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김영삼씨였다. 장로님.
그때는 엄마가 장사가 잘됐는지 퍽퍽 돈을 쥐어주던때였다.
내 계산으로 하루에 늘 십만원정도의 용돈을 늘 받았고
밥값은 2500원 정도면 비싼편이다.
일반식당으로는 물론 레스토랑에서는 6500원 정도면 스프에 돈까스에 아이스크림에 커피까지 셋트로 주었고 양도 많았다,
첼로에서 2500원짜리 커피는 고급이었다.
휘발유는 600원정도 였던것 같고 대구에서 구미까지 700원 정도면 고속도로 통행료는 거뜬했다.
아마 환율은 1달러에 600원 정돈가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늘 친구들이랑 밥먹고 노래방가고 까페가고 어디 새로생긴데 있으면 또 가보고 소주방도 가고
미용실도 너무 싼데는 안갔다.애들 분위기상
하루에 친구 만나면 삼 사만원 쓰는건 우수운 정도고
그렇게 쓰고도 늘 저축할수있었다.
나는 전문대를 일년만다녔는데 그때 등록금이 70만원정돈가 했던것같다. 과마다 다르지만
엘리베이터안내양이 있었고 노래방은 만원인데 늘 오버타임을 해준다.
새벽두시에도 대구시내는 사람들이 다녔고
동성로에 다니는 내또래 스무살 여자애 남자애들은 패션이 화려했다.
바지는 70000만원대가 입을만 했고 개스옷이 유행했다.
우리때는 메이커가 아니면 보세옷 입으면 별로 라고 사이를 뛰우곤 했다.
비쌀수록 잘 팔리던때로서 상품의 질도 질이지만 이미지만 잘 하면 뭐든지 잘 팔렸던 때였다.
중국이 개방하기전이였을거고 소련도 존재했던 때였다.
사람들 인심도 좋왔고 개가 돈을 입에 물고다닌다고 했던 시절이었다.
TK 대구경북영남지역 정치 시절이었다.
어디든 일자리가 풍성했던 시절이고 수능시험이라는 것이 낯설던 때 그전까지 대입이 익숙하던 때다.
확실한 냉전시대
소련에다 30억불을 빌려주었다던 시절
물론 소련이 붕괴하면서 못 받았지만
옛 소련을 그리워하는 푸틴이 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며 그돈을 우리나라에 갚아주면 좋겠다.
갑자가 그 시절이 생각난다.
우리할매 참치김치찌개 맛있게 끓여주시던 그때
갑자기 우리 할매 보고싶당 ㅜㅜ
십년뒤에 다시 전문대를 들어가서 졸업했지만
아 비슷한 또래가 다니던 때가 좋은것 같다
지금에 충실하게 지내야겠다.
아마도 그런 때는 안 돌아올수도 있을것같다.
축적의 시기 축복의 시기
물론 하늘 강 땅에서 저주같은 사건들이 많이 터지던 시절이기도 하다.
삼풍 서해훼리 성수대교 아시아나 사고 등등 도대체 사건사고가 얼마나 대단한지 또 얼마지나서 대구 상인동 까스사고도 있었고 또 지존파는 그 몇년 후이지만
1990년대의 후반이 힘들어서 그렇지
전반과 중반초기는 진짜 즐겁게 보냈던 때다.
복합충격이 온다는데
미뤄진다고 해도 올것이다.
그시절 코메디유행어로 손을 턱에대며 잘돼야 됄텐대
카페 게시글
세상 사는 이야기
1994년도 즈음의 기억
두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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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22 08:48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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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좋은기억들 정말부럽습니다. 전 아버지가 맨날 즐거이 약주만빵드시고 친구들델꾸와서 "느무느무싫었어요."
그때 제성격 다 버렸습니다.술이 싫어서 결벽증생기고 사회성극도로 낮아짐. 배부른소리맞습니다만
개인적으론 현재 술안마시는 사회분위기만은 좋게보고 꼭원하는 일인입니다.
과거를 생각나게하는 좋은 글이네요. 저는 그때 격렬하게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인데.....
매우 공감 가네요..
당시 이십대 후반..
94년인가 95년인가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
수원서 서울까지 뭐 좀 배워보겠다고..
땀 흘리며 전철, 버스 타고 다녔던 추억..
두딸엄마님 글 보니 옛 추억이 새로워 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