명은 헌신짝처럼 버리더니 자기 육신은 천금덩어
리처럼 아끼는군."
천호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크윽!"
한 방울의 피라도 아끼려는 듯 서둘러 지혈을 하고 품속에서
금창약을 바른 담우개가 서서히 눈빛을 빛내며 여러 가지를 생
각하기 시작했다.
"날 어떻게 할 셈이냐?"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부하들 곁으로 보내주면 되겠소?"
"아, 안 된다. 그놈들은 이제 적이나 마찬가지이다."
담우개가 황급히 남은 한 손을 저었다.
"불쌍한 인간."
천호가 무심히 중얼거렸다.
"자결할 기회를 주겠느냐?"
담우개의 눈이 영활하게 움직였다.
"어떻게 말이오?"
"이미 갈 데도 없는 몸, 손까지 잃었으니 내 한 몸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저 절벽으로 뛰어내려 죽겠다."
담우개가 천호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 싶소?"
"그렇게 하겠다."
"좋소."
담우개가 절벽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악마적인 머리 회전을 하는 사람들과 사 년여를 부대끼다 보
니 나도 조금은 영악스러워 진 것 같소."
천호가 작은 돌맹이 하나를 주워 올리며 영문모를 말을 하자
담우개가 천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무슨 소리냐?"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시오."
절벽 끝에 다달은 담우개가 아래를 바라보았다.
아래로 내려다보는 담우개의 표정에 짧은 순간 회심의 미소가
어렸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지옥에서 만나자!"
담우개가 스스럼없이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피웅-
담우개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천호가 손바닥에 들고
있던 작은 돌맹이를 날렸다.
탁-
천호의 손끝에서 퉁겨져 나간 작은 돌맹이가 담우개의 하단전
을 때렸다.
"이, 이런!"
담우개가 당혹성을 질렀다.
"공력이 모이지 않는다."
이런 일에 대비해서 절벽 아래쪽에 교묘히 설치해 놓은 밧줄
을 손에 잡았지만 단전이 파괴되어 공력을 돋우지 못한 담우개
가 주르르 밧줄을 놓치고 말았다.
"으아아악-"
벼랑 아래로 담우개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퍼졌다.
"두령! 이제 그만 건너오시오."
담우개의 최후를 지켜보며 한참동안 조용하게 있던 건너편에
서 한쪽 끝에 갈고리가 달린 긴 밧줄이 던져져왔다.
갈고리 끝을 나무 가지에 걸치고 팽팽하게 줄을 당긴 천호가
밧줄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려갔다.
"새가 따로 없구만."
반대편에서 줄을 당기고 있던 화천옥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중
얼거렸다.
절벽을 다 건너올 때까지 줄을 당기고 있던 손에 밧줄 무게
외 한 푼의 무게도 더 느껴지지 않고 작은 떨림만이 전해져왔기
때문이다.
"두령. 그 놈은 확실히 죽었겠지요?"
모진성이 천호를 보고 말했다.
"그럴 것이오."
"이리 끌고 올걸 그랬소. 내 그동안 당한 보복을 하고 말텐데."
모진성이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렸다.
"그런데 두령, 부하들이 더 생겼소."
신도기문이 빙글거리며 다가왔다.
"무슨 소리요?"
"저놈들이 두령 휘하로 들어오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소."
신도기문이 남은 혈영의 무리들을 가리켰다.
"무슨 당치않는 소리요?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시오."
천호가 언성을 높였다.
"돌아갈 고향이나 가족이 있다면 왜 우리가 도적질을 하겠습
니까. 제발 거두어 주시오."
혈영의 무리들 중 한 명이 다가와 애원했다.
"그럼 어디 가서 화전이라도 일구시오."
천호가 단호히 뿌리쳤다.
<장공자! 그 사람들 말대로 하시게. 그 사람들이 장공자 휘하
로 들게 된다면 무림맹도 더 이상 어쩌지 못할 걸세. 그러지 않
으면 당장 또 무슨 싸움이 일어날지도 모르네.>
주해대사의 전음이 천호의 귓가에 전해졌다.
"거두어 주시오 제발."
사색이 된 사내가 다시 한 번 애원했다.
아마도 사내는 주해대사와 같은 염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생각을 못했군.'
천호가 천천히 혈영의 무리들을 돌아보았다.
"당신들의 뜻도 그러하오?"
"그렇습니다! 대두령."
혈영의 무리들이 얼른 답했다.
