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 찾아서 하기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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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점에 이르러 불교와 접목한 상담이론에 대한 체계를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기는 내담자 중 한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궁리하다 공(空)을 떠올렸다. 이것을 잘 설명하면 도움이 될 듯싶었다.
그는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느닷없이 폭행을 당하는 바람에 큰 상처를 받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거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를 못했다. 지금도 그때의 통증이 머리를 관통하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다른 곳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 많이 나아졌지만, 뭔가 미진한 것이 남아있다며 얼마 전에 나를 찾아온 사람이다.
그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착잡하였다. 상처와 씨름하며 보낸 세월이 한두 해도 아닌데, 아직도 그러고 있는가 해서였다. 깊은 상처일지라도 거기에 집착하면 도리어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기 때문에 어떻게든 털어내야 하는데, 그는 그러지 못하는 듯했다.
억울한 일을 당한 내담자를 상담할 경우, 상담에서 해줄 수 있는 대개의 것은 공감해주는 일이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내담자는 공감을 통해 위로를 받고 다시금 일어선다. 그런데 통상 1년이 넘도록 털어내지를 못하고 여전히 억울함에 사로잡혀있다면, 그때는 이러한 결과의 주범이 내담자가 말하는 그런 외부 사태라기보다 전부터 지니고 있던 그의 취약성으로 본다. 즉 내담자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상처나 미해결된 것이 자극을 받고 활성화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를 찾아온 그 사람은 다른 곳에서 신물이 나도록 분석이나 공감을 받았다. 하지만 여전히 미진함이 남아있어 머리가 아프다니…. 뭔가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해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필요할 듯했다.
심리학 교수로 재직한데다 10년 전부터 불교를 가까이 해왔던 나로서는 불교에 기반한 상담을 펼쳐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불교는 ‘모든 현상이 연(緣)하여 발생한다.’는 연기법을 기본으로 깔고 있다. 이러한 법칙이 모든 불교 전반에 관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해 그의 문제를 보면, 그가 아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그 시점에 있었던 모든 조건의 합이다. 그의 처지에서는 한없이 불행한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무고하게 당했다고만 여기는 것은 억울함만 더 심화시킬 뿐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성급하게 하거나 곧이곧대로 했다가는 야속함을 줄 게 뻔했다. 그리하여 그의 억울함에 공감이나 동조하다가 관계 형성(rapport)이 제법 무르익었을 때 그가 너무 그것에 함몰해 있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든 지나가게 마련인데, 어쩌자고 그토록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느냐고 질문하였다.
질문 형태이긴 하지만 지적임을 알아들은 그는 잠시 주춤하였다. 그러다가 이윽고 상처가 너무 깊어 자신의 인생이 망가졌다며 이러한 피해를 어떻게 넘겨버릴 수 있겠느냐며 반문했다. 나는 다시금 말하기를. 어떤 것이든 생겨난 것은 항상성(恒常性)을 지닐 수 없어 지나가게 마련이라고, 즉 그 자신이 이미 지나가고 없는 것을 꽉 움켜쥐고 있어 오히려 고통을 더해가는 형상이라고 일렀다.
그러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응수하였다.
“중요한 말씀인 것 같으니, 곰곰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완곡하게 내가 하는 말을 뒤로 넘기니까, 나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더 밀어붙였다가는 남의 고통에 둔감하다고 저항을 보일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 정도로 응수하는 것도 다행으로 여기며, 다음 기회에 다시 말해보기로 했다.
그 회기의 상담을 마친 후 다음 기회에 그에게 좀 더 설득력 있게 접근하기 위해서는 내가 탄탄하게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통스러운 상황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라는 것, 자기를 더욱 고통으로 몰고 가는 것은 사건 자체보다 억울해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 이미 지나간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공(空)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 등을 조리 있게 있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하려면 직관적이거나 단편적인 언급이 아니라 좀 더 체계화를 구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하여 착수하게 된 것이 ‘불교적 상담에 대한 이론화’였는데, 막상 작업을 하려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하나하나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뒤늦게 이런 즐거움을 누린다는 사실에 기뻤고, 잘 사는 길이란 다름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열중하는 거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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