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이 이글거리는 토요일 오후, 도심 속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택시들도 더위를 먹은 듯 나무그늘아래 집단으로 모여 휴식을 취한다. 이따금씩 매연을 내뿜는 시내버스만이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내달리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철이다. 그런데 나는 이열치열의 심정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한증막 같은 아스팔트길을 바삐 걷는다.
중화산동 큰 길을 지나 서신동 감나무골 선배 집 대문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내 몸은 물속에 빠졌다 나온 듯 온 몸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선배가 세 들어 사는 방문을 열어 보니 그도 더위에 지친 듯 곤한 잠결에 빠져 있었다. 코를 골면서 잠에 빠진 선배의 얼굴은 마치 장군의 모습처럼 위엄 있게 보였고, 한편으론 어린애처럼 평안하게 보였다. 내가 방에 들어가 인기척을 해도 전혀 모르고 잠만 자는 선배. 방안에는 여기저기 벗어놓은 때 묻은 옷들이 마치 풀어 늘어뜨린 미친 여자의 머리칼처럼 흩어져 있었고, 방바닥은 플라스틱 세수 대야와 함께 온갖 쓰레기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방 좌측 벽에는 UFO라는 글자를 써서 붙여놓고 윗목 벽에는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고, 남을 따라 스승을 삼지마라 자기를 잘 닦아 스승으로 삼으면 얻기 어려운 지혜를 능히 얻으리라’ 는 글자를 붙여 놨다. 누가 보면 수십 년간 도(道)를 닦은 능력 있는 도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잠들었던 선배는 잠시 몸을 뒤틀고 하품을 하더니 무어라고 구시렁거리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깬 그의 머리칼은 이리저리 뒤틀리고 흩어져 그 몰골을 보는 순간 그만 웃음이나와 킥킥거리고 있는데, 그의 행동이 좀 이상하게 보이는 게 아닌가. 그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바지를 내리더니 방바닥에 있는 세수 대야에다 오줌을 누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조금 민망스러움과 함께 머리가 띵하게 요동쳤다. 엄연히 화장실이 있는데도 왜? 방에서 오줌을 누는 것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지저분하게 방에서 오줌을 싼다는 꾸지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되레 나한테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듯 내뱉는다.
‘야! 임마, 빈손으로 왔냐. 소주 한 병 사오지 그냥 와, 이 넉 빠진 놈아?’
‘아니 형님, 미쳤소? 방에서 오줌 싸게, 정신이 돌아버렸네.’
‘이 자식 잔소리 말아 임마?’
선배는 내게 몇 마디 욕을 내뱉더니 때 묻은 베개를 얼굴에 대고 엎드린 채 다시 잠을 청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선배와 못 만났다. 그런데 그간에 선배가 고장이 난 것 같았다.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난 것 같았다. 하기야 선배가 고장 난지는 어제 오늘이 아니다. 다만 내가 모르는 척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선배가 잠들어 있는 동안 방 구석구석을 훑어봤다. 조그마한 책상에는 격암유록 등 몇 권의 책이 꼽혀있었고, 화면이 흐리고 말소리만 들리는 낡아빠진 텔레비전이 그의 재산목록 1호처럼 보였다. 또 그의 정신을 대변하듯 벽에 걸려있는 고장난 시계는 정각 12시에 멈춰있었다.
시원스레 벗겨진 이마아래 짙고 쪽 곧은 눈썹, 당나귀 같은 귀, 약간 튀어나온 눈과 바위라도 뚫을 듯한 광채서린 눈빛, 우뚝 솟은 콧날, 훤칠한 키와 출중한 풍채, 귀공자 같이 보이는 얼굴은 재질이 있는 듯 하며, 정말 어디다 내놔도 그의 인품은 훌륭한 상이다. 인물도모 영화배우 마냥 잘 생긴 얼굴이다. 그런 그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내가 그 선배와 가깝게 지내게 된지는 10여년이 훨씬 넘는다. 처음 어느 종교 단체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그 때도 그는 자유분방하게 혼자 살았었다. 결혼 후 6개월 만에 이혼하고 홀어머님과 함께 살았으나 7년 전에 어머님도 세상을 떠났고, 그는 떠돌이가 되어 남에 집 셋방을 전전하며 지금껏 홀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평소에 하루 세 번씩 우주인과 telepathy가 통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기가 인존(人尊)이자 메시아며, 자칭 계룡백석(鷄龍白石)이라는 것이다. 계룡백석이란 조선중기 때 대학자였던 남사고 선생의 저서인 격암유록(格菴遺錄)에 나오는 말로 동방성인(東方聖人)을 뜻하는 말이다. 격암유록에 보면 계룡백석진계룡(鷄龍白石眞鷄龍) 천하열방회운 근화조선계룡지(天下列邦回運 槿花朝鮮鷄龍地)라는 말이 나온다. 따라서 계룡백석(鷄龍白石)이란 충청도 계룡산의 돌이 희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인이 백십승(白十勝)의 진리로 성인을 거역하는 자들은 모두 돌의 모서리에 부딪쳐서 깨어지고 죽게 만든다는 뜻이며, 이러한 성인이라야 진짜 성인이며, 세계만방의 좋은 운이 한국 땅의 성인이 출생한 곳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는 계룡백석의 뜻을 자기 입맛에 맞게 멋대로 풀이해놓고 있다. 예를 들어 계룡백석(鷄龍白石)이란 단어에서 닭계(鷄)자는 자신의 나이가 닭띠이고, 룡자(龍)는 그의 시가 진시(龍時)이기 때문이고, 백(白)은 그의 고향이 부안 백산(白山)이기 때문에 맞고, 석(石)은 자기 아호가 석천(石泉) 이기 때문에 딱 들어맞는 것이란다. 따라서 계룡백석(鷄龍白石)이란 말은 자신을 두고 한 말이니, 이는 자기가 성인이고 메시아가 틀림없다는 것이다. 생각하면 이런 엉터리 해석이 어디가 있는가. 참 웃기는 일이다. 이렇게 계룡백석이란 뜻을 자의대로 해석해놓은 그를 잘 알고 있는 나는 그가 방에서 오줌을 싸는 모습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방에서 오줌 싸는 성인도 있단 말인가. 하기야 고장난 인간을 좋아하고 찾아간 나도 고장난 인간과 다름없지만......