"좋소, 오늘부터 당신들은 전원 녹림의 일원이오. 차후로 내
명령에 따라 행동하시오. 명령을 어길 시에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내 명령을 따르는 이상 당신들을 건드리는 사람은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 도륙할 것이오."
천호의 말이 끝나자 낙혼애 평원이 떠나갈 듯 함성이 울렸다.
무림맹의 사람들은 눈을 번뜩이며 혈영의 무리들을 노려보았
지만 자신을 따르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천길 절벽이라도 서슴
없이 뛰어드는 악마적인 무공을 지닌 사내와 맞서기는 싫었다.
"그만 흑수채로 돌아갑시다."
천호가 짤막하게 말하자 모두의 눈에 와락 반가움이 밀려들었
다.
"흑수채? 오! 그리운 내 보금자리. 청석골의 화주는 잘 익었겠
지."
철도정이 반색을 하며 깡총거리기 시작했다.
"이 날 건달 같은 놈! 어서 짐을 꾸리고 집으로 갈 준비를 하
지 못할까."
철사홍이 아들 철도정의 뒷덜미를 나꿔채며 고함을 질렀다.
"아이고 아버님! 내 일단 그곳에 들렀다 짐을 정리하고 다시
올테니 이 손은……."
"시끄럽다 이놈! 당장 집으로 갈 준비를 해라."
철사홍이 질질 끌다시피 철도정의 덜미를 당기며 걸음을 옮겼
다.
"자네도 함께 가지. 자네 사문에는 이미 말해 놓았네."
고개를 돌린 철사홍이 유자추를 보고 말했다.
"저도 함께 말씀이십니까?"
유자추가 깜짝 놀라며 철사홍을 바라보았다.
"안 그랬다간 딸년까지 산적 질 하겠다고 집을 뛰쳐나갈텐데
그럼 우리 가문은 문을 닫아야 하네. 어서 가세."
철사홍이 다시 한 번 재촉하자 유자추가 주춤주춤 철사홍의
뒤를 따랐다.
"쿡쿡! 야 불곰! 네놈 몫까지 내가 다 마실 테니 아무 걱정말
고 가문으로 돌아가서 한 십 년 할머니 사랑 많이 받고 사람되
어 나오너라."
형일비가 철도정의 뒤통수에다 고함을 지르며 키득거렸다.
* * * *
많은 피해를 낸 혈풍이 가라앉았다.
전멸의 위기에서 대 승리로 반전한 무림맹도 해체되었다.
이번 대전을 계기로 무림맹은 지옥마도 장천호와 그를 따르던
백도 후기지수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두
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무시무시한 칼도 무서웠지만 결정적인 순간
에 자신들을 키웠던 사문보다는 오히려 장천호를 따라 자신들과
대치했던 그들의 행동이 가슴속에 가시처럼 걸려있었다.
무림인이 아닌 얘기꾼들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강인하고 의리 깊은 사내들이었지만 정파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마지막 행동은 이유야 어찌됐든 사문에 대한 항명으로
여겨졌다.
어떻게 해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또 그렇게 함으로
써 더 큰 피해를 줄이고 대전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
각들은 잊어버리고 그들이 입은 자존심의 상처만을 길이길이 기
억하는 곳이 무림이었다.
그 알량하고 치졸한 정파의 자존심이 천호의 가슴을 무겁게
했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무복 차림으로 칼을 등에 매는 천호를 소혜와 능소빈이 눈물
을 글썽이며 바라보았다.
"마지막 남은 짐이요. 이 짐만 벗어버리면 떠납시다."
천호가 두 여인을 달래며 준비를 마쳤다.
"이해 할 수가 없어요. 장공자."
옥동자를 품에 안은 조화영과 한영도 걱정스런 얼굴로 천호를
바라보았다.
"싸움이 아니고 그냥 단순한 비무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시
오."
천호가 아무 걱정 말라는 듯 표정을 밝게 했다.
"아무리 비무라지만 그 상대가 제왕성의 새로운 성주 단리웅
천 공자예요. 화천옥공자와 형일비공자 얘기로는 그 사람의 무공
이 결코 오라버니의 아래가 아니라고 했어요."
소혜가 원망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생사를 결할 대결이 아니라 비무를 하겠다는 것이 아
니오."
"가가나 단리웅천 공자의 칼이면 단순한 비무라도 목숨이 위
태로울 수 있어요. 옛 원한 같은 건 잊은 지 오래이고 또 가가는
내가 무림 제일의 칼을 지니고 있다는 식의 허명은 눈꼽만큼도
바라지 않는 사람인데 왜 굳이 그 사람과 비무를 하려 하는가
요?"
