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육씨성(陸氏姓)의 사례(事例)
陸姓乾命乾造癸未甲子丙戌己亥大運癸亥壬戌辛酉庚申己未戊午起運一 육성건명건조계미갑자병술기해대운계해임술신유경신기미무오기운일 歲十一二一三一四一五一強弱丙死於冬亥子癸三水既得其令又兢來克未 세십일이일삼일사일오일강약병사어동해자계삼수기득기령우긍래극미 扶者太少故丙干以弱論格局丙生子月干透癸水為正官之格用神丙既云弱 부자태소고병간이약논격국병생자월간투계수위정관지격용신병기운약 戌己土雖能制水乃本身先泄丙火之氣只月上甲木生丙綜計全局抑者太多 술기토수능제수내본신선설병화지기지월상갑목생병종계전국억자태다 必須生扶月上甲木泄水之有餘生火之不足取用無疑即謂官格用印是也喜 필수생부월상갑목설수지유여생화지불족취용무의즉위관격용인시야희 忌既用甲木自喜木火助用助身不畏土之泄火水之剋火蓋土有木制水有木 기기용갑목자희목화조용조신불외토지설화수지극화개토유목제수유목 當也然亦非所喜耳最忌金為生水助虐剋木則傷用歲運一歲初走癸亥運一 당야연역비소희이최기금위생수조학극목칙상용세운일세초주계해운일 派水鄉稚年多病十一歲行壬戌運水土各半亦乏善可陳二十一歲辛酉運甲 파수향치년다병십일세행임술운수토각반역핍선가진이십일세신유운갑 辰年隨某巨公至廣東充記室四載腰纏黃白正逢木火流年也娶妻得子亦在 진년수모거공지광동충기실사재요전황백정봉목화류년야취처득자역재 斯時嗣即奔馳少功矣三十一歲庚申運用神受損蓬飄萍泛宇內寓形南北東 사시사즉분치소공의삼십일세경신운용신수손봉표평범우내우형남북동 西焦桐莫識尤以三十六後流年多金水無家可依四十一歲之己未運有甲子 서초동막식우이삼십육후류년다금수무가가의사십일세지기미운유갑자 乙丑丙寅丁卯四載之吉努力勿怠再後都金水年徵求毋奢五十一歲戊午運 을축병인정묘사재지길노력물태재후도금수년징구무사오십일세무오운 以五二五三五四五五小有作為午運之羊刃被沖自難樂觀故五十六後可撫 이오이오삼오사오오소유작위오운지양인피충자난낙관고오십육후가무 孤松而盤桓矣六親偏印為用父母庇蔭尚豐劫財無力弱弟早夭日支藏財然 고송이반환의육친편인위용부모비음상풍겁재무력약제조요일지장재연 非喜神妻乃中道雲也傷食亦非喜見故前雖有子已喪申運晚來己運或有弄 비희신처내중도운야상식역비희견고전수유자이상신운만내기운혹유농 璋之望但須琴絃再理也性情火日水多所為欠當宗旨少決事業官格用印自 장지망단수금현재리야성정화일수다소위흠당종지소결사업관격용인자 以近貴求名之為宜尤利於東南半聲耳 이근귀구명지위의우리어동남반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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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육씨성(陸氏姓)의 사례(事例)-건명(乾命)
| 時 | 日 | 月 | 年 |
| 己 | 丙 | 甲 | 癸 |
| 亥 | 戌 | 子 | 未 |
| 丁 | 戊 | 己 | 庚 | 辛 | 壬 | 癸 | 대 운 |
| 巳 | 午 | 未 | 申 | 酉 | 戌 | 亥 |
| 61 | 51 | 41 | 31 | 21 | 11 | 1 |
1) 강약(強弱): 병화(丙火)는 겨울에 사(死)하고 해(亥), 자(子), 계(癸)의 삼수(三水)는 이미 월령(月令)을 얻어 왕성(旺盛)하여 병화(丙火)를 극하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未), 술(戌)과 기토(己土)는 계수(癸水)를 제어할 수 있으나 먼저 병화(丙火)의 기운을 설기합니다. 오직 월간(月干)의 갑목(甲木)이 병화(丙火)를 생조하나 종합적으로 보면 전국이 일간을 억제하는 기운이 많고 도와주는 기운이 부족하므로 병화(丙火) 일간은 약하다고 봅니다.
2) 격국(格局): 병화(丙火) 일간이 자월(子月)에 태어나고 천간에 계수(癸水)가 있으니 정관격(正官格)입니다.
3) 용신(用神): 병화(丙火)가 약하니 생조가 필요합니다. 월간의 갑목(甲木)은 수를 설기(泄氣)함에 충분하지만, 병화(丙火)를 생조함에 부족하므로 갑목(甲木)을 용신(用神)으로 취함에 의심이 없습니다. 이를 관격용인(官格用印)이라 합니다.
