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모범생간은 체임벌린의 정치력에 한계는 있었습니다. 그는 분명 처칠처럼 튀는 정치인도 아니었고 고생이라고는 모르고 정해진 엘리트과정을 밟은 사람입니다.
먼저 체코문제를 본다면 히틀러가 주장하는 체코영토에 대한 독일의 역사적 당위성은 이렇습니다. 생존권이라 불리는 Lebensraum정책은 동구쪽으로 독일민족의 생활권을 넓히는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수데텐말고도 체코의 프라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고 알프스이북에서 제일 먼저 대학이 생긴 독일문화권의 중심지라는 것이죠. 또 만일 이 지역이 히틀러의 수중에 들어가면 동구에 안정이 올 거라고 체임벌린은 믿었습니다. 일단 이런 정책이 나온 이유는 개인적인 체임벌린의 경향보다는 당시 당론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수상의 독단이 정책에 반영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회담이후에 당당히 체임벌린은 우리는 평화를 샀다 라는 발언도 했고요. 무엇보다 서유럽쪽으로의 영토적 야욕을 히틀러가 드러내지 않았고 인구면에서는 약간 밀리지만 유럽대륙에서는 프랑스가 버티고 있으니 독일의 지나친 팽창에 제제를 가할 수 있다고 확신했답니다.
사실 구체적인 침략계회 특히 서유럽작전에 대한 비젼이 독일군 수뇌부 내에서도 없을 당시고 주적은 소련이었으니까요. 당시 영국의 자본가들 사이에는 유태인문제나 다른 이슈보다도 소련의 팽창이 더 무서운 존재였죠.
만일 독소가 싸워만 주면 상관이 없을 것이고 광신적인 히틀러가 결코 이성적 판단은 하지 않고 소련과 싸우리라 보는 것이죠. 그런데 서유럽국가들을 황당하게 한 것은 바로 독소불가침 조약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히틀러는 맹목적인 살인마가 아니라 타협을 할 줄 아는 아주 약은 인물이라는 것이 증명이 되는 것이죠. 실제로 그후 핀라든 작전등에서 히틀러는 아주 고도의 외교술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잘 버텨줄줄 알았던 프랑스가 어이없이 무너진 것이 체임벌린의 계산에서 빗나간 것이죠. 분명 독일에 대해 전쟁을 통해 제재를 가하는 것보다는 소련과 싸우게 하는게 좋을 거란 생각은 옳았고 경제적인 생각이었지만 문제는 히틀러가 체임벌린이 생각한 것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프랑스의 경우도 너무 쉽게 진 것이 계산상 오차였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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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수긍할만한 부분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뮌헨협상과정에 대한 설명엔 좀 이견이 있습니다..
일단 먼저 체임벌린의 자질론을 들고 싶군요..
체임벌린은 제가 볼때 비스마르크가 가져온 유럽의 안정을 꿈꿨던 것 같습니다. 그는 비스마르크가 주도했던 19세기 말 약 20~30년 동안의 평화 체제를 거울삼아 독일의 팽창 야욕을 잠재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비스마르크는 당시 프랑스의 팽창야욕을 저지하기 위해 프랑스의 관심을 유럽에서 아프리카 쪽으로 돌리려고 애썼죠. 그는 모로코와 알제리의 과일이 다 익었는데 무엇을 주저하냐며 프랑스에게 북아프리카 선점을 종용했고 독일은 그런 프랑스의 행동에 아무런 이의가 없다며 살살 꼬셨습니다. 한 마디로 유럽의 안정 도모를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 쟁탈전으로 기력이 쇠진하기를 바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체임벌린은 비스마르크와 같은 능력과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뮌헨협상으로 타격을 입을 나라는 삼척동자가 봐도 소련이 될 것은 뻔했습니다. 체코가 넘어감으로써 영국은 독일에 대항할 수 있는 약 30개 사단을 송두리째 넘겨주었고 이는 소련의 강력한 불신을 사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은 소련에게 적절한 보상책을 주어야했지만 묵묵부답이다가 독소간의 회담이 진행되는 것을 알고 부랴부랴 소련과의 동맹 체결을 서두릅니다. 스탈린은 특사에게 영국과의 동맹 체결로 인한 소련의 이득은 무엇이냐고 묻자 특사는 독일에 대한 완벽한 포위망이라고 응답하고 이에 스탈린은 그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 영국은 실질적으로 몇개 사단을 보내 소련을 구원하겠냐고 묻자 특사는 우물쭈물하며 약 1~2개 사단이 될 거라고 말하자 스탈린은 코웃음을 치며 특사에게 말합니다. 소련은 그 반대되는 상황이 발생시에 약 100개 사단이 동원될 거라고 말입니다.
결국 이로인해 영국은 소련과의 동맹이 불가능하게 되자 어설프게도 독소에 의해 거의 포위된 폴란드를 돕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아마추어적인 선언을 하게 되고 이는 세계전쟁을 피하기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그의 주장을 뒤엎어 버리게 되죠. 폴란드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작은 나라의 구원을 위해 유럽전체가 전황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되는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한마디로 체임벌린은 님의 생각처럼 독소간의 기력 쇠진을 바랐다면 아주 어설픈 기획과 구상을 통해 이뤄낼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럽의 평화를 보장하려는 그의 의지 또한 너무 쉽사리 그리고 열정적으로 무너집니다. 덧붙여 독일의 양면전에 대한 영리함은 체임벌린만 갖고 있던 것은 아니고 당시 어느 정치가라도 갖고 있었을 겁니다. 스탈린도 그걸 알고 있었고 독일의 대다수 군인과 정치가들도 그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