능소빈도 조화영처럼 천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오."
천호가 무심히 말하며 떠날 차비를 하자 두 여인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천호를 따라 일어섰다.
피로 물든 낙혼애 평원도 봄이 끝나고 찾아온 여름장마로 그
피의 흔적이 깨끗하게 씻겼다.
혼란스러웠던 무림이 여름동안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을 바람
과 함께 숨을 돌릴 즈음 지옥마도 장천호로부터 제왕성으로 날
아든 한 장의 서찰로 인해 중원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다가오는 중양절 정오에 천마평(千馬平)에서 비루를 하고 싶
다는 내용은 삽시간에 무림으로 퍼져나갔고 온 강호인들은 신경
을 곤두세우며 천마평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결국 부모님 원수를 갚자는 것인가?"
"아닐세. 그보다는 더 깊은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닐까?"
"깊은 속셈이라니?"
"누구도 당하지 못할 칼과 녹림, 혈영 양 세력을 합친 힘을 가
졌으니 이젠 제왕성주만 꺾으면 명실상부한 제 일인자가 아닌
가? 그럼 무림일통의 대 역사를 이룰 수도 있는 일이고……."
"그, 그런 엄청난 생각을……?"
"사람이란 다 마찬가지지. 나라도 그 정도면 그렇게 하겠네."
"예끼! 이 단순한 사람들! 그럴 생각이었으면 낙혼애 평원에서
결판을 냈겠지 뭐 하러 목숨을 내던지며 무림을 구했겠나?"
"그, 그런가?"
"그렇지……?"
무수한 추측들이 난무하며 수 십 만은 족히 넘을 무림인들이
천마평으로 모여들었다.
중양절 정오!
수많은 인파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천호와 단리웅천이
평원 한가운데에서 마주했다.
"오랜만일세!"
"그렇군요. 동정호변의 한 주루에서 헤어진 후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예상대로 됐군요."
천호와 단리웅천이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좀 의외군요."
단리웅천이 눈을 들어 천호의 표정을 살폈다.
"뭐가 말인가?"
"그 동안 모든 행적으로 보아 장공자님은 사소한 은원에 얽매
일 사람이 아닌데 봉문을 한 제왕성에 굳이 이런 비무를 신청하
다니 말입니다."
단리웅천의 표정에 쓸쓸함이 어렸다.
봉문을 하고 지금껏 모든 무림사에서 몸을 빼냈지만 들려오는
소문과 함성으로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존경심을 품었던 사내였
는데 그 사내의 마지막 행동이 석연치 않았다.
"자네 가문은 봉문을 했다고 해서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곳
이 아니네. 지금은 경황이 없겠지만 얼마 있지 않아 많은 제자들
을 잃은 무림의 원한이 자네 가문으로 향할 것이고 그럼 어쩔
수 없이 자네는 칼을 휘둘러야 하네. 그 칼을 지금 나에게 휘둘
러 그들의 생각을 미리 꺾어놓게."
"그게 날 끌어낸 이유인 것이오?"
단리웅천의 표정에 여전히 쓸쓸함이 담겨있었다.
"그건 자네에게 돌아갈 부수적인 소득이지 내 이유는 아닐세."
"그럼 장공자님의 이유는 무엇이오?"
"그건 비무가 끝나면 가르쳐주지. 미리 얘기하겠는데 최선을
다하게. 나 역시 그럴 셈이니까."
쨍-
천호가 칼을 빼들었다.
"할 수 없군요."
단리웅천도 가슴속에서 옥피리를 꺼내들었다.
두 사람의 격돌이 임박해지자 천마평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
고 조용해졌다.
쌔액-
휘잉-
마침내 두 사람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비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 대결이었지만 두 사람에게서 쏟
아지는 절기는 바위를 가르고 산을 무너뜨릴 만큼 엄청났다.
구경을 하겠다고 길게는 근 한 달 동안에 걸쳐 이곳으로 온
사람들 대부분은 두 사람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을 수도 없었다.
"저들이 무슨 인간이냐?"
"저놈! 저 엄청난 무공을 소유한 놈이 봉문을 하고 있었단 말
인가?"
"두령의 진면목이 저거였나? 그럼 우린 사기 당한 것이다."
"이놈아. 네 능력이 모자라 그것 밖에 못 익힌 것이지 어디 두
령이 덜 가르친 것이냐?"
용쟁호투의 대결이 근 한 시진 동안 계속되었다.