4) 희기(喜忌): 갑목(甲木)을 용(用)으로 삼았으므로 목(木)과 화(火)가 희신(喜神)이므로 일신(日身)과 용신(用神)을 돕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러므로 토(土)가 화를 설기하고 수(水)가 화를 극 하는 것을 두려워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토(土)가 목(木)에 의해 제어되고 수(水) 또한 목(木)에 의해 설기되어 다스려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꺼리는 것은 금(金)입니다. 금(金)은 수(水)를 생 하여 기신을 돕고 목(木)을 극 하여 용(用)하는 신(神)을 상(傷)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5) 세운(歲運): 1세에 계해운(癸亥運)에 들어가니 수(水)기운이 가득하여 유년기에 병이 많았습니다. 11세에 임술운(壬戌運)은 수(水)와 토(土)가 반반으로 섞여 있어 특별히 좋다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21세 신유운(辛酉運)에 들어서 갑진년(甲辰年)에는 어느 거공(巨公)을 따라 광동으로 가서 기실(記室)로 4년을 근무하고 재물을 모았습니다.
이는 목화(木火)의 유년(流年)을 만난 덕입니다. 이 시기에 처(妻)를 얻고 자식을 보았으나 그 이후로는 노력에 비해 성과는 적었습니다.
31세에 경신(庚申)운(運)에 들어서 용신(用神)이 손상(損傷)되고 부평초처럼 떠돌며 살았고 남북을 전전하였으나 정착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36세 이후 금수(金水)의 유년(流年)을 자주 만나 의지할 곳 없이 방황하였습니다.
41세에 기미운(己未運)에 들어서 갑자(甲子), 을축(乙丑), 병인(丙寅), 정묘(丁卯) 4년은 길하니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는 모두 금수(金水)의 해로 지나친 욕심은 금물입니다. 51세 무오운(戊午運)에 들어서 52세부터 55세까지는 작지만, 성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운(午運)에는 양인(羊刃)이 충을 받으니 낙관(樂觀)하기는 어렵고 56세 이후에는 외로움을 달래며 살아가야 합니다.
6) 육친(六親): 갑목(甲木) 편인(偏印)을 용(用)으로 삼았으니 부모(父母)의 은혜는 비교적 풍족합니다. 그러나 겁재(劫財)는 힘이 없으니 형제가 약하여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지(日支)에 재성(財星)이 암장(暗藏)되어 있으나 금(金)은 희신(喜神)이 아니므로 처(妻)와 이별(離別)하게 됩니다. 상관(傷官)과 식신(食神)도 금(金) 기신(忌神)을 생조(生助)하여 희신(喜神)이 아니므로 과거 자식이 있었으나, 신운(申運)에 잃었습니다. 후반기 기토(己土)운(運)에 이르러서는 아들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이 있는데 가정(家庭)을 다시 꾸려야 가능합니다.
7) 성정(性情): 화(火) 일간이 수(水)가 많은 사람은 일간(火)이 극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자신의 본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형세로 해석합니다. 즉 물이 많아 생각은 많지만, 실행력이나 결정력이 부족한 경향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목표가 분명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8 사업(事業): 관격용인(官格用印)의 사람은 사주 구조상 관성(官星)을 중심으로 인수(印綬)를 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공적인 자리, 명예 추구, 학문이나 문서 관련 직업이 적합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목화운(木火運)이 되는 동남(東南)방향에서 반쯤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일러두기】
자평진전에서는 이를 정관용인(正官用印)이라 하며 정관(正官)을 용신(用神), 인수(印綬)를 상신(相神)으로 본다. 따라서 본문에서 용신으로 칭한 갑목(甲木) 인수(印綬)는 자평진전에서는 상신(相神)에 해당함을 알아야 한다.
첨부
본문을 살펴보면 분명하게도 이 명조에서는 관격용인이므로 갑목 인수가 용신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위천리 선생은 격국과 용신을 따로 구분을 하였는데 상신의 존재가 없다. 그래서 상신을 용신이라 언급하고 있다. 이런 개념으로 인해 격국 따로, 용신 따로라는 이상한 관법이 유행을 한 이유가 위천리선생의 왜곡에서 시작이 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위천리선생의 서책 제자인 도계선생이 위천리 선생의 이와 같은 오류의 저서를 바탕으로 번역·소개하였다는 사실이다. 도계선생의 유명세에 위천리 선생의 고명이 어울려지면서 이를 믿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한국명리역사이다.
그 당시는 냉전 시대였으므로 중국 본토의 학인들과 직접 교류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당시에는 대만과 홍콩에서 활동하던 자유진영의 학자들이 저술한 명리서가 한국에 비교적 쉽게 유통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위천리 선생이다. 학인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잘 분별하여 오늘날 잘못 설명되고 있는 격국용신법의 왜곡을 파악하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자료출처 천리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