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 배우자賞 신명자씨
6년前 하반신 마비된 남편, 병으로 뇌 성장 멈춘 아들
그 모든 고통 껴안은 그녀 "행복해질 날만 남은 거죠"
"우리 인생은 황금도, 수정도 깔려있지 않아요. 행복은 스스로 찾아내야 해요."
한국지체장애인협회가 주최한 '전국 중증장애인 배우자 초청대회'에서 19일 '장한 배우자상'을 받는 신명자(46)씨는 "가족과 함께 웃으며 살려고 노력하는 게 상까지 받을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지체 장애 1급인 남편과 지적 장애 2급인 아들을 돌보며 산다.
남편은 결혼 9년째인 1995년 봄,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떨어져 척추를 다치면서 하반신이 마비됐다. 여섯 살 딸과 네 살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병수발을 시작했다. 1년 넘게 대소변을 받았지만 의사는 평생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 남편은 반드시 일어선다'고 믿으며 매일 손이 아플 때까지 남편 다리를 주물렀다. "그런데 어느 날, 안마해주는데 남편이 '아프니까 살살하라'는 거예요. 남편이 아프다는데 전 신이 났어요. 남편의 '아야, 아야' 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어요." 남편은 아직도 대소변을 튜브로 빼내지만, 두 다리로 일어설 수는 있다.
남편이 퇴원하고 통원 치료를 하면서 웃음을 되찾아가던 가정에 1997년 가을 또 하나의 불행이 왔다. 여섯 살 아들이 오래도록 달고 다니던 감기가 '악성 림프종'이라고 했다. 의사는 "오래 살기 어렵다"고 했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할 테니 고쳐달라"고 울면서 병원 복도를 뛰어다니며 의사들에게 매달렸다.
이후 그는 남편 재활 치료를 위해 동수원병원으로, 아들 항암 치료를 위해 아주대병원으로 뛰었다. 아들은 5년의 항암 치료 끝에 병이 나았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독한 약물치료를 받아 뇌 성장이 멈추면서 지적 장애 2급이 됐다.
"내가 그 뒤로는 좀 독해졌어요."'남편 모습은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아빠 모습은 되찾아달라'며 싫다는 남편을 억지로 복지관으로 내쫓았다. 아들은 방에 가두고 외울 때까지 함께 굶어가며 글을 가르쳤다. 주변에서 신씨를 '계모'라고 불렀다. 그는 "남들이 뭐라고 하는지 잘 알지만 독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들은 1년 만에 자기 이름 정도는 쓰게 됐다. 남편은 복지관에 가서 수영도 하고, 붓글씨도 배운다.
신씨는 지난해 말 웃음치료사 1급 자격증과 레크리에이션 2급 자격증을 땄다. 9년째 해온 장애인 생활 도우미를 더 제대로 해보려고 마음먹고 딴 자격증이다. 그새 딸은 유치원 교사가 됐고, 아들은 장애인 고용 기업에 취직했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키가 좀 작죠? 그래도 제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희망이 계속 자라고 있어요."
첫댓글 '무슨 일이든지 자기 하기 나름' 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여태껏 없던 어깨주변이 굳는 듯한 증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약간 침체되어 있던 중 님께서 올린 글을 읽고 용기백배해봅니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꿋꿋이 이겨내는 사람이 있
는데 의지가 약해서인지 저는 두려움을 느끼고 우왕좌왕하는 자신을 봅니다. 빨리 헤어나려고 애는 쓰지만 시간이 걸
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는 '무슨 일이든지 자기 하기 나름' 이란 글귀를 생각하며 더 적극적으로 대처할 생각입
니다. 고맙습니다.
훌륭하고 존경스럽내요 신명자씨 !!! 앞으로 이가정에 좋은 일만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