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야청청(獨也靑靑)
홀로 푸르고 푸르다는 뜻으로,
남들이 모두 절개를 꺾는 상황속에서도
홀로 절개를 굳세게 지키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獨 : 홀로 독
也 : 어조사 야
靑 : 푸를 청
靑 : 푸를 청
독야청청(獨也靑靑)이란 말은
홀로 푸르다는 뜻으로,
남들이 모두 절개를 꺾는 상황속에서도
홀로 절개를 굳세게 지키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유럽의 문화를 오크(oak)문화라 하고,
지중해(地中海)의 문화를 올리브(olive)문화,
일본의 나무를 편백(노송, 회목) 문화라고 한다면
한국의 문화는 소나무 문화라고 할 수 있듯이,
각 민족에게는 오랜 세월동안
역사와 운명을 함께 해 온
나무가 한 가지씩 있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한국인과 소나무는
특별히 깊은 관련이 있어 단순히
나무의 외형적 가치 이용을 넘어
한민족의 정서와 기질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런 영향은 건축이나 공예, 회화, 문학,
민속 등의 분야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특별히 우리 선조들은 자신의 청렴함,
또는 절개가 있는 사람,
기고(奇觚)가 분명한 사람,
즉 자기 의지나 목표 또는 삶의 의미가
분명한 사람을 소나무에다
옛날부터 비유를 많이 하곤 하였다.
많은 문인(文人)들이 절개와 충절의 표상인
소나무를 시제(詩題)나 화제(畵題)로 삼았고,
혼탁한 세상과 구별되는 탈속(脫俗)의
대상으로 그리기도 했다.
여기에 한 조선의 사육신(死六臣)중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의 시조를 소개한다.
성삼문의 시조를 살펴보자.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에
낙락 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 청청(獨也靑靑)하리라.
내가 죽어 무엇이 될까 하니
봉래산 제일 높은 봉우리에
가지가 축축 늘어진 소나무가 되어
흰 눈이 하늘과 땅에 가득할 때
홀로 푸르리라.
그가 쿠테타로 어린 단종(端宗)을 몰아내고
서슬 시퍼런 세조(世祖)의 권력 아래서
단종 복귀를 꾀하다 발각되어 온갖 고문을 받고
이후 능지처참까지 당하는 수모를 당하였던 성삼문,
그는 죽을때까지 세조를 임금이라
부르지 않고 나리라고 불렀다 한다.
성삼문이 죽음 앞에서 불렀던 그 시조가
절개와 충절의 상징인 소나무를 비유하며
자신의 충절을 죽음과도
바꿀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올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