펑-
콰콰쾅-
뇌성벽력이 쏟아지고 강기가 부딪치며 천마평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연못이 몇 개나 생겨나고 있었다.
다음 번에는 대체 어떤 절기들이 쏟아지고 얼마만한 폭발이
일어날 것인지 인간의 사고로는 도저히 상상을 불허하는 장면들
이 두 젊은이의 대결에서 펼쳐졌다.
'이럴수가?'
단리웅천이 신음성을 삼켰다.
우숭가마을에서 익힌 잠마혈경의 모든 절기를 다 쏟아내어도
마주한 천호의 칼은 그것들을 쉽게 끊어버리고 더 강한 절초들
을 요구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뽑아 내겠다는 듯이 천호의 칼이
엄청난 위력으로 쉴새없이 쇄도해 들었다.
"하앗!."
천호의 칼에 그물 속에 갇힌 것처럼 갇힌 단리웅천이 무의식
적으로 잠마혈경의 최후초식을 극한의 공력과 함께 뿌렸다.
"어헉!"
한 순간 단리웅천의 입에서 비명이 울렸다.
자신의 혼신을 다해 펼쳐진 잠마혈경의 마지막 초식을 가르고
천호의 도가 그 보다 더한 강기를 일으키며 가슴으로 쇄도해 들
었다.
상대의 극강한 공세를 막으려면 다른 상대도 그에 상응하는 공
격을 해야하고 그런 충돌에서는 한 쪽이 산산이 부셔져야만 다
른 한쪽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공격을 산산히 부셔오는 천호의 칼에 단리웅천이 두려
움보다는 황홀함을 느끼며 마지막을 의식하는 순간 믿을 수 없
게도 천호의 칼이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이건 자살행위다!'
마지막 뿌리가 잘리지 않은 이상 자신의 남은 여력이 공격을
멈춘 천호에게 덮쳐들기 때문이다.
퍼버벅-
천호의 왼팔이 단리웅천의 남은 여력을 막아내며 너덜해졌다.
"왜? 왜 이런 것이오?"
단리웅천이 대경한 눈빛으로 천호의 왼팔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자네의 공격을 고스란히 심장에 맞고 죽어야하나?"
"그런 뜻이 아니지 않소? 도를 멈추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없
었을 것 아니오?"
"그랬다면 자네가 죽을 수도 있었네."
천호가 왼팔을 들어올려 주먹을 쥐어보며 말했다.
"한 팔을 잘릴 뻔하면서도 날 살린 이유가 무엇이오?"
단리웅천이 재촉하듯 물었다.
"같은 산에 호랑이가 두 마리만 있다면 싸움이 일어나지만 세
마리라면 대치하여 쉽게 싸울 수가 없지."
천호가 옷자락을 베어 왼 팔의 상처를 감싸며 말했다.
"자넨 너무 자신을 감추고 있어서 호랑이가 아닌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더군."
천호의 말에 단리웅천의 눈빛이 여러 번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당신 부하들을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것이오?"
한 가지 결론을 얻은 단리웅천이 궁금증을 확인했다.
"한 번도 그들을 부하로 생각해 본적 없네. 좋은 친구들이었
지……. 어쨌든 이젠 자네가 더 없이 무서운 호랑이라는 것을 세
상이 모두 인식한 이상 허울만 좋은 자존심에 목을 매는 정파무
림도 자네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저들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네.
이젠 홀가분하게 산으로 떠날 수 있겠어."
천호가 칼을 바닥에 던지며 처음으로 미소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나보고 언제까지나 저 감옥 속에 버티고 앉아서 악역을
맡으란 말이오?"
단리웅천이 제왕성이 있는 방향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나도 산으로 가고싶소."
천호가 아무 말이 없자 단리웅천이 다시 말했다.
"자넨 나하고는 태생이 달라. 제왕성이 훨씬 더 잘 어울려."
"이제껏 단 한 번도 내 뜻대로 살아본 적이 없소. 또 다시 그
러긴 싫소."
단리웅천이 허탈한 표정으로 천호를 쳐다보았다.
"그건 제왕성의 장남으로 태어난 자네의 업보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자네 부친의 손에 부모를 잃고 어
린 시절 고아가 되어버린 한 사내의 부탁이기도 하다네."
"……."
"저들을… 부탁하네!"
"……."
자신을 두령이라 부르던 후기지수들이 앉아 있는 곳을 한 번
쳐다본 천호가 등을 돌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휘이잉-
등을 돌려 걸어가는 천호와 얼이 빠진 채 천호의 등을 쳐다보
는 단리웅천 사이의 공간에 한줄기 회오리바람이 불어와 흙먼지
가 날아 올랐다.
