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살 예찬
늘푸른언덕
얼마 전 사랑하는 딸아이의 결혼식을 앞두고 신부 아버지로서 작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부터인가 제 양미간(兩眉間)에 자리 잡혀 한 줄로 깊이 패인 주름살 때문이었습니다.
나이에 비하여 아직 얼굴에 주름살이 없는 편인데 유독 양미간에 패인 1자 주름은 제 스스로 보기에도 그리 좋지 못한 인상을 줍니다.
이 주름살의 탄생 배경을 생각해 보니 비교적 긍정적이고 웃는 얼굴이라 주름살이 잘 생기지 않는데 양미간에 생긴 이 주름살은 필경 ‘기도의 주름살’이 틀림없습니다. 젊어서 부모님을 여의면서 시작된 삶의 시련과 고난 속에서 만난 하나님과의 동행을 통하여 시련을 앞에 두고 기도라는 소통 채널 가운데 생긴 일종의 영적인 훈장 같은 것이라 단정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이 주름살을 딸아이의 결혼을 앞두고 보톡스 한 방으로 없앨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최종적으로 그냥 두기로 결정합니다. 왜냐하면 이 주름살은 제가 만난 시련과 고통을 기도로 싸워 이긴 영적 훈장 같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주름살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습니다. (나무위키 참조)
옷, 종이, 피부 등이 접혀서 줄이 진 것을 ‘주름’이라고 하고 특별히 피부에 주름이 잡히는 것을 주름살이라고 정의합니다.
주름살이 생기는 하나의 원인으로 ‘얼굴 표정’을 들 수가 있습니다. 습관적인 얼굴 표정으로 근육이 수축하여 피부에 주름살이 생기는데 이때 생기는 주름살은 나이가 들어 피부 노화에 의해 생기는 주름살보다 골이 더 깊은 것이 특징입니다.
주름살이 생기는 보다 일반적인 원인으로 ‘햇빛 노출’을 지적합니다. 피부가 지속적으로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가 건조해짐으로 피부 노화가 일찍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햇빛 차단용 화장품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피부 노화는 어쩔 수 없는 자연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름다운 태도라 보입니다.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
어린 시절 한때 즐겨 불렀던 작사가 윤석중 님의 ‘짝짜꿍’이란 동요의 1절입니다.
동요에서도 노래하듯이 우리들은 어린 시절 우리들의 아버지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살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 주름살은 세월을 비껴갈 수 없는 어른들의 자연스러운 삶의 나이테 같은 것쯤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정작 그 때는 그것이 한 가정을 건사하고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한 우리 아버지들의 삶의 처절한 몸부림의 대가인 줄 몰랐습니다. 오늘날은 자녀를 전혀 낳지 않거나 기껏해야 1명, 많아야 2명이 고작인 시대입니다. 그런데 불과 6~70년 전만 해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도 자식들 생산에는 대체로 관대했습니다. 한 집안에 4~5명의 자녀는 흔한 일이었고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7~8명의 자식을 갖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줄줄이 사탕처럼 세상에 나온 그 자식들을 교육하고 양육하느라 뼈가 부서지는 줄 모르게 일을 하며 감당하게 된 무거운 삶의 무게가 빚어낸 것이 바로 우리네 부모님들의 삶의 훈장으로 미화된 주름살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고 삶이 윤택해지다 보니 주름살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삶의 훈장처럼 미화되던 주름살은 더 이상 자랑거리가 되지 못하는 듯합니다. 하나둘씩 생겨나는 주름살을 감추는 게 미덕이 되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한 사회적 문화를 소위 얼굴값 하는 연예인들이 앞장서기 시작하였고 서서히 형편이 되는 집으로 전이되더니 요즘은 너 나 할 것 없이 앞다투어 주름살 제거 작업에 혈안이 되고 유행이 되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주름살은 더 이상 삶의 미덕이 아니라 거침없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불편한 장애요 삶의 미물 덩어리로 전락해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주름살 관련 기사에서 외국 할리우드 스타들의 주름살을 대하는 색다른 태도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을 방문했던 리즈 위더스푼의 주름살론에 의하면 ‘주름살은 배우로서 보다 자연스러운 표정연기를 보여 줄 수 있기에 결점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보톡스 등 시술과 성형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칸에서 만난 대부분의 할리우드 여배우들도 같은 입장을 보여 눈에 띕니다. 스크린 속 여신이었던 제니퍼 코넬리, 나오미 왓츠, 셀마 헤이엑, 틸다 스윈튼, 이자벨 위페르와 같은 스타들의 눈가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전혀 추하지 않은 모습으로 오히려 더욱 자연스러운 미인의 얼굴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당당하게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름살은 어쩌면 열심히 살아온 삶의 흔적이며 전쟁과 같은 삶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시련과 싸워 이겨낸 승리의 대가입니다. 시련을 이겨내고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서의 주름살이 그런 치열한 삶을 대표하는 흔적이라면 그 유사한 흔적은 우리 몸의 다른 부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습니다.
