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덥던, 지리한 장마가 계속되던 7월 하순에, 업무 출장으로 경기도에서 3박을 하고 왔습니다. 사정 상 숙소는 안양시에 잡고 출장지인 의왕시로 업무차 오갔습니다. 다른 이가 차를 운전했으니 오가는 길에 낯선 도시의 거리 풍경을 살피고, 행인들, 점포들, 식당, 가로수 보느라 오가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습니다. 이틀째가 되니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안양시 쪽에서는 은행나무와 능소화가 가로수였고, 의왕시에 접어들면 느티나무가 쭉 늘어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인터넷을 찾아보니 안양시 시목은 은행나무, 의왕시는 느티나무였습니다. 표지판 없이도, 가로수로 자연스레 시 경계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일행은 모두 교수이다 보니 오가는 길에 학교 일 관련 대화에만 집중했고, 이 차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더군요. 경계에 관심이 없으면 굳이 구분할 필요 또한 없을 테지만요.
시 경계의 구분을 보면서 문득, 오래 전 미국 출장 때가 생각났습니다. 회사 다닐 때 후반부는 해외지원을 하다 보니 출장을 많이 다녔습니다. 특히 미국에는 시카고 50일, 텍사스주 매캘런 100일 2회 등 장기 출장을 여러 번 다녔습니다. 매캘런에서는 생활을 하고, 마킬라도라 지역 내, 대칭되는 공장지대 중 하나인 레이노사에서 업무를 봤습니다. 매일 국경을 통과하여 미국과 멕시코를 오갔으니, 결국 미국 200번, 멕시코 200번을 간 셈이 되었다고 농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국경을 넘어 레이노사로 가던 날, 주재원이 미국과 멕시코의 정확한 경계지점을 표지판 없이도 알 수 있다 하더군요. 역시 그랬습니다. 미국 국경을 통과하여 한참을 평온하게 가던 차가 갑자기 요동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과장해서 얘기하면 로데오 타는 기분 정도... 미국 지역은 도로 포장이 잘 되어 있고, 멕시코 쪽은 포장이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계,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인생살이에 있어 경계는 분명 필요하지만, 어떤 경우는 명확한 경계가 도리어 삶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도시나 국가에 있어서도 같을 것입니다. ‘경계’를 모르고 살아가는 삶이 있다면 그게 최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엄정한 경계(境界,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가 경계(經界, 옳고 그른 경위가 분간되는 한계)가 되고, 경계(警戒, 옳지 않은 일이나 잘못된 일들을 하지 않도록 타일러서 주의하게 함)가 되는 일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문태준님의 ‘극빈’에서 경계를 잊은, 경계를 버린 행복을 느낍니다.
참고로, 마킬라도라(Maquiladora)는 1965년 시작된,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멕시코의 노동력을 이용해 조립한 후 미국에 전량 수출하는 기업에 대해 원자재와 관련 시설 수입 시 정부가 무관세 혜택을 주는 제도로, 고용 창출과 세금 감면, 외화 획득을 통한 무역 수지 개선의 목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동부부터 서부 끝까지 미국 도시와 멕시코 공장지대가 대칭을 이루어 발전하였습니다.
오랜 벗들과는 이런 경계를 허문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의 1박 나들이 시간, 모두가 모든 시간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3208679328
극빈(모셔온 글)=======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 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3초씩 5초씩 짧게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문태준 시집 <가재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