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형, 백번 文 애비 맞고 北 생모 본명은 안순옥? -또 드러난 文 출생 의혹 - 조우석 칼럼 2021.02.18 [뉴스타운TV]
#문재인 #김정숙 #문준용 #문용형 #북한이모 #노무현 #권양숙 #친노 #친문 #직파간첩 #안순옥
https://youtu.be/PpWbd9OL_m8
내용 설명
문재인이 나이 속이고 업무방행죄 해가며,
2004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에 갈 때
김정숙, 문용준, 누나까지 데리고 불법으로 갔음.
이때,만난 이모라는 정체불명녀 본명이 안순옥이며
문재인을 낳은 친모였음.
이 사실은, 문용형(문준용) 인민군이 체포되어 과정 거쳐
(체포 백인엽 부대 인계->대구 수용소->거제도 수용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공산당 자유대립 살인 등 많을 때
그 정보를 미군에게 주었기에, 청소부로 일할수 있었고
수용소내에서 활동 자유였음. 정보캐야 하니까.
(문재인은 흥남철수 귀순 노무자로 표현)
이때 바로 인접 백련사 작은절이 있었는데,
주말에 외출도 허용되어 자주 드나듬.
당시는 육지와 다리없어 도망갈데도 없었다.
이때 문용형은 주지 스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사실은 북에 진짜 처가 있다고 실토.
이름은 안순옥
위 사실은, 체포 제보자가 백련사에 들러 2~3일 묵으며
백련사 주지스님과 많은 대화중 오간 이야기를 폭로한 내용.
폭로 제보자는, 영천전투에 참가한 학도병 서승남씨로
육군 제1사단 2연대 소속 이었으며, 그기서 문용형(문용준)
체포하여 백인엽 부대에 인계했음.
맺음말
그럼 김정숙은 문재인이 어린 직파 간첩임을 알고 있었네요.
당시 국민 중학 고등 청년 처녀 등 남북 간첩 수천명 주고받음.
왜? 직파 간첩인가??
당시, 우리나라 경우 몇주간 군인처럼 훈련시키고 교육 시켜서,
신분증 발급 북파시킴.(현재 생존자들 존재 및 수송 미군 생존 증언)
당시, 북한도 간첩교육 시켜서 어린애들을 남파시킴.
북한에 간첩 교육 받은 신분증 있다는 이야기.
지금까지, 간첩활동이면, 현행범 입니다.
문재인 김정숙 둘다 긴급체포가 맞습니다.
간첩인줄 알면서 숨겨준죄도 다 처벌 받습니다.
문재인 김정숙이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주변 많은 사람들도 엮여지는 초대형 사건.
문재인 해명이나,대응을 지켜보겠습니다.
아무런 대응 없으면 당연히 다음 순서 밟아야지요.
대통령이 직파 간첩 의혹 국가적 중대 사건 해당.
2021.2.18.
국민 수행자 정외철
https://www.dynews1.com/news/articleView.html?idxno=508492
형 백선엽·동생 백인엽 사후 어디에 묻혔나? - 동양뉴스
[동양뉴스] 송영두 기자 =백선엽 장군이 10일 향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한 가운데 지난 2013년 앞서 세상을 떠난 친동생 백인엽 예비역 중장이 화제가 되고 있다.백인엽 장군은 6.25전쟁 당시 영천전투와 인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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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엽 장군은 6.25전쟁 당시 영천전투와 인천상륙작전에 공을 세웠고 향년 90세로 별세했다.
백인엽 장군은 1923년 평남 강서에서 태어났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 1기로 임관했다.
1948년 육군 제17연대장에 임명된 그는 1950년 8월에는 수도사단장으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침공을 격퇴하고 영천전투에서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국군 제17연대를 이끌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서울탈환에 크게 기여했다.
백 장군은 휴전이후 9사단장, 1군단장, 6군단장, 육군본부 관리참모부장을 역임하다 1960년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후 선인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특히 이 같은 공을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을 수상한 백 장군의 장례는 육군장으로 치러질 수 있지만 유지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고 천안 풍산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출처 : 동양뉴스(http://www.dynews1.com)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1106100025
‘잘 싸운’ 군인, 白仁燁의 6·25
“李承晩 대통령께 서울탈환 보고하러 갔다가, 불부터 끄라고 혼났지”
monthly.chosun.com
6.25 전쟁과 영천
https://youtu.be/QWwOqNWmCDE
https://www.korea.kr/special/policyFocusView.do?newsId=148695203&pkgId=49500506
[6·25 결정적 전투들] ③ 영천전투
영천전투는 6,25전쟁 초기 아군에게 불리한 전세를 극적으로 역전시켜 전쟁의 마지막 보루인 낙동강방어선에서 위기를 구한 구국의 일전이었다. 이 전투는 1950년 9월 2∼13일까지 국군 8사단이 북한군 2군단의 공격을 방어한 6,25전쟁의 일대 전환점이 된 전투였다. 국군 8사단은 이 전투에서 북한군 15사단을 섬멸하고 승기를 잡았다.1950년 9월 영천전
www.korea.kr
회의 결과 군단장은 적이 영천 돌파에 주력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국군 1사단과 6사단에서 각 1개 연대를 8사단에 배속해 영천을 고수하기로 했다.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