한 때 어느 잡지에서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과 2002년 월드컵 축구 영웅 박지성 선수의 발을 경이롭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들의 노력을 가히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한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발 속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치열한 인생의 시련을 당당히 이겨내고 성공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챔피언의 발이었습니다. 보톡스로 주름살을 없애듯 그들도 축적한 부(富)로 그들의 추한 발을 정상인의 발로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겨졌지만 영광스러운 그 발들을 그대로 갖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외연을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어린 시절 고생 가운데 생긴 우리 어머니들의 굽은 등과 허리는 앞서 언급한 아버지들의 주름살처럼 희생과 헌신으로 대변되는 빼놓을 수없는 또 다른 삶의 애환이 담긴 흔적입니다.
이러한 삶의 흔적인 주름살을 다시 영적인 시각으로 한 걸음 더 외연 확장하여 묵상해 봅니다.
우리 몸에 영적 주름살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하는 가운데 만나게 되는 환란과 시련을 이겨낸 영적인 흔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생각나는 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간절하고 순수한 기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신들께서는 평생을 기도의 무릎을 꿇고 성경 책을 가까이 하신 모습을 기억합니다. 기도와 믿음의 어머니들의 손에 들린 낡은 성경 책과 해진 무릎은 우리가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영적인 흔적입니다.
성경 속에서도 많은 영적인 흔적을 보인 성서의 인물들을 찾아 볼 수 있지만 우선 생각나는 사람이 초대교회 성도로서의 첫 순교자 스테판 집사이며 그의 거룩한 순교의 피라는 생각입니다.
예수 승천 이후 집사의 신분으로 복음과 성령의 열정이 가득 찼던 청년 스테판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대의회의 심문과 압박에 맞서 싸우며 끝까지 정당성을 지키다가 돌로 머리를 맞아 죽는 투석형을 당하는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그때 흘린 그의 거룩한 순교의 피가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우리가 잘 아는 영적 흔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프리카에 가면 여기저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빙스턴과 슈바이처 박사의 사랑과 섬김의 흔적입니다. 세상적인 부귀와 명예를 버리고 불모의 땅 아프리카로 건너가 그들의 전 일생을 그곳에서 숭고하게 헌신하며 아프리카 주민들의 정신적인 아버지가 된 그들의 삶은 그 자체로 비교할 수 없는 영적인 흔적입니다.
성서에서 가장 빛나는 영적인 흔적을 하나 더 들라면 저는 개인적으로 사도바울의 영적인 공적을 꼽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젊은 시절 가장 성공한 정치인이며 자랑스러운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로 예수와 그를 따르던 제자의 무리를 학살하고 억압하던 그가 어느 날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을 하고 난 후 전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그 후 예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죽는 순간까지 평생을 복음을 전하며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고난과 굶주림, 헐벗음, 수없이 많은 환란 가운데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달려갈 길을 달려간 믿음의 대표주자,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또한 영적인 조명을 가까이 비추어보면 오늘날 주의 복음을 들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땅끝까지 찾아 나선 이름 모를 선교사들의 헌신과 연일 이어지는 영적 싸움의 흔적, 그 가운데 맞이하는 병마와 죽음 속에서 쉼 없이 자라나는 선교의 씨앗들도 귀한 성령 열매의 흔적입니다.
어느 것 하나 가볍게 여겨질 수 없는 귀한 희생과 헌신의 영적 흔적들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고귀한 믿음의 결실로서의 영적 흔적은…
2000년 전 전 인류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과 영생의 복음을 선물로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숭고한 공생애를 통해 이 땅에서 그 거룩한 사명을 완수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보여주신 예수그리스도 진리와 그의 보혈의 피로 세상을 구원한 바로 그 십자가와 그 속에 담긴 숭고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은즉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관이 예비되어 있나니
주 곧 의로우신 심판자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그분의 나타나심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도 주시리라
디모데후서 4장 7절 ~8절
첫댓글 치열한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시련과 노력의 결과물로 얻어지는
인생의 훈장과도 같은 영광의 흔적인 주름살과 그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봅니다.
생각의 외연을 넓혀 주름살의 영적의미에 대하여도 잠시 묵상합니다.
<늘푸른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