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은 양과 염소의 이야기입니다. 심판의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다섯 개의 설교, 강론이 있는데 끝이 심판이 주제입니다. 이 끝을 종합하는 것이 바로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31절을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라고 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온다는 것은 재림입니다. 32~33절을 보면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라고 합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은 그 당시 모든 사람이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목자가 양 따로 염소 따로 칠 수가 없으니까 함께 섞어서 친 경제적인 편의도 있겠지만, 또 목축의 지혜와도 좀 관계가 있습니다. 양들보다는 염소들이 더 참을성이 없습니다. 양들이 더 미련해서 더는 뜯을 풀이 없는데도 양들은 계속해서 거기서 뜯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염소들은 참을성이 없어서 풀이 별로 없으면 곧장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가는데 이런 것들을 염소들이 더 잘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염소가 이동해가면 양들도 따라가고, 이렇게 해서 풀을 뜯기는데 양과 염소를 이렇게 섞어서 치면 좀 더 좋았습니다.
주로 양과 염소는 같이 활동합니다. 그러나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면 특별히 날씨가 춥지 않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날씨가 추울 때는 양과 염소를 특별히 구분해서 염소는 따스한 곳에 함께 모아서 거기서 잠을 자도록 해야 합니다. 양은 추위를 잘 견딥니다. 양털로 만든 양모는 있지만, 염소 털로 만든 염모는 없습니다. 염소는 털이 많지 않기 때문에 추위를 많이 느낍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세 가지 비유들을 보면 마지막 날에 둘로 갈라집니다.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가 갈라집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갈라집니다. 양과 염소로 갈라집니다. 양과 염소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양과 염소는 크기, 모양, 색깔이 거의 비슷합니다. 비슷하므로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자기 목자가 아니면 구분이 힘듭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합니다. 구분하기 힘든데 목자는 다 아는 것입니다.
33절을 보면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둡니다. 34~40절을 보면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합니다.
이 본문을 왜 해석하기도 그렇고 논쟁이 되는가? 예수님을 몰라도 헐벗고 가난한 사람을 도운 사람들이 양이 된다는 것인가? 자세히 보면 여기 “네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형제를 가리킬 때 아무나 형제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그를 따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 한 그릇 얘기할 때도 10장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맥락에서 보면 적어도 마태복음에서는 이 본문에서 “형제 중에서 작은 자”는 예수님을 모르는 무관심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대로 끝나면 좋은데, 염소 이야기가 나옵니다. 44~46절을 보면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마지막이 결론 없이 끝납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끝을 내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해답입니다. 예수님은 헷갈리게 하심으로 끝을 맺습니다. 너희들의 삶을 점검해봐라! 너희들 삶이 양이냐? 염소냐? 모두 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염소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굉장히 친숙한 얘기가 아니냐? 그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헷갈리게 만듭니다. 일종의 모호성입니다. 모호함으로써 예수님이 끝을 맺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긴장하는 것입니다.
심판 얘기로 끝날 때 그 장소가 어디입니까? 하늘의 재판정입니다. 하늘의 재판을 받아서 어떻게 되느냐? 46절을 보면 거기서 의인과 악인이 가는 장소와 거기서 받을 상과 벌로 구분됩니다. 의인들에게는 그 삶에 대해서 하나님이 다 알고 계셔서 응답하시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고, 악인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평가를 하십니다.
마태복음 10:40~42절을 보면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합니다. 제자를 보내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권위가 강조되기 때문에, 앞의 8~9장의 예수님의 권세가 주제인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합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제자를 보내실 때, 그 사람들을 “소자”라고 명하십니다. “소자”는, 즉 그 당시 어린아이라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고,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기 쉬운 그런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내 형제 중의 소자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예수님과 관계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잘 대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과 함께 안 할 것 같고 내가 이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 그 사람들을 조심해서 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평상시 마음속에 사람들에게 냉수 한 그릇 줄 수 있는 동정심이 없다면 끝나는 것입니다. 가장 위기입니다. 우리 신앙의 위기는 신앙 지식의 고갈이 아닙니다. 우리 동정심의 고갈입니다. 예수님의 이 마음을 잃어버리면 신앙 위기입니다.