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우리에게 일관성 있는 기쁨의 마음이 있으려면?" 시편 111편
어제는 나를 따라 베를린까지 왔던 멘티 지영이가 다시 비엔나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공항까지 멘티 승희 전도사가 지영이를 데려다줄 아침 시간이 안 되는지라.. 내가 우버를 불렀다. 내게 있는 우버 앱이 독일에서도 가능하니 좀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있는 숙소로 우버 택시가 아침 8시가량에 오게 되어 있었는지라 지영이 마지막 "개인 멘토링"을 해 주려고 아침 6시 반에 집을 나섰다. 근처에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커피집을 찾아서 둘이 마주 앉아 일단은(?) 독일에서의 "개인 멘토링"을 마치려고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어제 새벽 6시 반에 멘토링을 하기에는 사실 나로서는 육체적으로 좀 무리가 있었다. 내 멘티들보다 내가 나이가 좀 많은지라 ㅎㅎㅎㅎ 아침에는 멘토링을 건너뛸까? 아니면 아주 짧게 할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 새벽에 내 멘티들이 올려 준 묵상들을 읽게 되었다.
한국에 있는 멘티 중에 "가원샘"이라고 내 멘티가 있다. 내가 내 묵상에 가끔 가원샘이 올리는 묵상을 부분적으로 공유할 때가 있다. 공립중학교에서 영어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 전도 정말 많이 한다. 전도한 아이들은 근처 교회로 주일날 모두 데리고 가려고 큰 힘을 쓰는데 영적 공격이 어마어마한 것을 가원샘 묵상 읽으면 저절로 알게 된다.
어제 가원샘 묵상을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났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구나!! 이 새벽(?)이라도 멘토링 하러 내가 나가야 하는구나 그 생각을 했다.
가원샘 멘티 묵상을 부분적으로 공유한다.
*** 어제 엄마랑 아이들이랑 번갈아 전화를 계속 했어서 세어 보았다. 애들이 받지 못한 전화까지 포함해서 애들이랑은 22번, 엄마랑은 12번 했다. ^^;;
어제 몸과 마음이 피곤했을 수 있으나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힘을 크게 느꼈던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피곤하고 힘든 일을 겪고 또 하나님 때문에 위로받고 공급받는다는 것은 가치 있고 영광스러운 삶임에 틀림없다.
세상도 우리를 피곤하고 힘들게 하는데 세상은 동시에 우리의 영을 피폐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을 위해 피곤하고 힘들 때는 내 영을 더 정결하고 주님께 가까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위로가 공급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너무 힘든 삶을 산다고 생각할 거 같은데 어제 주님이 내게 주신 위로만 몇 가지 좀 써볼까 한다. (중간 생략)
어떤 이들은 영적 전쟁이 싫어서 하나님의 일을 망설인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는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시는 것을 망설였더라면?
왜 예수님을 위해 싸우는 게 싫은 걸까..
다 주신 예수님을 위해 조금 드릴 수 있다는 게 나는 감격인데..
주님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기쁨일 수 없는 걸까..
예수님은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다는 히브리서 1장 9절 말씀이 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의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할 때의 "의"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의"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의"와 다 동일한 "의"다.
그러니 예수님처럼 의를 사랑한다는 것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뜻이고 의를 위해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된다는 뜻이고 심지어 의를 위해 박해를 받기도 한다는 뜻인데
그럴 때 약속된 즐거움의 기름 부으심이 있다. 그리고 하나님 곁으로 가까이하는 특권을 주신다. ('뛰어난'은 원어로 가까이라는 뜻이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을 챙겨주신다. ***
내 멘티도 이렇게 영적 전쟁에 대한 컨셉을 정확히 알고 "의"에 대한 싸움을 기꺼이 잘 응하고 있는데 ㅎㅎㅎ
멘토인 내가 이래서 되겠는가?? 생각이 들어서 얼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멘티 지영이에게 "우리 6시 반"에 만날까? 하고 둘이서 함께 숙소를 나가서 근처 커피집에서 택시가 오는 8시까지 아주 "찐 멘토링"을 할 수 있었다. 감사 감사 주께 감사!!
개역개정 시편 111편
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ll who follow his precepts have good understanding. To him belongs eternal praise.
우리는 어떠한 일에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런 것에 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주님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이 일을 기뻐하실까?" 생각해 보게 되지 않을까?
그런데 오늘 내가 선택한 성경 구절은 정확하게 우리에게 그 답을 주신다!
개역개정 시편 111편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즉슨? 어떤 일에도 하나님 기뻐하시는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과 결정이 올바른 것인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그들의 삶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관성 있는 여호와를 찬양함"이 함께 한다는 것이다.
내 삶에 일관성 있는 것이 무엇인가? 큐티를 매일 하는가? 성경 통독을 매일 하는가? 성경 필사를 매일 하는가? 성경 외우기를 매일 하는가?
일관성 있는 주님과의 관계에서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지혜를 공급받고 있는가?
그렇다면 내 환경의 어려움을 뛰어넘는 "하나님 찬양함의 기쁨과 감사"가 일관성 있게 이어지고 있는가?
그것이 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지는가?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주님이 참 좋습니다. 그냥 좋습니다. 모든 것이 그냥 감사합니다. 매일같이 이렇게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주님을 기뻐함이 나의 매일같이 공급받는 새 힘이 되어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가 베를린을 떠나 비엔나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베를린에서의 사역을 잘 마치고 돌아가도록 영육간의 강건함으로 함께 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제가 영육간에 강건함으로 맡은바 사역을 잘하라고 기도해 준 모든 분을 주님 기억하시고 복을 내려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
외울 말씀 개역개정 시편 111편
10.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4. 11. 5.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셔야죠?
오늘 제가 출석을 부르는 곳은 베를린입니다. 제가 언제 다시 베를린에서 출석을 부를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의 마음속에 오늘 기쁨이 있는지요? 기쁨이 없다고 한다면 무슨 일 때문에 기쁨이 없을까요?
그대가 만든 그 decision 결정, 선택이 혹시나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은 없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이 불편하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기쁨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기쁨이 있는가? 없는가? 또한, 이 기쁨이 일관성을 갖고 있는가? 일관성이 아니라 그냥 일회성인가? 생각해 볼 때 나에게 일관성 있는 기쁨이 있는가?
그렇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죠.
사랑하는 그대여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은 우리에게 큰 힘이 됩니다. 새 힘이 됩니다. 또 하나의 힘이 됩니다. 항상 동일한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