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숲에서 누군가 걸어나온다. 비로 만든 사람, 투명한 사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물었던 것 같다.
비로 만든 사람. 너는 투명해서, 네 앞에 서면 내가 비친다. 네 속에는 온통 내가 들어 있다. 내 몸에 꼭 맞는 네가 있다.
입체거울처럼 거기 나를 꼭 닮은 사람이 투명하게 서 있다.
비로 만든 사람, 너는 내 몸에 꼭 맞는 입체거울로 서 있다.
삶의 질서가 죽음으로부터 온다면, 시의 천사는 악마의 교사인가?
인간은 자신이 짓는 집이 천년 후의 유적지라는 사실을 잊는다. 인간은 자신의 사랑이 백년 후의 후손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는다.
인간은 잊는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죽음의 뿌리를 거느리고 있다는 것을
벽에 그려진 새가 날지 못하는 것은 벽이 날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얼굴에 앉은 흰 나비가 날개를 접었다 펴듯, 둥근 지구에 앉아 제 환상을 접었다 편다. - 달
가장 '깊게' 무너지고 갈라지고 쓰러지고 다치고 피 흘리기 위해 연인이 있다. 가장 '먼저' 무너지고 갈라지고 쓰러지고 다치고 피 흘리기 위해 가족이 있다 - 몸
바람이 불면 창밖으로 기억의 정어리 떼가 지나간다. 버드나무는 어장이었다. 가을 어딘가에 상류라고 불리는 곳이 있을 것이다 - 가을
삶에 대해 묻지 않는 자는 죽은 자이고, 사랑에 대해 묻지 않는 자는 살인자이다. 모든 삶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죽거나 죽이기 때문이다 - 고독
후회는 가장 깊은 곳을 찢는다. 밤의 바닥인 어둠을 찢는다. 노트 위에 여러 번 그어진 연필 자국처럼 바닥을 찢는다. 발바닥이 몸의 바닥이라서 우리는 걷는다. 걷고 걷고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