"젠장, 빌어먹을! 이놈의 팔자는 왜 끝까지 이 모양인가? 야아
악---"
멍하니 서 있던 단리웅천이 천마평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렀
다.
"저 인간들 대체 뭐 하는 짓들인가? 승부는 또 어떻게 된 것
이고?"
뭐가 어떻게 끝났는지 알아볼 실력을 가지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잘 가시오 두령!"
단리웅천이 천호의 등뒤에서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언
제까지 펴질 줄을 몰랐다.
* * *
"날씨 한번 좋군."
악양의 외곽 한적한 길목에서 조촐한 이별이 이루어지고 있었
다.
천호를 따르던 후기지수들과 한영, 조화영이 길목에 서서 여장을
꾸린 천호와 능소빈, 진소혜를 배웅하고 있었다.
"언니. 이젠 언니가 딸이야. 한영아저씨와 함께 우리 아빠 잘
부탁해."
소혜가 조화영에게 자신의 아버지 진충을 부탁했다.
"걱정마 소혜. 평생 친아버지로 모실거야."
조화영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젠장! 이놈의 날씨는 왜 이리 좋은거야?"
형일비가 괜히 하늘을 쳐다보며 투덜거렸다.
"왜 두령이 차일피일 떠날 날짜를 늦추며 단리공자와 비무를
했는지 이젠 알겠어요."
도진화가 주르르 눈물을 흘리며 천호를 쳐다보았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우리두령!"
와락 천호의 품으로 뛰어들어 얼굴을 파묻은 도진화가 닭똥
같은 눈물을 쏟았다.
"아들 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사시오. 도소저."
흠칫 놀라던 천호가 빙긋 웃으며 막내 동생을 달래듯 도진화
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정말 보고싶을 거야 언니, 그리고 소혜."
도진화가 다시 능소빈과 소혜를 얼싸안으며 소리내어 울었다.
"빌어먹을! 산 속에 꿀단지를 묻어두었나? 기필코 떠나는군."
황망한 시선들을 뒤로하고 천호일행이 천천히 멀어져갔다.
"어느 산으로 가시오 두령?"
신도기문이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천호를 보고 소리쳤다.
"당신들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산으로……. 사대세가의 후예
는 더더욱……."
두 여인을 대동하고 가물가물 멀어져 가는 천호의 발걸음이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두령 완결>
************'두령'을 끝내면서*************
아주 오래 전에 어느 책자에서 우두머리 원숭이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덩치도 왜소하고 나이도 많이 든 못난이 원숭이였지만 누구보
다도 더 훌륭한 우두머리의 길을 걸어간 두목 원숭이의 글은 언
제나 내 가슴 한 구석을 떠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우두머리 원숭이는 내 가슴 한 구석에서
점점 가슴 복판으로 자리를 옮겨왔고 그 형상도 구체화되어갔다.
어느 날 문득 무협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통해서 그 우두머리
원숭이를 살려내고 싶었다.
이제껏 제일 길게 써본 글이라고 해 보아야 원고지 열 장 내
외의 독후감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무협에 대한 지식 역시 팔
방풍우나 태산압정이 태극혜검보다 훨씬 고강한 무공으로 알고
있던 나에게 그런 결심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불가사의한 일
인 것 같다.
그 우두머리 원숭이를 쫓아 숨을 헐떡이며 자판을 두들긴 지
난 몇 개월은 지독한 부담과 또 지독한 열망의 시간이었다.
처음부터 틀을 정하지 않고 그냥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기행
문처럼 써 가면 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두령은 서장부터 우두머리 원숭이라는 틀을 정하고 그 틀을
벗어나지 않게끔 모든 상황들을 이끌어 갈려고 하니 그동안 수
백 번도 더 옆길로 빠지려는 구절들을 가차없이 난도질했고 억
지로 틀 속에 끌어 담기도 했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무리가 있
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젠 미흡하나마 내 가슴속에 있던 그 우두머리 원숭이를 세
상 밖으로 끌어내었다.
아쉬움은 많지만 행복하다.
그 행복감을 독자 여러분들과 조금이라도 같이 할 수 있다면
두 배로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월인(月刃) 배상.
끝까지 애독해 주시고 따뜻한 격려의 댓글로서
성원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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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잘읽었읍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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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의리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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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독 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즐독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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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독 ㄳ
즐독이랍니다
수고해 주신분 에게 감사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