나는 선배가 잠자고 있는 방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밖으로 나왔다. 벌써 서산에 해는 지고 사방은 짙은 어둠으로 깔려있었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며 서신동 큰길가에 이르렀을 때 무심코 공중전화 박스를 쳐다본 순간, 그곳에도 고장난 인간의 흔적이 눈에 띄었다. 아무 죄 없는 전화박스유리와 수화기를 잔인하게 깨버린 것이다. 누가, 무엇 때문에 죄 없는 공중전화를 부셔버린 것일까. 술 취한 사람의 폭력일까? 아니면 불평불만이 많은 자의 분풀이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고장난 인간의 소행이 틀림없어 보였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정신병자들로 꽉 차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을 자기 맘대로 움직이고 흔들어 보려는 광란의 세상 같은 생각이 든다. 이유야 어떻든 공중전화 박스를 부수는 사람은 정신이 고장난 사람이다.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는 사람은 육체가 고장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육체가 고장 나면 병원 가서 치료할 수 있지만 정신이 고장난 사람은 좀체 치료하기가 힘들고 치료기간도 오래 걸린다. 따라서 정신이 고장난 사람이 많을수록 우리 사회는 고장난 사회, 혼탁한 사회가 지속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장난 사람들이 요소요소에 산재해있다. 육체와 정신이 고장 나고, 사상과 이념이 고장 나고, 도덕과 윤리가 고장나있다.
술에 취해 심야에 괴성을 지르며 팔자걸음을 하는 사람들. 죄 없는 공중전화 박스를 때려 부수는 사람들. 취중에 아무 곳에나 방뇨하는 사람들. 칠십 노인이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하는 일 등은 모두다 고장 난 사람들의 소행이다. 어디 이뿐인가. 돈 때문에 사기를 치고, 돈 때문에 폭력을 휘두르고, 돈 때문에 강도짓을 하고, 돈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독살하는 패륜아는 이 사회의 대표적인 고장난 사람들이다. 특히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천지(天地)에 대죄(大罪)를 짓는 일이며, 용서받을 수 없는 죄악이다. 생명에 대한 대죄, 그것은 곧 신성한 것에 대한 대 죄인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덕과 복은 끝난다. 죽으려는 사람을 살려주는 것은 위대한 공덕이다. 반면 살아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엄청난 죄악이다. 그리고 그 죄악은 영원히 보상받지 못하고 용서받지 못한다.
사람의 생명을 사람의 손으로 죽인다는 건 천륜을 거역하는 일이며, 용서받지 못한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다른 적선이나 진리대로 살지는 못하더라도 살인, 강도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설사 빌어먹다 못해 굶어죽을지언정 어찌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는단 말인가.
매일같이 일어나는 범죄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고장난 인간, 고장난사회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무엇일까.
예수는 사람이 사는 동안 다섯 가지를 하지 말라고 하였다. 성내지 말라. 음욕을 품지 말라. 세상일에 맹세하지 말라. 악에 대항하지 말라. 외국인을 미워하지 말라.
석가도 다섯 가지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사람을 다치게 하지 말라. 음란하지 말라. 훔치지 말라. 나쁜 거짓말을 말라. 술 마시지 말라.
맹자도 다섯 가지를 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 노름하거나 술 마시지 말라. 재물을 좋아하여 제 처자식만 위하지 말라. 사치하고 방탕하지 말라. 싸움 잘하는 불량자가 되지 말라.
위에서 말한 성인들의 가르침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 사회의 고장난 부분이 상당수 치유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가 전자의 다섯 가지 금기 사항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매일같이 돈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고, 술 마시며 싸우고 도둑질하고, 또 음란한 짓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하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고, 거짓말로 사람을 꾀어 돈을 뜯어내 그 돈으로 잘 사는 가정을 만들고 행복을 꾸려나가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행복과 부는 얼마 못가서 붕괴되고 만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좋으네요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이어서 많은 도움 되는 글입니다 건필하세요
방에서 소변보시는 분은 차라리 나으시네요...남에게 피해는 안주니까요...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