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의경계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혼수 상태에 빠진 주인공 료우기 시키가 깨어나면서 직사의 마안이라는 능력을 갖게 되어 그 능력으로 초현실적인 현상들이 일어나는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이다. 현재까지 총 9편의 작품이 나온 이 애니메이션은 일본에서 꽤나 인기 있는 작가의 작품이다. 책으로 먼저 출판 된 공의 경계는 그 뒤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역순행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시간의 흐름대로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고 시기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공의 경계가 발표된 순은 제 1장 부감풍경, 제 2장 살인고찰(전), 제 3장 통각잔류, 제 4장 가람의 동, 제 5장 모순나선, 제 6장 망각녹음, 제 7장 살인고찰(후), 제 8장 공의 경계, 제 9장 미래복음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시간 순으로는 제 2장 살인고찰(전), 제 4장 가람의 동, 제 3장 통각잔류, 제 1장 부감풍경, 제 5장 모순나선, 제 6장 망각녹음, 제 7장 살인고찰(후), 제 8장 공의 경계, 제 9장 미래복음 순이다.
이 중 발표된 순으로 제일 첫 번째 애니메이션인 부감풍경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부감풍경의 줄거리는 한 빌딩에서 알 수 없는 연속 투신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 주인공 중 한 명인 고쿠토 미키야는 그 사건에 관심을 보이다가 그것과 관련된 일로 인해 장기 수면에 빠진다. 그 일로 인해 주인공인 료우기 시키는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 사건을 파헤치다보니 후죠우 기리에라는 인물이 이중존재라는 능력을 가지게 되어 사람들을 투신하게 만들어 자살처럼 보이는 타살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료우기 시키는 고쿠토 미키야를 구하기 위해 후죠우 기리에의 능력을 없에고 고쿠토 미키야를 구한다.
후죠우 기리에가 투신자살을 일으킨 이유는 병실에만 있어야하는 자신의 상황을 슬퍼하면서 창문 밖에 보이는 부감풍경만을 바라보며 삶의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는 하나의 꿈이 있는데 바로 날고 싶은 꿈이다. 그런 그녀에게 능력이 생겨 이중존재가 밖을 나갈 수 있게 되었고 그 능력으로 같이 날 친구들을 구한다. 그런 사람들이 그녀에게 홀려 옥상으로 올라가고 비행을 시도하지만 결국 추락하고 말아 투신자살한 꼴이 된 것이다.
그러한 윤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료우기 시키가 막고, 또 다른 주인공인 아오자키 토우코는 후죠우 기리에가 한 행동이 어떤 일들이었는지 일깨워준다. 그 말을 들은 후죠우 기리에는 죄책감과 함께 삶의 의지를 잃어 실제로 존재하는 자신의 몸을 내던진다. 하늘을 향해 한 번 날아보기 위해.
부감풍경에서 흥미로운 점은 장자의 호접지몽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부감풍경에서 나오는 대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시키: 자살은 옳은 걸까, 미키야?
미키야: 글쎄, 어떨까? 예를 들면 내가 엄청난 레트로 바이러스에 감염돼 살아있기만 해도 도쿄 시민 모두가 죽는다고 하자. 내가 죽어서 다들 살 수 있다면 난 아마 자살할 거야
시키: 그런 게 어딨어. 그런 불가능한 얘기는 예시가 될 수 없어
미키야: 그냥 들어봐. 하지만, 그건 내가 약해서 그렇다고 생각해. 도쿄 시민 전부를 적으로 돌리고도 살 베짱이 없으니 자살하는 거야. 그러는 게 편하거든. 한순간의 용기와 영원히 지속해야 하는 용기. 어느 쪽이 힘들지는 알겠지? 극단적인 얘긴데 죽음은 어리광이라고 봐. 하지만, 당사자에겐 도말칠 수 밖에 없을 때도 있겠지. 그건 부정할 수 없고 반론도 할 수 없어. 왜냐하면 나도 약한 인간이니까
시키: 넌 달라
미키야: 그러고 보니, 시키. 신기한 꿈을 꿨어
시키: 꿈?
미키야: 응. 잠자리 꿈. 내가 잠자리를 보던 건지 잠자리가 나였는지. 아무튼 잠자리가 바삐 날고 있었어. 거기에 한 마리 나비가 와서는 따라가려고 열심히 날개짓하고 있었지만 역시 무리더라고 결국 힘이 다해서 지면으로 떨어졌어. 부유하듯이 날개짓 했으면 좀 더 오래 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던 나비는 부유하는 자신의 가벼움을 견딜 수 없었어. 그래서 날았어
떠있길 그만둔 거야. 근데, 얼레? 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나답지 않네.

여기서 우리는 부유하는 것이냐 날고 있는 것이냐를 생각해 봐야겠지만 장자의 호접지몽에서 나오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호접지몽이라는 말의 유래는 이러하다. 어느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날아디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한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꿈을 통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를 구분 할 수 없게 된 장주는 이 말을 통해 '사물의 변화'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 것이다. 장자가 본 세계는 모든 사물이 개별적으로 독립 된 세계가 아니다. 세계의 모든 사물들이 서로 얽혀있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는 '꿈 같은 세계'인 것이다. 세계는 각각의 사물들이 독특한 정체성을 갖기도 하지만 '하나'라는 전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가 될 수 있는 불이성이 병존하는 세계이다. 그러한 세계를 우리에게 어렴풋이나마 상징적으로 암시해 주는 매체가 바로 꿈인 것이다.
이런 세계를 알게 되면 아집, 편견, 자기 중심주의, 오만 등을 행하지 않고 협력, 조화와 같은 행동을 하게되어 궁극적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이다.
우리는 자주 꿈을 꾼다. 잠자리가 되어 나는 꿈을 꾸거나 나비가 되어 꿈을 꾸거나 다른 대상이 되어 꿈을 꿀 수 있다. 꿈 속에서는 날 수도 있고 부유할 수도 있고 평소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할 수 있다. 우리는 꿈을 통해 내가 내가 아니고 다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남들을 생각하는 존재가 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19금 애니메이션인데, 재미있게 잘 분석했네요. 한 편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시리즈에 대해서 미학적 관점에서 좀 더 분석해보는 것도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